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Dec 19. 2016

문영심 "이석기 사건은 최악의 대국민 사기극"

                             

당신께 묻고 싶다. 이석기가 거기 왜 있어야 하는데? 이승만에게 사법살인을 당한 조봉암은 52년 만에, 박정희에게 사법살인을 당한 민청학련 관련자 8명은 32년 만에 재심을 받고 무죄가 되었다. 이석기가 나온 자리에 누가 있어야 하는지는 우주가 안다.

소설가 장정일이 '시사IN'에 쓴 <이카로스의 감옥>(문영심/ 말/ 2016년) 서평의 마지막 대목이다. 2014년 12월 19일은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한 날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광풍처럼 신문지상을 도배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통합진보당' 그리고 '이석기'. 두 단어를 읽는 독자의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은 잘 안다. <이카로스의 감옥>은 당신의 그 불편함은 무엇 때문인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2013년에 일어난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통합진보당 해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해 5월 서울 합정동에서 열린 이석기 당시 국회의원의 강연에 130여 명의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모였다. 국정원은 '협조자'를 통해 현장을 녹취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RO’라는 지하혁명조직이며, 이석기는 그들의 수괴로서 내란을 음모했다는 증거가 됐다.


법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조금 달랐다. 'RO'는 없었으며 내란음모도 없었다.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녹취록은 450여 곳이 왜곡돼 있었다. "전면전은 안 된다"는 "전면전이야! 전면전!"으로, "통일적인 대응"은 "폭력적인 대응"으로, "시 단위에 있어도"는 "실탄이 있어도"로 바뀌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란음모는 없었지만 내란선동은 있었다'는 판결에 따라 이석기는 징역 9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구속자 10명 가운데 8명에게는 내란선동죄조차 적용하지 못했다.


12월 7일 서울 합정동에서 문영심 작가를 만났다. 30여 년간 방송작가로 살며 '물은 생명이다'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당시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 통합진보당 당원도 아니었던 그가 이렇게 부담스러운 책을 쓴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가 ‘이석기는 무죄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석기에 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을까.


독자에 따라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하나의 반론으로서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 과연 그들의 '생각'이 법정에서 처벌받았어야 하는 것이었는지, 이제는 냉정하게 반론을 들어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실체 없는 내란으로 행위 없이 처벌... 이석기는 무죄다"

Q 부담스러운 주제입니다. 책 머리말을 보니, 참 오랜 시간 고민한 뒤에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결정적으로 무엇 때문이었나요?


사실 그 전까지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다만 이상하게 생각한 건 있었어요, 불법사찰이잖아요. 정당 강연회를 누가 몰래 녹음하도록 국정원이 시킨 거잖아요. 그런데 불법사찰 자체를 사람들이 별로 문제 삼지 않더라고요. 저는 그 행위 자체가 굉장히 잘못된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내가 하는 얘기를 누가 몰래 녹음한다? 그걸 누구한테 들려주고 심지어 수사기관에서 문제 삼는다? 그건 기본적인 인권침해 문제죠.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그런 점을 계속 고민하다가 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죠.

재판기록을 보면서, 이렇게 아무 내용도 없는 걸 갖고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합정동 강연 녹취록 한 장을 가지고 뭘 수사하겠어요? 검찰의 공소장 내용은 어마어마했지만, 결국 RO니, 내란음모니 하는 건 다 없는 걸로 결론 났잖아요. 그게 이 사건의 실체죠. 추가로 구속된 사람들까지 10명 가운데 8명한테는 내란과 관련된 혐의를 입증하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그들의 무고함을 밝히는 게 첫 번째였고, 아직도 국가보안법 아래에 있는 우리 시대의 텍스트를 기록하자는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두 번째 이유였어요.

Q 머리말에 보면 '객관적 거리두기'가 어려웠다는 고백도 있습니다. 집필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은 역시 그 부분이었나요?

현상보다는 본질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책이 가치를 가지려면 시대 상황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본질을 심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있었어요. 결국 분단과 역사, 인권의 문제죠. 분단의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는 공안사건들. 그 사건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인권탄압이잖아요. 그 셋은 서로 맞물려 있더라고요. 진짜 내란범들은 권력을 누리면서 승승장구하고 있고, 실제로는 아니지만 내란범으로 몰린 사람들은 감옥에 있어야 하는 아이러니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Q 지금 드릴 질문은 사실 간단히 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없이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들은, 왜 무죄인가요? 가장 핵심적인 이유만 이야기해주시죠.

