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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r 03. 2017

임경선 "내 책 읽으면서 기지개 켜는 느낌 받았으면"



작가 임경선은 2년 전,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를 통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태도가 수렴되는 궁극의 가치를 자유라고 말하며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우연하게도 2년이 지난 현재, 그녀는 자유에 대한 에세이로 다시 돌아왔다.


<자유로울 것>(예담, 2017)은 그녀가 삶의 궁극적인 가치라 말했던 자유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묶은 에세이집이다. 작가로서, 임경선이라는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누군가의 아내로서, 좋아하는 작가의 독자로서…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삶의 곳곳에서 마주하는 자유에 대해 서술했다. 그녀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다. 그녀의 글을 곱씹어보면, 내가 생각했던 자유의 외연조차 사회적 기준에 부합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전 저처럼 뻔뻔한 사람이 발언의 외연을 넓혀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발언의 외연을 넓혀줘야지 그걸 다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고 방식과 그에 대한 자율성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 굳이 말하면 연장자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남을 해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2월 10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빨간책방 카페'에서 임경선 작가를 만났다.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고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좋겠다”는 그녀와 자유, 글쓰는 작업의 의미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주저함 없이 자신의 소신을 말하는 임경선 작가와의 인터뷰는 <자유로울 것>을 읽었을 때만큼이나 속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예기불안 형성하는 현 정권부터가 개인의 자유 억압”


Q <태도에 관하여> 이후 2년여 만의 에세이입니다. 그 사이 몇 권의 책을 내긴 하셨지만 <태도에 관하여>와 <자유로울 것>은 연결성이 느껴지는데, 둘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사실 <태도에 관하여>는 자기계발에 가까운 에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에 비해 <자유로울 것>은 좀 더 자유롭게 쓴 에세이 모음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특히 글 쓰며 사는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Q 자유를 추구하는 것 역시 삶을 대하는 태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좀 더 자유로워진다는 느낌이 있어요.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고 심리적으로 묶여 있던 부분도 그렇고요. 시댁이나 친정에 심리적으로 묶여 있던 부분이 편해졌고,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양성평등 문제에서 훨씬 더 개선이 됐고. 아이는 아이대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엄마의 손을 덜 타니까 제가 훨씬 더 편해졌죠. 1년 안에도 굉장히 많은 개선이 있던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저로서는 굉장히 큰 해방이에요.

그리고 재작년부터인가는 책의 인세만으로 생활이 가능해져서 굳이 연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에요. 전에는 연재를 5~6개씩 고정으로 하느라 매일 마감을 해야 했거든요. 월급쟁이처럼 한 달에 일정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했었죠. 지금은 책 인세가 주 수입이 되고 그 외에 강연으로 보완을 해주면 솔직히 먹고사는 것에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에 글쟁이로서는 굉장히 자유로워진 거예요. 

전에 무리카미 하루키가 돈을 많이 버니까 뭐가 좋냐고 묻는 질문에 ‘시간을 살 수 있어서 좋다’고 그랬거든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뭐… 제가 그만큼 버는 건 아니지만. (웃음)


Q 반대로도 여쭤볼게요. 여전히 자유를 억압한다고 느끼는 환경 혹은 대상이 작가님 주변에 존재하는지를요.


요즘엔 국내 정치적인 문제가 가장 억압적으로 느껴져요. 소위 진보층 내에서도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 입장이

갈리고 날이 선 상황이잖아요. 뭐랄까, 편하게 이야기를 못 하는 분위기니까요. 그런 것도 조금 억압적이라고 생각해요.
 
Q 책의 서문을 통해서 이번 주제가 ‘자유’로 귀결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셨는데요.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움’에 대한 고민이 깊어 보였어요.


