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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유비’ 같은 CEO를 원하는 이유

by 마테호른




◆ 조조, 유비, 손권 중 우리 시대 리더로 누가 가장 적합할까


탁월한 용병술의 조조, 카리스마적 흡인력의 유비, 인재양성에 힘쓴 손권.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 가운데 실질적으로 위·촉·오 세 나라를 세우고 치열하게 자웅을 겨루었던 영웅삼걸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의 전략과 생존방식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조조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사람을 다루는데 아주 능수능란한 인물이었다. 그는 인재를 과감하게 발탁하고 이용가치가 있으면 후하게 대했지만, 원칙을 어기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용 가치가 없을 때는 가차 없이 잘랐다. 특히 아무리 큰 공적을 세운 인물이라도 충성심이 의심스러우면 냉담하게 뿌리치며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다.

그에 반해, 유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적 흡인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에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뛰어난 인재를 속속 거느리며 천하를 평정했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에서 보듯 유비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고, 절대 서두르지 않는 대인의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권력도, 사람도 떠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손권은 믿음을 최고로 여겼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쓰지 않았고,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었다. 그 때문에 그에게 수많은 이름없는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대세를 쥐고 흔들만한 재능이 없음에도 삼국의 리더 중 가장 오랫동안 황제의 자리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조조, 유비, 손권 세 사람 중 우리 시대 리더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



▲ 조조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사람을 다루는데 아주 능수능란한 리더십을 지니고 있었다.



◆ 유비를 최고의 리더로 꼽는 이유


조조의 리더십이 능력을 위주로 한 엄격한 선별주의였다면, 유비의 리더십은 널리 알려진대로 무한한 배려를 바탕에 둔 온정주의였다. 그런가 하면 손권은 장점은 높이 평가하고, 단점은 눈감아 준다는 독특한 리더십을 지니고 있었다.

조조와 유비의 리더십은 장단점이 있었다. 조조의 리더십은 승률이 높은 엄격한 카리스마 리더십이다. 조조는 싸움에서 80% 정도의 승률을 올렸다. 유비의 승률이 20%였던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승률이다. 하지만 조조와 같은 엄격한 리더십은 결국 불필요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반발을 사지 않더라도 진심어린 충성보다는 두려움에 의한 충성인 경우가 많다. 조조의 위나라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에 반해, 유비의 리더십은 주변 사람의 힘을 곧 자신의 힘으로 만든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유비는 병법에 약하고 정치 수완도 없었지만, 역사에 남는 리더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강이 쉽게 해이해 질 수 있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가 죽은 후 촉나라는 역사 속으로 곧 사라지고 말았다.

손권의 오나라는 가장 오랫동안 건재했다. 장점을 인정하면서 단점을 가혹하게 질타하지 않는 그의 리더십이 인재들을 끌어모았을 뿐만 아니라 내부 반발 역시 잠재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권은 수성에는 능했지만, 창업에는 적합하지 않는 2인자의 전형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많은 사람이 우리 시대의 리더로 유비를 첫 손에 꼽는다.



▲ 조조와 유비보다 한참 나이가 어렸던 손권은 수성에는 능했지만, 창업에는 적합하지 않는 2인자의 전형이었다.



◆ ‘군이지인위명(君以知人爲明)’을 알고 실천했던 리더, 유비의 리더십


짚신을 만들어 팔던 장사치에 불과했던 유비가 다른 영웅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안목 덕분이었다. 그는 한 황실의 종친이었지만, 집이 가난해서 하루하루 연명했다. 한눈팔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오자 비로소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재를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낮추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유비의 이름 ‘비(備)’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근신하며 준비한다’라는 것과 ‘모두 갖추었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실패를 통해 성장했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배웠고, 자신을 낮추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것을 일컬어 어떤 이들은 그를 무능하고 유약한 군주의 표본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천하는 조조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유비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자존심쯤은 버려야 한다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는 조조나 손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인품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 앞에서도 과감히 자신이 낮출 수 있었고, 인내할 줄 알았다.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훗날 촉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촉한의 다섯 명장인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자룡)이 되어 큰 공을 세운 마초(馬超)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귀족 출신인 마초는 장로(張魯)의 모함으로 인해 유비에게 투항했지만, 단 한 번도 그를 군주로 생각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복종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적대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유비를 ‘현덕공(玄德公’)이라고 불러 관우와 장비를 화를 돋우곤 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유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민심이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다며 두 사람을 달래며, 끝까지 그를 예로써 대했다. 결국, 유비의 따뜻한 인품에 감동한 마초는 호칭을 바꾸고 유비를 군주로 섬겼다.


이렇듯 유비는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고 실패를 거듭하며 인재의 장단점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인재를 아끼는 것과는 다르다. 인재를 아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능력을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유비야말로 ‘임금은 인재를 알아봄으로써 밝아진다’라는 ‘군이지인위명(君以知人爲明)’을 확실히 알았던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그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참모로 꼽히는 제갈량(諸葛亮)을 비롯해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자룡( 趙子龍) 등의 뛰어난 장수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이자, 많은 사람이 그를 배우려는 이유이다.



▲ 유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적 흡인력을 지닌 인물로 주변 사람의 힘을 곧 자신의 힘으로 만든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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