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송호근 인터뷰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 “진보에 발 담근 지식인들은 보수정권 아래에서 주변인이 돼버리고,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보수 지식인들은 낙인이 찍혀버리고. 그런데 지식을 그렇게 폐기해도 되는 거냐고요.”
- “(헌재의 대통령 탄핵 판결은) 진보적인 해석이라고 생각 안 해요. 보수의 새로운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진보 쪽에서는 지금 승전가가 넘치잖아요. 잘못 보고 있는 거죠.”
- “(지금 대선 상황은) 시민들이 객체고 정치권이 주체로 전환했다고 봐요. 그러면서 ‘편을 갈라주세요’라고 하고 있는 거죠. 저는 국민주권을 납치했다고 생각해요.”
- “보수는 이미 무너졌어요. 헌재 판결의 정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죠. 무릎 꿇고 빌어야죠. 그런데 이미 세탁을 했다 하더라고요?(웃음) 세탁은 무슨 세탁이에요? 본질은 그대로인데.”
- “<강화도>를 쓰고 났더니 논문이 좀 시시해 보여요. 어떡하죠?(웃음) 새로운 연애 같아요. 그렇다고 그 여인이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여인은 아니고, 이 세계에서 태어난 여인이죠.”
[프리즘②] 경계의 사회학자, “새로운 연애”에 빠지다
▷ 송호근은 누구 :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이자 신인 소설가. 스스로 ‘경계인’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자신을 “과거와 미래, 내부와 외부를 끊임없이 진자운동하는 사회학자”이며 “경계선 위에 올라앉아 옛것과 새것, 민족과 세계, 시세와 처지를 관찰하는 문사(文士)”라고 규정했다(<강화도> 서문 중). 1956년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림대 교수를 거쳐 1994년부터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학자로서 30권에 가까운 책을 썼고, <강화도>(나남/ 2017년)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했다.
▷ 어떤 책을 냈나 : 1876년 강화도 수호조규 당시 외교책임자였던 신헌(申櫶)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 역사소설 <강화도>. 신헌은 봉건과 근대가 겹치는 19세기 후반 “밀려오는 왜양과 사대부의 척사 사이에서 진자운동”(<강화도> 서문 중) 한 경계인이다. 작가는 140년 전 그날에 대해 “20세기 동아시아의 비극이 거기서 발원했고 위안부 소녀상, 독도, 사드 배치와 같은 최근 쟁점의 본적이 거기 숨었다”라고 의미를 뒀다. 그렇다고 사회학자가 쓴 소설이라는 선입관에 갇혀 ‘메시지’만 찾으려 읽을 필요는 없다. 소설은 소설로, 그냥 ‘이야기’에 빠져 읽어도 좋다.
▷ 인터뷰 뒷이야기 : “재미가 있습디까? 솔직히 듣고 싶어요.” 4월 14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안 송호근 교수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기자에게 소감을 묻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학자로만 30년을 살아온 60대 교수의 눈빛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신인’ 소설가의 눈빛이었다.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었을지도 걱정이고 신헌 문중에서도 뭐라 평가할지도 궁금하다며, 신인 소설가다운(?) 긴장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때가 때인지라 어쩔 수 없이(?) 나라 돌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번져가긴 했지만, 나는 소설과 “새로운 연애”에 빠졌다는 그의 눈빛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2017년 들어 나온 책이 세 권입니다. 1월 <촛불의 시간>, 2월 <가 보지 않은 길>, 4월 <강화도>까지. 굉장히 바쁘셨을 것 같은데 <강화도>는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집필을 시작하셨나요?
<인민의 탄생>(2011년)과 <시민의 탄생>(2013년)을 쓰면서 강화도 수호조규와 신헌에 대해 알게 됐어요. ‘이건 정말 드라마다!’라고 머릿속에 두고 있었죠. 그런데 작년 12월 대통령 탄핵과 촛불정국을 보니, 그 담론들이 140년 전 강화도 수호조규 당시와 거의 유사하더라고요. 신헌처럼 고민했던 사람이 지금 있는가, 그때의 고민이 140년 지나서 진화된 형태로 나오는가, 진단을 해보고 싶었어요. 12월 말부터 쓰기 시작해서 2월 초에 탈고했어요. 하루에 열 시간씩 썼어요.
Q 신헌이라는 인물의 삶에 주목하신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나요?
신헌은 무관인 어영대장이면서 강화도 수호조규 당시 접견대관이었어요. 일본 군함이 아홉 척, 보급선이 세 척, 그리고 군함의 종선들까지 종횡무진으로 강화도 바다를 왔다 갔다 했거든요. 무력시위를 한 거죠. ‘만약에 문호를 열지 않으면 공격해 들어간다!’ 서울까지는 한 시간 만에 올 수 있었어요. 군함 아홉 척이 포격을 하면 서울은 쑥대밭이 되는 거죠.
