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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18. 2017

푸드 포토그래퍼 김연미“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저자 김연미 인터뷰 


삶이란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 해답을 찾았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자신을 찾아가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일기’가 있다. 내가 만난 사람, 내가 본 풍경, 오늘 먹은 음식... 별것 없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쌓여 한 달이 되고, 사계절이 지나며, 1년, 2년 이렇게 흐르다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된다.


삶의 특별함은 어떤 잊지 못할 하루나 거창한 철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365일 음식 일기>(이봄/ 2017년)는 이야기하고 있다. 푸드 포토그래퍼라는 낯선 직업을 갖고 있는 김연미 작가는 지난 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사진으로 음식일기를 썼다. 하루하루 먹는 음식과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성실하게 기록하며 그는 “잊고 있던 나의 모습을 알아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진으로 쓴 음식일기


사계절 싱싱한 식재료와 군침 도는 음식 사진, 그리고 짧은 글로 365일을 기록한 에세이 <365일 음식 일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푸드 포토그래퍼’라는 저자의 직업이다. 푸드 포토그래퍼는 직업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음식과 관련된 사진만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가를 말한다.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외국에서는 이미 각광받는 직업이라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몇 명 되지 않는 낯선 직업군이라고 한다.

 
김연미 작가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 대학 조리학과에서 제과제빵을 전공하고 2년간 채식 카페를 운영하다가 실패한 후 전공을 살려 베이커리 오픈을 준비하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진에 입문했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꽤 많이 찾는 실력 있는 사진가지만,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운 지 채 3년이 되지 않았고, 대학에서 정식으로 사진을 공부한 적도 없다.


“집이 대구인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비를 마련하느라 늦게 대학에 들어갔어요. 졸업하고 더 많이 배우고 싶어 서울에 왔는데 나이도 많고 지방 대학 출신이다 보니 경쟁이 안 되는 거예요. 좀 다른 길로 가보자 해서 어려서부터 채식을 해왔기 때문에 채식 카페를 차렸어요. 그런데 2년 만에 문을 닫았죠. 제과제빵을 전공했으니 그 분야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베이커리를 열기 위해 공사까지 다 들어갔어요.


인테리어를 위해 사진이 필요한데, 제가 원하는 사진을 찍어줄 포토그래퍼를 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어차피 가게를 하면 계절마다 사진을 바꿔야 하는데 그럼 내가 직접 찍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이전에 취미로 찍어두었던 사진들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사진을 가르쳐줄 포토그래퍼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제 포트폴리오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요리 그만두고 사진으로 진로를 바꿔보라고 하더라고요.”




스승과 제자이던 두 사람은 사진이라는 공통점으로 급속히 가까워졌고 연인으로 발전해 지금은 부부가 됐다. 두 사람은 똑같이 렘브란트 그림 같은 어두운 느낌의 원라이트 기법을 좋아하는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았다. 가령 김연미 작가는 어려서부터 채식을 해온 탓에 가능하면 집에서 모든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 비해 남편의 냉장고에는 생수와 필름만 가득 차 있을 정도로 집에서 음식 만드는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서로 조금씩 양보해 그녀는 채식을 포기했고, 남편 또한 집에서 음식 만드는 걸 즐기는 정도까지 됐다.

 
서른 살까지 채식을 해왔고, 조리를 전공했으며, 채식 카페를 하며 매일매일 식재료를 구입해온 생활은 자연스럽게 푸드 포토그래퍼의 길로 그녀를 이끌었다. 보통 포토그래퍼는 다양한 분야의 사진을 찍지만 김연미 작가는 애초부터 푸드 사진만 찍겠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보통 푸드 사진은 스타일리스트가 세팅해놓은 것을 포토그래퍼가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도 스타일리스트가 있을 때는 사진만 찍습니다. 하지만 제 사진을 좋아해 의뢰하시는 분들 중에는 저한테 스타일링까지 모든 걸 맡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제가 스타일리스트 역할까지 맡아 1인 2역을 하기도 합니다.”


김연미 작가는 이미지를 예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재료나 그것을 생산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드 포토그래퍼는 식재료부터 조리된 완성품까지 음식에 관한 모든 사진을 찍는데, 그 전에 이 식재료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생각하면 표현이 달라져요. 이 세상에 똑같은 농산물은 없어요. 농사짓는 방법이나 농부의 가치관, 땀과 열정에 따라 모양이 다 달라요.


