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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pr 17. 2017

세월호 3주기, 문학의 자리를 묻다② “세월호와 작가"

저자 문동만, 김탁환, 안희연, 오 은 인터뷰 


세월호 사고 이후 3년간 작가들이 간직한 기억과 생각, 치유공간 ‘이웃’에서 진행된 생일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좌담회 전반부에 이어졌다. 후반부에선 세월호를 작품으로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포함해, 304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자리인 304낭독회, 좀 더 큰 차원에서 세월호 이후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 갔다.


문동만 “독자들의 수준 높은 감정선 헤아리면서 쓰는 게 세월호를 문학화 하는 일”


북DB : 워낙에 거대한 비극을 다루는 것이라 세월호 사건에 관한 작품을 쓰는 건 보통 작업보다 더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문동만 : 참사는 죽음을 다루는 것이고, 인간의 소멸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아껴서 다뤄야 하고 더 정교한 감정과 창작적 고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관계도 상당이 중요하고요. 어떤 작품들이 소재주의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독성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것이 비로소 작품이 될 때, 작가 자신이 그 언어를 어떻게 책임지고 있는지가 보일 때 그 혐의로부터 그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의미에서 저도 부끄러움이 적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수준 높은 감정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헤아리면서 글을 쓰는 게 세월호를 문학화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탁환 : 굉장한 고통들이 있는데 그 고통을 최적으로 써야겠죠. 글을 쓰면서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 부분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령 침몰선 안에서 발견한 희생자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1차 자료들을 보면 참혹한 장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걸 그대로 쓰면 지나치게 자극적입니다.


아까 오은 시인이 말한 것처럼 <거짓말이다>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너무 참혹하다는 것이었어요. 너무 사실적으로 써서 여러 번 참았다가 읽었다고들 해요. 하지만 유가족이나 잠수사들의 반응은 책이 너무 약하고, 자기들의 고통은 이것보다 천 배쯤 더하다는 거예요. 이걸 당신이 쓰겠다고 해서 얘기해줬는데 왜 이렇게 약하게 썼느냐며 야단쳐요. 일반 독자와 실제 피해 당사자들 사이에 책이 놓여 있는 거예요. 사건과 독자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문동만 : 전에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펀드를 모집한다고 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여론이 있었는데요. 모두의 상흔이기 때문에 듬성듬성 풀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시선들이 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적절한 때, 타이밍도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과 방식도 연관되어 있어요. 시대적 감각과 감성을 면밀히 고려하고 예술로서의 층위를 잘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그 자체에 선의가 있기 때문에 예술적 가치와 올바름을 보증받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에서요.

 


북DB :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304 낭독회가 열리기도 했는데, 안희연 시인께서는 이 모임의 일꾼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안희연 : 세월호 참사 후,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작가들이 한 문장씩을 모았어요. 2014년 9월, 그렇게 모인 300여 개의 문장을 포스터로 제작해서, 광화문 광장에 모인 분들과 빙 둘러서서 읽은 것이 304낭독회의 시작이었고요. 그 후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4시 16분 시작으로 낭독회 일자를 지정하는 등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있었고요. 지난달까지 총 서른 한 번의 낭독회가 진행됐어요. 4월 304낭독회는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에서 29일에 열릴 예정이에요.


작가, 시민 구분 없이 누구든 낭독자로 참여하실 수 있는데요, 간혹 희생 학생 혹은 유가족과 연결고리가 있는 분이 낭독을 해주시는 경우가 있어요. 한번은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던 단원고 교감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셨던 선생님께서 낭독을 해주셨는데요.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 한 사람의 인생이 글로 인해서 두터워지듯이, 전혀 알지 못하던, 찰흙 덩어리처럼 형태가 없던 사람에게 육체가 생기고 목소리가 생겨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어요.


지금 당장은 슬프다, 미안하다, 기억하겠다는 말밖엔 할 수 없지만, 낭독회를 계속 진행하다보면 지금과는 또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어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304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려면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요. 그 길고 아득한 시간의 힘을 한번 믿어보려고 합니다.


오은 : 트위터에 304낭독회 계정(@304recital)이 있어요. 처음 304낭독회를 할 때 작가들이 했던 발언들이 실시간으로 랜덤하게 올라와서 ‘그날’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죠. 가령 윤지영 작가가 쓴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죽어서 이렇게 잊힐 수는 없다. 살아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와 같은 글을 다시 접하면 ‘해결된 게 하나도 없이,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304낭독회 트위터 계정은 다달이 낭독회 일정을 공지하는 채널로 활용되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낭독회를 하는 장소가 매번 바뀌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광화문광장, 대학로 이음책방, 연희문학창작촌, 단원고 등 무수한 공간들을 돌아다니면서 하거든요.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가는 거죠.


