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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r 08. 2017

구효서 “문학…이 길로 안 왔으면 어땠을까?”

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 구효서 인터뷰



‘꾸준함’과 ‘새로움’이 공존할 수 있을까?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소설가가 있다. 평생 ‘문학’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문학바보’ 소설가 구효서다. 그의 문학은 발효 음식을 닮았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더위와 추위도 마다않고 받아들였다. 1987년 단편소설 ‘마디’로 등단한 이래 30년 간 소설집 <노을은 다시 뜨는가> <시계가 걸렸던 자리> <별명의 달인>과 장편소설 <나가사키 파파>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 등을 발표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런 그에게 올해 초 선물이 주어졌다. 중편소설 ‘풍경소리’가 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것이다.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구효서는 이제 어떤 경지에 들어서고 있는 듯하다”고 그의 작품을 평가했다. 무엇보다 ‘전업소설가’인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으로 5년간 일했던 곳이 이상문학상을 주관하고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펴내는 문학사상사였기에 이번 수상은 더 뜻깊다.


<제4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적 자서전에 묘사된 작가의 일상생활이 흥미롭다. 회사원처럼 오전 아홉 시에 집필실로 출근해 오후 여섯 시에 퇴근한다. 투박한 자전거를 타고 서울 중계동 집에서 서울 공릉동 집필실까지를 왕복 50분 간 오가는 게 그의 유일한 건강관리법이다. 2월 14일 늦은 오후, 서울 정동의 커피숍에서 작가를 만났다. 여느 때처럼 집필실에서 글을 쓰다가 인터뷰 요청이란 세상의 부름을 받고 ‘조기퇴근’ 한 것이리라.




“열렬한 짝사랑은 아니었던 문학…이제 잘 해줘야죠”


“애당초 열렬한 짝사랑이나 구애로 시작했으면 (문학에게) 덜 미안했을텐데 그렇게 생각 안했어요. ‘마음에 안 드는데 결혼했어’, 뭐 이런 거였죠. 지금은 되게 미안하죠.(웃음) 이제 느지막이 잘해줘야죠.”


수상 소감을 묻자 그로부터 돌아온 것은 ‘문학에게 미안하다’는 조금 의외의 답변이었다. 마치 돌아온 탕자의 회개처럼 들린다. 무슨 이유일까? 고등학교 시절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던 작가는 화가의 꿈을 불태웠다. 그러나 미대 진학에 실패하면서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대입 재수 시절에 빠져들었던 문학이 그의 인생을 소설가의 길로 인도했다. 하지만 아주 최근까지도 그는 계속 남의 동네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떨쳐낸 건 최근이 되어서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만족하고 보람 느끼며 살기가 그다지 쉽지 않죠. 그래서 사람들은 핑계들을 가져요. 내 핑계는 그림이었죠. 하지만 내 이루지 못한 꿈(미술)은 꿈대로 소중한 건데 내가 이런 식으로 그 꿈을 간직한다면 그 꿈에게도 약간 비겁한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니 ‘내가 이 길(문학)로 오길 정말 잘 했고, 안 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수상작인 ‘풍경 소리’를 있게 한 것은 이은상의 시조 ‘성불사의 밤’이었다. 이 소설은 ‘서른두셋쯤 되어 보이는’ 미와라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뭔가 달라지고 싶을 땐 성불사에 가서 풍경소리를 들어’란 친구의 권유에 솔깃해 산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이 절을 떠나올 때 정말 달라져 있다. 그 안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시조에서 생각한 것을 소설로 쓰자니 어렵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30대 여자와 그녀의 지겨운 남자친구, 그리고 그 여자의 묘한 엄마. 또 그 엄마와 결혼한 묘한 남자. 그렇게 사람들을 만들어서 인간사를 꾸몄죠.”


이 이야기를 ‘디지털 디톡스’나 ‘템플 스테이’와 같은 유행에 부합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지만 심오한 불교사상을 구현한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처럼 작가는 여러 겹의 층위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계산도 염두에 뒀다.


“이 소설을 1차원적으로 읽었을 땐 힐링 소설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선 해석이 안 되잖아요. 이 소설에서 다른 차원을 얻고 싶다면 좀 더 깊이 읽음으로써 새로운 의미도 발견할 수 있도록 썼죠. 독자들이 어떻게 읽든 난 만족합니다.”


그런데 등장인물인 미와나 좌자의 이름이 독특하다. 불교 경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했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는 데 특별한 작가만의 방법이 있었다.


