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적독가들 10월호 후기

'자살' 모임후기

by 적독가들



월간 적독가들 10월호 모임입니다.


10월의 책은 '자살(에두아르 르베)'입니다.

출판사의 서평과 심플한 제목에 이끌려 선정하였습니다.


<발제>

1. 왜 자살이라는 게 특별하게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받아들여지는 걸까? 대체 자살이 뭘까?

2. 이 책과 어울리는 듯한 음악이 떠오르는 게 있으면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다.

3. 마음에 드는 페이지나 구문을 서로 낭독해보면 좋을 거 같은데 해보자.


발제문을 보고 어떤 내용이 떠올았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적독가들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오픈 채팅방에 ‘적독가들’로 검색하셔서 참여하시면 자세한 안내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책소개

너의 삶은 하나의 가설이다. 늙어서 죽는 사람들은 과거의 집합체다.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한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를 생각할 때는, 네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이 따라온다. 너는 가능성의 집합체였고 그렇게 남을 것이다.(16쪽)


너는 내가 원할 때 나에게 말하는 한 권의 책이다. 너의 죽음은 너의 삶을 썼다.(17쪽)


너는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기보다는 서점에서 서서 읽곤 했다. 너는 지난날보다는 오늘날의 문학을 발견하기를 원했다. 과거는 도서관에, 현재는 서점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현시대의 사람들보다 죽은 자들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특히 너는 네가 ‘살아 있는 죽은 자들’이라고 이름 붙인 작가들을 읽었는데, 이들은 죽었지만 계속해서 출판되는 작가들이었다. 너는 지난날의 지식을 오늘날의 것으로 만드는 출판업자들을 신뢰했다. 너는 잊힌 작가들의 기적적인 발견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너는 시간이 이들 모두를 정리할 것이고, 따라서 내일이면 잊힐 오늘의 작가들보다 과거의 작가들이지만 오늘날 계속 출판되고 있는 작가들을 읽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22쪽)


오직 살아 있는 자들만 일관성이 없는 듯하다. 죽음은 그들의 삶을 구성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종결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거기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체념한다. 의미 찾기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의 삶이, 모든 삶이 부조리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의 삶은 완결된 것들의 일관성에 가닿지 못했다. 하지만 네 죽음이 네 삶에 일관성을 부여했다.(25~6쪽)


예술에서, 덜어 내는 것은 완벽해지는 것이다. 너는 떠남으로써 음성(陰性)적인 아름다움에 안착하였다.(27쪽)


너는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상관없이 쓰인 것을 믿었다.(43~4쪽)


너는 이미 구축된 우정에 이방인으로서 합류하기보다는 네 눈앞에서 구축되는 우정을 선호했다. 너는 이 후자의 우정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봤다. 무슨 특별한 관심이 서로를 엮을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너는 모두가 동시에 시작함으로써 미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65쪽)


너는 제스처가 몇 분 안에 이루어지고 그 흔적이 간직돼서 오랫동안 보일 수 있는, 오랜 반향을 가진 행동들만을 하고 싶어 했다. 너는 물질성 안에서 정지된 시간 때문에 그림에 관심을 가졌다. 그림을 그리는 짧은 시간은 그림의 긴 수명에 의해 계승된다.(68쪽)


너는 혼자 있을 때 지루한 것과 여럿이 있을 때 지루한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너는 둘이서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 지루한 것을 무엇보다도 가장 두려워했다. 너는 자극이 없는 기다림의 순간들에 어떠한 미덕도 부과하지 않았다.(90쪽)



책 제목이 '자살'인 만큼 대화내용은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짧은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쌀쌀한 10월의 어느날 모였습니다. 가을탄다는 말이 있듯이 일조량이 바뀌며 신체 리듬이 바뀌는 시기와 어쩐지 어울리는 선정도서였습니다. 다소 심오한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려한 문장은 감명깊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인원이 갑작스러운 변동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으나 조금 심도있는 대화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주형 : 책 소개가 작가가 자살함으로써 이 책의 완성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소개때문에 오히려 읽는 데에 있어서 편견을 준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 속에 정보가 있다보니 그것을 기반으로 책의 내용을 좀 생각하면서 읽을 때 감안했으나, 문장 자체의 우울함과 우울증에 대한 것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결말을 사전에 알고 보니 거기에 대한 해석하느라 감상하는데 초점이 쏠리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만 이 작가의 글이 무너져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무너져 있는 것 치고는 엄청 담백하게 서술되어 있다. 마치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이 나열되어 있는 느낌이다.


원지 :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출판사 서평이 쓰여져 있는 게 납득이 될만한 내용이었떤 것 같다. 이게 납득이 되고 안 되고가 아니라, 이렇게 쓰여져 있던 이유가 이렇게 되는구나. 라는 걸 조금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말한 것처럼 편견이라는 것보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주형 : 나는 그 정보 때문에 오히려 더 생각을 복잡하게 했다.


