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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Dec 13. 2022

나이 서른 여자들의 임신 고민

지난주 주말, 나에게 가장 소중한 대학 친구 3명과 함께 2022년 송년회 랜선 모임을 가졌다. 내년이면 다시 29로 돌아가겠지만 올해는 아직 서른으로, 30살 마지막 기념모임이었다. 다들 자기 밥벌이하느라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니 점점 연락이 어려워졌고, 자리 잡은 곳이 전국 각지라 한 곳에서 만나기도 어려워 겨우겨우 마련한 자리였다. 화면으로 얼굴만 보는데도 무척이나 반갑고, 하나도 변한 모습 없이 그대로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무 살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 넷은 참 다르게 생겼다. 다르게 생긴 것처럼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과 살아가는 방법이 다 다르다. 공통점이라고는 장녀라는 것뿐, 정말 닮은 게 없는 친구들이다. 다른 면을 보고 서로에게 끌린 걸지도 모르지만, 서로의 근황과 고민, 자랑거리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지 모를 정도로,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되는 돈독한 관계다. 각자의 화면으로 닭발과 주스를 기울이다 서너 시간이 지나니 슬슬 결혼과 임신, 출산 이야기로 흘렀다. (2명은 알쓰(알코올 쓰레기)고, 1명은 피부관리를 받는 중, 1명은 자다 일어났다.) 내 친구들을 차례차례 이야기해보겠다.


A는 작고 아담하며 동글동글하다. 씩씩하지만 조용하고 소심한 친구다. 본인은 절대 사회생활을 잘할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일찍이 깨달은 친구는 공무원을 선택했다. A는 27살 자연스럽게 만나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했고, 1년 정도 적당히 신혼을 즐기고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졌다. 우리 넷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해 가장 먼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중인데, 너무 행복해 보인다. 매일같이 아들 자랑과 남편 자랑을 하는데 결혼 장려 모습임에 틀림없다. 결혼은 왜 했냐는 질문에 '오빠가 하자고 해서 했어.'라고 대답하며, 아이를 왜 가졌냐는 질문에 '딩크를 할 생각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지.'라고 했다. 정말이지 세상 무난하고 평범한 인생이다.


B는 쾌활하고 밝은 친구다. 사실 피부가 밝은 건지도 모르겠다. 찹쌀떡같이 하얗고 애교가 넘치는 관상으로 인기도 가장 많았다. 대학시절 전공이 맞지 않아 방황을 하던 B는 우연히 시작한 학원 알바가 항상 웃으면서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는 B의 성격과 잘 맞아 학원강사가 되었다. 28살, B는 오래 만난 과오빠와 돌연 결혼을 해버렸고 딩크로 살고 있다. 매일 학원에서 아이들을 보다 보니, 그리고 몸이 상할 수밖에 없는 임신과 출산이 B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결혼 전부터 남편과 확실하게 결정한 일였다. 시부모님과 부모님 모두 B 부부의 의견을 수용하고 지지해준다. 덕분에 여전히 연애 같은 결혼생활을 유지 중이다.


C는 공부를 좋아했다. 어떤 공부를 해도 잘했을 것처럼 영어로 된 논문을 찾아보는 걸 좋아했다. 우리랑 다르게 3학년 때부터 실험실에 들어가 공부하고 일했다. 그렇게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내 지인 중에 가방끈이 제일 긴 친구가 되었다. 생활하는 곳이라곤 실험실, 집, 헬스장인 이 친구는, 쌍꺼풀이 짙은 섹시한 눈과 빵빵한 엉덩이로 '저 박사예요.'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 생김새지만 말이다. 헬스장에서 만난 지금 남자 친구와 결혼 계획이 있는데, 남은 숙제처럼 빨리 해결해버리고 싶어 한다. C의 전공 때문에 실험실에는 동물들의 출산 과정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C의 손으로 받은 동물들이 잘 크고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출산과 육아 모두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를 가지고 싶다 했다. 결혼과 임신, 육아 모두 공부처럼 생각하니 옆에서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씩씩, 큐트, 섹시를 맡은 친구들을 빼고 남은 나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삐쩍 마른 몸 때문에 산들이는 바람에도 이리저리 휘날리게 생겼다. 그냥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학교생활을 하며 적당히 돈을 벌고 싶어 칼취업을 했다. 신입직원인 나에게 언제 결혼할 거란 질문을 귀에 피가 나도록 많이 들었지만, 항상 서른에 할 거예요-라고 대충 흘려 말했던 나는 지금 서른 살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결혼은 못했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만큼 나와 맞는 남자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혼인가.


이렇게 '나는 비혼이다'라고 끝나면 우리의 이야기는 다채롭게 끝날 성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내년에 결혼한다. 애를 낳고 싶냐는 질문엔 '육아휴직을 쓰고 싶어 낳고 싶다.'라는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질질 끌어 어느새 6년을 꽉 채웠다. 지쳤다. 육아휴직으로 쉬고 싶다는 말에 애 키우면 쉴 수 있을 것 같냐는 말로 돌아오지만, 그만큼 휴직이 간절하다. 용기가 없어 퇴사하지 못하고 회사를 계속 다니는 중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고 싶다. 쉬고 싶어서.


요즘 대부분의 여자들은 '엄마'가 아닌 직장에서 일을 하고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육아 스트레스가 그렇게 크단다. 그래도 A는 그랬다.


"그래도 직장에서 주는 스트레스보다 아이가 주는 스트레스가 나아. 아이는 사랑을 주거든."


심오한듯한 미래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우리는 다음 모임을 기약했다. 또 한동안 바빠서 볼 수 없겠지만, 각자의 다양한 고민과 의견을 나누고 나니 생각이 더 많아지는 밤이었다. 다양한 이유와 상황으로 다르게 살아가는 우리. 5년 뒤에 우리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A, B, C와 나의 아이들을 세상에 나와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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