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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17. 2017

오늘을 사는 시인 임솔아 “가장 경계하는 것은..."

저자 임솔아 인터뷰


창문을 활짝 열자니 이내 두려워진다. 외출하는 것은 더욱이 그렇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산은 울긋불긋 초록,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영락없는 봄. 하지만 뉴스에서는 온통 미세먼지 ‘나쁨’ 경보를 알리고, 거리엔 마스크를 쓰고 걷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얼굴의 절반을 가린 채 눈만 내놓는 표정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걸어가는 거리는 흡사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한 장면 같다.


최근 아무런 걱정 없이 외출한 날을 꼽자면 열 손가락으로 남을 듯하다. 찬바람 대신 따뜻한 바람이 불고, 눈 대신 미세먼지가 소리 없이 흩날리는 계절. 겨울에 이은, 새로운 겨울이라 불러도 될 것만 같다. 임솔아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괴괴한 날들의 연속이다.


처음으로 임솔아 작가를 알게 된 것은 2015년 여름, 소설가 김종옥과의 인터뷰에서였다.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과 답변으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4시간의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그는 ‘최근 주목하고 있는 젊은 작가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서슴없이 ‘임솔아’라는 이름을 꺼내놓았다. 당시 임솔아 작가는 <최선의 삶>이라는 장편 소설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총아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관련 인터뷰 : 소설가 임솔아 “대학소설상 수상, 지겨운 애인과 헤어지는 기분”)


그로부터 2년 뒤, 임솔아 작가는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 2017년)을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그녀는 소설로 데뷔하기 전, 이미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서 시로 등단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김경주 시인은 종종 그랬다. “누군가의 첫 시집은 무조건 사라!” 첫 시집에는 그 시인이 온 힘을 다한 순도 높은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이며. 필자 역시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누군가의 첫 시집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편이다. 특히 임솔아 작가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김종옥 작가의 추천을 받고도 그녀의 첫 소설집을 미처 보지 못했다는 이유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봄, 그녀의 첫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사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등단한 지 벌써 4년이 됐네요.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부모님이 기뻐해 주신다는 점이에요. 부모님은 제가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거든요. 아버지와 언니가 모두 공무원이기도 하고요. 글 쓰는 일을 그저 취미나 부업 정도로만 하길 원하셨죠. 아버지가 취미로 글을 쓰셔서 대략적인 원고료를 아시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신문에도 실리고, 친척분들도 노는 사람으로 봐주지 않아서인지 좋아하세요. 취업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봐주신다고 해야 하나. 포기하신 것 같기도 하고.(웃음) 한편으로는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시지만 예전처럼 강하게 반대하지는 않으세요.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괴괴한 날들에 낀, 시인 임솔아의 틈

서른하나. 임솔아 작가는 대학생이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글을 쓰며 살았다. 스물셋에 검정고시를 본 뒤, 대학에 입학해 현재는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생활은 다소 불규칙한 편이다. 글을 쓰다 밤을 새우는 것은 보통이고, 아침에 수업이 있으면 겨우 1~2시간을 자고 나갈 때도 잦다. 원고 마감을 할 때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자주 하지만 다음 마감이 올 때면 또 다시 밤을 새우기 일쑤다.


자취를 하는 탓에 먹는 것 역시 소홀한 편이다. 하루에 한두 번 정도 밥을 먹거나 어떨 때는 몇 주씩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 대신 교양과목으로 요가 수업을 챙겨 듣고, 영양제를 열심히 챙겨 먹는다는 그녀의 말이 사뭇 귀엽게 느껴졌다.


임솔아 작가의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은 그녀의 자유분방한 삶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시집만 보았을 때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바른 생활만 하는 사람일 것만 같다. 그만큼 시집의 목소리는 강직하고 단단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진솔하고 정직하게 꺼내 놓는다.


발걸음으로 비교하자면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일상의 접점을 최대한 넓혀 힘 있는 목소리로 밀고 나가는 시들이 많다. 시의 제목조차 그녀의 시적 태도처럼 짧은 단어 형식인 것들이 많다. 이러한 그녀가 시를 쓸 때 지키는 평소 습관은 메모하는 것이다. 휴대폰이나 타자기가 아닌, 반드시 손으로 적는 것이어야 한다고.


“청소를 미루다 집이 엉망이면 메모장을 못 찾을 때가 있어요.(웃음) 그럼 찾을 때까지 마감이 있어도 글을 못 써요. 모두 10대 때부터 써왔던 것들인데 글로만 적힌 것도 있고, 그림과 섞인 것도 있죠. 학교 수업의 필기도 섞여 있고요. 아마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못 알아볼 거예요.(웃음) 메모장에 적힌 내용을 초안으로 해서 시를 쓰는데, 운이 좋아서 잘 써지면 퇴고를 안 해요. 물론 그렇게 쓴 적은 통틀어 서너 번밖에 없어요.


