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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13. 2017

"'결핍'이 촌년들의 성공비결"

예능PD 서수민, 사진작가 조선희 작가 인터뷰


두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예능 PD다. KBS '개그콘서트' '1박2일 시즌 3' 등 손대는 프로그램마다 히트를 치고, '프로듀사', '마음의 소리'로 '예능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정착시켰다. 또 다른 한 명은 사진작가다. 이정재·이영애·장동건 등 스타들의 새로움을 이끌어내는 사진들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했고, 이후 영화 포스터와 CF 촬영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제는 연예인만큼이나 이름을 날리는 두 사람, 바로 서수민조선희다.


방송국 PD와 프리랜서 사진작가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사실은 27년 지기 친구란다. 그 시작은 1990년, 그들이 함께 입학했던 연세대 의생활학과에서였다. 아니, 그보다 오래전 둘이 경북 포항과 왜관이라는 촌에서 자랄 때부터 혹은 훨씬 먼 과거, 서수민이 3남매 중 둘째 딸로, 조선희가 5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날 때부터 둘의 몸속엔 서로를 엮을 DNA가 있었는지 모른다. 두 사람은 그 DNA의 실체를 최근 함께 쓴 <촌년들의 성공기>(인플루엔셜, 2017년)에서 밝혔다. 이른바 '촌년 정신'이다. 승승장구 꽃길만 걸었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오히려 발이 푹푹 빠지는 진창길을 걸어왔고, '촌년'이었기에 그 길에서 걷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두 사람의 27년 우정 이야기를 듣기 위해 2월 1일, 두 사람이 젊음을 불태웠던 신촌으로 향했다. 벽면에 낙서들이 가득한 어두침침한 술집은 ‘서른 즈음에’라는 이름만큼이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 속에서 서수민과 조선희는 "그때는 학고(학사경고)를 면하는 게 우리한테 가장 큰 이슈였지." "우리가 같이 살았던 자취방이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2만 원이었잖아."라며 30여 년 전 추억들을 꺼내놓기 바빴다. 바쁜 서로의 일정을 맞추기 힘들어 오전에 만나 인터뷰 2개와 라디오 방송까지 마치고 왔다는 두 사람은 네 번째 일정이었음에도 지친 기색이 안 보였다. 이런 생기 넘침이 두 사람의 성공 비결인가 짐작하면서 두 사람의 성공기로 포장된 성장기를 들었다.



조선희 "사랑에 대한 결핍이 사진 찍게 했어요"


Q 제목을 보니 두 분의 정체성을 '촌년'으로 삼은 것 같아요.

서수민 : 조선희 작가나 저나 어릴 적에 비슷했어요. 여자로서 예쁘게 자라지도 않았고. 주변의 큰 기대감도 없이 하고 싶은 걸 막 하면서 살아왔죠. 서투르고 얼기설기했던, 뭐든 '하겠다, 해낼 거야' 이런 마음 밖에 없던 캐릭터로서의 촌년으로 보시면 돼요. 날 것인 상태로 서울에 올라와 꿈을 찾고 꿈을 이루면서 왔던 게 돌아보니 촌년이어서 가능했던 게 아니었나 싶어요. 잡초 같은 촌년 정신? 아무리 밟히고 상황이 안 되더라도 하고 싶다는 자기 고집을 소중히 여기고 그걸 계속 붙잡고 질기게 와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죠.


Q 특히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요.

조선희 : 이 친구는 '성공'이란 말로 책 내는 걸 부끄러워했는데 우리가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그게 성공 아닌가. 그냥 우리 얘기를 하면서 지금 꿈을 꾸고 있거나 암흑을 헤매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혹은 나처럼 뭔가 결정해야 할 기로에 서있는 중년들에게 '우리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 생각은 이런데 너희는 어떠하냐'고 말을 걸고 싶었죠. 


