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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Feb 26. 2022

고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주의※ 도축장이 묘사되어있으니 노약자나 임산부, 심신미약인 분은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웩."


나는 헛구역질을 해댔다. 축축한 현장에 들어가면 마스크 두장을 겹쳐 써도 '그 냄새'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 냄새'라는 것은 도축장에서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인데, 아마도 정육점에서 나는 생고기 냄새의 100배 정도 짙은 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익히지 않은 살코기와 사이사이에 가득 껴있는 차가운 지방이 딱딱하게 굳어있을 때, 그 생고기를 한꺼번에 씹는 맛, 그런 느낌의 냄새다. 6개월째 현장에서 돼지를 매일 두세 시간씩 보는데도 그 냄새가 당최 익숙해지질 않았다.


"켈록켈록켈록"


양치질하다가 목구멍을 실수로 건드렸을 때 구역질하듯 기침을 했다. 하루에 현장을 1번을 들어가든 3번을 들어가든, 들어갈 때마다 거북하고 역한 냄새를 이기지 못해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기침을 해댔다. 전날 과하게 술을 마신 평가사들은 간혹 구역질로 진짜 토사물을 보게 된 적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평소의 도축장에서는 나 혼자 유난이었다. 신입사원인 나를 제외하고 사무실에는 10년 차 과장님 두 분과 20년 차 팀장님과 부장님이 계셨지만, 다들 현장은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헛구역질은커녕, 현장에 갔다 오면 돼지의 체액으로 물드는 위생 가운도 나와 다르게 깨끗했다. 도축업자(도살자, 도부)들도 하루 종일 돼지를 잡느라 현장에서 근무하는데도 멀쩡했다.


현장은 모두가 위생장화와 위생장갑, 안전모(또는 위생모), 위생가운(또는 위생 앞치마)을 입고 소독실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기준에 맞춰 도축이 진행되고 도축이 끝난 후에도 깨끗하게 청소가 된다. '그 냄새'는 도축장이 더러워서 나는 그런 냄새, 정리가 어려운 하수구나 다른 비위생적인 곳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소, 돼지 자체의 살 냄새인 것이다.


사실, 나는 고기가 좋았다. 입안에 넣자마자 녹아사라지는 마블링 자글자글한 소고기 등심, 두꺼운 지방과 껍데기까지 고소한 삼겹살, 쫄깃하고 씹는 맛이 일품인 족발까지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나는 육류와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죽을힘을 다해 입사시험과 면접을 치렀고 당당하게 입사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어느 순간부터 고기에서 도축장 냄새가 났다. 분명 육즙으로 촉촉한 고기인데 입안에 넣는 순간 눈앞에 도축장 현장이 펼쳐졌다. 머리 없이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소돼지들과 눈이 마주치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피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오랜만에 찾은 병천순대는 내 입에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뿜어져 나왔다. 억울했다. 선지가 그득한 병천순대는 냉동실에 몇 팩씩 쟁여놓고 먹었던 나였는데 말이다.


도축장에서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도축 과정을 보게 된다. 완벽하게 도축되어 그저 고깃덩어리인 도체만 보고 판정하면 되는 일인데도 생생한 현장은 어김없이 눈에 들어온다. 돼지는 도축되자마자 온도체(도살 직후 냉각 전) 상태에서 판정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도축라인 끝자락에 서서 판정한다. 모든 게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살아있는 돼지는 통로로 들어가 머리와 가슴에 강한 전기자극을 받고 잠시 기절하는데, 기절하기 직전의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돼지 털을 뽑고 남은 잔털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 화염 속을 통과하는 돼지와 불길 속을 헤치고 나온 탱글탱글한 피부, 까맣게 그을린 잔털이 멀리서 보였다. 돼지의 머리와 내장은 도축업자들이 춤을 추는 듯한 칼질로 슥슥 움직이면 몸통에서 깔끔하게 분리되었다. 판정대(등급 판정하는 장소)로 점점 다가오는 돼지는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려 피가 뚝뚝 떨어졌고, 바닥에 고인 핏물은 밟아 미끄러지지 않도록 직원들이 계속해서 쓸어내었다. 그 모습들은 잔상이 진하게 남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밤마다 악몽을 꾸게 되었다. 돼지가 살아있는 채로 화염 속에서 불타고 있다던지, 집에 돼지 떼가 쳐들어온다던지,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 위에 돼지머리들이 널브러져 있고 머리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강이 되어 흐른다던지 하는 등의 악몽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아침에 눈을 떴을 땐, 내 발은 이미 도축장을 향하고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냄새를 참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던 것을 다시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지 싶다. 끔찍한 돼지꿈을 꾸어도 로또 하나 살뿐이다. 당첨된 적도 당첨될 일도 없지만 말이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연인과 헤어진 것 말고도 어떤 일이든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게 되는 것이 인간인가 싶다. 나는 그렇게 처한 현실에 무뎌지며 도축과정을 이겨내고 도축장 현장에 적응했다. 도축과정을 이겨냈다는 말이 아이러니하지만, 고기는 끊임없이 소비되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저 업으로서 적응했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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