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by 인터파크 북DB

"네 비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이것은 우리 사이에 암묵적으로 금지된 말이었다.


"왜 나한테 청혼하지 않는 거지?"


이것은 나 스스로에게 금지시킨 말이었다.


비자 만료일이 다가오자, 성주는 날씨와 옷차림, 저녁 메뉴 같은 일상적인 말 이외에 내게 어떤 의미 있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것이 그가 사랑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그에게 직접 그 이유를 들어야 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해야만 나는 그 말에 기대어 그에게 내가 가진 미래를 나눠줄 수 있었다.


"사랑하니까 지금 당장 나랑 결혼해달라고 말하면 믿을 수 있겠어?"


그는 나를 바라봤다.


"언제나 프러포즈는 눈물 나게 낭만적이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어. 비자 때문에 당신을 붙잡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넌 곧 이 나라에서 추방될 거야. 추방이 뭘 의미하는지 알잖아. 넌 집이 아니라 군대에 가게 될 거야."


"마찬가지야."


"뉴욕에서 어렵게 쌓은 네 경력이 완전히 끝장날 수도 있어."


"당신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아."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봤다.


"그게 고작 당신이 생각해낸 질문이야?"


나는 그를 말없이 바라봤다.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또 다른 질문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보다 더 나빴다. 그것이 나에 대한 배려였고, 그 순간 그가 얘기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해도, 그 말은 침묵보다 훨씬 더 나빴다.


"당신이 날 바보로 만들고 있어!"


"그렇지 않아."


"넌 날 고문하고 있어. 내가 물기 없이 말라가길 바라는 사람 같아!"


"내가 결혼해 달라고 매달리길 바라? 당신이 바라는 게 그거야?"


"맞아!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당신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멍청하게 구는 거. 자기 여자가 떠날까봐 그 여자의 여권을 숨겨서 기어이 불법 체류자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바보 같은 남자처럼 구는 거! 울면서 매달리고, 매달리고, 또 매달리는 거! 이렇게 헤어져선 안 된다고 울부짖는 거!"


그를 붙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과 공포에 짓눌려 있던 그때, 나는 참고 참았던 감정들을 쏟아냈다. 사랑에 눈이 먼 여자 특유의 신경질로 나는 그를 할퀴고 공격했다.


"넌 지독한 이기주의자야! 넌 네가 원하는 걸 절대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아! 침묵이 가장 비열한 공격이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너는 누군가 대신 가장 힘든 걸 해주길 바라지! 너 같은 사람이 가장 나빠! 가장 악질이야!"

"이러지 마, 마리. 다시 돌아올 거야. 반드시."


그때마다, 그는 나를 말없이 꽉 끌어안았다. 그의 품 안에서, 끔찍하게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따뜻함 속에서, 어쩌면 나는 안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의 거절은 옳은 대답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그의 말은 ‘사랑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청혼하길 거부하는 남자들의 말과는 달랐다.

"결혼해줘."


걷고, 또 걸었던 날, 울고, 또 울었던 그날, 5번가의 ‘티파니’에서 산 반지를 그에게 끼어 주었다.

"나와 결혼해줘!"


얼굴도 모르는 미국 이민국 직원이 그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놔둘 순 없었다. 그를 불법체류자로 만들 수도 없었다. 그의 경력을 끝장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걸 나는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성주가 나를 사랑하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여자의 불안을 말로 확인시켜주는 남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절망 속에서도 내가 확인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내가 내린 선택 때문에 평생 후회하며 살 수도 있었다. 내 결정이 어느 우연한 날, 내 부모의 심장을 가장 아프게 찌르리란 것도 알았다. 하지만 선택이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감당해 내야 하는 일이란 걸 나는 매 순간 생각했다.


살면서 단 한 순간도, 누군가에게 울면서 청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이 경탄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던 그 '티파니'에서 울면서 혼자 반지를 고르는 여자를 직원들 역시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이쪽이 나았다. 결혼이 다행이든 불행이든, 그것에 후회하든 후회하지 않든 그날이 오면, 둘 중 하나를 다시 선택하면 된다.


나는 내가 산 반지를


나 스스로 끼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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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