서수민 : 저는 의외로 겁이 많고 심사숙고형이에요. 선희는 '나 사진 찍고 싶어. 사진 찍을래' 하고 그냥 갔다면 저는 '뭔가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대신 안정적인 일이었으면 좋겠어' 요리조리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PD가 됐어요. PD가 돼서도 결혼을 할까 말까.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이를 지금 낳을까 나중에 낳을까 굉장히 많이 생각하면서 지나왔어요. 왜냐하면 저한테 어느 누구도 '너 이거 해도 돼'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때그때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론들이 틀렸다기보다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중요한 건 남들 눈치 보거나 남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아는 거죠. 조선희 작가와 저는 프리랜서와 직장인이라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다가 지금 만났는데 둘 다 잘 산 것 같고, 둘 다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시작하기 전에 고민하는 분들에게 내가 뭘 하고자 하는지만 명확하다면 어떤 길을 가든 그게 정답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조선희 : 하면 다 정답이야. 안 해서 틀리는 거지.



서수민 PD가 '뭔가 만드는 사람이 되자'는 의지를 갖게 된 데는 대학시절 내내 빠져 살았던 연극 동아리의 영향이 크다. “배우든, 기획이든 뭔가 만들어서 짠~하고 사람들한테 보여줄 때의 희열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큰 힘이 되더라고요.”라고 그는 말했다. 연극 동아리는 그가 대학에서 두 번째 가입한 동아리였다. 첫 번째는 조선희 작가처럼 사진 동아리에 갔었다. 그러다 사진기를 살 돈이 없어서 사진을 포기하고 연극반으로 갔다. 반면 조 작가는 의생활학과생이면 필수로 사야 하는 재봉틀은 포기했지만 사진기는 샀다. 왜 그렇게 사진을 하고 싶었을까. 그는 "결핍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희 : 어릴 때부터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었어요. 엄마 아빠는 장사하시고 나는 할머니 밑에서 커서 늘 사랑에 배고팠거든. 사진을 한 것도 결핍 때문이었지. 대학 1학년 때 사진반 1학년 20명 정도가 전시회를 하는데 찍은 사람 표시 없이 사진들을 죽 걸었어. 그런데 선배들이 모여서 “저 끝에 있는 사진 누가 찍은 거야? 진짜 잘 찍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 그게 내 사진이었어요. 늘 ‘사랑받고 싶다, 주목받고 싶다, 나도 뭔가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 나는 사진을 잘 찍는 애구나’ 그 말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써진 거지. 그전에 셔터 소리도 좋고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사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그 말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결핍이 주는 힘이죠. 그냥 지나갈 수 있고, 누가 했는지도 모르는 말이 귀에 딱 꽂히면서 ‘아, 사진을 해야겠다’고 했으니…


서수민 : 저도 많은 결핍이 있었죠. 어려서부터 아무도 저에게 기대하지 않았고 대학에 와서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내 스펙이 맞지도 않았죠. 하고자 하는 길에 들어선 뒤에도 남자들만 있는 곳에 여자 혼자 떨어져 있었으니 (서수민은 KBS가 11년 만에 뽑은 여자 PD로 1995년 KBS에 입사했다_기자 주) 그 자체가 결핍이었고요. '네가 왜?', '여자가 왜?'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애를 둘 낳은 뒤로는 "애 낳은 아줌마가 왜?"가 붙어 다녔으니까. 늘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치에 저 자신이 모자라는 상황에서의 일만 했던 것 같아요. 그 갭이 결핍이었고요. 계속 뭔가를 하고자 하고 뭔가를 바랐는데 그만큼 여건이 되지 않았던 걸 어떻게든 끌고 가고자 했던 게 저한테는 좋은 엔진이었죠. 사실 결핍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모자라죠.



서수민 "NG 많이 내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Q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 부족한 부분을 스펙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책에서 조 작가님이 '스펙은 허상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조선희 : 만약 누가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스펙 있고 집도 부자야. 그러면 카메라도 좋은 걸 사고 유학도 다녀올 수 있을 거야. 스펙이 허상인 건 그게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는 없다는 거예요. 저한테는 아직도 유학을 갔다 오지 않은 결핍이 있어요. 유학 갔다면 더 잘 배웠겠지만 그 스펙이 있었다면 내가 경험으로 배우고 느낀 걸 못 배웠겠지. 그건 있어서 더 좋을 수 있지만 없어서 더 좋을 수도 있는 거예요. 