안희연 : 저는 304낭독회를 진행한다고 해서 세월호의 슬픔이 희석되거나, 죄책감이 덜어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낭독회에 참여하는 것이 면죄부로 작용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항상 경계하고 있고요. 그래서 오래오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매달 꾸준히 열 분 이상 낭독자를 모시다 보니, 섭외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구글독스’로도 낭독신청을 받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향후 한두 달 정도는 낭독인원이 꽉 차 있어요. “5월까지는 인원이 다 차서요. 혹시 6월에 참여 가능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웃음)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나눠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오은 : 정말 25년 동안 꾸준히 지속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희연 : 사람들이 그랬어요. ‘배 건져내면 안 할 거냐’고.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낭독회가 계속되다 보면, 광주의 아픔을 지닌 분들도, 대구지하철 참사로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던 분들도, 두루두루 다녀가실 수 있지 않을까요. 304낭독회가 모든 죽음의 기억을 함께 나누고 애도하는 장소, 하나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희연 “304낭독회, 모든 죽음의 기억을 함께 나누도 애도하는 장소로 기능했으면”


북DB : 김탁환 작가님도 얼마 전에 인터뷰에서 "광주민중항쟁 소설들이 지금까지 나오지 않느냐. 세월호 참사도 수십 년 동안 계속 작품들이 나올 것이고 나는 그 앞 부분에서 작업하는 것"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김탁환 : 유가족들 만나보면 단기전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거든요. 박근혜 정권이 지난 3년간 많은 증거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꺼내서 확인하고, 양심선언이 나오고, 진상이 어땠는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20~3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요. 그 말 들으면 울컥해요. 지금 세월호 유족 부모들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인데 그 사람들이 20~30년 동안 하겠다는 건 평생 하겠다는 거잖아요. 304 낭독회도 이 페이스대로 계속 가면 좋겠죠.


문동만 : 지속하는 게 진정성인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는 인양은 됐으나 해결된 것이 아니라 유예된 것이거든요. 저는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이 나쁜 놈들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밥상머리에서도 자주 하곤 했어요. 참사를 만들었고 실상을 계속해서 은폐시키려고 했던 세력들이 분명히 있고 그들을 침몰시키는 것이 사실은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시키는 것이고. 그 세력들은 침몰되면서도 끊임없이 다시 물밑으로 기어오를 거라고 봐요. 이런 것과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세월호의 운명인 것 같아요. 저희들의 운명이기도 하고요.


어제 친구들 밴드에 갔더니 가짜뉴스가 올라 있어서 열이 받았어요. 세월호 학생들이 놀러가다가 그렇게 된 건데 국립 현충원에 안장한다더라는 유언비어였죠. 저의 스트레스는 글 쓰는 일보다는 이런 일상 관계 속에서 겪어야 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들,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이 결여된 정치성인 것 같아요. 돈으로 모든 가치와 사건을 환원하고 바라보는 시선들과의 싸움이 상당히 어려워요.


김탁환 : 일종의 기억투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아요. 3년이 지났는데도 참사에 책임 있는 사람들, 정부나 해경 쪽에서는 자기들에게 유리한 기억을 다 만들어 놨어요. 세월호 재판 기록을 보면 놀라워요. 국민들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은 사고 발생부터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자신들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진술을 이미 마쳤습니다. 그 판결에 따라 해경에서는 123호 정장 한 사람만 감옥에 가 있고 나머지는 아무도 벌을 받지 않았죠. 그 사람들의 사건 당시 진술에 대하여 작가들은 계속 문제제기를 해야 해요. 문제제기 없이 시간이 흘러 재판기록이 모두 사실로 간주되는 것만은 막아야죠.


재판기록을 보면 납득이 안 되는 게 40가지 정도 되더라고요. 가령 123정이 세월호를 구조하러 갔는데 해경들은 전부 다 조타실에서 나온 사람들이 선원인 줄 몰랐다고 말해요. 정장부터 말단 계급까지 전부 똑같이 말해요. 저도 해군 장교 출신인데 조타실에서 나오는 사람은 무조건 선장이거나 선원일 수밖에 없는 거죠. 거기는 승객이 머물 수 없는 고립된 곳이고요. 그런데 거기서 나온 사람들을 승객인 줄 알고 구했다는 겁니다. 해경이나 해수부 사람들의 진술에 근거한 기억들을 작가들이 좀더 공부해서 하나하나 깨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문동만 : 세월호와 촛불은 다르지만 동일한 맥락의 사건이라 보여집니다. 이 세상에 없는 많은 아이들을 태우고 날아가는 춧불 광장 위의 돌고래 그림이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정치적으로 열린 공간이 시민의 힘으로 확장이 됐으니까 이제 세월호 문제는 정면에서 다룰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박근혜 정권 시절에 비해선 세월호 문제에 대해 훨씬 밀도 있고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희망은 있어요. 그것을 떠받치는 것은 시민들의 직접행동이기도 할 테고요.

