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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12. 2017

[기획인터뷰②] 도선우 “나는 부당한 세계에서..."

저자 도선우 인터뷰

※ 처음은 늘 설레고 떨리고 또 어렵습니다. 등단 후 첫 번째 책으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세 명의 작가들을 만나봅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스파링>의 도선우 작가입니다. - 기자 말



삼차 방어전을 치르는 와중에 또 일이 터졌다. 내가 사 라운드 중반에 미국 선수의 사타구니를 걷어차서 그가 실신해버렸던 것이다. (줄임) 나는 챔피언 자격을 박탈당했고 미국인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더는 미국에서 시합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를 다시 미스터 개불알 티로 불렀다. 내가 미국 선수의 불알을 차서 쓰러뜨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 <스파링> 351~352쪽


‘핵주먹’ 타이슨이 ‘핵이빨’이 된 사건을 기억하는가. 미국의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은 1997년 WBA 헤비급 타이틀전 도중 상대선수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켰다.


약 20년 뒤, 한국의 어느 ‘문학중년’은 문득 그 사건의 진실이 궁금해졌다. 그의 관심은 타이슨의 생애로 옮겨갔고,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스파링>(문학동네/ 2016년)이라는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핵이빨’ 사건은 위와 같은 얄궂은(?) 이야기로 모습을 바꿔 소설 속에 등장한다. 40대 문학중년 도선우는 이 소설로 2016년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소설가의 꿈을 이뤘다.


<스파링>은 지극히 사회적이면서 철저히 인간적인 소설이다. 인간의 비겁과 사회의 폭력성을 향해 예리한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고아원 출신 문제아가 권투 챔피언이 돼가는 성장 이야기’라는 짧은 소개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 진부한 설정에도 이 소설은 확실히 재밌다. 그 요인 중 하나는 세심한 심리묘사. 작가는 꼭 바다의 밑바닥을 훑는 스킨 스쿠버처럼 주인공의 심리를 세밀히 묘사한다. 시간을 딱 멈춰놓고, 독자는 숨도 못 쉬게 한 채 인물의 밑바닥까지 들어갔다 나온다. 폭력의 여러 층위에 대한 이 소설은,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작가 자신의 고백 또는 다짐이기도 하다.


4월 17일 서울 삼성동에서 도선우 작가를 만났다. 그는 지난 7~8년 동안 매년 250여 권의 책을 읽으며 습작을 해왔다. 40대 남성 사업가가 신인작가가 됐다는 점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한 도선우 작가. 그는 올해 2월 <저스티스맨>으로 제13회 세계문학상까지 받은 뒤, 미국으로 두 달 동안 긴 출장을 떠났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기자와 만난 도선우 작가는 이제 전업작가의 삶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그는 “아무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던” 소설 속 비밀 이야기까지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작업이 소설 쓰기”


Q 고아 소년이 권투 챔피언이 된다는 성장 이야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설정입니다. 이미 나온 비슷한 이야기들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사실 그런 설정의 이야기들을 본 적이 없어요. 만약 그런 걸 봤으면 제가 스토리를 구성하면서 진부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저는 공모전에 당선될 때까지도 몰랐어요. ‘뭐가 진부하다는 거지?’ 그랬어요.(웃음) 이 이야기는 마이크 타이슨의 인생 이야기에서 가져왔거든요. 아주 우연이었어요. 어느 날 밤에 ‘타이슨은 왜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을까?’ 궁금해진 거예요. 저는 원래 타이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찾아보니까 이야기가 너무 드라마틱한 거죠.


한 동영상 속에서 타이슨이 기자들을 보고 웃으면서 ‘당신들은 돈밖에 몰라. 나는 당신들을 볼 때마다 패줄 거야.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얼마나 괴로운지 느껴봐야 돼.’라고 대답해요. 너무 순진한 아이가 세상의 시선과 폭력을 견디지 못하니까 똑같이 폭력으로밖에 해소하지 못하는 모습 같았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랑 딱 맞아떨어진 거죠. ‘얘를 주인공으로 하자!’ 타이슨에 대한 오마주로 주인공 이름에 'T'자를 집어넣어서 ‘태주(Tae-ju)’라고 한 거예요.


Q 소설을 쓰는 동안 장태주에 빠져서, 장태주가 되어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길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의 생활도 살아야 했을 것이고. 이 소설을 쓰던 시절을 지금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2016년 1월부터 8월까지 이 소설을 쓰는 8개월 동안이 정말 좋았어요. ‘이렇게 살다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 생각했어요. 몰입이 되기 시작하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작업이 소설 쓰기예요. 그런데 누가 나한테 돈도 줘? 완전 땡큐지!(웃음) 쓰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거든요. 어떤 때는 등장인물들끼리 뭘 하는 걸 제가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정말 신나죠. 그러면 회사에 출근해서도 그 생각밖에 안 나요.(웃음)


Q 장태주의 장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연히 권투. 다른 하나는 아주 살짝 나오지만 바로 ‘글쓰기’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장태주에게 작가 자신의 실제 모습이 어느 정도 투영된 것은 아닐까 살짝 의심(?)했습니다.