책이라는 게 결국은 상품이라는 가치를 가졌기에, 사람들에게 조금 더 팔릴 수 있는 흥미로운 소개를 하기 위한 출판사의 전략이었고, 그게 누군가에는 불필요한 소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1. 왜 자살이라는 게 특별하게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받아들여지는 걸까? 대체 자살이 뭘까?

원지 : 책 초반에 화자, 그러니까 작가 본인이 죽은 뒤의 시점을 묘사하면서 시작했다. 그 부분에서 자살이라는 게 뭐길래 라는 생각을 했다.


주형 : 책이 서술하고 있는 너가 선택한 죽음의 방법이 자살이었기 때문에 제목이 자살인 거지 그 문장 자체를 읽다 보면 작가가 얘기하는 거는 자살에 대한 얘기보다, 이걸 선택한 방법이 자살이었을 뿐이지 인간의 삶, '너(나)'라는 사람에 대한 묘사가 제일 크고 그 중에서 죽음에 대한 작가의 고착 그런 거가 엿보이긴 하다.


원지 : 책을 가만히 읽다보면 태어날 때부터 이야기를 하다가 점점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까지의 경위를 설명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 전체가 작가의 유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출판사 평이 납득했던 것 중에는 자살을 했기 때문에 이게 유서가 되는 거지만, 만약 작가가 자살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이건 그냥 하나의 소설 정도에 지나지 않았나? 조금 조심스럽지만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사실 하나가 이 책을 소설로 바꾸느냐, 에세이가 되느냐 결정한 거 같다.


주형 : 맞다.


원지 : 우리가 톡방에서 이야기 나눴지만 되게 두서없이 쓴 글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만약 작가처럼 우울증이고 유서를 남긴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우울증이라고 한들 많이 흔들리긴 했을 것 같다. 내 생각은 나만 알고 있는데, 문장으로 형태를 띤 생각을 보니까.

우울증에 극에 달해서 무조건 죽을 거야라는 말이 아니라, 조금 울면서 쓰기도 하고 자기 감정에 이렇게 되면서 두서없이 쓴 글이지만, 그 두서없음이 납득되기도 하고. 또 죽기 전에 썼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주형 : 그런 면에서 오히려 뒤로 갈수록 문장 자체가 조각조각 나지만 오히려 너에 대한 모습이 선명하게 묘사가 된다. 뭔가 작가가 쓰면서 감정이 정리가 되는 것도 있었을 테니까. 그런 느낌은 확실히 있었다.


원지 : 공감한다. 초반에는 설명도 유려하고 그런데 뒷부분은 간결하게 무미건조하게 나열되어 있다. 이런게 했고, 저런거 했다는게, 죽기 전에 작가가 혼자서 주변 사라믈에게 알리지 않고 준비한 것 같다.


주형 : 책은 쉽진 않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지는 않았다. 이 사람의 문장이 짧게짧게 되어 있어서 화려하지는 않은데 계속 흐르듯이 가는 게 읽기는 편하다.


원지 :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갸기 흐름리 A->B->C로 흐르는 게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다 보니 쉬운 것 같은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주형 : 이 인물에 대한 회고록, 회고록에 가까운 형식이다. 너라는 인물에 대한 회고록.


원지 : 그래서 자살이라는 게 왜 우리에게 좀 특별하게? 다가올까 생각해봤다.


주형 : 소설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한번 언급이 되어있다. 37페이지에서


너는 병들고 늙어서 마치 유령을 방불케 하는 시든 몸을 가진 사는 것을 멈추기도 전에 죽은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에 속하지 않는다.


자살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서 한번 설명이 된 것 같다.


죽음은 노새 완결이라 오랫동안 죽어가던 사람이 죽는 것 이것이 해방이 아니면 무엇인가 죽음의 죽음이 아니면 무엇인가.


자살은 삶에 대한 죽음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여겨진다.


원지 : 나의 경우 자살이라는 게 특별하게 받아들여졌던 이유는 다시는 보지 못한다라는 생각. 즉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와닿아서 피부로 느끼게 할 때가 있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자살한 사람이 없으니까. 유명한 사람들 혹은 천재라고 불린 사람들이 뭐 한마디로 요절 혹은 자살 이런 경우들로 보았을 때. 그 사람들이 남긴 유작이라고 하면서 가격이 미친듯이 폭증할 때면 이런 현상들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주형 : 맞다. 지속성의 단절 때문에 그렇다.


원지 : 죽음 혹은 자살이라는 게 되게 와닿았다.


주형 :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의 자살을 먼저 떠올렸고, 책의 묘사에서 내가 생각한 것들을 전부 언어화 해준 느낌을 받았다.