현 정권 들어선 다음부터 그런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형성됐잖아요.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라를 운영하고 리드하는 게 사람 숨을 턱 막히게 해요. ‘예기불안’ 같은 게 계속해서 있는 거죠. 이게 오래 가면 사람 피를 말리잖아요? 저도 한동안은 토요일 집회도 안 나가고 일부러 정치적인 이야기를 안 하고 책에만 집중을 했어요. 사람이 조금 쉬어줘야 되거든요. 지치면 오래 갈 수가 없으니까. 곧 결론이 나겠죠.


Q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 해답이라면 해답이 될 것’이라고 하셨던 부분은 현실적인 대안처럼 느꼈어요. 이번 책 출간 역시 작가님이 말씀하신 ‘자유로움을 위한 방법’ 중 하나인 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본인이 해야 할 일은 시간 맞춰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생 시절에 데모를 나간다고 해도 수업에 출석한 다음 데모에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가급적이면 해야 할 것은 하는 게 좋죠. 그게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누가 누군가의 모범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


Q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더라고요. 2016년 노벨문학상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평소 롤 모델로 꼽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 불발 소식이 아쉬웠을 법도 한데,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농담인 줄 알았어요. ‘밥’ 가지고 패러디라도 하는 줄 알았어요. (웃음) (기자 : 아쉽지는 않았나요? 유력 후보였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할 것을 대비해서 방송 출연까지 결심하셨는데.) 네. 사실 방송 나가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때는 뭐 어쩔 수 없었어요. 다른 사람이 나가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또 싫더라고요. 지인들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을 하게 되면 네 팬심의 역사에 의미 있는 날이 될 거라고 하셔서 방송 출연을 결심했었죠. 이번에는 불발이 됐지만 언젠가는 탈 거라고 생각해요. 동양인으로서 전 세계를 통틀어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자기 책을 알린 작가가 없으니까요.


Q 또 한 명의 롤 모델로 꼽는 줌파 라히리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최근 [2017 명사추천 릴레이]에도 줌파 라히리의 책을 추천해주셨잖아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의 작가인가요.


너무 멋진 분이죠. 제가 더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앞장 서서 물꼬를 터주시는 분이에요.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나 줌파 라히리 등 이런 분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개의 문화가 교착된 지점에 선 분들이기 때문이거든요. 하루키 같은 경우는 일본과 미국. 줌파 라히리는 인도와 미국, 영국이 섞여 있어요. 이질적인 문화가 함께 공존해있는 상태죠. 경계에 서서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유연하면서도 관대하고 건조한 시각. 그러면서도 예리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아요. 이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선동가가 아니라 한 발 물러서서 조용히 관찰하며 상황에 대해 덤덤히 이야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화법이랄까 느낌들이 좋아요.

 

지금 줌파 라히리의 신간 에세이 한 권이 번역 작업 중인 걸로 알고 있거든요. 책 표지에 관한 에세이예요. 저는 출간되자마자 영문으로 읽었는데 굉장히 공감이 가더라고요. 줌파 라히리도 얼굴색이 까만데 백인들과 학교를 다니면서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질감이 있는 인간, 다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채로 살았던 이야기가 나와요. 저도 그랬거든요. (임경선 작가는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기자 주) 중국 애냐, 일본 애냐. 한국에 들어와서도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쟤 한국 애 아니야. 쟤는 쪽바리야” 그런 이야기도 듣고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한 경험이 있는 거예요. 이번 에세이에서 이야기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 책 표지를 사람들이 판단하는 겉모습과 비교를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요. 어떨 때는 세상의 모든 책들의 표지가 다 똑같았으면 좋겠대요. 내용으로서 판단되고 이해되었으면 한다고요. 재미있는 이야기라 얼른 국내 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Q 롤 모델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작가님을 롤 모델로 꼽는 여성분들도 많은데요.


제가 굉장히 재미있게 사는 줄 아시더라고요. (웃음) 사실 롤 모델이나 멘토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누가 누구의 모범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요. 모든 사람은 각자가 가진 고유의 장점이 있고 매력이 있는 거죠. ‘저 사람의 특성이 참 좋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죠. 어떤 특성에 대한 인정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에요.


