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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15. 2017

[기획인터뷰③] 안희연 “내가 생각하는 시인은..."

저자 안희연 인터뷰 

※ 처음은 늘 설레고 떨리고 또 어렵습니다. 등단 후 첫 번째 책으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세 명의 작가들을 만나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주인공은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의 안희연 시인입니다. - 기자 말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입술로 이미 죽어 버린 것들과 모든 죽어 가는 것들에 숨결을 불어 넣으며 살 수 있기를, 모두가 끝났다고 말해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죽음은 안희연 시의 ‘대주주’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먹먹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가슴속에는 하얀 무언가가 서서히 번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의 정체는 안희연 시인이 산문집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61쪽에 쓴 위의 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다.


‘슬프다가 막막하다가 텅 비었다가 잠시, 반짝인다.’ 안희연 시인의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 2015년)을 읽은 기자의 소감이다. 안희연 시인은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16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은 흡사 스마트폰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처럼, 슬픔이라는 필터로 세계를 본 듯하다. 한 문장 한 문장 쉽게 넘어가게 하지 않는다. 한 글자 한 글자 그냥 지나가게 두지 않는다. 기자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슬픔의 통각점(痛覺點)들이 깨어났다. 그리고 슬픔 속에 반짝이는 ‘옆’의 존재에 감사하며, 좌우를 한번 쓱 돌아봤다.


4월 12일 서울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북파크에서 안희연 시인을 만났다. “점심은 드시고 오셨어요?”라고 웃으며 첫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고, ‘시집 속의 우울은 다 웬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많고 예의바른 사람. 그는 인터뷰 내내 ‘단정한 명랑함’을 보여줬다. 아직도 자기가 시인이 맞는지 늘 의심한다면서도,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느끼는 ‘기분 좋은 공포’를 반기는 사람. “벽만 보고 시를 써왔는데, 벽을 열고 나가보니 벽이 아니라 문이었다”는 안희연 시인이 시를 통해 우리에게 불어넣고 싶은 숨결은 어떤 것이었을까. 짧았던 두 시간을 아래에 옮긴다.




“‘옆’은 눈앞에 없는 사람의 자리... 이미 흩어지고 사라져버린 것들의 자리”


Q 시집 맨 뒤에 있는 '시인의 말‘ 첫 문장이 “한편 한편 도끼로 나무를 내려찍는 심정이었다”입니다. 고통도, 신중함도, 강인함도 느껴지는 문장인데요,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반농담으로, 거의 유서를 쓰는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시가 저한테 너무 무거웠어요. ‘시와 삶은 같이 가는 것’이라는 선생님들 말씀도 잘 들리지 않았고, ‘시만 잘 쓸 수 있다면 내 삶은 망가져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시를 과도하게 사랑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한 문장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언어적 강박도 너무 심했거든요. 강물이 흐르듯이 쓴 게 아니라 벽돌 하나 위에 또 다른 벽돌 하나를 쌓아가는 심정으로 시를 써나간 것 같아요.


쓰는 사람도 그렇고 읽는 사람도 그렇고, 편안한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정성스럽게 에너지를 쏟은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너무 결벽이 심하고 답답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분명 있을 거거든요. 시집 내고, ‘왜 이렇게 시를 어렵고 힘들게 쓰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애를 쓰고 있고, 자연스럽게 써지는 대로 쓰고 있어요.


Q 시인들이 생각하는 대표시와 독자들이 오래 기억하는 시가 다른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번 시집의 경우는 어떤가요?


많이 달랐어요. 아무래도 세월호와 관련된 시들을 많이 언급해주셨어요. 사실 시집에 수록된 죽음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그 사건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데, 워낙에 세월호가 모두의 심정에서 가까이 있다 보니까 그렇게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그 외에는 ‘탁묘’가 고양이 애호가들한테 많이 알려져서 고양이 잡지에도 소개가 됐어요.(웃음) ‘거짓말을 하고 있어’ 같은 시도 죄책감의 문제로 많이 언급해주셨고요. 제가 열심히 힘줘서 쓴 시보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시들이 독자분들한테 반응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느끼는 거랑 좀 달라요.(웃음)


고양이 하나를 맡겼을 뿐인데
우리의 여행은
되돌아가기 위한 여행이 되었다
우리는 떠나온 적도 없고 서로를 버린 적도 없다고 말해야 했다
-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수록시 ‘탁묘’ 중에서


Q 이 시집으로 2016년 신동엽문학상을 받으셨습니다. “절실한 자기성찰의 시선으로 세계와 자신을 들여다봤다”는 평을 들으셨는데요,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평가해주신 것 같으세요?


