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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Dec 06. 2016

안도현, "백석 시를 베끼기 위해 시를 써왔다"

[백석 북잼플레이]

              

11월 28일 서울 한남동 북파크에서 열린 북잼플레이 1탄 '백석이 그리운 시간'


사각사각 눈 내리는 겨울날에 더욱 그리워지는 백석의 시.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 한 장 펴놓고 정다운 친구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듯, 그렇게 시인 백석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북잼플레이'(BOOK JAM PLAY)는 책과 공연의 만남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인터파크도서의 새로운 공연 기획이다. 북잼플레이 제1탄 '백석이 그리운 시간'이 11월 2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북파크'에서 1시간 30여 분간 진행됐다. 백석의 삶과 사랑 그리고 그의 시에 흠뻑 젖어든, 감성 충만한 자리였다. 30년 동안 백석 시인을 짝사랑해온 안도현 시인과, 백석의 시와 사랑을 노래로 옮긴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출연 중인 강필석, 정인지, 안재영 배우가 참석했다.


안도현 시인과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출연배우들이 함께했다. 왼쪽부터 안재영 배우, 안도현 시인, 정인지 배우, 강필석 배우.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시 '너에게 묻는다'


백석은 '시인들이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수식어도 있지만, 안도현만큼 백석을 좋아하는 시인도 없을 것이다. 그는 1980년대인 대학 1학년 때 백석의 시 '모닥불'을 읽고 한눈에 반한 뒤 "백석 시를 베끼기 위해 시를 써왔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2014년에는 백석의 삶을 재구성한 <백석평전>을 펴내 분단 이후 오랜 세월 어둠에 갇혀 있던 백석을 세상 밖으로 드러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우란문화재단의 개발 과정을 거쳐 11월 5일부터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모티브로 백석과 그의 연인이었던 자야 김영한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이날 북잼플레이에는 백석 역의 맡은 강필석, 자야 역의 정인지, 사내 역의 안재영 배우가 참석했다. 이들은 모두 뮤지컬에 캐스팅되기 전까지는 백석이라는 시인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공연을 하면서 그의 시에 푹 빠져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에 백석의 시로 뮤지컬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과연 관객들이 얼마나 보러 올까 의문을 품었어요. 그런데 대본을 다 읽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백석이라는 사람을 알고 싶어졌고, 시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배역을) 꼭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글자로만 되어 있는 시를 보고도 소위 '치였다'고 해야 하나요. 너무 철저하게 백석 시에 빠져버렸습니다."(정인지)





안도현 시인은 직접 백석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줘 관객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 그는 정주에 있는 오산고보를 졸업했다. 김소월, 황순원, 이중섭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집이 부유하지 않았지만 동향인 조선일보 사주 일가의 도움으로 일본에 유학해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1년여 간 조선일보에서 근무했다.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일 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자야(김영한)라는 기생을 만나게 된다. 시대의 격랑 속에서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던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백석은 만주로 떠난다. 해방 후 백석은 북한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자야 김영한 여사는 군사정권 시절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죽을 때 "천억이 백석 시 한 줄만 못하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법정 스님에게 전 재산을 기부했고, 대원각은 지금의 길상사가 되었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한때 백석은 북한에서 1960년대에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1996년까지 산 것으로 밝혀졌다. 1959년 평양에서 쫓겨나 삼수갑산으로 유명한 오지 중의 오지 삼수군에서 농사를 지으며 30여 년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80대 중반까지 살았지만 실제로 시를 발표했던 시간은 10년여밖에 안 된다. 오랫동안 백석을 연구해온 안도현 시인은 "백석 시인이 평양에서 쫓겨날 때 큰 고민과 절망이 왔겠지만 농사짓고 가축 키우며 시 '따위' 발표 안 하고 살았던 시간이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레 내놓았다.



백석과 자야의 사랑은 1987년 국내에서 백석 시 전집이 처음 출간됐을 때 대원각을 운영하고 있던 김영한 여사가 그와의 인연을 밝히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김영한 여사는 백석과의 추억을 기록한 <내 사랑 백석>을 펴내기도 했다. 그래서 백석과 자야의 사랑 이야기는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기보다는 김영한 여사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북잼플레이의 이야기 주제는 실제 그들의 사랑과 뮤지컬로 극화된 사랑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다른가 하는 데로 옮겨갔다.


안도현 시인은 뮤지컬에서는 자야가 평생 한 남자만을 그리워하는 순정의 여인으로 그려졌지만 실제로 그녀는 생활력이 강한 여장부 스타일이었다며, 백석과 헤어진 후 다른 남자들을 만나 자식도 둘이나 낳았다고 전했다. 순간 객석에서는 실망하는 듯 약간의 동요가 일었다. 자야 역을 맡은 정인지 배우는 "실제 자야의 삶이 어쨌든 간에 그녀가 생을 마감할 때 백석의 이름을 떠올리며 죽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자야를 연기했다."라고 말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백석 북잼플레이] 안도현 "백석 시를 베끼기 위해 시를 써왔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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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이미회(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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