“우리나라 여성들, 착한 사람되기 위한 자기 규제 너무 심해”


Q 책의 후반부에 가서는 작가님께 글 작업의 의미가 조금 남다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섯번의 갑상선암 수술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놓았다고 하셨죠. 작가님께 글을 쓰고 책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인생 계획이나 10년 후 같은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딱 1년 계획만 생각을 하거든요. 그 이유가 1년에 한 번씩 병원에 종합 검진을 받으러 가서 그래요. 늘 삶을 1년치 연장하는 느낌으로 살고 있거든요. 1년에 소설 한 권, 에세이 2개 정도를 작업하면 딱 맞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다작을 한다고도 할 수 없어요. 저 다작하는 작가 아니에요. 우리나라 작가들이 너무 안 내는 거죠. 일본 보세요. 연재물이 워낙 많다 보니까 1년에 네다섯 권씩 내잖아요. 우리는 몇 년에 한 번씩 책을 출간하잖아요. 마치 그 시간 동안 책 준비만 한 것처럼 비춰지기도 하고, 오랜만에 내면 더 대단한 것처럼 포장이 되고. 그거 아니거든요.


Q ‘자유’에 대한 책들이 굉장히 많죠. 소설이나 에세이, 더 넓은 의미로는 여행서도 포함이 될 수있을 거고요. 자유를 다룬 책들 가운데서도 독자들이 <자유로울 것>을 어떻게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라시나요?


누군가는 ‘아니, 이런 얘기까지 책에 써도 돼?’라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전 저처럼 좀 뻔뻔한 애가 그 외연을 넓혀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발언의 외연을 넓혀줘야지 그걸 다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글 쓰는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해요. 욕을 먹더라도, 계속해서 해줘야 해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은 이야기만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소설 <나의 남자>도 불륜 조장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어쨌든 저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뻔히 욕 먹을 거, 저도 각오를 하죠. 하지만 제 마인드는 그거예요.


‘세상 일은 그럴 수도 있다’라는 거. 옳고 바른 이야기만 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제 책을 읽으면서 뭐랄까 ‘속이 시원하다’라고 생각하고 잠깐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 들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착한 사람’의 기준을 너무 가혹하게 책정하고 있어서 자기 규제가 너무 심해요. ‘내가 잘하고 있나, 나 혼자 이상한 거 아닌 가. 내가 틀린 건 아닐 까.’ 이런 생각들을 하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고, 남을 해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고 방식과 그에 대한 자율성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 굳이 말하면 연장자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에세이를 쓸 때는 특히 더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책에 “행복과 욕망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기에 둘을 혼동하거나 섞지 말고 갈라놓은 뒤, 저마다의 방식으로 충족하면 된다”라고 소개한 내용이 있었어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조언이 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만의 방식이 있나요?


일반론적으로 욕망이라는 건 성취나 성공, 출세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고, 행복이라는 건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해하고 나의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두 개념이 굉장히 다른 느낌이에요. 그러다 보니 세간에서는 둘 다를 가질 수는 없다고 하기도 하고요. 쉽게 말해서 일로써 욕망을 충족시키고, 일하지 않는 외적인 시간을 활용해서 내 행복을 충족시키는 삶을 많이들 생각하지만 기왕이면 일 자체를 좋아하며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별 것도 아니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별 거 아닌 게 아니에요. 일에 매진하는 사람을 마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마냥 대하는 사회도 아니잖아요. 


반대로 성취하는 행복이 있고 또 얼마든지 주관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게 분명히 있어요. 그런 것들에 대한 섬세한 분류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굉장히 예민해질 필요가 있거든요. 내 행복과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기준들을 더 섬세하게 세우고 잘게 잘게 나누어보세요. 사람의 인생이 그리 단순하지 않은데, 내 행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준을 단순하게 잡아두면 그건 계속해서 충족이 되지 않을 거예요. 살아갈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뭔가를 이뤄내는 경험을 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도 또 다른 국면에서 큰 영향을 미쳐요.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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