“나는 캐릭터의 성격을 끝까지 유지하고 생동감 있게 그리기 위해, 실존하는 인물이나 연극․영화․소설에서 본 캐릭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가 써요. 그리고 다 끝내놓고 이름을 바꿔요. 예를 들어 김태희로 끝까지 써 놓고 마지막에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거예요. 이번에도 그랬어요. 하지만 이번엔 내 작품을 처음으로 읽어주는 중간 독자의 ‘그대로 쓰라’는 조언을 받아들여 처음에 쓴 이름을 바꾸지 않았어요.”



“‘풍경소리’에서 오감을 떠난 초월적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다”


‘풍경소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감각들의 향연이다. 복잡한 도심보다는 고요한 장소에서 읽으면 더 깊게 즐길 수 있다. 팽나무 가지와 나뭇잎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흔들리는 이파리의 모습, 침을 뚝뚝 떨어지게 하는 사찰 음식,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운….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이렇게 많은 감각을 잊고 살았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작가의 ‘오감 시리즈’ 중 청각 편이다. 지금까지 청각 편과 후각 편을 썼고, 시각 편, 촉각 편과 미각 편을 쓰면 오감 시리즈가 완성된다.


‘풍경소리’의 또 하나의 백미는 다양한 시점의 사용이다. 작가의 실험정신이 발하는 대목이다. 소설에서 처음에는 3인칭을 사용하다가 슬그머니 ‘나’라는 1인칭 화자가 등장한다. 작가는 이 ‘나’를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소리들을 있게 한 소리, 즉 소리의 근원”이라는 초월적 존재로 설명했다.


“세상은 주관 아니면 객관, 공간 아니면 시간, 남자 아니면 여자, 밤과 낮과 같은 이분법으로 나눠져 있어요. 그런데 이 이분법으로 세상을 다 감쌀 수 없어요. 이분법이 포함하는 세계는 너무 작거든요. 그 바깥 세계는 엄청 큰데 우린 오감에 사로잡힌 존재이니 그걸 다 알 수 없죠. 초월적인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화는 한국 문학 판에 대해 관한 이야기로 옮겨 갔다. 그에게 최근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는지를 묻자 “요즘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예전에 보고 공부했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아주 대표적인 게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잖아요.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김금희나, 백수린 같은 사람들도 전통 서사를 이어 받는 작가들이죠. 여전히 박솔뫼, 김사과나 후장사실주의자들의 실험이나 적극적 시도도 계속되고 있고요.”


구효서 작가는 요즘 문학 경향에선 ‘에너지’가 작품 창작에서 더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근대적 발상은 아름다움의 기존이 진선미에 있었잖아요. 힘이 있돼 이것이 아름답게 나와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요즘은 미의 기준이 달라졌죠. 거칠고 투박하며 심지어는 엽기적이고 끔찍한 것까지 미학의 범주에 들어오니까. 힘이 넘치고 정열과 열정이 넘치면 거기서 뭐가 뿜어져 나와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야만적이고 원시적이고 거친 것에 대한 매혹이 있잖아요. 작품 속에서 거칠고 미숙한 비문이 튀어나와도 되게 매력적인 거예요. 이것이 오히려 본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작가는 작품에게, 나 스스로에게 끝없이 깨지는 것”


작가에게 소설가를 꿈꾸는 후배들을 향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그는 “자기에 대한 성찰‘이라고 대답했다.


“자꾸만 자기 개성을 만들어 가려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끝없이 자기에게서 못 빠져나오는 걸로는 안 되지 않을까요. 글만 쓰는 게 아니라 끝없이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이 되어야 할 거예요. 티베트 스님이 몇 개월에 걸쳐 모래 만다라를 만들어놓고 완성되는 순간 흩트려 버리잖아요. 자기 성과나 성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권위만 세워서는 안 되는 거예요. 끝없이 깨져야죠. 작품에게 깨지고 나 스스로에게 깨지고.”


이상문학상을 비롯해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을 석권한 30년 차 중견 작가의 실험은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좀 더 극단적인 문체 실험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왼손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다. 이 실험을 시작할 소설 ‘봄 나무의 말’은 전쟁 중에 한 동네에 일어난 학살과 폭력을 나무가 증언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인간이 아닌 나무의 감각, 나무의 사유, 나무의 언어로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성이 아닌 다른 감각을 사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미 이 소설의 시놉시스가 ‘악스트’ 11~12월호에 공개된 바 있다.


“왼손을 써서 내가 쓰지 않는 우뇌를 자극해서 나오는 문장, 문체들은 어떤 것일까 했을 때 매우 미숙하고, 매우 원시적이며, 거칠고 야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머리니까 왼손으로 쓰면 글자만 비뚫어졌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아니에요. 왼손으로 쓴 것만으로 문장 자체가 유치하고 말이 안 돼요. 이게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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