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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24. 2017

국민의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은 새로운 민주적 정의의 꽃

정호승 작가 인터뷰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정호승의 말, 말, 말

- "조기가 천일염에 절여지는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면 굴비가 될 수 없죠. 인내의 힘으로, 청춘의 조기에서 인간의 굴비가 되자는 겁니다."

- "팽목항을 생각하면서 시를 쓰지 않은 시인은 이 시대에 없을 겁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전체의 참사예요. 공동의 고통이자 눈물이자 절망입니다."

-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분노는 어리석은 권력의 오만이나 오도된 사명감 때문이에요. 그 분노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한테 남아 있는 숙제죠."

[프리즘②] 희망이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


▷ 정호승은 누구? : 굳이 소개의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서정시인. 더 설명이 필요하다면 젊은 세대에게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년 세대에게는 "부치지 못한 편지", 그 위 세대에게는 "서울의 예수"라는 몇 글자를 더 말해주는 것으로 충분할 듯하다.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고,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슬픔이 기쁨에게>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등 여러 시집을 냈고,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시 70여 편이 노래로 만들어졌다.


▷ 어떤 책을 냈나 : 열두 번째 신작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 2017년). <여행> 이후 4년 만이다. 110편의 시 가운데 3분의 2가 미발표작이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의 해설을 빌리자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로서의 시인의 비극적 자기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비극은 시인 특유의 단정한 슬픔과 정돈된 고독으로 그려진다. 정호승 시인은 '시인의 말'에 “나는 이번 시집을 통해 희망이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 희망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무엇이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가 하는 고통의 질문을 끊임없이 해보았다"라고 남겼다.


▷ 인터뷰 뒷이야기 : 2월 21일 서울 서교동 카페창비. 정호승 시인과 나란히 앉았다. 작가와 서로 마주 앉지 않고 나란히 앉아서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지금 불편하세요?" 정호승의 시인의 말은 단정하고 절제된 그의 시와 꼭 닮아 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듣는 사람의 불편함을 살피고, 단어 하나를 뱉기 전에 마치 시어를 고르듯이 말을 골랐다. 예의바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늘 기분이 좋다. 정호승 시인을 만났을 때가 그랬다.


그가 유일하게 목소리를 조금 높인 대목은 뜻밖에도 '인터넷' 이야기였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시들. 시어나 행갈이를 제멋대로 바꿔버린 시, 엉뚱한 제목, 엉뚱한 시인의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시. 정호승 시인은 "인터넷 시대의 시인은 상처받은 자"라며, "참혹"한 심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진정한 시의 독자는 인터넷에 올라온 시를 맹신하지 말고 시집을 통해 원문을 찾아 읽어야 한다"는 당부를 꼭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열두 번째 시집을 내셨습니다, 2013년 <여행>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시집인데요, 먼저 소감부터 듣고 싶습니다.


햇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시집을 냈다는 것 자체, 한 시인이 꾸준히 시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시를 써왔다는 사실이죠. 앞으로 또 언제 시집이 나올지는 저도 모르는 겁니다.(웃음) 가능한 한 빨리 내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죠.

Q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라는 이번 시집의 제목이 참 결연합니다.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라는 첫 행으로 시작하는 표제시는 하나의 선언, 또는 반어적인 간절한 희구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 의미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희망에 희망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희망에는 희망이 없을 수도 있구나. 나는 지금까지 희망이 없는 희망을 바라보면서 살아왔구나.' 희망은 생명이거든요. 인간에게 모유와 같은 것, 밥과 같은 거예요. 그런데 희망에도 '희망이 있는 희망'이 있고 '희망이 없는 희망'도 있다는 것을 근년에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은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런 생각의 끝에 자연히 나온 시예요.


그러면 왜 지금까지 '희망이 없는 희망'을 희망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는가. 희망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거예요. 희망의 토양이 절망인데, 절망의 가치를 내가 너무 폄하하고 살아왔지 않았나 싶은 겁니다. '희망이 있는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절망을 바탕으로 한 희망이어야 한다는 거죠. 사람들은 절망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려고만 하고 희망의 가치에만 매달리더라고요. 그런데 절망을 소중하게 여겨야 희망도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고 새로운 생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망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고서는 희망을 소유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Q 인터넷으로 이번 시집에 대한 독자들의 리뷰를 좀 찾아봤습니다. 퀴즈를 하나 드려볼까요? 독자들의 리뷰에서 표제시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시가 한 편 있습니다. (정호승 : '굴비에게'를 많이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정답입니다.(웃음) 그 시가 사랑받는 이유,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 시를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실 줄은 생각 못했어요. 청춘들이 힘들죠. 우리가 다 아는 이유로. 시인도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시인이 일자리를 창출할 순 없잖아요.(웃음)'‘굴비에게'라는 시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시인으로서 의무를 이행한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돼요. 조기가 굴비가 될 때,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과정이 필요해요. 천일염에 절이는 거죠. 그러면 조기의 내면과 외면에 큰 고통과 변화가 따르기 마련이에요. 그런 고통을 통과하지 않으면 조기가 굴비가 될 수 없어요.