 


북DB : 작가분들의 말씀 중에 ‘위로하는 문학’ ‘기억 투쟁’ 에 대한 애기가 나왔는데요. 세월호가 이런 문학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희연 : 저는 5.18도 4.19도 다 글로만 배운 세대예요. 교과서에 수록된 사진으로 그 사건들을 접해왔고요. 그런데 세월호는 달라요. 현재화된 경험이자 현재진행형인 사건이죠. 글로 배운 것과 체감한 것은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문학에 대한 생각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고요. 오늘날 문학의 역할이 정치적, 윤리적 올바름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되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세월호의 상처와 동행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은 : 대학 시절에 주로 KTX 여승무원 노조나 농민과 연대하는 운동을 했어요. 그때의 현장보다 세월호가 더 강렬했던 것은 다름 아닌 몸에 새기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학 때는 이미 사태가 터진 후에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이를 반대하기 위해 집회에 참여한 것이었잖아요. 반면, 세월호 사태는 우리가 다 지켜봤잖아요. 하나의 큰 배가 바다에 침몰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정부의 무능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셈이죠. 시민들은 이제 부조리를 보고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예요.


문동만 : 저는 승리의 기억이 패배의 기억보다 더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80년대 후반 노동자 투쟁과 강경대 치사 사건으로 들끓던 시절, 거리에 서면서 최루탄도 많이 먹으며 돌을 던지며 세상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겨본 일은 전무하다시피 했고요. 얼마 전 송경동 시인과 이야기 하면서 세월호부터 촛불광장까지 이 길을 관통한 사람들은 절대 뒤로는 못 갈 거라는 얘길 했어요. 자기가 아는 걸 어떻게 모르는 체 하고 가겠느냐고요. 여기에서 새로운 작가들이 출현하고 새로운 시민이 탄생하겠다 싶기도 하고요.


김탁환 :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세월호 유가족들은 스스로 ‘416가족협의회’라고 하는 조직을 만들었어요. 해방 이후 참사들이 꽤 있었지만 이런 조직이 만들어진 건 처음이에요. 이들은 조직을 만들고, 조직 속에서 민주적 절차를 마련하고, 지금은 자기들끼리 소모임도 해요. 일상을 함께 하기 위해서 노래패, 연극반, 조기축구회도, 공방도 만들었어요. 자기들 나름대로 문화를 만들어서 이끌어가고 있거든요. 처음 있는 일이에요. 저는 이분들이 매우 궁금해요. 이 사람들은 10년 뒤, 20년 뒤에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북DB : 세월호 블랙리스트 스캔들이 있었죠. 국가가 작가들의 자유로운 창작 행위를 억압했다는 점에서 충격적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문동만 : 저는 세월호 건으로만 두 건 올랐는데요. 작가들을 이념의 잣대로, 예술을 고기 살덩이처럼 반분해서 판단했던 문제에서 분노를 느꼈어요. 물리적 공포라기보다도 감정적 더러움을 느껴요. 구체제에서 이런 기획을 능사로 해했던 김기춘 같은 이들이 행동대장으로 자행한 일이잖아요. 그이는 ‘블랙리스트 때문에 예술활동을 못한 건 아니지 않느냐?’ 아직도 뻔뻔하더군요. 그러나 이 사건을 기점으로 과연 누가 이런 일을 다시 벌일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려운 일이라고 봐요.


김탁환 : 그전에는 관에서 마련한 이런저런 행사에서 심사도 하고 칼럼도 쓰고 그랬는데, 박근혜 정권 들어서고 나서는 연락이 하나도 안 왔어요. 친구들이 심사나 강연에 저를 추천했는데 위에서 “이 사람 안 된다”는 답이 내려왔다고 말해줘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걸 일찍이 알고 있었어요. 검찰이 공개한 명단에 보니까 아홉 번째에 이름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블랙리스트를 만든 게 작가들이나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무의식 중에 위협이 될 수 있거든요. <거짓말이다>를 내는 데 출판사 대표도 일단 아이폰으로 핸드폰을 바꿨고, 세무사찰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각오를 하고 들어간 거죠.


북DB : 오늘 좌담을 마무리 하면서 한 말씀씩 해주신다면요?


오은 : 박근혜 정권이 내세운 ‘국민 대통합’이라는 기조는 결국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등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나누는 상황을 만들고 사건 뒤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데까지 나아갔잖아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물이 썩었다는 사실은 결국 발견될 수밖에 없지요. 그 썩은 물이 단적으로 드러난 게 세월호 사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뭘 써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문동만 : 가끔 보면 관습적으로 어떤 사건의 귀결을 놓고 ‘승리’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저는 표현이 마땅치 않습니다. 죽음이나 소멸은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사건으로서 유예되고 고통으로서 유예될 뿐이라고 봅니다. 시간이란 격분 같은 감정들을 마모시키므로 더 잔잔하지만 더 깊은 작품들이 길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날의 참상을 내장하고 잊지 않으면서도 결이 달라져 가는 정서를 어떻게 품고 끌고 가야할지 고심이 됩니다.


안희연 : 이렇게 대표성을 띄는 자리에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스스로에게 덜 부끄럽도록 어떻게든 시로 나아가보겠습니다.


김탁환 : 쓸 이야기들은 아직 많이 있으니까 쉬었다가 또 쓸 생각입니다.



글 : 주혜진(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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