장태주가 아니라 오히려 돈의 힘으로 주먹의 힘을 지배하는 ‘재훈’이나, 어린 시절 장태주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오재호’ 같은 애들이 실제 제 모습이에요. 제가 부끄러워하는 모습. 제 주변엔 아직도 그런 인물들이 너무 많아요. 사회적으로는 다 엘리트들이죠. 그분들은 제 소설을 전혀 이해 못해요. “나는 쉽게 한 줄 알어? 나 공부할 때 니들은 다 놀았잖아. 나는 노력한 만큼 대가 받는 건데 니들이 이제 와서 세상 원망한다는 게 말이 돼?” 그런 분들이 술 마실 때, 소설 속 재훈이처럼 놀아요. 제일 센 사람이 가운데서 ‘왕’ 하고, 나머지는 양쪽으로 주욱 서서 들러리 하고.


그리고 태주네 학교 짱인 ‘강충식’ 같은 캐릭터도 저와 가까워요. 저도 돈 많은 재훈이 같은 애들한테 붙어서 산 경험이 더 많은 것 같거든요. 태주가 고등학교 일진을 때려눕힐 때, 강충식이 그걸 보면서 멋있다고 느껴요. 자기도 그런 인간이 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답답하죠. 저도 그럴 때가 많거든요. 현실과의 괴리감은 강충식의 감정과 비슷하죠.


Q 폭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해자는 없거나 숨어 있고, 피해자들만 남아 있는 폭력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 폭력이나 정의, 권력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압축된 문장들이 많은데, 그중 독자들이 절대 놓치지 말아줬으면 하는 문장을 하나만 꼽아줄 수 있나요?


그런 게 너무 많아서 문제인 소설이에요.(웃음) “그 아이들이 그런 세상을 살게 되는 데에 너희의 책임이 있을까, 없을까?”(181쪽) 전체 소설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가 이 한 문장이에요.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는 저희와 저희 윗세대가 만든 거잖아요. 20대들이 제 소설을 보고 ‘개저씨 소설’이라고 한다면, 그냥 미안해요. 할 말이 없어요. 걔네가 지금 그런 세상을 사는 데 일조한 사람이라서.




“질문만 던지고 해결이 없는 문학은 하지 말자고 생각”


Q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나쁜 놈이란 나쁜 놈은 죄다 나오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것도 너무 생생하게 나와서 더 현실감이 드는데요, 취재 과정이 궁금해집니다.


제가 나쁜 놈이었기 때문에 잘 아는 거예요. 선생님, 판사, 검사, 기자, 회장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세력을 유지시켜주는 나쁜 놈들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20년 넘게 사업 하면서 체화돼 있던 거니까 굳이 누구를 인터뷰하지 않아도 언제라도 그런 인물을 꺼내서 쓸 수 있어요. 속죄의식 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저는 너무 부당한 세계에서 너무 당당하게 살았거든요. 제가 살아 있는 동안 뭐든 조금은 바꿔놓고 죽어야죠. 그런 막연한 희망이 이 소설에 다 들어 있는 거죠.


Q 장태주가 짝사랑 하는 ‘아라’ 말인데요, 둘이 손이라도 한번 잡게 해주지, 어떻게 내내 그리워하게만 하셨습니까?(웃음)


저는 아라와 엄마를 ‘미지의 대지’라는 상징으로 남겨둔 거예요. 태주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희망이죠. 그리고 성인이 된 태주가 엄마를 한 번 만나거든요. 눈치 채셨어요? 독자분들 중에서 알아채는 분이 단 한 분도 없어요.(웃음) 너무 숨겼다 싶어요.


소설에 수평과 수직의 세계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다음 소설에서 수직의 신자유주의 세계를 극복한 수평의 공동체를 구현하고 있는데, 아라와 태주가 결혼을 한 뒤 5대 정도가 지난 미래의 이야기예요. 저는 질문만 던지고 해결이 없는 문학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거든요. <스파링>을 통해서 던진 질문에 대한 대안을 다음 소설에서 보여주려고 해요. 거기서 아라와 엄마는 역사로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거예요.


