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근호 인터뷰
“민주화 진영이 박정희 개인이나 그 시대 경제 분야에 대해 소홀한 면이 있었다. (중략) 전제적이고 포악했지만 유능하고 그 나름으로 헌신적이었던 ‘주식회사 한국’의 최고경영자(CEO) 박정희에 대해 충분히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
진보적 석학으로 손꼽히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계간 ‘창작과 비평’ 2005년 여름호에 쓴 글의 일부다. 이와 같이 ‘박정희가 독재는 했지만 경제는 살렸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념이었다. 박정희 정권에 민주주의 점수는 0점을 줘도,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경제성장에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은 많다. 덕택에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박정희 신드롬은 되살아났다. 그런데 만일 박정희 정권의 치적으로 손꼽히는 경제성장이 온전히 그의 공이 아니라면 어떨까?
“(60년대) 통조림 공장도 못 세우는 나라에서 전자산업을 육성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지난 4월 3일 서울 합정동의 한 커피숍에서,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쓴 박근호 시즈오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오랜 타국 생활 중 책 출간을 기해 잠시 한국을 방문한 그는 밝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박근호 교수는 1984년 조선대학교 경상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경제학을 연구해왔다. 현재 일본 시즈오카대학교에서 비교경제학에 기반해 아시아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박 교수는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에서 기초산업에 대한 인프라도 기술도 전무했던 한국이 ‘고도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동력은 미국의 전폭적 원조였다는 사실을 밝힌다. ‘빈곤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기까지. 이제껏 ‘박정희 신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이야기들이 공개된다. 저자가 직접 발품 팔아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확보한 신빙성 있는 자료와 권위 있는 기록들은 그의 주장의 든든한 뿌리가 된다.
“1965년 베트남 전쟁 참전...미국이 한국 지원하게 된 계기”
경제학자 박근호 교수의 박정희 시대 분석은 80년대 후반 일본 가나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강의실에는 아시아 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각국의 경제발전 상황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박 교수는 이들과 교류하면서 특이점을 한 가지 발견한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계획을 시행한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의 아시아 국가들은 50년대 후반부터 경제개발과 수출정책을 펴고 있었던 것. 대한민국의 결과는 성공이었는데, 그들은 실패였다. 차이점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에 호기심을 느꼈고, 자동적으로 비교하는 시선이 생겨났다.
“미국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가난과 공산주의였어요.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면 공산주의에 대한 갈망이나 열망이 덜해질 것이라는 생각의 일환으로 지원을 시작한 거죠.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원래는 파키스탄과 인도가 샘플이었는데, 베트남 전쟁에 두 나라가 반대를 하거든요. 이때부터 그곳을 포기하고 동아시아로 지원대상을 완전히 바꾼 거죠.”
이로써 미국의 지원이 남아시아에서 동아시아 국가들(한국, 일본, 대만)로 옮겨 오게 되었다. 한국은 자유주의 진영의 쇼윈도 국가로 부상하게 된다. 미국은 적극적으로 한국의 수출을 지원하는 ‘바이코리아(Buy Korea)’ 정책을 편다. 세계은행과 손잡고 대한국제경제협의기구 IECOK를 만들어 원조에 나서기도 한다. 이때 이룩한 기적적인 경제성장은 미국의 전략적 지원때문이었던 것. 당시의 정책이나 상황을 꼼꼼히 뜯어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개발계획과 다른 방향에서 경제발전이 이뤄진 경우도 많다.
박근호 교수는 이를 올림픽 경기에 비유해 한국정부는 특기인 태권도, 레슬링, 유도, 양궁, 복싱 등의 종목에서 금메달을 기대하며 이들 종목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실시했지만, 중점적으로 육성한 종목들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오히려 축구나 육상, 수영, 승마, 농구, 요트 등 ‘예상 밖’의 종목들에서 6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60년대 후반에 전자산업이 갑자기 발전하는데요. 박정희 정권이 1967년부터 제2차 5개년 계획을 세우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전자산업에 대한 투자 내용이 없어요. 또 존슨 미국 대통령이 1966년 11월에 한국에 오는데, 통상 정상회담은 경제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이고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을 많이 요구하게 되거든요. 그때 우리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 철강, 석유화학, 낙농센터, 통조림 공장이었어요. 전자는 들어가 있지도 않아요. 더군다나 낙농센터도 미국한테 도와달라고 하고, 통조림 공장도 세워달라고 하거든요. 통조림 공장도 못 세우면서 전자산업을 육성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전자산업이 우리나라의 주요 성장동력이 되는 데도 역시 미국의 공이 컸다. 이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은 미국의 바텔연구소였다.
