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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Dec 14. 2022

17살 내 동생이 하늘에 별이 되었다

22년 11월 15일, 17살 내 동생이 하늘에 별이 되었다. 요 며칠 밥을 잘 먹지 못해서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내가 일하는 중에 전화를 잘 하지 않는 엄마가 웬일로 오전부터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오늘 늦어? 야근해?"


겨울이면 바빠지는 일 때문에 야근이 점점 잦아지던 즈음이라 그날도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면서 처음 듣는 엄마의 울음소리였다. 저녁에 화장하러 가야 하는데, 장례식장이 8시까지 밖에 안 하니 일찍 와줬으면 좋겠다고 끅끅거리며 간신히 내뱉었다. 이 순간을 수백 번, 수천 번 상상해 봤었다. 막상 닥치니 상상과는 꽤나 달랐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안 괜찮았다. 마침 좁은 사무실에 나 혼자 있었는데, 나도 엄마 따라 울음이 뻥 터졌다. 단어 그대로 '엉엉' 울었다. 혼자니까 더 서럽게 울었다. 내 동생도 혼자였던 게 너무 슬펐다.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고 바로 반차를 썼다. 어떻게 운전했는지도 모를 만큼 대성통곡을 했던 것 같다. 폭풍우를 헤치는 것 같이 앞이 안 보였는데, 눈을 떠보니 집에 도착해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움켜잡고 현관문도 움켜잡았던 그 순간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무거운지 가벼운지 모를 발걸음으로 들어간 안방에 동생은 평소처럼 가만히 누워있었다. 아직 따뜻했다. 온화한 표정으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똑같이 부드러웠다. 등도 만져보고 발도 만져보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이유는 모르지만, 동물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나는 틈만 나면 강아지 한 마리만 키우자고 부모님께 그렇게 졸랐더랬다. 가끔 친구네 강아지를 하루 이틀 맡아줄 때면 그 강아지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꼭 붙어 돌봤고, 길에서 만난 강아지들을 한없이 바라보고 쓰다듬었다. 그렇게 예뻐해 주고 좋아해 주는데 주인만 바라보는 강아지를 보면 서운하고 샘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일요일 아침마다 동물농장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되는 강아지를 보며 대리만족하던 나였다. 


단호하게 나의 의사를 거부하던 부모님에게는 강아지를 쉽게 데려올 수 없는 큰 이유가 있었다. 부모님이 어렸을 때 키웠던 강아지들을 떠나보냈던 아픔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아토피가 있다는 사실이 발목을 붙잡았다. 내가 5살 땐, 밤새도록 온몸을 긁어 덕지덕지 피딱지가 앉았고, 아침엔 못 잔 잠을 자느라 유치원도 못 갈 정도로 아토피가 심했다. 초등학교를 지나면서 팔 안쪽과 무릎 뒤쪽 등 접히는 부분만 발진이 일어나는 정도로 증상이 완화되었지만, 나를 돌봐온 부모님은 다시금 잘못될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나의 평생소원이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건데도, 우리 엄마 아빠는 쉽게 들어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토피와 상극인 털을 대신 해 부모님은 많은 것을 해주려고 노력하셨다. 천 소파 대신 가죽소파, 극세사 이불 대신 오리털 이불, 반려 강아지 대신 반려 물고기.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강아지뿐이었다. 항상 안된다고 말은 하셔도 속으로 얼마나 씁쓸하시고 안쓰러웠을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중학교 1학년 겨울 즈음, 매일 같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노래를 부르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갑자기 어떤 결심이 들었는지 함께 동물 병원으로 가보자고 말씀하셨다. 주말마다 함께 쇼핑을 가던 대형마트 구석에 있는 동물 병원이었다. 매주 그 앞을 서성이며 아기 강아지들을 한없이 바라보던 나를 멀리서 기다려주던 부모님이었는데 말이다. 아마 친구들과의 문제로 힘들어하던 나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듯싶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한껏 신이 나 엄마 아빠와 맞잡은 손을 꼭 쥐고 힘차게 달려갔다. 


그곳에 '복이'가 있었다. 푸들인데, 보통 푸들만큼 털이 곱슬거리지 않았다. 아마도 몰티즈나 코카스패니얼이 섞인 모양이었다. 색깔도 애플 색이라는데, 사과가 갈변된 색이었다. 갈색도 하얀색도 아닌 애매한 색이라는 뜻이었다. 순종이 아니어서 그런지, 색이 애매해서 그런지, 동물 병원이 작아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반값 할인행사 중이었다. 그 당시에 푸들은 30만 원이었는데, 우리 복이는 15만 원이었다. 강아지를 입양하기 전에 코가 충분히 촉촉한지, 엉덩이에 분이 묻어있는지, 활동성이 있는지 등 강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라고 꼼꼼히 알아보고 갔는데,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냥 복이는 처음 본 그 순간 우리 가족이 될 강아지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복이는 내 품에 꼭 안겨있었다. 입김이 솔솔 나오는 쌀쌀한 겨울이었다. 배냇 털로 복슬복슬한 아기 복이는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내 패딩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려 했다. 내 주먹 두 개 크기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생명체가 꼬물거리는데 너무 귀여워 더 꼭 안아주고 싶었다.


17년이 지나고 꼭 안아주기에 충분할 만큼 10배는 커버린 복이가 곤히 잠들어있었다. 복이 가슴팍에 귀를 대고 가만히 심장소리를 들었다. 두근두근-하고 손으로도 느껴질 정도로 크게 울렸었는데,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복이 털이 내 얼굴을 간질여도 가슴팍에서 귀를 뗄 수 없었다. 어디선가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내 머리를 복이 심장에 최대한 밀착시켰다. 금방이라도 내 머리가 무겁다고 밀쳐내며 일어날 것 같았는데, 가만히 있었다. 복이 꼬순내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앞으로 이 냄새를 못 맡는다는 생각에 눈물이 주룩-흘러버렸다.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이 너무 멀쩡한데, 못 일어나는 게 실감이 안 났다.


17년 전처럼 내 품에, 내 패딩으로 꼭 감싸 안아 애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토피 때문에 강아지 콧물이 입술에 닿으면 부풀어 올랐는데, 복이는 그런 나를 이해했는지 나에게만 한 번도 뽀뽀를 해준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한테 크게 혼나 슬퍼할 땐 말없이 옆을 지켜주었고, 화장실을 쓸 때면 문 앞에 등지고 앉아 나를 지키는 건지 기다리는 건지 항상 곁에 있어주었다. 아침마다 세상 신나게 달려와 내 배에 착지하는 직방 모닝콜을 자처하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언제든 문 앞까지 마중 나왔다.여름엔 함께 마룻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찬 공간을 찾아 뒹굴었고 겨울엔 따뜻한 이불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복이는 나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복이만 바라보지 않았다. 학교 때문에, 회사 때문에, 연애 때문에,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하도 바빠서 항상 복이는 뒷전이었다. 미안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복아, 12월의 하늘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춥지 않게, 행복하게 한동안 못썼던 다리 다 나아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어야 한다! 누나가 미안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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