Q 장태주가 세계챔피언에 오르는 과정이 아주 압축적으로 약술돼 있습니다. 반면 그가 몰락해가는 과정은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되고 있고요. 의미심장한 대비 같습니다.


제가 아는 성공한 분들의 특징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잘 모른다는 거예요. 성공이란 건 그런 것 같아요. 저도 그랬어요. 제가 20대에 사업을 시작해서 아주 호황일 때가 있었거든요. 순식간에 이뤄지더라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설명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중요한 건, 과정이 없으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그냥 성공을 목적으로 달리기만 하면, 달리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없어요. 높은 위치에 올라간 뒤에 보면, 좋은 차, 좋은 집, 성공의 증거물만 남아 있는 거예요. 과정의 행복은 없이. 태주의 삶을 통해서 그런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Q 하필이면 어제(세월호 참사 3주기인 4월 16일) 이 대목을 읽었습니다. ‘신자유대교 참사’를 다룬 대목. 바다로 침몰한 차량이 304대라는 설정에서 자연스레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습니다(세월호 참사 사망·실종자 수는 304명이다). 비극성이 더 크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이렇게까지 ‘특수한’ 사건을 소설 속에 집어넣은 이유는 뭔지 궁금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왜 사회적인 문제인지, 제 주변에는 아직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거 그냥 교통사고 아냐? 그냥 애도하면 됐지, 그게 왜 정부 잘못이야?” 대부분의 한국문학은 한 사람의 불행과 내면에 천착하고 있어요. 그런 걸 예술성이라고 부르고, 이미 유능한 작가들이 잘 하고 계시죠. 저는 <스파링>을 통해서 개인의 불행보다는 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비참의 끝까지 갔어야 하는 거죠. 주인공이 행복해지면, 개인의 힘으로 불행을 극복해서 행복해지는 셈이 돼버리거든요.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태주의 불행은 점층적으로 커져요. 어렸을 때는 재호의 괴롭힘을 극복해내고, 청소년 때는 조직적 폭력을 극복해내고, 그러면서 점점 상대가 커지고 모호해지잖아요. 그 정점은 국가권력이죠.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라, 국가권력에 짓눌려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곳곳에 있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신자유대교’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어요. 끝까지 간 거죠.




“점층적으로 커지는 불행과 폭력... 정점은 국가권력”


Q 뒤늦게 문학의 재미를 알고 독학했다 들었습니다. 강의실에서 문학을 배우지 않았다는 점이 작가에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떤 식으로 문학을 읽는지 몰라요. 들입다 책만 읽은 거예요. 누가 저한테 “아무것도 모르는 게 책만 엄청 읽어서 지 방식대로 이해하고 만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인정! 저도 배우고 싶었지만, 사업 하면서 시간이 없어서 못 배운 것도 있어요. 또 성격 탓도 있어요.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하겠다.’ 급할 것도 없고, 소설 쓰는 것 자체가 정말 좋으니까요. 등단하는 데 20년이 걸리면 20년 동안 쓰죠 뭐. 책을 못 내면 원고만 가지고 있어도 좋고요. 저는 제가 아웃사이더라고 생각 안 해요. 꼭 문창과 나와야 인사이더인가요? 저는 그냥 ‘성공한 덕후’. 그 말이 맞아요.(웃음)


Q 직업이 따로 있는 작가들은 언제나 시간의 벽과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시간을 확보해서 글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전업작가 활동에 대한 고민은 어떠신가요?


하루에 네 시간은 반드시 써요. 그 시간을 하루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가가 되기로 완전히 마음먹은 뒤로는 인간관계를 정리해나가기 시작했어요.(웃음) 저는 영업하는 사람이니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고, 그게 자랑이었어요. 근데 그게 다 부질없다는 걸 알았죠. 회사 일 외의 모든 것은 소설에 ‘올인’ 했어요. 그러니까 거의 1년에 장편소설 한 편씩을 쓴 거죠. 전업작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고, 지금은 최저생계비만 있으면 할 수 있겠다는 답이 나왔어요. 적게 벌어서 적게 쓰면 돼요. 그래서 앞으로 당분간 회사를 쉬면서 전업작가 활동을 시작하려고 해요.


Q 조금은 늦은 데뷔전이지만 문학동네소설상과 세계문학상, 두 개의 챔피언 벨트를 따내며 멋지게 등장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목표를 듣고 싶습니다.


진짜이기를 노력하는 작가. 제가 좀 집착하는 부분이거든요. ‘진짜’라는 것. 제 근본은 ‘진짜’와 거리가 멀지만, 계속 노력을 하다 보면 ‘저 작가는 진짜다’라는 말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글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기획인터뷰-첫눈에 반했어①] 손원평 “타인을 공감한다는 것, 자만일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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