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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pr 07. 2017

프로불편러 위근우 기자 “당신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프로불편러 일기>  저자 위근우 인터뷰



포털사이트에 ‘프로불편러’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프로불편러(pro+불편+er) : 사이버 공간에서 '불편하다'는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


우리 사회 속의 불편함과 그에 대한 문제제기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위근우’라는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사회에 만연한 불편함에 대해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여온 인물이다.


대중문화 전문 매체 ‘텐아시아’를 거쳐 ‘아이즈’의 취재팀장을 지낸 그는 우리의 일상 속에 공기처럼 스며든 편견과 폭력, 차별에 대한 반기를 든다. 지난 2월 출간된 <프로불편러 일기>(한울, 2017)는 그 반기의 결과물이다. 3년 6개월 동안 쓴 글 중에 85개를 선별했다. 대중문화 속에 웃음과 재미로 깃든 혐오와 차별, 헬조선의 현실, 각종 정치 이슈, 언론의 역할 등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갖가지 주제들이 섬세하게 포착되고 치열하게 논의된다. 


지난 3월 6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위근우 기자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불편한 것 투성이인 이 사회에서 더 예민해지고 날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자 페미니스트의 위치는 결국 ‘조력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Q 대중문화 전문 매체 ‘아이즈’에 3년 6개월간 올린 85개의 글을 묶은 책이다. 출간을 준비하며 원고를 재정리하거나 다듬는 과정들은 어땠나.


처음 출판사에서 제의가 왔을 때는 ‘프로불편러’에 대한 기획이 아니었다. 그동안 쓴 글을 모아서 내보자는 정도였는데, 유명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글을 묶어 책을 내는 게 의미가 있겠지만, 위근우라고 하면 누가 알겠나.(웃음) 위근우라는 사람의 글을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독자가 이 글들을 어떻게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할까, 라는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글을 정리하면서 보니 생각보다 남을 많이 비판했다는 걸 깨달았다.(웃음) 방송 프로그램도 까고, 웹툰도 까고, 사람도 까고. 다방면으로 까는 글을 많이 써서 책에 실을 글이 부족하진 않았다. 다만, 이 글들을 언제 쓴 것인지는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글이 있으니 시의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 오해가 없어야 하고 또 현재 입장에서 내 의견을 덧붙일 필요도 있었다.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겼던 것들을 '피씨함(PC : Political Correctness,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사회적 운동을 의미. 이하 피씨)'의 기준으로 봤을 때, 표현상의 문제들이 걸려서 다시 내용을 덧붙인 것들도 꽤 있다. 객관적이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처 몰랐던 부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가능하면 이 어휘는 인터뷰에서 많이 쓰고 싶진 않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배우고 난 뒤에 달라진 것들도 많고. ‘아이즈’는 몰라도 전신인 ‘텐아시아’ 때 썼던 글을 읽으면 아마 눈에 걸리는 표현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거다. 100% 객관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그 기준의 엄정함이 더해진 것 같다. 적어도 3년 전의 나보다는 그런 부분에 있어 더 예민해졌다.


Q ‘페미니즘’이라는 어휘 사용을 자제하는 이유가 있나.


지난 1~2년 동안 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이슈를 통해, 대중문화 안에서의 여성 혐오 문제를 많이 다루게 됐다. 그러면서 스스로 변한 부분이 있는데 그 발언이나 담론의 중심에 마치 내가 이것을 주도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좀 걱정된다.


누군가는 <프로불편러 일기>를 페미니즘 서적 중 하나로 보기도 하는데 고마운 일이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다. 1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내가 변했듯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 페미니스트로서 스스로 좌표를 어떻게 정해야 하고, 어떤 식의 자기 절제를 해야 하는지가 요즘 최대 고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페미니즘 전도사입니다’라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면 하는 거다. 남자 페미니스트는 공론장 안에서 열심히 기사를 쓰고 발언할지언정, 결국엔 조력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Q 사회 이슈나 현안에 대한 글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일종의 기록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생각한다. 출간을 위해 시기별 원고를 들여다보며 우리 사회의 문제 내지는 이슈들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될 것 같은데, 어떤 흐름을 읽었는지 궁금하다.


‘아이즈’가 창간한 2013년부터는 확실히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정치 이슈가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즈’도 아이템 회의를 해야 하는데 정치 이슈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니까 다른 아이템을 낼 수가 없더라. ‘네가 뭔데 정치 이야기를 써?’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시사 전문기자도 아니니까. 나 역시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만 글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어느 순간 (정치 이야기가 아니면) 쓸 게 없는 거다. (기자 : 사실 눈에 보이는 이슈를 일부러 비켜갈 수도 없지 않나?) 그렇다. 거기서 다른 걸 쓰게 되면 정말로 구태여 다른 걸 하게 되는 거지. 


난 ‘아이즈’가 언론이라고 생각하는데 언론이 구태여 다른 것을 할 이유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떤 식의 자기 양심 때문에 다른 아이템을 다루는 데 한계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가령, 세월호 참사나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는 해오던 이야기를 그대로 할 수가 없는 거다. 마치 그것과는 별개로 독립된 즐거움 거리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네가 뭔데 감히 그런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라는 비판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변화들이 느껴졌다.