가령 가지를 찍는다고 할 때, 이런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무조건 매끄럽고 예쁘게 찍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하지만 친환경 가지는 작고 울퉁불퉁하고 오히려 못생긴 게 특징이잖아요. 이러한 사실을 알면 오히려 이런 모양이 부각되도록 애정을 갖고 찍게 될 거예요. 식재료나 생산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깊이 있는 사진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특별한 삶이 된다


푸드 포토그래퍼라는 낯선 직업을 갖고 있기에 사람들은 김연미 작가에 대해 특별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하기 쉽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연미 작가는 타인의 시선으로 삶의 기준을 판단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고, 가진 것이 없어 절망하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젊은이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푸드 포토그래퍼로서 자리를 잡고, 책까지 내게 된 것일까? 그녀의 스토리는 비범함은 성실함의 다른 이름이며, 최고의 능력은 즐기는 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제가 사진가가 될 거라는 생각은 물론이고 어쩌다 사진을 시작하면서도 유명 작가가 되겠다든지, 내 사진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가게 될 거라든지, 멋있는 스튜디오를 갖겠다든지, 책을 낼 거라든지 하는 계획도 목표도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다 이뤄졌어요.


그냥 사진이 좋아서 시작했고, 좋아하니까 즐겁게 몰입했고, 기록하는 게 좋아서 매일매일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거예요. 저보다 요리 잘하고, 사진 잘 찍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아요. 그렇다고 그분들이 모두 책을 낼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저한테는 오로지 성실함밖에는 없었어요. 그게 가장 큰 무기였던 것 같아요.”


김연미 작가는 이번 책이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남다르지만,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도 이렇게 책을 내고 인터뷰 같은 색다른 경험을 하는 등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누구든 자신처럼 될 수 있다며 먼저 기록해본 자로서 편안하게 자신의 일상을 기록해보길 권한다. 음식도 좋고, 여행도 좋고, 가족도 좋고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관건은 성실함이다. 누구 하나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고, 핑계거리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꾸준하게 1년을 기록해내기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히 할 수 있는 비결은 잘하려고 하지 않는 것. 편안하게 그러나 성실하게 1년을 담아보면 분명히 어떤 결과물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연미 작가는 무엇보다 일기를 쓰면서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알아간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꼽는다. 그녀는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장사를 하는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조리학 전공을 살려 자기 이름을 건 가게로 성공하는 게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그것이 완전히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정말 잘하는 것은 요리가 아니라 그것을 예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저는 예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걸 잘하는 사람인데 계속 장사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못하는 걸 하니까 너무 괴로웠던 거죠. 그럴수록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어요. 하지만 사진을 하면서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어요. 무엇을 꼭 잘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매일매일 사진을 찍고, 그것들을 기록하며 성찰하는 과정이 없었으면 아마도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물질 대신 자유로움을 택한 삶


김연미 작가는 <365일 음식 일기>에 대해 “사계절을 보내며 생명력 있는 식재료들을 나름대로 관찰한 시간의 기록이며,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진가로서의 성장일기이자 결혼 3년차 주부의 신혼일기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독자들은 눈치를 못 챘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눈에는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뒤로 갈수록 사진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확연히 느낀다고 귀띔한다. 또한 음식에 관한 레시피나 식품 정보로 가득 찬 여타의 음식 관련 책들과 달리 하루하루 장을 봐 음식을 만들고, 산책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신혼부부의 소소한 일상을 ‘힘 빼고’ 편안하게 기록했다. 너무 많은 정보들로 가득 찬 책들을 보면서 쉼표와 여백이 있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밤늦게 퇴근하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이들 프리랜서 사진가 부부의 일상은 참으로 여유롭고 평화롭다. 새벽까지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자고 싶은 만큼 늦잠을 잔다. 느지막이 오전 11시쯤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가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싱싱한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하는 게 하루 일과다. 일이 들어오면 일하고 없으면 쉰다.


이들 부부를 보며 혹자는 “팔자 좋다”는 시샘 아닌 시샘을 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김연미 작가는 “저희는 저축이 없답니다”라며 웃는다. 물질로 따지자면 굉장히 위태위태한 상태지만 물질 대신 자유로운 삶을 택했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일을 많이 하고 마감 날짜에 허덕이기보다는 적게 벌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한가롭고도 아름다운 책을 보면서 “아름다움은 늘 세상 너머에 있고, 내 삶은 누추하기 짝이 없다!”는 한탄을 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보잘것없고 누추하게 보이는 삶도 조금만 쓸고 닦으면 얼마든지 근사하고 의미 있게 바뀔 수 있음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냉동실에 얼음을 가득 얼려야 하는 계절이 오고 있다. 책에서 본 팁대로 이번 여름에는 6월 중순까지 생과로 먹을 수 있다는 붉은 산딸기를 넣어 과일 얼음을 냉동실 가득 얼려봐야겠다. 잔에 과일 얼음 하나만 띄웠을 뿐인데 상상만 해도 근사해지는 기분이다.



글 : 이미회(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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