우선은 왜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 문관이 아닌 무관을 접견대관으로 보냈을까, 그게 궁금했죠. 당시 무관은 문관에 비하면 철저하게 2류 관료잖아요. 그리고 무관이 나가서 실제로 뭘 어떻게 했을지도 궁금했죠. 그런데 문관보다 훨씬 잘 해냈거든요. 그런데 신헌은 한 사람의 빈손으로 열두 척의 배를 막고 있었어요.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파고 들어가고 싶었죠.
Q 하지만 신헌이라는 인물은 ‘영웅’이 아니라 ‘경계인’이라는 단어로 규정하셨습니다. 왜인가요?
신헌은 의정부의 일원인 당상관이니까 조선 조정의 입장을 대변해야 해요. 그러라고 접견대관으로 내보낸 거고요. 그런데 조정 사대부와 유림들의 주장이 뭔가 아닌 것 같단 말이에요. 그 순간 경계인이 돼버린 거죠. 좌우 진영의 담론이 충돌할 때는 경계에서 양쪽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 경계인의 중요한 임무예요. 그런 의미에서 경계인은 어느 쪽에 발붙이지 못하고, 심지어 신헌은 사랑도 성취하지 못하죠. 그러면서 꿋꿋하고 외롭게 흘러가는 거죠.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로, 어느 진영에 가담할 건지를 계속 질문하잖아요. 지식인의 담론은 양쪽의 질량을 재고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양쪽의 경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어요.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죠. 그게 지식인의 본령인데, ‘너 빨리 내려와서 어느 진영에 가담해라. 안 그려면 너의 자격을 박탈한다.’라고 하는 거예요. 진보에 발 담근 지식인들은 보수정권 아래에서 주변인이 돼버리고,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보수 지식인들은 낙인이 찍혀버리고. 그런데 지식을 그렇게 폐기해도 되는 거냐고요.
Q 책 211쪽에 있는 이 독백의 문장들은 경계인 신헌의 고뇌를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가 생사를 넘고 있을 때 그대들은 이념의 생사를 넘나들었구나. 내가 병사의 시체를 거두고 있을 때 그대들은 논리의 찬란한 휘광을 거두고 있었구나.”
이게 바로 우리의 심정이죠.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니까, 다 정의로운 말들을 해요. 예를 들어, 불법 하도급 문제를 보죠. 하도급을 금지하면 1차적으로 고용주가 하는 일은 하도급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거예요. 대기업이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아니라) 하도급 일감을 줄여버리는 거죠. (대책 없이 금지만 시키면) 우선 손해 보는 사람은 일자리가 없어지는 사람들이죠. 그런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하루아침에 밥줄이 끊어지는 건데, 국가는 정의롭죠. 신헌의 말하고 똑같아요.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니까 지금도 계속되더라고요. 세금으로 일자리를 80만 개 만든다, 말은 되죠. 세금 더 걷어야 되는 것도 맞아요. 누구한테 걷을 거냐? 상층의 고용주들한테 걷어야죠. 그럼 그들이 소비를 안 할 거 아니에요? 시장에 돈이 안 돌게 되는 부작용은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줄어드는 소비와 투자. 이런 걸 고려해서 다른 인센티브를 줘야죠. 안 그러면 80만 개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도, 기존 일자리 80만 개가 줄어들 거라고 봐요.
국가의 개입 영역을 무한정 확대하면, 시장은 잘려져 나가게 돼요. 논리적 모순이 정당성을 뒤집어쓰고 지지를 호소할 때, 이게 신헌 시대의 과거와 다를 바가 뭐 있어요? 한국의 운명이 그때 결정지어졌는데, 그걸 해결 못해서 지금까지 140년 동안 반복되고, 심지어 전쟁까지 겪었잖아요. 지금도 미국의 항공모함들이 한반도로 몰려오고 있는데, 대선 토론을 보니까 무슨 트럼프랑 와튼스쿨 동문이라는 이야기나 하고(웃음) 갑갑해요.
Q <촛불의 시간>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차기 정부의 시대적 과제는 “시민적 인풋(in-put)의 시작”이라며 “그 인풋이 어떻게 다시 분절되고 대립할 것인지 걱정이 되긴 합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실제 대선이 진행되는 방향을 보니 어떠신가요? 그 걱정은 더 커졌는지 아니면 줄어들었는지 궁금합니다.
걱정이 더 커졌어요. 헌재의 대통령 탄핵 판결은 그야말로 역사적 판결이라고 봐요. 새로운 법조세대가 헌법을 해석하는 정신이 거기 얹혀 있는 거죠. 대통령이 수사에 응하지 않고 계속 부인한 것에 대해 ‘헌법정신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것은 주권을 무시한 것이다’라고 판결했잖아요. 저는 그걸 진보적인 해석이라고 생각 안 해요. 보수의 새로운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진보 쪽에서는 지금 승전가가 넘치잖아요. 잘못 보고 있는 거죠.
국민주권이라는 보이지 않는 관념을, 헌재 판결이 눈에 보이게 만들어줬어요. 국민주권이 주체고 정치권이 객체인데, 지금 대선 정국에서는 거꾸로 됐어요. 시민들이 객체고 정치권이 주체로 전환했다고 봐요. 그러면서 ‘편을 갈라주세요’라고 하고 있는 거죠. 주체와 객체가 전도된 상태로 다시 끌려가고 있는 거죠. 저는 국민주권을 납치했다고 생각해요.
