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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08. 2017

일상여행가 정여울“예민한 사람들도 행복한 사회 됐으면"

저자 정여울 인터뷰 


20대 여성들과 삶을 함께 나눈 책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의 두 번째 이야기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정여울/ 아르테/ 2017년)이 나왔다. 그때 30대의 정여울 작가와 고민을 나누던 여성들은 30대가 되었고, 작가는 이제 40대에 들어섰다.


30대가 되면 안정 궤도에 들어설 줄 알았던 삶은 마흔이 넘어도 여전하다. 외로움과 불안은 50이 되고 또 60이 되면 사라질까? 아마 그때도 여전할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 건네는 한마디에 위로가 된다는 것을 작가는 30대를 지나오며 배웠다. 정여울 작가의 글은 다정한 벗이 되기를 희망하며 독자들에게 속삭이는 위로의 말이다.


4월 26일 서울 서초동. 생긴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어수선하다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남을 약속했다. 얘기와 달리 작업실은 작가를 닮아 차분한 분위기에 작은 소품들이 아기자기했다. 아늑한 공간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작가의 작업실로 여행을 온 것만 같았다. 마치 한국 사람이 하나도 없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나 우리말로 대화를 나눴을 때처럼, 이야기가 통한다는 편안함, 내 말에 누군가 귀 기울여준다는 반가움에 짧지 않은 대화가 짧게만 느껴졌다.


Q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 이어 새로운 책이 나왔어요. 이번 책은 어떤 책인지 소개를 먼저 해주세요.


30대 한가운데서는 앞이 안 보이니까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배운 게 많더라고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는 좋은 단어들만 있는데, 이번 책에는 걱정이나 포기 같은 단어들이 있어요. 무섭고 싫던 단어가 나쁜 것만은 아니고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30대가 되니까 알게 됐어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아무도 해주지 않잖아요. 내가 하는 고민과 방황이 누구나 겪는 것이고 정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같이 이야기하면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Q 30대가 되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해요.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꿨으면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조언을 부탁드려요.


20대에는 세상이 나를 시험하는 느낌이었어요.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본 거죠. 30대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자신에 대한 믿음, 관계에 대한 믿음이 생겼는데요, 여행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서도 일하는 것처럼 ‘열심히’ 여행을 해요. 전 짐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없어도 살아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절대’라고 믿었던 것들, 물건이나 관계에서도 해방됐죠.


또 30대가 돼서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첼로는 제 모범생 기질을 벗어나게 해준 최초의 도구예요. 뭔가를 조건 없이 해도 된다, 잘하지 못해도 좋다는 걸 알았어요. 돈 버는 것과 상관없는 뭔가를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럼 마음이 커지거든요.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건 도망칠 것이 있다는 거죠. 힘든 순간에 내가 좋아하는 걸 떠올리면 잊을 수 있더라고요.




“좋은 어른은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 직접 디자인하고 창조하는 사람”


Q 책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변화가 가장 크게 느껴지시나요?


저는 늘 부탁을 받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먼저 제안을 하더라고요. 전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너무 걱정해서 거절을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줄어들더라고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얘기하지만 거절을 못한 건 제 선택이었잖아요. 그걸 깨닫고 나서 거절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가 내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어진 필드 안에서만 최선을 다하는 게 제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때로는 내가 필드를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안 거죠. 그런 점이 가장 달라졌고요, 제가 선택하고 먼저 제안하니까 전보다 책임감을 더 느껴요. 단순한 성실함을 넘어서 삶을 더 걸게 되더라고요. 책임이 무겁기만 했는데, 이제는 책임진다는 게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고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더라고요.


Q ‘나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특히 나이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어떤 편견을 주로 느끼시나요?


하~ 진짜 나이 없는 세상 살고 싶어요.(웃음) 나이 많은 걸 무기로 삼거나 나이가 권력화되는 장면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좋은 기억으로 남은 분들은 나이로 군림하지 않으려는 분들이에요. 나이와 상관없이 스승이 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죠. 다만 나이에 대한 편견이 아예 없을 순 없거든요. 그걸 인정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더 경험이 많은 사람이 먼저 노력해주면 좋겠어요. 나이가 어린 사람은 이미 주눅들어 있고 이미 조심하고 있거든요.


Q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책에서도 쓰셨지만 진짜 어른은 어떤 모습인지 듣고 싶어요.


어른스럽다, 철든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지나치게 사회화되는 거죠. 그 사회가 원하는 표정을 짓는 거죠. 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어른은 자기 창조성과 개성을 억압하는 거예요. 한국에서 어른은 대부분은 그런 의미고요.


제가 생각하는 어른은 어떤 사람이 될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에요. 대부분은 어떤 자극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행동하지 먼저 행동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먼저 행동하고 가치를 주장하는 순간 그때 진짜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사람들은 진짜 어른이 되길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사회가 원하는 모습에 맞추느라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는 고민하지 않아요. 좋은 어른은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 그려진 테두리에 맞춰 색칠을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디자인을 하고 창조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예민한 사람들이 행복해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어”


Q 말씀하신 것처럼 사회에 길들여져 살다보니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은 고민할 겨를이 없어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자기답게 살기 위해 어떤 연습이 필요할까요?


전 감수성이 너무 예민해서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고치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분이 감동 잘하는 재능을 왜 억업하냐는 말을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의 예민함은 야단맞을 게 아니다, 예민함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예민함이 장점이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겠다, 저뿐 아니라 예민한 사람이 예민할 권리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우리가 평생 사회화만 할 순 없잖아요. 개성화가 필요하고 그게 진짜 나 자신이 되는 건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그런 이유로 전 꿈 일기를 써요. 꿈을 기록해보면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 모습을 깨닫게 돼요. 그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려지는 거죠. 또 다양한 자극을 경험하면서 자기를 우연 속에 던져보는 거예요. 나와 맞지 않는 환경에도 부딪혀보고 잠재돼 있는 것들을 깨워줘야 해요. 자극에 움츠러들고 두려워하기보다 자기 모습을 드러내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과 꼭 나누고 싶은 말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우리는 ‘진짜 자신’은 멀리하고 ‘되어야만 하는 자아’에 붙들려 있는 것 같아요. 욕망에 정직해졌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걸 말할 수 있는 용기,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타인과 나누려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러려면 성과로만 판단하는 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비슷비슷한 삶을 살 것 같아요. 통계로는 분석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자기 마음을 섬세하게 돌보는 삶이었으면 해요.


그런 의미에서 더 예민해졌으면 좋겠어요. 예민한 사람들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더 많은 게 보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예민한 사람들이 행복해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예민한 사람들은 딱지를 맞죠. 지독하게 예민한 사람들도 행복한 사회가 됐으면 해요. 그건 다양한 배려가 필요한 일인데요, 배려를 피곤함이 아니라 다양한 삶을 누리는 즐거움으로 느꼈으면 해요.



글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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