서수민 : 저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선을 만드는 일이 바로 PD의 일인데요. 똑같은 스토리와 똑같은 인물, 똑같은 상황이더라도 예능 PD가 어떤 시각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프로그램 장르가 바뀌어요. 그만큼 어떤 시선인가가가 중요한데 스펙은 ‘나를 볼 때 이걸 봐 주세요’에 해당되죠. 저도 사람을 뽑을 때 스펙을 보긴 하지만 스펙만 있는 경우가 많아요. 스펙을 제일 앞세우는 사람 치고 좋은 사람이 없어요. 그보다는 어떤 의지를 가졌는지가 더 중요하죠.


저는 <개그콘서트> 할 때 NG를 많이 내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NG를 많이 내는 사람일수록 욕심이 많은 거거든요. 욕심이 많기 때문에 조바심이 나서 하다가 헛짓을 하는 거예요. 욕심을 안 내고 NG를 안내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평탄하게 가서 이도 저도 아니죠. 스펙보다는 욕심, 의지가 제게는 더 중요하게 보이더라고요.



Q 지금도 스펙을 쌓기 위해 애쓰는 20대 친구들에게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조선희 : 너무 많이 달라져서 우리가 조언하기 힘든 시대이지만 달라져도 근본은 같잖아요. 삶이 똑같으니까. 내가 뭘 하고 싶은 사람인지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경험을 많이 해야 하니까 '서툴러도 직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서수민 : 지금 세대와 우리 세대는 환경이 달라요. 우리 때는 기회도 자원도 풍부해서 실수도 훈장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번 실수하면 그 실수를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적더라고요. 그래서 조심스러운 건 알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다는 거죠. 움츠러들면 결국 남는 건 없으니까요.

우리는 어딘가에 속해서 그 안에서 적응해 거기서 선택을 받느라 20~30대를 비용으로 지불한 세대에요. 그 비용을 지불해서 30대 중반부터 권한이 생겨서 뭔가를 하는 세대였다면 지금은 그게 아니죠. 저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자기 채널을 가지고 있으니까 되고 싶은 것만 있다면 오히려 더 쉽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비용을 지불하고 그 비용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세대의 말을 듣지 말고 자기 색깔을 찾으세요. 자기 색깔을 찾아 내 길을 빨리 파는 사람이 더 빠를 수 있어요.


Q 책 3장의 제목이 '누구에게나 신의 한 수가 있다'인데요. 두 분에게 '신의 한 수'는 무엇이었나요?

서수민 : 제가 사주를 본 적이 있어요. 저한테 사주에 반골 기질이 있대요. 그러고 보니 직장 생활 내내 윗분들하고 늘 부딪치고 안 좋았어요. 그게 저한테는 오히려 신의 한 수가 된 것 같아요. 순종적이지 않았던 것이 어떻게 보면 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일을 저지를 수 있게 된 동력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조선희 : 나는 욕심 많고 포기하지 않은 것. 예를 들어 웬만큼 찍어도 그중에서 A컷 고를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 더 하면 좀 더 좋은 걸 찍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더 찍는 거지. 50컷 찍어서 괜찮은 컷과 200컷 찍어서 괜찮은 사진은 다르잖아. 그게 물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는 있어요. 배우들은 빨리빨리 찍고 가고 싶고 어떤 클라이언트도 그만하면 됐다고 해요.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그만하면 안 됐거든. 만약 사람들이 "이 정도로 됐어요" 할 때 대충 끝냈다면 나는 그냥 보통인 포토그래퍼인 거야. 20년 동안이나 필드에 있지도 못했고. 남에게 덜 관대한 만큼 나한테도 덜 관대했던 게 나에게는 신의 한 수가 됐죠.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예능PD 서수민, 사진작가 조선희 "'결핍'이 촌년들의 성공비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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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신정임(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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