이 사람들을 처벌한 증거(합정동 강연 녹취록)는 명백하게 불법적인 증거입니다. '내란음모는 무죄,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났을 때, 많은 법학자들이 '만약 내란음모 혐의가 없었다면 애초에 기소조차 못했을 사건'이라고 말했어요. 법적인 처벌 대상은 '행위'예요. 의도가 아니라 행위. 이들에게는 행위가 없어요. 심지어 국제 인권단체에서는 이 사건 내용이 해석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대요. '행위가 없는데 어떻게 내란이 되고 처벌을 받느냐? 이해할 수 없다.' 정말 창피스러운 일이죠. 실체 없는 내란으로 행위 없이 처벌받은 사건. 그래서 저는 그들이 무죄라고 생각해요.

Q 만약 정권에서 공안사건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만들어낸 사건이라면, 그 대상은 왜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이 돼야 했을까요?

북한과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하자, 북한과 자주적인 입장에서 통일하자고 이야기하는 정치세력을 말살하겠다는 기획이죠. 이 정권이 보기에 통합진보당의 지지율 10%는 결코 적은 게 아니에요. 야권연대 때문이죠. 정권창출에 있어서, 이 10%는 야권연대를 통해 언제든지 50%가 될 수 있는 세력이에요. 대단한 위협인 거예요. 이정희를 대표로 하는 구 민주노동당 세력을 제거하고, 야권연대의 중심이었던 이석기를 제거하고. 게다가 당시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정국이었잖아요. 정국까지 전환할 수 있는 1타 3피의 효과가 있는 거였죠.

"취재하지 않는 기자, 검증하지 않는 언론... 정말 유감스럽다"

Q 이 사건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의 3쇄를 찍을 때 띠지에 쓴 문구가 제 마음에 쏙 들더라고요. "박근혜 정권 최악의 대국민 사기극." 적절한 명명이라고 생각해요.

Q 책에서, 언론에 대한 강한 비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 초기 많은 언론들이 국정원이 흘린 정보를 받아쓰면서 당사자에게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다고요.

국정원에서는 북한과의 연계설을 집중적으로 흘렸죠. 이석기 의원을 거의 고정간첩으로 보는 언론 보도도 많았고요. 사실 2012년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건 때도 '주사파가 국회에 입성했다'는 식의 보도가 엄청 많았어요.


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 것은 이른바 진보언론들이 쓴 "골방의 혁명가" 같은 표현이었어요. 그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진보', '사이비 광신도 집단'으로 매도하기도 했잖아요. '이석기는 옛날 운동권 식의 사고방식에 갇혀서 신용카드도 쓰지 않고 핸드폰도 꺼놓고 다닌다' 하는 보도도 있었어요. 제가 확인해봤더니, 10년 동안 선거기획사를 운영한 사람이 어떻게 신용카드를 안 쓸 수가 있으며, 누구든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핸드폰은 꺼두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어디서 취재를 해서 기사를 썼는지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너무나 무책임하죠.

검증하지 않고 쓰는 기사들, 소위 지식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SNS에 올리는 이야기들이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되거든요. 취재하지 않는 기자들, 검증하지 않는 언론이 정말 유감스러웠죠. 그리고 절대로 반성도 안 합니다. 이석기가 감옥에서 9년이나 보내야 하는 것이 맞는지,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것이 맞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어요.

Q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어쨌거나 정당 해산은 옳지 않다. 여기는 민주주의 국가니까.' 하는 정도의 태도는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쨌거나’라는 것은 굉장히 위선적인 태도예요. 행위가 없는 사건에서 잘못된 판결이 내려졌으면 ‘유죄 판결이 잘못’이라는 말이 먼저 나와야죠. '어쨌거나'는 그 다음에 들어가야 돼요. 그들이 잘못한 게 있다면 정치적으로 비판을 받아야지 감옥에 넣고 처벌할 일은 아니라고 얘기해야 되는 거예요. '너희들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감옥에 좀 있어라' 하는 건, 말 팔아먹고 글 팔아먹는 사람으로서는 할 이야기가 아니죠.

Q 사건 이후로 구속자 가족들이 겪은 인권침해 사례 이야기들을 마음 무겁게 읽었습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이, 사건 이후에 아파트에서 마주쳤는데 자기를 피해 가더래요. 자기가 무슨 전염병자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빨갱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학교에 못 가겠다고 할 때, 가족들이 느껴야 했던 그 암담한 심정… 출간 이후 북콘서트에서, 갑자기 어떤 분이 와서 저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구속자 부인이었어요. 사실 구속자 가족들을 만나서 취재하고 집에 가서 녹취파일을 다시 들으면서 저도 많이 울었어요. 왜 이래야 되나. 책 쓰는 거 자체가 고통스러웠어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문영심 "이석기 사건은 최악의 대국민 사기극"]의 일부입니다. 

전문보기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매거진의 이전글 엄기호 "희망고문의 시대…희망은 없고 고문만 남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