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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Feb 23. 2022

소 등급 찍는 사람


 때는 2017년.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한 지 어언 6개월이 되었을 때다. 타지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퇴근하면 저녁을 챙겨 먹기도 힘들 만큼 피곤에 절어있었다. 덕분에 선반에는 기본 라면부터 짜장 맛, 짬뽕 맛, 볶음면까지 편의점을 연상케 할 만큼 인스턴트식품을 켜켜이 쌓아두었고, 그걸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저녁 8시면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설거지를 하고 조금만 쉬어볼까-하고 침대에 누으면, 바로 알람 소리가 귓속에 내리꽂혀 기겁하며 잠에서 깼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눈을 뜨면 새벽 5시 40분이었다. 출근시간이었다. 이불 속에서 뭉그적 기어 나와 눈곱만 대충 떼고 패딩 두 개와 바지 두 개에 몸을 욱여넣었다. 그리고 걸어서 10분 거리인 작업장으로 5분 만에 뛰어갔고 곧바로 하이바를 머리에, 위생 가운을 몸통에 얹어 0 냉장고로 들어갔다.


 전날 도축된 소 300여 마리가 가지런히 천장의 레일에 매달려 등급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 없이 반으로 잘린 소는 아킬레스건 쪽이 갈고리에 걸려 목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하루 동안 영하에서 냉각시킨 '도체'의 등심에는 마블링이 선명하게 올라와 있었다. 축산업에서 '도체'란, 도살한 가축의 가죽, 머리, 발목, 내장 따위를 떼어 낸 몸뚱이를 말하며, 지방이 적정 온도가 되어야 하얗고 단단하게 굳는 원리를 따라 소도체가 5 이하가 된 이후에 살코기 사이사이 지방을 보고 등급판정을 하고 있다.


“1B.”

“1B!”


 선임 평가사가 각 도체에 알맞은 등급으로 결정을 내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면 뒤에 쫓아오는 평가사들도 그 등급을 큰소리로 복창했다. 까먹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은 등급도장을 두어 개씩 들고 방금 외친 등급을 소의 겉지방에 찍는다. 척추 중간쯤 절개된 등심의 위와 아래, 좌우 한 번씩 찍는 것이 원칙이다. 즉, 소 한 마리에 4번 등급 도장을 찍는 것이다. 하루에 15가지 등급(등급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겠다)을 똑같이 생긴 소 300여 마리한테 4번씩 찍는데, 복창하지 않으면 등급이 꼬여버리기 일쑤다. 앞에 소의 등급을 뒤에 소한테 밀려 찍는다거나, 오른쪽 소와 왼쪽 소가 헷갈려 반쪽씩 다른 등급을 찍는다거나, 아예 다른 등급을 찍는다거나, 그런 거 말이다. 아침부터 큰소리를 내는 것은 목이 잠겨 걸걸하기도, 허기짐에 목이 메기도, 어쩌면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에 중요한 부분이었고 하루를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의식과도 같았다. 무엇보다 새벽부터 맞닿은 추위와 피로 속에서 큰 복창은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치듯 힘이 되었다.


퍽퍽-, 짝쫙-


 복창소리와 함께 도장 찍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냉장고를 메웠다. 도장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듯, 곡괭이로 땅을 내리찍듯 찍으면 되는데, 힘으로만 내리찍으면 등급을 남기지 못한 채 튕겨 나가 버렸다. 손목 스냅으로 찍으면 된다는데, 도장의 평평한 부분이 울퉁불퉁한 소의 겉지방에 쫙-하고 선명하게 찍히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 잘못 찍힌 도장은 몇 번을 찍어도 빗겨나가는 게 참 사람을 놀리는듯 했다. 사실, 등급도장의 윗부분은 쇠, 손잡이 부분은 목재로 생각보다 꽤 무게가 나간다. 도장 손잡이 두께는 내 팔뚝만 하다. 초등학생 팔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근육 하나 없는 내 팔은 도장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다. 그럼에도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은 마음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힘껏 휘둘렀다. 냉장고에서 추위에 경직되어 있던 몸은 3시간의 등급판정 후엔 사우나에 갔다 온 것처럼 열이 펄펄 끓었다. 평가사들은 양볼이 붉게 상기된 채로 땀을 뻘뻘 흘렸지만, 마음만은 보람차게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듣도 보도 못한 직업인 ‘축산물품질평가사’의 아침이다. 대부분이 '1++ 등급 소고기' 하면 환상적인 마블링으로 살코기조차 연분홍으로 비치는 고기 한 점, 겉면만 살짝 익혀 입에 넣으면 육즙이 팡- 터져 아이스크림 녹듯 사라져버리는 고기를 생각할 거라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런 등급을 판정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비건과 동물복지라는 선택지가 생긴 세상에서 축산물의 가치를 매긴다는 것이 참 애매하다만, 그래도 사람들이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글을 끄적여보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알고 먹을 수 있도록, 어쩌면 베일에 싸인 축산인들 속내를 알리고 미운 축산을 조금은 좋아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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