정말 운이 좋았죠. 과분한 평이에요.(웃음) 젊은 시인들 중에 재미나게 시를 쓰는 친구들도 많이 있거든요. 가볍고 재미나게 언어를 소화해내고 그런 시선으로 세계를 재구축하는 것이 저는 항상 부러웠어요. 그에 반해 저는 시를 너무 무겁고 진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상을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그 마음 때문에 주신 거지, 시를 잘 쓰거나 열심히 써서 주신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도 너무 부끄럽고, 시상식에도 안 가고 싶었어요. 식장에 들어가기 싫어서 건물을 세 바퀴쯤 돌다가 들어가고 그랬어요.(웃음)




“시인은 고통과 상처의 한가운데에 노출돼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Q 시집에 ‘백색 공간’이라는 제목의 시가 세 편이나 됩니다. ‘왜 흰색일까? 대체 흰색이 뭐길래?’라는 궁금증이 따라왔습니다.


어둠마저 다 빨아들인 색이 흰색이라고 생각해요. 침묵에 가장 가까운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설원이나, 문도 창문도 없이 흰색으로만 가득한 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심정적으로 그런 상태가 됐을 때 시 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이 돼요. 마음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흰 방에 다다르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요. 단 하나의 나무가 있고 단 하나의 새가 있고, 제 마음속의 소우주랄까, 원형이랄까, 그런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에 흰색에 이끌리는 것 아닌가 해요.


Q “슬프다가 막막하다가 텅 비었다가 잠시, 반짝인다.” 이 시집에 대한 제 소감입니다. 이 막막한 슬픔 속에서 ‘잠시 반짝이는 것’의 정체는 바로 ‘옆’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이 시집을 묶으면서 단 하나의 바람이 있었다면 ‘독자들을 먹먹함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다’는 거였어요. 읽었을 때 먹먹해지는 시. 막 시끄럽다가 갑자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고, 울컥하고, 마음의 막다른 곳에 탁 도착해서 멈추게 하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옆’이라는 곳은 눈앞에 없는 사람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재는 없는 게 아니라 없음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옆’이란 그런 의미에 가깝다는 생각이에요. 이미 흩어지고 사라져버린 것들에게 자리를 주고 싶다는 의미. 하지만 다양하게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연대의 의미로 읽어도 좋을 것 같고, 무수한 ‘나’의 모습으로 봐도 좋을 것 같고, 죽음의 자리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Q 자본주의식으로 말하면, 죽음은 안희연 시의 ‘대주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째서 서른 살 젊은 시인의 시 속에서 이렇게 많은 지분을 차지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아홉 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가족끼리 산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하셨거든요. 2월 말이었는데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려서 가족들이 고립됐고, 길을 찾으러 가신다고 한 뒷모습이 제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이었어요. 눈 오는 날 경험한 죽음이 아주 원초적인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유년시절이 많이 외로웠어요. 가족들이 다 섬처럼 지냈어요. 각자의 외로움을 묵묵히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제 성장배경 안에 있었죠.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영원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제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의 무수한 죽음들을 만나면 그게 가볍게 느껴지지 않고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와요. 죽음이라는 바닥에 닿는 면적이 아주 넓은 것 같아요.


Q ‘삶이 보이는 창’ 2017년 봄호에 김중일 시인이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서평을 써주셨더라고요. 제가 본 여러 서평들 중에서 그 글이 가장 좋았습니다. 호평 속에 한 가지 조언도 있던데요,  “첨예하게 잡아가는 감각의 균형은 그의 뚜렷한 장점이다. 다만 예술의 아름다움은 대칭과 균형에서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차라리 한쪽이 심하게 허물어진 먼지투성이 폐허 속에서 그것은 자주 발견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떠세요? 평소에도 생각하고 있던 부분인가요?