인간도 청춘을 통과해서 삶의 완성이 일어나잖아요. 청춘의 시기는 천일염에 절여지는 과정이고, 고통은 필연적입니다. 참고 견디는 인내의 힘이 필요하다는 거죠. 청춘들은 이 시대와 싸우고 싶잖아요. 물론 삶의 현실이라는 여러 가지 조건들과 싸워야죠. 하지만 투쟁하되, 그 속에 인내가 있어야 돼요. 조기가 천일염에 절여지는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면 굴비가 될 수 없죠. 인내의 힘으로, 청춘의 조기에서 인간의 굴비가 되자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29쪽 '굴비에게' 일부

Q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님이 이번 시집의 해설을 써주셨습니다. 염무웅 선생님의 해설 중에 재미있는 대목이 있는데요,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예의바른 사람과 오래 마주 앉아 있을 때 느끼는 불편함 같은 것"을 느끼셨다는 대목입니다.(웃음)


제가 기질적으로 좀 예의바른가 봐요.(웃음) 저도 인간이니까 선호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를 벗어난 사람을 별로 가까이 하지 않더라고요. 그런 기질이 시에서도 나타나나 봐요. 시도 사고의 기질의 소산이잖아요. 아무래도 시가 자유분방하고 흐트러지면서 완성을 이루는 것보다는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완성을 이루는 것을 더 선호하죠.


제 나름의 시에 대한 생각은, 시는 침묵으로 이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를 침묵을 통해서 드러내고 시를 완성시키고 싶은 거죠. 그래서 저는 제 시가 조금만 길어지면, 제가 죽겠어요.(웃음) 시집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 시가 별로 없는데,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시에 대한 제 기본적 태도 때문에 그런 거예요. 제가 쓰는 시에는 침묵의 향기, 묵언의 성찰이 얼마나 배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Q 첫 시집 <기쁨이 슬픔에게>는 1979년에 나왔습니다. 2014년에 나온 개정 2판 '시인의 말'에 "예전에는 시를 쓰는 일이 무논에 끊임없이 모내기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시의 무논에도 가끔 추수의 계절이 찾아온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쓰셨더라고요. 첫 시집을 내던 그때와 열두 번째 시집을 낸 지금, 선생님의 '시 쓰기'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두 권의 시집 사이에 깊은 시간의 강이 흐르죠. 그 강은 시의 강이고, 제 인생의 강이죠. 이미 저는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의 강언덕으로 건너와 버렸어요.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돌아갈 수 없다는 비극이 여기 있는 거예요. 앞으로 남아 있는 시의 강, 남아 있는 인생의 강에 어떤 강물이 흐르게 할 것인지만 생각하려 해요. 그리고 그 강물은 좀 더 맑고 푸르렀으면 좋겠다는 생각, 강물이 마르지 않고 풍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20대 때는 '시만이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60대가 된 지금은 시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돼요.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사랑'이라는 가치죠. 사랑의 본질은 모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무한하고 책임이 있고 용서가 있어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하지만 아직 내가 살아 있으니까 완전히 늦어버린 건 아니겠죠. 이번 시집 맨 앞에 있는 시가 '폐지(廢紙)'예요. 그 시가 일종의 서시 같은 거죠.

그러나 오직 단 하나
사랑이라는 글씨만은 모두
비에 젖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12쪽 '폐지(廢紙)' 일부

Q 2014년 저희 북DB와 한 인터뷰에서 '시를 쓰는 사람도 도저히 시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고통스러워서는 안 된다. 시와의 관계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시를 쓰는 일이 고통으로 여겨지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요.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시는 항상 새로워야 되거든요. 모든 시인들의 시는 새로운 시예요. 시가 이뤄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시를 쓸 때 그 순간이 안 올 때가 많은 거예요. 그렇지만 시를 쓰는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나중에 찬란한 기쁨을 주죠. 아마 그래서 다들 시를 쓰지 않나 생각해요. 제가 늘 틱낫한 스님 이야기를 하는데요, '연꽃이 진흙을 필요로 하듯 행복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있어요. 고통이 없으면 행복이 없다는 말이죠. 시를 쓸 때 고통의 가치가 시인에게는 참으로 소중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Q 당시 인터뷰 때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더 써야 할 시가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얼마나 더 시를 쓴다면 그런 때가 올 것 같으신가요?


그것도 아마 시 쓰는 일의 고통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거예요. 더 이상 써야 할 시가 없는 그런 순간은 안 오겠죠. 하지만 누구에게나 더 이상 시를 못 쓰는 순간은 와요. 나이가 들면서 물리적인 한계에 의해서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시인의 결심에 따라서 그렇게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죽으면 못 써요.(웃음) 저는 가능하면 죽어서 못 썼으면 좋겠어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정호승 "국민의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은 새로운 민주적 정의의 꽃"]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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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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