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도시스님 인터뷰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지찬스님의 말, 말, 말
- “‘어라’는 깨달음의 탄성도 되고, 궁금함의 시작도 되죠. 화두의 생명은 의심인데, 의심의 포인트가 ‘어째서’이거든요. 그런 시선을 담고 싶어서 ‘어라스님’이라고 했어요.”
- “모르니까 덤빌 수 있었죠. 무지함이 저를 발전시키지 않았나 싶어요. 번뇌가 있기 때문에 해탈이 있는 거고,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지혜가 생기는 것처럼.”
- “내 밖의 환경이 어렵다 할지라도 내 안의 환경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 지혜로움이지, 밖의 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내 안의 환경마저 어렵게 하는 것은 스스로 모든 것을 망하게 하는 길이죠.”
[프리즘②] 남다른 도시스님의 일상과 수행 이야기
▷ 지찬스님은 누구 : 만화 그리는 스님. 그가 만든 캐릭터이자 자신의 별명이기도 한 ‘어라스님’으로 더 유명하다. 출가 후 우연히 접한 만화책 한 권 덕분에 만화가가 됐다. 미술학원 한 번 다닌 적 없었지만 2012년 성신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딱 두 학기 만화를 배우고 ‘어라스님’의 생활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메신저 이모티콘까지 만들어진 어라스님의 유명세 덕에 제23회 불교언론문화상도 받았다. 팟캐스트와 라디오 진행까지 발을 넓힌 그를 “불교계의 아이돌 스타”라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그에 대한 지찬스님의 반응은 “무슨 소리야! 내 나이가 몇인데!”였다.
▷ 어떤 책을 냈나 : 지찬스님의 두 번째 만화책 <어라의 라이프 카툰>(담앤북스)가 올해 5월에 나왔다. 첫 번째 만화책은 딱 1년 전에 나온 <어라, 그런 대로 안녕하네>(들녘). 커피를 좋아하고, 전기자전거를 타고, 바느질을 즐기며, 드라마 ‘도깨비’에 빠져 사는 이상한(?) 도시스님의 일상 이야기가 담겨 있다. 피식피식 웃으며 따라 읽다 보면, 잠깐 책장 넘기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대목들이 여럿 있다. 한 장의 그림과 짧은 글에 압축돼 있는 수행자의 깊은 고민과 남다른 시선 때문이다. 도시에서 수행하고 만화로 소통하는 남다른 스님의 일기장이자 반성문 같은 책.
▷ 인터뷰 뒷이야기 : 부처님오신날이 일주일 남짓 지난 5월 11일 경기도 하남의 한 카페에서 지찬스님을 만났다. 이 스님, 처음부터 끝까지 참 인간적이다. 스님도 당연히 인간이지만 우리처럼 ‘만만한’ 인간은 아니지 않은가.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한참 깊어지다가도, 생활의 이야기로 나오면 금세 친근하고 평범한 ‘40대 아재’로 돌아온다. 생활과 수행이 하나라는 것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어라스님’ 만화가 그냥 나온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 스님이 단골이라며 데려가 준 맛집의 밀크티는 정말 맛있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어라스님. 이름이 귀엽습니다.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이름인지 궁금합니다.
깨달음의 탄성도 되고, 궁금함의 시작도 되죠. ‘화두’를 갖고 수행처에서 공부하는 스님이다 보니까, 캐릭터 이름에도 의미나 정체성을 담고 싶었어요. 성철 큰스님이 “어째서 삼서근[麻三斤 : 성철스님이 제자에게 내린 화두]이라 했는고”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거기서 ‘삼서근’보다 ‘어째서’를 강조하셨죠. 화두의 생명은 의심인데, 의심의 포인트가 ‘어째서’이거든요. 그런 시선을 담고 싶어서 ‘어라스님’이라고 했어요.
Q "만화 불교가 제 바탕“(224쪽)이라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출가 전부터 만화를 좋아하셨나요?
만화 안 좋아한 사람은 없을 텐데, 제가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출가해서 공부하다가 스트레스 받고 있을 때 막내 스님이 좀 쉬라고 전해준 만화책, 고이즈미 요시히로의 <부처와 돼지>가 저를 만화로 이끌게 된 것이죠.
Q “대중의 마음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힘”(6쪽) 때문에 만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책에도 쓰셨더군요. 그런데 배운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요. 재능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인데, ‘아, 나도 정말 만화를 그릴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선 순간이 있었나요?
확신은 없었어요. 고이즈미 요시히로의 그림이 이등신 캐릭터에 배경도 채색도 별로 없는 간단한 그림이라, 사실 그것만 보고 오판한 거죠.(웃음) 모르니까 덤빌 수 있었죠. 무지함이 저를 발전시키지 않았나 싶어요. 번뇌가 있기 때문에 해탈이 있는 거고,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지혜가 생기는 것처럼.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과정은 어렵고 그만두고 싶었죠. 한계가 왔을 때 더 많이 사유를 했던 것 같아요. 지리한 시간을 넘어가다 보니까 그릴 수 있게 됐어요. 재능보다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끝까지 끌고 갈 수만 있다면 누구나 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설마 불교 웹툰에도 악플이 달릴지 궁금합니다. 혹시 있다면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궁금하고요.