Q 기자라는 정체성 이전에 스스로 ‘프로불편러’라고 자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언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언어가 있어야 비로소 내가 무엇이었고 혹은 내가 겪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게는 ‘프로불편러’라는 이름이 그랬다. 프롤로그에도 썼지만 처음에는 별칭으로 나왔던 거다. 그런데 내 글을 쭉 읽어보니 난 참 불편한 게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도 불편하고, 저것도 불편하고. 그러나 내가 글로 쓰는 것은 내가 느끼는 불편함의 반도 안 된다.(웃음)



“텍스트 비판에 이어 그것이 ‘문제’임을 증명해내는 것이 과제”


Q 프롤로그를 통해 ‘기자는 필연적으로 프로불편러여야 한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대중문화 기자로서 대중문화 속에 만연한 사회적 문제들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날을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을 것 같다. <프로불편러 일기> 속에도 대중문화 속의 불편한 코드들에 대해 상당 부분 언급했는데, 본인의 역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너무나 당연한 거다. 나는 항상 예능 프로그램이든 드라마든 내가 볼 때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써왔다. 다만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는 ‘깔 만해서 깐다’였고, 지금은 ‘이 역할이 필요하다’라는 입장이다. ‘그 역할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과는 별개다. 필요하다면 누군가는 그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많은 프로그램에서 언급되는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기타 등등의 문제에 대해, 누군가 ‘재미로 하는 건데 뭐’ 하고 말한다면 그게 비정상적인 사고 아닌가? 누군가를 차별하는 게 재미있다면 그게 비정상이 맞는 거지. 나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노력하는 거다. 우리가 그냥 웃어넘기는 이야기 속에 이런 잘못이 있다는 것. ‘이것이 편견을 굉장히 고착화시키는 것이다’라는 걸 말해주고 싶은 거다. 물론 이런 잘못들에 대해 텍스트로 비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게 왜 실천적으로 해악을 끼치는지 대한 이야기를 해야 ‘이게 정말 큰 문제다’라는 걸 증명할 수 있겠지.


Q 이 책을 권해주고 싶은 부류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앞서 말한 이들을 제외한 추천 대상자가 있다면 이야기해도 좋다.


‘나만 불편한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게 ‘당신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한다는 것이 1차적인 골자다. 궁극적으로는 굉장히 다른 관점으로 살아가던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100% 동의를 하지 않을지언정 ‘몰랐는데 누군가는 이런 것들이 불편할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기쁠 것 같다. 혹은, 불편러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입장에서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우리 사회의 모든 상황과 사람에 대해 작은 의문이라도 갖게 된다면, 그건 꽤 가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책에도 썼지만 모두가 ‘불편러’ 내지는 ‘프로불편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이 책의 부제로 ‘우리 모두 프로불편러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지만, 생각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건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세상이 굉장히 행복해서 불편한 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다만 그들에게 ‘누군가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잘 정리하고 전달하는 것이 프로불편러로서의 기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Q <프로불편러 일기>에 소개한 수많은 문제와 이슈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문제들이 기적처럼 해결이 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들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자신과 같은 프로불편러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저널리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SNS건 어디에서건, 늘 날을 세워야 한다고 본다. 누군가 말하는 ‘뭐 이런 것까지 꼬투리를 잡아?’에서 말하는 ‘이런 것’들이 작다고 해서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지않나. 물론 누군가에게 이런 행동이 조금 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프로불편러가 하는 짓이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계몽이 너무나 필요한 곳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문제 제기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다거나 불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가만히 두면 좋아지는 게 뭔가.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날을 세울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와중에 헛발질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한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부딪힐 문제다. 다른 훌륭한 저널리스트들 역시도 스스로 ‘프로불편러’라는 이름을 쓰지 않을지언정 모두가 같은 문제의식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Q ‘과정에서의 헛발질’은 중요한 문제다. 헛발질을 할 수도 있고 문제의식을 나중에 느낄 수도 있는 건데, 그 변화를 인정해주는 것도 나머지 사람들의 중요한 역할 아닌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물론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그건 변화한 스스로가 증명해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 ‘달라졌는데 왜 안 믿어? 억울해!’라고 할 건 아닌 것 같다. 반성이라는 것은 그 억울함까지 감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사람들은 반성을 하면 어떤 면죄부를 얻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러 있는데, 절대 아니다. 꾸준히 자신이 변화했음을 증명해내는 방법 밖에는 별다른 수가 없지 않을까 싶다.


앞서 말한 ‘공론장에서 함께 이 변화를 품어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입장들이 다를 수 있을 테니 논의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런 의견들을 포함해 실제로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으면 좋겠고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에 대한 논쟁이 이어진다고 해서 서로 감정 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 그 과정에서 실명 비판을 많이 했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상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최선을 다해 증명할 거다. 그들 역시 최선을 다해 반박하면 될 일이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우리의 공론장이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Q <프로불편러 일기>는 대책 없는 비판으로 끝맺지 않는다. 이 사회 속의 불편함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그 대안과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포지션을 반대로 적용하여 <프로불편러 일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묻고 싶다.


뭐 이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을까.(웃음) 객관적으로 본다는 게 참 어렵다. 내가 내 글을 평가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완벽한 건 아니지만 내 사고의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누군가의 눈에는 잘못된 것이 있다고 해도 나는 자각하지 못할 것 같다.


내용에 대해서는 객관적 평가가 어렵지만 ‘지금 우리에겐 섬세하고 치열한 프로불편러가 필요하다’는 카피에 근거해서, 이 글들은 얼마나 섬세하고 치열한지를 보게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치열함과 섬세함은 정말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저널리즘 안에서는 아주 세밀하게 메스 다루듯이 섬세하게 짚어내고 그걸 어떻게 비판하는지가 중요하다. 과연 이 책에서 그 기준이 잘 적용이 됐을지 평가해보고 싶을 것 같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최대한 노력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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