“사실 산업에서 마스터플랜을 만들려면 무엇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적 수요를 전부 예측해야 해요. 그러려면 어느 나라가 어느 분야에 강하고,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야 거기서도 팔 수 있는지 종합적인 분석을 해야 하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문가도 없던 상태였으니 바텔연구소에서 해준 거죠.”
이와 같은 미국의 ‘큰 그림’ 속에서 대한민국은 70년대 석유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중동 특수를 거쳐 자유 진영의 성공적인 표본으로 우뚝 서게 된다.
“박정희 시대 공과 과 제대로 가려야 미래 성장”
박근호 교수의 이런 주장들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모두 공식문서 기록에 기반해 나온 주장이다. 책에 실린 표와 그래프를 통해 구체적인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저자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미국 도서관에서부터 대한민국 외교부까지 뛰어다녀야 했다.
“경제를 공부하기 위해선 정책 자료가 공개되어 있어야 하는데 독재정권 하에서는 그런 것들이 많이 감춰져 있었습니다. 일본과는 달리 누가 무슨 이유로 경제정책을 입안한 건지 자세하고 꼼꼼하게 기록하는 과정이 한국에서는 안 보여요.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2000년부터 도서관 자료들이 많이 디지털화 되면서 쉽게 정보들을 찾을 수 있게 됐어요.
그것 하나가 굉장한 수확이었고, 또 하나는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박정희대통령기록물의 일부가 비밀문서에서 해제돼 공개된 것이에요. 1998년에 미국에 가서 1년 반 동안 미국국립공문서관과 린든존슨대통령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많이 복사했지만 개운한 마음이 없었어요. 외교통상부 외교사료실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 전후의) 외교 관련 문서가 공개되면서 자료들이 선이 되고, 면이 되고, 입체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박정희 정부의 정책적인 결정과정에 있던 것들 것들이 희미하게 나타난 것 같아요.”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는 경제뿐만 아니라 역사, 정치 등 다양한 틀을 통해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신화를 해체한다. 하지만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를 통해서 소모적인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에 있다.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 없이는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서 책을 쓴 것은 아니거든요. 중요한 건 우리나라 경제가 어떻게 발전했고, 그걸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를 밝히는 거예요. 미래를 위해서 과제를 정확히 보고, 그중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활용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머리를 맞대고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지금 그렇지 못하고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인 것처럼 되니까요. 효력이 없는 걸 또 하게 되면 얼마나 손해가 많습니까? 또, 단순히 국내의 문제만이 아니에요.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처럼 하면 발전한다고 해서 우리 정책을 배워가지만 똑같이 했는데도 안 되죠. 정부가 한 역할이 거의 없다시피하니까요. 진실을 파헤치려는 목적이 그거죠. 그래야 발전도상국도 헛수고를 하지 않아요.”
박근호 교수는 최근 사드 배치 때문에 불거진 중국과의 무역 갈등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보탰다.
“중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다른 나라보다 몇 배의 힘이 들어요. 그만큼 그 나라는 정치적으로 다른 나라와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실패하는 기업도 많고 그래요. 우리나라는 그나마 중국에 대한 이해도 많이 있었고, 우리 국민들이 가서도 열심히 했고, 중국 동포들이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시장 개척을 잘 한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사드 사태로 무역관계가 틀어져버린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에요. 다시 시작하는 것은 몇 배가 더 힘들 거든요. 미국은 60년대에 미국 정부가 징검다리를 놔줬기 때문에 창립의 어려움을 덜 겪었지만 중국 시장은 기업들이 힘겹게 리스크를 겪으면서 노력한 결과이기에 더 값지고 보람있는 일인데 그걸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모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쉽고 화도 나죠.”
글 : 주혜진(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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