원지 : 같은 37페이지에서 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밑단에


너는 생명력 안으로 떠났다. 젊고 활력 있고 건강한 사람으로서 너의 죽음은 삶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반대인 죽음의 삶을 구현했다고 믿고 싶다. 나는 내가 어떤 형태로 너의 자살에 살아남을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죽음이 너무나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내가 영원하다고 믿는 미친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죽음의 삶'을 구현했다고 믿고 싶다라고 한 부분을 읽을 때 마침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님 받으셨다. 그때 화제가 엄청 되지 않났나 그러면서, 한강 작가님 소년이 온다가 어떻고, 채식주의자가 어떻고 그러면서 회자가 되는데, 소년이 온자 실제 실존 인물이 겹쳐졌다. 자살은 아니지만, 죽음으로써 죽음의 삶을 구현한 죽음이 영원하다고 믿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뿐만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죽음이 그 주변 사람들은 거기에 대한 영향을 되게 많이 받는다. 후회보다 미련이 많이 남는 거 같다.


주형 : 작가는 왜 우울증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원지 : 약을 먹은 걸로 묘사가 되었는데 부작용이 있어서 힘들었던 거 같다. 중간에 쓰여진 묘사가 제가 먹었던 우울증 약과 너무 똑같은 증상이었다.


2. 이 책과 어울리는 듯한 음악이 떠오르는 게 있으면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다.


원지 : 듣는 노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잘 모르지만. 가끔은 가요 이런 게 아니라 돌려가면서 듣는게 있다. 어느 책에서 묶어둔 클래식이 있는데, 가끔 클래식을 돌려 듣는다. 그래서 노래를 같이 추천하면 좋겠다 싶었다.


추천곡

Ólafur Arnalds - For Now I am Winter ft. Arnór Dan

https://youtu.be/4cOr7JmcOas?si=162GBcQNc8KIhvkL

추천이유는 책자체가 밝고 청량한 분위기는 아니고, 음악도 같이 들으면 차분해진다. 그래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주형 : 음악 추천 이런거 잘 못하지만, 지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안예은 Ahn Ye Eun - 죽음에 관한 4분 15초의 이야기 Wandering

https://youtu.be/dKRsgQIa82o?si=bbMG1IDZGCnYBYys


가사는 한국적이지만 멜로디만 두고 봤을 때 마찬가지로 차분해지는, 또 제목부터가 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고. 이 노래가 떠올랐다.


음악이 어울리는 이유는 책이 주는 철학적인 느낌과 시적인 느낌이 동시에 있었다. 문장 뜯어먹기 하고 싶을 만큼 인용하고 적어두는 문장이 많다. 그래서 세 번째 발제가 이어졌다.


원지 : 인상 깊었던 부분 구문 같은 거 낭독 해보면 좋겠다. 너무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69p
어느 날 밤 너는 프로방스의 한 도시에서 무작위로 밤거리를 3시간 동안 걸었다. 너는 두 대로가 지나가는 매력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동네에 다다랐다. 볼품없는 건물들이 임대아파트, 양로원, 차고, 슈퍼마켓, 청소기 판매점, 애원동물 용품점, 미장원과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기사 식당 메뉴가 걸린 더러운 커튼으로 가려진 식당에서는 진한 기름 냄새와 오랫동안 조리한 고기 냄새가 풍겼다. 주황색 도시의 조명이 두 콘크리트 블록 사이에 기적적으로 보존된 진한 세기의 빌라를 바라보면서 내가 느낄 수도 있었던 즐거움을 망쳤다. 너는 공동묘지에 접해 있는 작은 교회에 도착했다. 커다란 편백나무 한 그루가 심어진 입구의 울타리 너머로 선명하게 보이는 하얀색 무덤들이 내게 마친 잔잔한 아름다움의 오아시스처럼 다가왔다. 너는 밤에 묘지를 걸으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유령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가 그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너를 보호했다. 너는 벽을 이루는 돌에 움푹 들어간 부분과 울타리 높이에 있는 받침대를 보고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너는 어떻게 다시 빠져나올지를 생각하기 전에 고민하지 않고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갔고 너는 다시 내려와서 자동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다음에는 오토바이와 다른 자동차 한 대가 더 지나갔다. 너는 기다리는 동안 작은 표지판에 적힌 묘지의 개정 시간을 확인하는 척했다. 새벽 2시였다. 너는 다시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해서 몇 번의 몸집만으로도 담장 안에 이르렀다. 너는 인접한 공사장처럼 누군가 묘지를 감시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자갈들이 내 발걸음 밑에 덜그럭거렸다. 너는 유령이 무섭지 않았다. 너는 오래전부터 죽음에 대해 너무나 자주 생각한 나머지 이제는 그것을 친숙하게 느꼈다. 어둠 속에서 이 무덤들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다정한 친구들이 주최한 소리 없는 무도회에 참석한 것처럼 너를 안심시켰다. 너는 그곳의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이 부분을 선택한 건 마지막에 이방인이었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이방인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소설속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은 거 같다.


