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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10. 2017

[기획인터뷰①] 손원평 “타인을 공감한다는 것..."

저자 손원평 인터뷰

※ 처음은 늘 설레고 떨리고 또 어렵습니다. 등단 후 첫 번째 책으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세 명의 작가들을 만나봅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아몬드>의 손원평 작가입니다. - 기자 말



“삐리삐리- 감정을 제거한 완전체, 진호봇입니다.”


KBS 개그콘서트 ‘봇말려’ 코너에 나오는 진호봇(박진호)이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다. 감정이 없는 인간은 정말 ‘완전’해질까?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까?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창비/ 2017년)에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가 등장한다.


열여섯 살 윤재는 머릿속의 ‘아몬드’, 즉 편도체가 작아서 분노나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 반면 또 한 사람의 주인공 ‘곤이’는 분노로 가득 찬 아이다. 소설은 비극적인 운명으로 얽히고설킨 두 소년이 ‘공감’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소설의 첫 번째 가치가 ‘재미’라는 점에서, <아몬드>는 나무랄 데가 없다. 책장이 휙휙 넘어간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읽는 맛’을 더해주는 소설. 우리 사회를 살짝 돌아보게 만드는 메시지까지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한다.


손원평 작가는 이 소설로 2016년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했다. 그녀의 이력은 독특하다. 2005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경선 우수상을 수상한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2005), ‘너의 의미’(2007) 등 여러 단편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인. 올해 3월에는 소설 ‘1988년생’으로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4월 20일 서울 서교동의 ‘카페 창비’에서 손원평 작가를 만났다. 첫인상은 한마디로 ‘뜻밖의 발랄함’이었다. 기자의 싸구려 녹음기를 탐내던 독특한 작가. <아몬드>에 대한 칭찬을 보며 ‘이게 그렇게까지 재미있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단다. 솔직하고 인간적이며, 그래서 엉뚱하기도 한 매력이 가득했다. 손원평 작가는 앞으로도 영화와 소설을 같이 해나갈 생각이다. ‘함께’ 해야 만들 수 있는 영화와 ‘혼자’ 있어야 쓸 수 있는 소설. 두 가지가 주는 즐거움이 자기 안에서 합일감을 이룬다는 것이다. 영상으로 또는 활자로, 그의 ‘건강한’ 욕심이 만들어낼 또 다른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생후 4개월 아이 돌보며 한 달 만에 초고 쓴 소설... “매일이 마감”


Q ’작가의 말‘을 보니, 2013년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하셨더군요. 집필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부터 여쭤보겠습니다.


그해에 아기가 태어났는데, 아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건강하게만 커달라고 바라고 있는데, 막상 아기가 크면 부모가 다른 기대도 하고 실망도 하게 되잖아요. ‘내 아이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면 어떨까? 그래도 내가 무조건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서 ‘윤재’와 ‘곤이’라는 두 주인공이 나오게 됐어요.


아기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울고 웃고 감정으로는 교류를 하잖아요. 제 아이를 보면서, 다 알던 사실을 새로 보게 된 거죠. ‘사람은 감정이라는 걸 타고나는데, 만약 감정이 없는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그리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가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면 걔는 또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아우르는 것은 사랑이죠. 식상하지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랑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Q 아이가 생후 4개월일 때 한 달 동안 썼다고 하셨습니다. 아이 돌보고 작가님 건강 회복하시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텐데, 어떻게 해서 그런 집중력이 나올 수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내 일을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리고 예상했던 것만큼 힘들지 않았던 건, 아이가 정말 순했기 때문이에요. 정말 잘 잤어요. 걱정했던 것보다 시간이 생겼는데, 그렇다고 밖으로 나갈 순 없잖아요. 아이를 낳은 그해에 글을 가장 많이 쓴 것 같아요.


저는 뭔가 접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고 달려가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애가 언제 깰지 모르니까 매일이 마감인 거예요. 작가들이 마감의 힘을 받잖아요. 애가 자고 있으니까 ‘애가 깨기 전에 여기까지는 써야 돼!’ 이런 마음이 있었죠. 아이한테 되게 고맙게 생각해요. 그러다 “으앙!” 소리가 나면 ‘헉, 오늘은 여기까지군’ 하고 달려가고.(웃음)


제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저는 원래 ‘올빼미’였거든요. 영화든 소설이든 예술을 하면 밤도 새우고 ‘그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고, 그런 걸 남편한테 이해시키려고 했는데, 남편은 동의를 안 하더라고요. 남편이 ‘아니 직장인들은 이런 거 저런 거 다 하는데 왜 작가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냐’라고 반문했는데, 그 말이 맞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해보니까 또 되더라고요.(웃음)


Q 그동안 영화를 만들며 살아오셨는데 왜 소설까지 쓰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감독보다는 소설가가 먼저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때?(웃음) 소설로 등단을 하고 싶은 마음은 그 전부터 있었는데, 2011년에 결혼하고 나서 그 마음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영화는 공동의 일이잖아요. 사람이 되게 많이 부대껴야 되고, 사람들을 설득해서 영상으로 내야 하는 작업이죠. 반면 소설은 훨씬 내밀한 것을 표현할 수 있어요. 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여지도 있고요. 그리고 내가 혼자 종지부를 딱 찍으면 소설은 끝나니까 그게 좋죠.




“너무 쉽게 쓰이고 있는 공감·소통·사랑이란 말, 환기해봤으면”


Q 최근 부각된 이른바 ‘혐오범죄’가 <아몬드>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어떻게 해서 혐오범죄에 주목하셨는지, 혹시 영감을 준 실제 사건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일은 늘 일어나는 사회의 풍경 중 한 조각이죠. 사람들이 너무 화가 나 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들어요. 사람들을 ‘쪼아서’ 터트리려고 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1년에도 몇 건씩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나온 얘기 같아요.