정말 애정 어린 조언이네요. 저도 굉장히 동감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 시가 ‘착한 절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너무 착하고 너무 올바르다는 거죠. 처음에는 속상했어요. 그때는 시를 예쁘게 잘 쌓아올리는 것에 심혈을 많이 기울였거든요. 그게 시를 쓰면서 힘들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좀 못나 보여도 못남을 인정해주려고, 결벽을 버리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매끄럽게 쓰는 것보다 오히려 못나서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시를 좀 편하게 쓰려고 하거든요. 예전에는 시를 써놓고 많이 다듬었는데, 요즘은 한 호흡에 쓰려고 해요. 시를 쓰는 마음도 굉장히 편해졌어요. 그런데 이렇게 끙끙거리며 쓴 시집도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해요. 첫 시집이니까, 이때밖에 못하는 거잖아요.




“내 시의 촉매는 부끄러움... 인간은 부끄러움을 잃어버리면 끝”


Q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304 낭독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2014년 9월부터 꾸준히 함께해오고 계신데요, 이번 시집에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시가 몇몇 눈에 띕니다.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안희연 시인의 시는 어떤 모습이 됐을까 궁금합니다.


이 시집 제목부터 바뀌었을 것 같아요. 좀 더 가볍고 새롭고 감각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 같아요. 너무 드라마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메시지가 선명하게 보이는 방향으로 시집을 묶었기 때문에, 저한테서 어떤 톡톡 튀는 것을 기대하셨던 분들은 ‘시집을 잘못 묶은 것 아니냐’는 말씀도 해요. 너무나 거대한 죽음이었어요. 개인의 죽음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죽음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너무 힘겨웠고 뭐라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쓴 거거든요. 그 뒤에도 물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죽음에 대해 쓰면 다 세월호 참사로 수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 같아요.


물속에는 왜 문이 없을까?
난 아까부터 까치발 하고 있어
지금부터 누가 제일 숨 오래 참는지 시합하자
여기 사람이 있어요 여기 사……라…ㅁ…


우리는 죽음의 수행원
가만히 잠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수록시 ‘상상 밖의 모자들로 가득한’ 중에서


Q 올해 2월 나온 산문집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을 보니 ‘시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릴케와 김춘수의 말을 인용하셨더군요. 안희연 시인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시인이란 누구입니까?


피부가 없는 사람. 그게 지금 제가 생각하는 시인에 가까운 것 같아요. 뭐가 닿아도 다 쓰라리고 아프고, 보호장치가 없는 사람. 사람들이 울고 있으면 같이 그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엉엉 울고, 고통과 상처의 한가운데에 노출돼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아요.


Q 산문집을 보니 안희연 시인이 좋아하는 시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어떤 시인을 닮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시인에 대한 동경이 컸어요. 그런 마음이 저를 시인으로 만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시인보다는 시 자체와 내 삶이 만나는 경험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인간을 동경하면 반드시 실망하게 돼 있어요.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어요. 과거의 누군가의 시가 제 자신의 삶과 긴밀하게 만난 적이 있다면, 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려고요. 저는 황인숙 시인을 좋아해요. (1984년에 등단했는데) 30년 넘도록 아직도 좋은 시를 쓰고 계시다는 것에 대한 신뢰에서는, 그분을 닮고 싶다고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이 하나의 일을 오래 한다는 것에는 감동이 있어요.


Q 안희연 시인에게 시의 촉매는 뭔가요? 무엇이 시를 시인의 밖으로 나오게 하는지.


부끄러움이에요. 인간은 부끄러움을 잃어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부끄러움은 인간에게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한 그나마 제 삶을 책임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Q 산문집을 보니, 시인 보들레르에게 ‘노벨문학상 타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안희연 시인의 목표는 정말 노벨문학상인가요?(웃음)


정말 아닙니다! 정말 아니라고 써주세요.(웃음) 제 목표는 정말 단순한데, ‘오래오래 쓰는 거’예요. 지금이야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삶의 다른 결들을 많이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시를 안 쓰고 싶어지거나 못 쓰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30년 뒤에도, 온갖 부침을 겪고 나서도 계속 시를 쓰고 있다면, 정말 시를 사랑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글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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