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가는 지금 본인이 소, 돼지, 닭, 오리를 몇 마리나 키우고 있는지 지자체, 평가원에 매달 신고를 해야 한다. '이력제'라는 시스템의 일부인데, 방역문제나 소비자들이 먹는 축산물이 안전한지 알 수 있게 하는 축산법 때문이다. 사실 소는 30개월은 보통 키우기 때문에 출산신고나 폐사신고, 이동신고만 잘해줘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돼지는 6개월 정도 사육하는 게 보통이고, 닭은 한 달이다. 매달 키우는 마릿수가 다를 수밖에 없어 국가 차원에서 관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기관은 전월달에 신고가 되어있지 않으면 직접 농가에 전화해 두수를 파악하고 지자체에서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도록 돕는다. 농가 사장님과 직접 통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콜센터 상담사로 뽑힌 인력도 아닌데 말이다. 처음 이력제가 시행될 때는 농가에서는 귀찮은 일이 또 생긴 거라 반발도 심하고 협조해주지 않았다. 전화를 피하고 차단하기도 했다. 욕설하는 사장님들도 당연 있었다. 내가 그 사장님 농가 담당자가 된 것이 화근이었을 뿐이었다.
"x발! 전화하지 말랬지! 너 누구야? 왜 또 전화하고 x랄이야!"
아무 생각 없이 통화연결음을 듣던 중 날벼락이었다. 나는 그저 시키는 일을 하는 직원일 뿐이었고, 과태료 부과가 되지 않도록 돕는 거였는데 말이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돼지 사육현황신고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몇 마리 키우시는지 말씀만 해주시면 대신 신고해 드릴게요."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안 키운다고! x발."과 함께 끊어진 통화음이었다. 하지만 그 사장님은 분명히 돼지를 키우고 있었다. 일반돼지를 키우는 게 아니고 재래종을 키워서 몇 마리 안 키웠지만 말이다. 이전달, 전전달에도 신고내역이 있었고, 도축장에서 따로 도축을 했다는 신고내역이 없으니 키우는 게 맞았다. 신고내역을 입력하는 곳에 특이사항에는 빼곡하게 '신고거부'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미신고를 할 경우엔 농가에 불이익이 가기 때문에 일단은 0두로 입력했다. 그다음 달에는 농가 사장님의 아들에게 전화를 어렵게 연결할 수 있었다.
"아버님이 자꾸 신고를 거부하셔서 전화드렸고요, 이거 계속 미신고하시면 과태료 부과되세요. 지금 몇 마리 키우는지만 말씀해 주시면 되세요."
최대한 친절하게 말했지만, 아들(그래봤자 40대는 되었다)은 옆에 아버님이 계시니 바꿔주겠다 했다. 전화를 건네받은 사장님은 극도로 분노하면 입에 담지 못할 심한 말을 쏟아내었다. 그 당시엔 상담자에게 폭언과 욕설을 한다고 큰 문제가 되는 때가 아니었다. 통화내역으로 신고를 하지도 처벌을 받지도 않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다. 머리를 심하게 두들겨 맞은 듯했다. 끔찍했다. 살면서 그런 말을, 그런 대접을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손발이 덜덜 떨렸고, 무서웠고, 토할 것 같았다. 옆에서 아들도 깜짝 놀랐는지 전화를 뺏었다. 죄송한데, 어려울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았나 보다. 이후로 불특정 사람들에게 전화를 할 때면 너무 긴장되어 손에서 땀이 나고 겨드랑이도 폭포가 되는 것 같다. 안절부절못하고 머리가 새하얘져,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 순간 내 입은 굳어버린다. 마구 말을 더듬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지 않고 싶어 전화를 걸기 전에 수많은 심호흡을 하고 할 말을 a4용지에 적어보기도 한다. 그래도 똑같다. 긴장되어 말을 무지하게 더듬는다. 상대방이 못 알아들을 정도로 떠는 것이다. 상황은 심각했고, 농가는 내가 보이스피싱인지 알았다.
그렇게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뜨는 것이 끔찍했고 회사에 출근하기가 너무 싫어 시간이 제발 멈췄으면 했다. 겨우겨우 출근을 하면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오전시간을 날리기 일쑤였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월급 받는 직원이 말이다. 오후에나 겨우 몸을 일으켜 맡은 일은 끝내보려고 무지하게 노력했고, 남들한테 피해는 가지 않도록 죽도록 용썼다. 진짜 죽을 맛이었다. 전문가와 약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꿈을 펼치고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직업을 갖기도 할 것 같다. 나도 한때는 축산업의 전문가가 되겠다며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공을 살려 취직을 했고 축산업에 몸을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싫었고 나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나라돈 받고 일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직업이 그저 돈 버는 수단이 되었고, 돈만 벌다가 병을 얻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돈과 철밥통만이 남고 나를 잃었는데, 나는 아직도 이 일을 버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