Q 윤재가 비극을 겪고 난 뒤 담임 선생님이 한 행동을 보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윤재가 속으로 “신경 꺼 주시는 게 돕는 거예요”(85쪽)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요, 그 장면은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꼬집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냥 자기가 아는 위로를 한 거예요. 매우 서툰 방식으로. 선한 의도였잖아요. 하지만 그 생각이 깊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잔인한 행동이 된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공감이라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공감이란 불가능한 명제 아닐까?’ 그 선생님도 자기는 윤재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어떨 때는 자만일 수도 있는 거죠. 인간은 끝까지 속을 알 수 없잖아요.


Q 윤재와 곤이의 공감의 시작은 ‘따라하기’였습니다. 소설 속 상황에서는 좀 갑작스럽기도 한데, ‘따라하기’라는 행동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궁금했습니다.


윤재의 엄마는 항상 윤재에게 감정을 교육했어요. 그 방식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을 비슷하게 해보는 거였죠. 그 장면에서도 윤재는 화를 낼 줄도 모르는 아이이기 때문에, 곤이가 하는 대로 거울처럼 ‘반사놀이’ 같은 걸 한 거죠. 그 장면의 기능이 있다면, 아직은 가깝지 않은 두 소년의 상황 속에서 생경함과 긴장감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아무도 몰라준 곤이의 본모습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만이 알아봅니다. 이 역설 속에 소설의 주제의식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네 머릿속의 편도체는 지금 크기가 어느 정도니?’라고 묻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단락이 분명히 있어요. 그게 의도이기도 해요. 윤재와 곤이가 관계를 맺고 하는 건 작은 이야기죠. 그보다 더 확장시켜보고 싶었어요. 공감이나 소통, 사랑이라는 말이 참 쉽게 쓰이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환기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정도예요. 그것과, ‘윤재가 자기를 깨고 나오게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이 주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소설 제목만 봤을 때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아몬드가 달리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소설을 다 읽고 나니까 “짭쪼름한 피 맛이 단맛이랑 어우러지는”(41쪽) ‘자두맛 캔디’가 더 특별해 보이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는 실제로 자두맛 캔디를 먹으면 피가 났거든요. 그런 사탕들이 있어요. 먹다보면 혓바닥을 베이는. 저도 모르게 그런 문장들을 쓰게 된 이유는, 인생은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죠. 그리고 감정 또한 그런 것 아니겠어요?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하고, 뭐라고 결론 내릴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아몬드> 영화화한다면... 쉽게 남한테 연출 맡길 수 있을까?”


Q “한국형 영어덜트 소설”, “<완득이> 이후 최고의 청소년소설” 등 호평이 많습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진입했고요. 기분이 어떤가요?


감사하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웃음) 좀 신기해요. 겸손이 아니라, 이게 그렇게까지 재미있나 싶거든요.(웃음) 사실 저는 약간의 함의가 들어 있는 작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잘 읽힌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우선 윤재의 독특한 시선 때문이죠.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팩트 위주잖아요. 자연스럽게 군더더기가 빠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제가 책을 읽을 때 언제 책장을 덮는지 보니까, 같은 이야기를 중언부언하면 못 읽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소설을 쓸 때도 제 스스로 잘 읽을 수 있는 문장을 쓰다보니 그렇게(잘 읽힌다는 평가를 듣게) 된 것 같아요. 한마디로 제가 독서력이 약하기 때문이죠.(웃음)


Q 만약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직접 연출하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나중에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 소설을 먼저 쓴 게 아니거든요. 저는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남들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거든요. 그래서 ‘쉽게 남한테 연출을 맡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해요.(웃음)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지만 장면이나 음악을 생각하며 쓰긴 했거든요. 남한테 주기 힘들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웃음)


Q 큰 문학상을 두 개나 받으셨고, ‘등단한’ 소설가가 됐습니다. 첫 책도 나왔고요. 이전에 비해서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제가 되고 싶었던 무언가가 되고 서점에 내 책이 꽂히면 좋겠다는 꿈도 이뤘는데, 막상 제 생활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인터뷰 몇 번 한 거랑 가끔 남들이 제 책을 어떻게 봤는지 인터넷을 찾아보는 거 빼고는요. 마음으로 달라진 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에 감사하면서, 여기서 자만하지 말고 작품을 많이 써서 다작 하고 싶어요. 다작. 이 칭찬들을 에너지로 보태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다는 마음이죠.


Q 작가로서 롤모델이 있나요?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현진건이에요. 다른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더니 기자분이 놀라시더라고요. 외국 소설가가 아니고 한국 근대 소설가라고 말하는 게 좀 재미있었나 봐요.(웃음) 우리는 그냥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로만 알고 있지만, 저는 정말 현진건의 글들을 좋아해요. 그리고 현진건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였어요. 직업이 두 개라는 것에서 저랑 비슷하고요(웃음), 자신의 생각을 소설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에서도 펼쳤다는 점에 제 롤모델에 가깝지 않을까 해요.


영화인으로서는 메릴 스트립을 좋아해요. 일단 연기에서 ‘반박 불가’잖아요. 그리고 애가 넷이에요. 이혼을 한 적이 없고요. 공식적인 자리에서 남편을 항상 감사하게 여겨요. 영화인으로 대단한 위치에 올랐는데도 가정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할리우드 스타가 없는 것 같아요. 보통 예술을 하면 외곬수가 되기도 하는데, 저도 일상을 잘 지키면서 계속 영화와 소설 두 가지 일을 같이 하고 싶어요. 제가 이 소설에서 ‘평범이 이루기 어려운 가치’라고 썼지만, 그게 참 큰 꿈인 것 같아요.



글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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