보수는 이미 무너졌어요. 헌재 판결의 정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죠. ‘우리는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신으로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무릎 꿇고 빌어야죠. 그런데 이미 세탁을 했다 하더라고요?(웃음) 그것도 삼성 세탁기래요. 세탁은 무슨 세탁이에요? 본질은 그대로인데. 그리고 진보는 국민주권의 소리를 들어야죠. 아직도 자기만 소리를 내잖아요. 구태의연한 방식이에요. 지난겨울 국민들이 저렇게 애써서 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뤄냈으면, 정치권이 반드시 다른 방식을 생각해냈어야 하는 거예요. 담론의 대치구조는 과거와 동형구조예요. 정치권의 직무유기죠.
Q 촛불이 남긴 과제를 당정협의체 거버넌스, 정당 재편, 대선, 개헌, 시민자치, 다섯 가지로 정리하신 바 있습니다. 그중 개헌은 이번 대선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인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개헌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요?
지금쯤은, 이원집정부제가 맞는 것 같아요. 대통령의 권한을 외교와 국방 정도로 줄이고, 국내는 내각에서 세 개의 정당 정도가 합치해 나가는 게 좋다고 봐요. 의원내각제의 성격을 가미한 이원집정부제. 한번 실험해볼 필요는 있고 그럴 때가 됐다고 봐요. 그러면 대통령 하겠다고 피 터지게 싸울 일도 없고, 대통령이 감옥 갈 일도 없을 거예요.(웃음)
정당 구조도 바뀌어야 하고 국회의원도 지금처럼 지역 대표를 뽑아 올려서는 안 돼요. 지금 자유한국당이 해체 안 하고 있는 건, 다음 총선에 저 이름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거든요. 지역구에서는 그 이름으로 안 나오면 뽑히질 않으니까. 광장에서 뭐라 하든, 지역구에만 매달려 있거든요. 거기서부터 자유롭게 해줘야죠. 국회의원 300명 중 100명은 중대선거구제로 지역구에서 뽑고, 200명은 직능단체나 명망가 등을 중심으로 뽑아서 지역구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돼요.
Q 283쪽에 있는 이 문장들이 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것 같습니다. “긴 잠에서, 긴 고립에서, 어둠에서 깨어나야 한다. 강화도는 그것을 알리는 여명이자 경고였다.” 여기서 ‘강화도’는 섬의 이름이면서, 사건의 이름이기도 하고, 시대의 이름이면서, 이 책의 이름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떤 의미로 기억해줬으면 하는지,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신헌은 그걸 알고 있었죠. 긴 고립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조선은 침몰한다는 걸. 우리가 지금 고립에서 깨어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기업을 둘러싼 담론, 강성 노동조합의 질주, 이념으로 격돌하는 국회. 우리는 깨어나고 있나? 대한민국은 이념의 정통성을 향해서 질주하는 무사들의 검투장처럼 보여요. “너는 어느 쪽이냐!” 하고 자꾸 물어보는 게 불편해요. 안타깝게도 우리의 DNA가 거기 있는 것 같아요. 정통성 때문에 격돌하고, 패배하면 유배 가고, 승리한 쪽도 나중에는 또 패배해서 유배 가고. 이제 정통성의 굴레로부터 제발 벗어나면 좋겠어요.
저보고 ‘보수논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보수면 어떻고 진보면 어때요? 진실이 무엇인지 찾아서 접근해나가는 방향이 다를 뿐이죠.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운명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방법, 우리 삶의 지평을 계속 좁히지 말고 넓히는 방법을 찾자는 거죠. 140년의 질곡에서 벗어나자. 인식의 담장을 허물어버리자. 대한민국의 정신의 르네상스는 ‘울타리 벗기기’라고 생각해요. 그 바탕은 실용주의라고 봐요. 나의 생존도 생존이지만,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Q 마지막으로 이 질문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또 소설을 쓰실 건가요?
<강화도>를 쓰고 났더니 논문이 좀 시시해 보여요. 어떡하죠?(웃음) 구상하고 있는 소설이 있어요. 조선-중국-일본을 오가면서 조선에서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의 이야기예요. <강화도>를 쓰고 나니까 소설이 더 쓰고 싶어졌어요. 새로운 연애 같아요. 그렇다고 그 여인이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여인은 아니고, 이 세계에서 태어난 여인이죠.
소설을 쓰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여요. 학술 서적을 쓰면 발광 다이오드처럼 좁은 한 곳을 아주 환하게 비추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 가로등처럼 희미하지만 넓은 곳을 다 비추는 것 같아요. 각자의 기쁨이 있는데, 소설로 한번 빛을 비춰보니까 기분이 좋아요. 사회학 책들도 중요한데, 소설이 훨씬 좋아 보여요. 큰일 났어요.(웃음)
글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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