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Feb 13. 2017

"나도 처음 살아보는데, 인생을 어떻게 알아요?"

여성학자 박혜란 작가인터뷰



"남은 인생을 그렇게 살아야 되겠어? 그걸 보면 젊은 사람이 늙고 싶겠어요?"


인생을 너무 대충 산 것 같아 고민이라는 70세 할머니가 남은 인생을 위해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프라하 같은 도시에서 한 달 간 살아보기. 다큐멘터리 찍기. 연극 무대에 서기… 전국 방방곡곡으로 강연을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은 망한 날"이라며 일상의 재밌는 일을 찾아다니는 재미주의자. 올해 일흔 살이 된 여성학자 박혜란의 이야기다.

나이듦을 자각했던 50대에 <나이듦에 대하여>를 썼다. 50대의 젊음을 뒤늦게 깨달았던 60대의 고백을 담아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그리고 이젠 정말 ‘노인’임을 부정할 수 없는 70대가 되었다. <오늘, 난생처음 살아보는 날>에는 어느 날 불현듯 다가온 ‘70대 노인’으로서의 일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나도 내 삶을 겨우 한 번 살아봤는데, 뭐가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있어요?"

그 맛을 알면서도 매번 '짬뽕이냐, 자장면이냐'를 고민하는 것처럼, 인생 역시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라는 박혜란 저자를 지난 1월 23일 서울시 서초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겨우 한 번 살아본 인생인데 인생을 어떻게 알겠냐며 호탕하게 웃는 그 모습은 지금껏 70대 노인을 떠올리면서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던 얼굴이다.



인생? 매번 짬뽕이냐, 자장면이냐를 고민하는 것과 같다


Q <오늘, 난생처음 살아보는 날>은 <나이듦에 대하여>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보다도 더욱 솔직한 ‘나이듦’에 대한 고백들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전작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책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내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죠. 50대 중반에 마치 내가 다 늙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아, 내가 이제는 젊지 않구나’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던 때. 그런데 60대가 되니, 50대는 너무 젊었던 거예요. 혼자 나이든 척 한 거 아닌가 싶어서 또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를 쓴 거죠. 사회적으로 노인의 기준이 65세인데, 저는 그 시기를 가장 바쁘게 보냈어요. 손주들이 태어나면서 가족 구성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일도 많이 했고. 그러면서 ‘요즘은 60대가 노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했죠.

그런데 70대가 되고 보니 '70대 노인'이란 말부터가 굉장히 자연스럽더라고요. 이제는 노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가 된 거죠. 다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인'의 정의를 다시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힘없고 심리적으로 사람들에게 의존하려는 이미지, 항상 1번만 찍는 이미지. (웃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노인도 각각 한 명의 개성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Q 작가의 말에서 표현하신 '일흔 살이 되던 날 아침'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인상 깊더라고요.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아무리 젊은 척을 해도 정말 '노인이 됐다'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거죠. 늘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고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정말 얼마 안 남은 거거든.

나이 앞자리에 붙은 '7'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굉장히 크게 다가왔어요. 남은 시간을 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 시간에 대한 생각이 남달라졌죠. 제목 그대로예요. 나의 어제는, 오늘은, 내일은 70살의 어느 날 하루가 아니라 난생처음 살아보는 날이구나. '이왕이면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거예요. 산다는 건 결국 연속성 위에 있는 거지만 마음가짐이 더 진지해졌다고 할 수 있어요.


Q <오늘, 난생처음 살아보는 날>을 보면 나이가 들면서 경험하게 되는 크고 작은 일상들이 굉장히 덤덤하게 다가와요.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다든가, 콘서트 장에 오시겠다는 부모님을 걱정하는 아들이라든가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70대로서의 일상이 있으신가요?

삶은 늘 익숙지 않아요. 우리 매일은 늘 처음 살아보는 날이기 때문에 아무리 살아도 낯설어요. 그리고 책을 더 많이 읽었다고 해서 혹은 더 오래 살았다고 해서 중심을 잘 잡고 차분하게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능력 같은 건 안 쌓이는 것 같아. 내가 인격적으로 덜 성숙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웃음)

어제 사노 요코의 책 <문제가 있습니다>를 읽었는데, 그 책 속의 말들이 너무 공감이 되더라고요. 오래 살았다고 해서 쉬운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데 정말 공감돼. 쉽게 말해서 우리는 중국음식을 그렇게 많이 시켜 먹어도 늘 짬뽕을 먹을지, 자장면을 먹을지 매번 고민하게 되잖아요. 인생이 그렇다니까요. 살아봤어도 늘 고민하게 돼. 어른 노릇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을 보면 나보다도 더 잘 살아주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조언을 구해도 ‘알아서 해. 네가 더 잘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하는 게 그 이유예요, 나는.


Q 선생님과는 달리,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어른들도 많잖아요.

그러게나 말이야. 난 너무 신기해. 이해가 안 가요. 난 그렇게 못 해. 제 책에는 '이렇게 살아라'라는 말이 없어요. 어떻게 젊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해요. '난 이렇게 바보처럼 살았다', '나 이렇게 살았다'라고 내 삶을 이야기할 뿐이지. 정답을 어떻게 말해줘? 정답은 나도 몰라요. 젊은 아이들은 자기 상황에서 결정해야 할 선택의 길이 모두 다를 거예요. 나도 내 삶을 겨우 한 번 살아봤는데, 뭐가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좀 더 젊은 애들보다 오래 살았을 뿐이지. 난 누구를 가르칠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웃음)


Q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뤄야 하는 '기준'에 대한 강박이 있잖아요.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야 하고… 사실 이런 기준들이 '나이듦'을 자각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정말 획일적이잖아요. 늘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 남보다 잘해야 하고, 남보다 잘 살아야 하고, 그렇게 출세해야 성공이고 그게 행복이다. 이 논리가 너무 강하잖아요. 물론, 인생을 달리 사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의 주체적인 생각을 원천 봉쇄시키는 분위기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논리가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잖아요. 또 그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고. 더러는 이 변화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경향도 있지. 나는 그런 게 좀 아쉬워요. 이미 상황이 뒤집어졌을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잘못된 것을 뒤집어엎는 걸로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 난 정말 그거 재미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그 이후지.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여성학자 박혜란 "나도 처음 살아보는데, 인생을 어떻게 알아요?"]의 일부입니다. 

전문보기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매거진의 이전글 "경제민주화 됐다면 최순실게이트가 있었겠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