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는, 친구들과 여행이라던지 회사 내 회식이라던지 소모임에 참석한다던지 등 어떤 커뮤니티에 포함되어 대면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 간다면, 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들이 익숙할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려 하하호호 재밌게 놀다가도, 어느 순간 혼자 서있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는지는 모르겠다. 딱히 친하진 않아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순간, 갑자기 혼자가 되어 뭘 해야 할지 몰라 눈치만 보게 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나는 거의 매번 그런 순간을 느끼고 외톨이 된 기분을 느끼며 어찌할 줄 모르고 방황하곤 한다. 얼음이 된다던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싸함을 느낀다거나, 뭐 그런 느낌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왕따가 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기분을 어렸을 때부터 느꼈고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 느낀다. 아버지의 회사 발령 때문에 초등학교를 3개나 다녀서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사건은 중학교 때 일어났다.
"야, 웃지 마(본인은 웃으며). 왜 그렇게 웃어? (옆에 친구를 툭툭 치며) 쟤 웃는 것 좀 봐. 진짜 웃기다."
함께 다니던 친구에게 얼굴을 마주하고 들은 말이다. 친하다고 생각했고 많이 좋아하고 따르던 친구였다.(이 친구를 A라고 하겠다.) 그냥 그날도 평범하게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말이다. 정말 충격이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정말 순수하게 나의 웃는 모습이 싫었던 건지 아직도 모른다. 그저 그 순간 내 세상은 멈춰버렸고, 다시는 편하고 자연스럽게 웃을 수 없었다. 저 말은 비수가 되어 나의 가슴에 깊숙히 박혔고 여전히 방금 전에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게 나를 괴롭히곤 한다.
A를 따라, 엄마를 졸라 영어학원을 다녔다. 집이 근처라 등원할 때 같이 가기로 했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늦잠 잔 날엔 연락 한 통 없이 나를 뺀 A와 그 친구들 무리는 즐겁게 등원했다. 정신없이 학원에 가서 마주한 친구 무리들은 내가 없는지 몰랐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쪽팔렸다.
학교에서 청소시간이 끝나면 다 같이 하교하곤 했다. A를 따르던 친구들은 빠르게 청소를 마무리하고 A를 따라 학교 밖으로 나섰다. 나는 여전히 청소 중이었다. 역시 내가 없는 줄 모르고, 아니면 나와 더 이상 같이 다니기 싫어서, 그 친구들끼리 한껏 웃으며 하교했고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생일이었다. 생일 파티하는 사람이 밥을 사야 하는 게 아니냐며 5만 원을 들고 나오라고 했다. 엄마한테 생일이라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고 파티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니 흔쾌히 주셨다. 그렇게 방과 후에 만난 친구들은 문방구 한편에 먼지 쌓인, 아무도 사지 않을 것같이 너덜너덜한 5천 원짜리 슈퍼맨 필통을 선물로 줬다. 이런 거 들고 다녀보라며 웃었다. 삥 뜯기는 기분으로 밥을 샀다. 5만 원이 너무 아깝고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 당시엔 꽤나 큰돈이었는데. 그날 이후 나는 A를 피했다.
A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나쁜 짓을 일삼았다. 심할 땐, 다른 친구의 필통을 버리고 신발을 숨겼다. 르까프로 조금 고급지게 만들어 가격이 꽤 나갔던 학교 체육복엔 가슴과 음모, 쌍욕을 그려 입게 했다. 새로 사 올 때마다 반복했다. 분필 지우개를 털 데가 없다며 친구의 몸을 빌려 분필가루가 폴폴 날리게 털었다. 살이 연한 어떤 친구의 피부는 살짝 그시면 빨갛게 부어올랐는데, 재밌다며 매일같이 몸에 손톱으로 낙서를 했다. 그 친구는 부어오른 몸으로 혼자 몰래 뒤에서 울었다. 어떤 친구는 자신을 버리지 말라며 울고불고 매달렸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되기로 했다.
A가 먼저 나를, 어쩌면 의도치 않게, 왕따를 시켰다. 하지만 나는 그 못된 친구 A를 따르는 다른 친구들처럼 계속해서 따라다니지 않았다. 내가 먼저 그 관계를 끊어내기로 했다. 고등학교를 지원하고 마지막 기말고사는 내 인생에서 제일 높은 성적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냉정해지고 차분해졌다. 혼자인 게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그 어린 나이에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A는 그런 행동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똑똑하고 인기가 많았던 A는 주변 친구들이 재밌어하니까, 본인에게 주목되니까, 어쩌면 너무 솔직한 성격이라 필터링 없이 말해야 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그랬던 것 같다. 어렸으니까. 이해해보고 덮어보려고, 잊어보려고 수도없이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어느 날, A가 내가 3년째 다니고 있던 요가원에 나타났다. 눈을 마주쳤고 나는 온몸에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단 한순간에 나는 알아봤다. A였다. A는 나를 못 알아봤는지, 그냥 지나치는 날들이 계속됐다. 아는 척을 해야 돼 말아야 돼? 한 달을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