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북다)
신기한 일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 글쓴이의 억양과 목소리가 떠오른다.
유시민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면, 특유의 말투와 리듬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재생된다.
최재천 교수님의 글에서는 조용하면서도 사색적인 분위기, 말과 말 사이의 고요한 틈이 떠오른다.
황석희 번역가님의 『오역하는 말들』을 읽을 때도 그랬다. 자주 뵌 건 아니지만, 책 속 문장들을 따라 읽다 보면 마치 그의 억양과 목소리가 글 사이사이에서 들리는 듯했다.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이거나, 편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에 맞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스쳐 지나가는 경험은, 글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오역하는 말들'은 번역가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에세이다. 번역가의 직업병이란 바로 ‘말에 민감해지는 것’ 아닐까.
말이 주는 뉘앙스를 잘못 해석하면,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얼마 전,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분명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상대는 내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고, 결국 오해는 끝내 풀리지 않았다.
상대는 어느 순간부터 귀를 닫았고, 나는 억울함을 품은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나 역시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 나도 내 해석에 갇혀, 그 사람의 언어를 오역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의 이해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마음을 닫지 않고 듣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을까.
황석희 번역가님의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딸과의 대화였다.
“어린아이는 아직 말을 잘 못하니, 번역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읽으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과연 약자의 말을 오해 없이 듣고 있었을까?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는 말처럼, 오해는 생각보다 쉽게 벌어진다.
나는 열린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말을 듣고 있었을까.
혹시 내 안에서 ‘오역’하고 있던 건 아닐까.
말은 번역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오해 없이 듣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연습은, 아마 마음을 여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