보통은 퇴고를 오래 하는 편이라 한 편의 시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죠. 습작생일 때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고 했을 때 기본으로 20번씩은 퇴고를 했어요. 지금은 나름의 요령이 생겨서 퇴고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요. 처음에는 퇴고를 많이 하다 보면 초고의 느낌이 훼손될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완성도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깎여나갈 정도의 것이라면 없어도 상관없고, 그 안에 날카로운 게 담겨 있다면 아무리 퇴고를 해도 깎여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시집에서 제가 좋아하는 시들은 대체로 1부에 모여 있어요. 그중에서도 ‘아름다움’이란 시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앉아서 한 번에 쓴 시인데, 쓰고 나서 굉장히 좋았죠. 제가 요즘 생각한 것들이 집약적으로 들어 있기도 하고요.


시를 쓰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멋 부리는 일이에요. 제가 말하는 멋 부림은 생활과 유리된 채 오직 문학적 수사만을 위한 자세예요. 사람들은 이걸 예술지상주의, 혹은 탐미주의라고 하는데 저는 일상의 층위를 벗어나 오직 문학만을 위한 미학적 태도를 경계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미학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어요. 저의 경우에는 글을 쓴다는 것이 삶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제 삶과 밀착되어 있어요.”



시 쓰는 것 늘 배고프지만 그래도 쓴다...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시집을 보니 불현듯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꾸미지 않은 소박함, ‘찌질’해 보일 정도의 솔직함. 주로 자전적인 이야기로 영화를 풀어나가는 그가 떠오른 것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을 터. 홍상수 감독에게 ‘당신은 왜 봉준호와 같은 상상력이 부족합니까?’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물음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집이 신선한 상상력과 이미지를 기대했던 독자에게 다소 아쉬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모두를 만족하게 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시가 보여줄 수 있는 미학적인 완성도를 지나치게 희생시킨다는 생각을 끝내 지울 수는 없었다. 명백하고 강건한 태도에 집중한 나머지 창조적 긴장감과 시적 상상력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무관심한 것이 아니었을까. 대체로 간결하게 끝나는 서술어는 시집 전체의 통일감을 부여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비슷한 시라는 느낌을 주었고, 일상의 소소한 기록들은 편안하게 읽히지만 심심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이예요. 완성된 시를 보면 언제나 아쉬운 느낌이 들죠. 이 시집이 처음 나왔을 때도 솔직히 별로였어요.(웃음) 3년 동안 열심히 쓴 걸 나름 정리해서 묶은 건데 막상 책으로 보니까 별 볼 일 없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막상 자신이 쓴 시를 책으로 만들어 보면 별거 아니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더라고요. 작가로서 가장 좋은 건 글이 자기를 끌고 나가는, 자신이 가진 생각보다 더 뛰어나게 앞서 나가는 거로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아직 제 글은 저를 못 따라오는 것 같아요.


풍부한 상상력이나 감각적인 이미지를 잘 다루는 분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그럴 만한 재능이 없어서요.(웃음) 단점이라고 하면 단점이죠. 유쾌한 상상력과 발랄한 이미지로 시를 써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던 때도 있었어요. 예전에는 가볍고 예쁘고 반짝반짝한 세계들이 무척 부러웠거든요. 그에 반해 제 시는 너무 우중충하고 무겁고 어둠의 무리 같아서요.(웃음)


결론은, 노력을 해봤는데 잘 안 됐어요. 제가 가진 능력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가진 것을 다 망치는 일밖에 안 되었고요. 제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포기한 순간부터 저만의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제 것이 아닌 건 욕심 내지 않으려고요.”


그녀는 이제 책을 읽어도 ‘왜 놀고 있냐’라는 말을 듣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정식으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을 세상으로부터 확보받은 느낌이라고 했다. 물론 졸업을 앞둔 만큼 현실적인 문제로 인한 고민도 안고 있다. 졸업 후에 무엇을 하기로 정해놓거나 명확한 계획을 세워놓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글을 더 열심히 쓰기 위해서라도 생활인으로서 더욱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라 다짐했다.


임솔아 작가의 오래된 취미 중 하나는 빵을 굽는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힘들 때면 집에서 카스텔라를 만든다. 어린 시절, 그녀의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줬던 간식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빵 굽는 실력이 좀처럼 늘지는 않아서 식빵이나 케이크를 구워봤지만 성공을 한 적은 없다고 했다. 심지어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직접 구운 카스텔라를 선물했지만 기뻐하지 않고, 또 맛있어하지도 않았다는 웃픈(?) 후일담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번 시집의 시들이 딱딱하게 느껴졌다면 오히려 다행이에요. 부드러운 시를 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글을 쓸 때의 자세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언제나 굳건했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었어요. 제 시가 좀 더 날카롭기를, 꼭 날카롭지는 않더라도 흐물흐물한 게 아니기를 바라면서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을 조금 더 편협하게, 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밀고 나가려고요. 궁극적으로는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전부 다 말할 수 있는 시를 썼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이 너무 많아서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조금 더 편협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강건한 의지에서 시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인터뷰 당시 ‘시적인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어설프고 서투른 답변을 하는 대신, 앞으로 더 생각해보겠다는 답을 건넸다. 그동안 다재다능한 글솜씨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롯이 증명해온 그녀. 앞으로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의미 있는 진화를 거듭하기를 바라며 언젠가 그녀의 대답을 들을 날이 다시금 오리라 믿는다.



글 :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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