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세상 따위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진보에 대한 기대 따윈 아랑곳없이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회에서 들었던 생각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엄기호의 신간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양가의 감정이 들었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는 공감, 허무하고 폭력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자괴감. 이 책을 읽고 난 후에야 그것이 나만이 가졌던 생각이 아니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이 사회에서 받은 생채기가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12월 7일 서울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엄기호를 만났다. 그는 사회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하는 사회학자이다. 이번에 나온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와 각종 사회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엄기호는 인터뷰가 진행된 한 시간 내내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냈다. 그의 언어에는 이 사회의 곳곳을 직접 발로 뛰며 귀 기울인 자의 ‘디테일’이 배어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혼자'가 아닌 '함께'를, '노력'보다는 연대'와 '협력'을 강조했다.
Q 어느 때보다 온 국민이 사회에 대한 고민과 근심이 깊은 때다. 사회를 가장 민감하고 깊게 들여다보는 사회학자로서 현재 한국사회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보는가?
한국사회는 무리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회다. 우리는 다 무리하면서 살고 있다보니 소진되고, 분노하고, 공황에 빠지기도 한다. 이재용도 무리할 거다. 박근혜나 최순실도 돈 더 벌겠다고 무리하다가 저렇게 된 거고. 문제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무리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은 구조다.
택배 노동자들을 보고 있으면 이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사회인지를 볼 수 있다. 한 의사의 말로는 보통 대상포진은 재발 확률이 몹시 낮은데 택배 기사들 중에는 이 병이 몇 차례씩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10대가 대상포진에 걸리면 전신스캔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등학생도 대상포진에 걸리는 경우가 잦다. 우리사회가 무리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란 걸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청소년들과 택배 노동자들이다.
이러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개인이 노력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무리하면서 살아남겠다고 노력을 할 게 아니라 무리하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월호 사건이나, 구의역 사고 같은 것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나온 책에도 그런 문제의식을 담았다.
Q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라는 책 제목이 재미있다. 게임기에서 리셋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듯, 세상이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작년 1월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이 터진 이후부터 '리셋'이라는 주제를 고민했다. 작년 내내 사람들 만나면서 왜 그런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수업 시간 중에 '전쟁 났으면 좋겠다'부터 '세상이 다 망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온 '리셋'이란 표현을 들었을 때 이 상황을 다르게 표현할 수는 없겠다고 느꼈다. 결국 이번 책의 콘셉트가 되었다.
Q 성장하는 삶이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 파산한 세계에 대처하는 네 가지 유형으로 냉소, 유예, 도피, 리셋을 들었다. 이 중 리셋을 가장 위험하다고 본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뿐만 아니라 교육공무원들이 파산한 세계에서 주목했던 건 무기력이었다. 그러다가 이 상태가 그냥 무기력이 아닌 엄청난 원한과 분노를 숨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이게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보려던 차에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이 터지면서, 사회에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낀 사람들이 '리셋'하려는 욕망을 보았다. 연구하고 조사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선 ‘헬조선’ 얘기가 터져나왔다. 청년들만 '헬조선' 얘길 한 것은 아니다. 이 나라는 안 된다 글러먹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다들 이 사회가 구제불능이라 여기는 것이다.
Q 세상을 뒤짚고 싶은 욕망에서는 리셋과 혁명이 비슷하게 보인다. 이 둘은 어떻게 다른가?
되게 비슷한데 완전히 반대다. 리셋을 지배하는 정념은 원한이다. 사회가 나를 소외시키고, 루저로 만들고, 착취했으니 복수를 가하고 싶은 정념이다. 물론 혁명에도 원한에 대한 정념은 있다. (부당한) 체제를 없애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혁명은 다른 세계를 만들어서 이후에 내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다. 혁명에는 이렇게 구축에 대한 의지와 언어가 있다. 하지만 리셋에는 그런 의지는 없다.
Q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나요?"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 때 어떤 답변을 해줬나?
난 희망에 집중하며 살진 않는다. 오히려 나는 희망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반문한다. '왜 희망이 있는지를 물어보느냐'고. 그 이면엔 내가 지금 아무 것도 못할 것 같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그걸 정당화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다. 세상이 안 바뀔 것 같으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은 것이다. 그걸 정당화 하려면 '희망이 없다'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희망이란 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가능성을 만드는지 못 만드는지의 문제다. 희망이 있으면 움직이고 희망이 없으면 안 움직이는 게 아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미리 살아본 사람이 이후를 산다'고 얘기했듯이 움직일 때 희망이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Q 책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를 위와 아래의 계급적 입장이 아닌 안과 바깥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진 생각 중 하나가 내가 사회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성 바깥에 있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다. 성 바깥에 있는 존재들의 가장 큰 소망은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소설가 배명훈이 쓴 <타워>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위/아래라고 하면 어쨌든 안에 있는 사람들 얘기인 거다. 아래에 있는 경우는 어쨌거나 사회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바깥에 있는 존재들은, 지배 계급이 돌보거나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면서 지배 계급은 "안으로 들어와라. 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려면 이런 노력을 해야 한다"고 미끼를 던진다. 그런 점에서 지금 비정규직이나 청년 문제, 교육이나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위와 아래가 아닌 안과 밖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Q 엄청난 희망고문이다.
이제 사람들이 희망고문에 더 이상 희망은 없고 고문만 남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희망처럼 되지 않을 거고, 고문만 당하고 산다고 느낀다. 그래서 고문만 하는 세상을 부수고 싶다는 욕망, 난 '리셋'이라고 생각했다.
Q 사람들을 절망하게 한 결정적 계기라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1997년 IMF때다. 이때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고 바깥으로 내칠 수도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 다음에 절망적인 경험이 10년 동안 반복이 됐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게 세월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가 나면서 정말 국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세월호 사건을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엄기호 "희망고문의 시대…희망은 없고 고문만 남았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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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