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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15. 2017

사찰음식 명장 선재스님 "음식이 내 인격을 만든다"

                            


바야흐로 '먹방' 시대다. 어느 채널이고 레시피나 맛집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즐비하다. 요리사가 아니어도 자기만의 레시피 한두 가지쯤은 가지고 있고, 어느 지역에 어떤 맛집이 있는지도 알고 있으며, 유명한 맛집 몇 군데는 부러 찾아가본 적도 꽤 있다. 유명한 맛집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사진 찍어 SNS에 올리면, 음식을 맛본 사람들의 평가가 줄을 이어 댓글로 달린다. 찍어 올리는 사진도 수준급이고, 댓글로 달린 평가도 전문가 못지않다.


요리사의 화려한 기술과 예쁜 접시에 담긴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은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평생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맛있는 음식을 찾는 건 본능에 가까워 보인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요즘, 우리는 정말 '잘' 먹고 있는 걸까?


사찰음식을 대중에 알리고, 음식으로 일상에서 수행하는 법을 설파한 선재스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음식에 대한 관심은 많아지고 식재료도 풍부해졌지만 그만큼 몸이 아픈 사람도 많아졌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되었는데 왜 더 건강해지지 않았을까?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불광출판사/ 2016년)를 쓴 선재스님은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는 것’만 관심을 갖지 무엇을 먹는지는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돼 요리책을 쓰기 시작했다.


2월 7일 서울 안국동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선재스님을 만났다. 선재스님은 사찰음식 책을 통해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를 쓴 동기를 밝혔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혈안이 돼 있어서 어떤 음식이든 먹는 것에만 집중을 해요. 요리에는 관심이 있지만 어떤 걸 먹는지는 몰라요. 사찰음식은 요리가 아니고 음식이라고 얘기해요. 음식이라는 게 먹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음식을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걸 <이야기로 보는 사찰음식>에서 한 거고요. 이번에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에서 음식이 우리 건강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요리와 음식은 다른 걸까? 어떤 요리사는 요리와 음식이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전을 찾아봐도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선재스님에게 뜻을 다시 물었다. 스님은 요리와 음식은 다르다며, 음식에 담긴 뜻을 하나씩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듣고 있으니, 음식이 아니라 수행에 관한 이야기, 삶에 관한 이야기 같았다.


"요리와 음식은 달라요. 요리는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좋아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음식에는 우리의 문화와 추억, 관계나 삶, 생명과 인격이 들어 있어요.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건강한 몸과 평화로운 마음을 지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음식이 맑고 건강해야 돼요. 음식을 만드는 인연들이 있잖아요, 땅이나 물, 바람, 공기가 건강해야 좋은 음식 재료를 얻을 수 있고 그 재료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어요. 음식이 내 인격을 만드는 거죠.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음식은 자연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해요. 사람들은 음식이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지, 그 음식이 다른 생명과 연결돼 있고 또 나와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못해요. 동물도 나와 같은 생명체고 땅이나 물도 나와 다르지 않은 생명체라는 걸 음식을 통해 깨달아야 해요. 음식 속에는 정말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런 걸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음식은 자연 생명 먹는 것... 어떤 대가 치를 건지 생각해야"


보기에 화려하고 입에 맛있는 음식만 찾는 탓에, 음식에 대한 관심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건강한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다양한 요리 재료와 요리법에 대한 관심은 사찰음식으로도 이어져 사찰음식을 배우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음식 속에 담긴 생명과 건강의 가치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음식 속에 담긴 삶과 생명 존중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사찰음식마저 유행하는 요리법 중 하나로 여기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찰음식을 자기 입맛에 맞게 요구하고, 그렇게 사찰음식이 상업화되면서 원래의 가치는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며 선재스님은 답답함을 감추지 않았다. 사찰음식이 수행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데, 그럼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찰음식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선재스님은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지켜야 할 게 있다며 말을 이었다.

 
"음식은 자연 생명을 먹는 거잖아요. 자연 생명을 먹을 때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지, 우리는 그들에게 뭘 줘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그냥 돈 주고 사는 걸로 끝나서는 안 돼요. 돈 주고 사더라도 어떤 것을 사야 자연 생명을 살리는지 따져봐야 돼요.


내가 유기농 농산물을 사 먹으면 내 몸도 살지만, 유기농 농부도 살고요, 그럼 자연 생명이 살아요.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제철이 아닌 음식, 첨가제와 방부제가 잔뜩 들어간 걸 사 먹으면 내 몸을 죽이는 거고 사람이 병드는 그런 음식을 계속 만들게 하는 거예요. 자연의 리듬을 깨지 않으면서 자연에서 얻은 음식을 먹어야 해요."


'음식은 자연생명을 먹는 것'이라는 말이 무척 낯설다가도, 생각해보니 정말 음식을 먹으려면 자연생명에서 식재료를 얻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가공식품이나 식사대용식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선재스님이 말한 것처럼 내 몸을 죽이는 가공식품을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제야 책에서 읽은, 사찰음식의 목표는 자타불이(自他不二)라는 말이 이해됐다. 자타불이는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고 보는 불교의 생명관이다.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지 따져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 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두 종류의 생명이 살잖아요. 아픔을 느끼는 유정(有情) 생명체와 아픔을 느끼지 않는 무정(無情) 생명체인데, 그 생명체가 나와 다르지 않아요. 생명들을 우리가 보호하고 살려야죠. 불교에서 육식을 하지 말라고 한 건 아픔을 느끼는 동물에 피해를 주지 말고 그들의 삶을 인정해주라는 거예요. 무정 생명체도 마찬가지에요. 식물이 아픔을 느끼지는 않지만 우리가 보호해야죠. 모두 음식 속에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부처님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라고 말씀하셨고요."


자연식과 채식, 제철음식이 몸에 좋은 것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다. 건강을 위해 지방덩어리 가공식품을 줄이고 자연식과 채식에 도전해보지만, 이미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게 문제다. 한두 끼 맛본 사찰음식은 몸에는 좋을 것 같은데 무언가 허전하다. 사찰음식으로 입맛을 길들이는 데 좋은 방법은 없을까?

 
산중에 사는 스님들은 하루에 1300칼로리만 먹는다고 한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헛헛하지 않은 것은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와 맑은 물에서 에너지를 받기 때문이란다. 정말 기쁠 때는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스트레스 받을 때는 금세 속이 헛헛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온몸으로 먹고 있는 셈이다. 맛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입맛도 바뀔 수 있다. 음식은 수행이고, 음식에도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사찰음식 명장 선재스님 "음식이 내 인격을 만든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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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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