주형 :


32p
너는 연극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네가 선택한 죽음은 너 스스로 장소, 순간 그리고 방법을 결정하도록 했다. 완성하기 위해 너 스스로 연출해야만 했다. 너는 끝없는 의심에 빠져들곤 했다. 너는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지만 의심하는 것은 너를 지치게 만들어서 결국 너는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루는 홀로 생각에 잠겨서 꼬박 오후를 보낸 너를 본 적이 있다. 너는 부동자세였고 넋이 나가보였다. 협곡과 함정으로 가득한 싶은 숲을 수 킬로미터 달리는 것조차도 너를 그렇게 지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었다. 너의 자살은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보다 강렬하게 만들었다. 권태가 그들을 위협하거나 삶의 부조리가 잔혹한 거울에 모퉁에서 튀어나올 때면 그들은 너를 생각하고 그러면 존재한다는 고통이 너는 그렇지 않은 불안함보다는 나은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네가 더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그들은 본다. 네가 더는 듣지 못하는 것들을 그들은 본다. 네가 더는 노래하지 않는 것들을 그들은 노래한다. 단순한 것들의 기쁨이 내 슬픈 기억에 빛을 받고 그들 앞에 나타난다. 너는 이 검지만 강렬한 빛이고 너의 밤으로부터 그들이 더는 보지 못했던 낮을 새롭게 비춘다.


이 문장이 왜 감명 깊었던 이유는 조금 전 앞에 연결해서 보면 느껴진다. 15페이지에서


너는 이제 더는 말하지 않게 계속해서 모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를 다시 살게 하고 너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너는 여전히 말하고 있다. 우리는 네 대답을 듣고 너의 현명함에 나타난다. 그러나 만약 내 대답이 사실과 다르다고 드러난다면 우리는 너를 잘못 이해했다고 자신을 책망한다. 너는 진실이고, 우리는 거짓이다.


이부분과 연결해서 감명 깊었다. 그...


너가 하지 않는 것도 우리는 계속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는 항상 진실이고, 그게 틀렸다고 해도 너의 진실이 틀린 게 아니고 너의 진실을 잘못 해석한 내가 틀린 거다. 그랬을 때 사람이 그 죽음으로써 부재를 한다는 것는 결국 남겨진 사람에 대한 얘기인 거다.


죽은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결국은 남겨진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겨진 사람들의 얘기다. 이 자살이라는 책도 유서를 띄고 있지만, 내(작가)가 만약에 떠나고 나더라도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길 바라고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라는 그 얘기를 계속 독자들이 그리고 이 자산의 소설이자 유서를 읽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야기와 표현을 달리하면서, 계속 바꿔가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제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원지 : 막연하게 자살을 생각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오히려 그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삶에 대한 갈망이 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소설을 쓰면서 처음에 내가 죽은 모습을 떠올리고 내가 어떻게 죽을 건지를 계획하고 죽은 모습을 묘사했다. 그게 살고 싶어서 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가 뒷부분에 우리가 이야기 했지만, 뒤로 갈수록 작가가 생각을 정했고,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주형 : 마음을 먹기까지의 그 얼마나 비명과 슬픔의 집합체인 거다.


원지 : 조심스럽긴 하지만, 자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을 조금 하긴 했다. 자살이라든가 그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삶에 대한 욕구, 삶에 대한 갈망, 삶이 얼마나 간절한지도 아는 사람들이다.


주형 : 공감한다. 삶이 간절한 만큼 사는 게 힘든 거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 죽음 이후의 삶을 더 갈망한다.

작가도 처음에는 불안했던 거 같은데, 이 글을 쓰면서 차분해진 거 같다. 점점 차분해지고, 생각이 정리가 되고 마음이 정리가 되면서, 이 책을 쓰면서 주변정리도 끝냈고, 이제 다 완결 짓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서 라기 보다 작가 자신의 주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책이라고 이야기가 나왔다.


주형 : 삶을 종결하려는 사람이 출간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책인데 책을 냈다는 건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 인연들에게 편지의 느낌처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책의 맨 마지막에는 작가가 남긴 삼행시들이 있다. 우리는 그 원문에 대해 이야기 했고, 원문도 함께 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지었다. 원래는 더 많은 이야기와 심오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했으나 차마 실을 수 없기에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직설적으로 묻는것도 좋다고 했던... 거 같다? 아름답진 않은 세상이지만, 하고 싶은 게 많기에 조금 더 살아보자.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이 독서모임이 계속 유지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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