인터넷에 만화를 올리면 ‘그거 하려고 출가했냐’ 하는 식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죠. 처음 그런 댓글을 봤을 때는 충격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웹툰 사이트에 만화를 올리는 걸 재고하게 됐어요. 잘못하면 종교 성토의 장이 될 것 같아서요. 제 블로그에만 올리고 SNS에 연동만 해도 가끔 그런 반응이 있죠. 처음엔 너무 힘들었죠. 그런데 불교에서는 선(善)인연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악(惡)인연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악플도 관심이고, 저하고의 인연이죠.(웃음)
Q 사실 어려운 메시지를 쉽게 전하기 위해 만화라는 형식을 택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 흔한 ‘학습만화’들도 그렇고요. 그런 만화들과 차별성을 갖기 위해 어떤 점을 신경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생활만화를 그리게 된 거죠. 일상 가운데 메시지를 녹이는 거죠. 학습만화는 지식을 전달하는 건데, 제가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었죠. 제가 지식이 많았으면 학습만화처럼 돼버렸을 거니까요.(웃음) 제가 원래 글 많은 걸 싫어했어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전할까 하다가, 제 모습을 그려보자고 생각했죠.
Q 이번 책에는 사이사이 ‘그림 시’가 들어 있습니다. 그림과 함께 한 줄의 짧은 시를 써주셨는데, 저는 “올려다보게 한 후 내려앉은 벚꽃잎”(67쪽)이란 시가 참 좋더라고요.
하이쿠를 원래 좋아했어요. 흉내를 좀 내본 거죠. 글 실력은 없어요. 법보신문에 이렇게 짧은 ‘그림 시’를 1년 동안 매주 연재했어요. “올려다보게 한 후 내려앉은 벚꽃잎” 같은 시는 자주 나오지 않더라고요.(웃음) 벚꽃이 나무 위에 있을 때 화려하잖아요. 다른 꽃들은 떨어지면 지저분한데, 벚꽃은 떨어져도 예뻐요. 수행자는 자기 역할을 했을 때 아름답죠. 그럼 사람들이 올려다보고 칭송하게 돼요. 그런데 수행자가 땅에 내려와서 대중의 시선과 맞춰졌을 때도 아름답게 보여야 할 것 같아요.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고 제 역할에 대해 생각하면서 시를 썼습니다.
Q 어라스님의 이야기 전반을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독자들이 이 책 한 권을 쭉 읽고 나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주길 바라시나요?
최대한 긍정적인 정서를 담은 ‘바라봄’. 방향성의 문제가 아니라 바라본다는 것 자체로 완성이 되는 거죠. 초반부터 그런 시선을 전하고 싶다고 마음먹고 그린 건 아니었는데, 제가 그런 시선으로 한 편 한 편 그려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시선이 주제가 된 것 같아요.
Q 요즘 젊은이들이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만화와 방송, 상담 등을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을 많이 하시는데, 그들을 위해서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열심히 합심해서 부당한 정치환경을 개혁했어요. 그런 모습을 내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내 안의 부당함, 내 안의 게으름, 내 안의 어리석음을 충분히 개혁할 수 있단 말이죠. 내 안의 환경을 바꿔가는 것이 밖의 환경에도 영향을 주거든요. 원망하고 질시하고 탓하기만 해서는 내 안의 환경을 못 바꾸는데다가 밖의 환경도 못 바꿉니다. 내 밖의 환경이 다소 어렵다 할지라도 내 안의 환경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 지혜로움이지, 밖의 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내 안의 환경마저 어렵게 하는 것은 스스로 모든 것을 망하게 하는 길이죠.
많은 시선으로 두루두루 살필 수 있는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번뇌와 욕망에 가득 차 있을 때, 그것이 변화하면 그 낙차가 오히려 큰 에너지를 줄 수 있어요. 번뇌와 욕망이 클 때, 그것을 전환해줄 시선의 변화만 있다면 그 번뇌와 욕망이 깨달음으로 가는 큰 낙차를 줍니다. 그래서 꾸준히 시선을 옮겨가면 충분히 큰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올해 부처님오신날이 일주일 남짓 지났습니다.(5월 11일에 인터뷰를 했다) <어라 그런 대로 안녕하네>에 “붓다께서 제게 맴매(경책)을 하러 오신 거라고 매년 느낍니다”(251쪽)라고 쓰셨더군요. 올해는 어떤 맴매를 맞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수행자로서 얼마나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제 안에도 좌우가 있고 선택이 있고 판단이 있거든요. 제가 어떤 사람들에게 잘못됐다고 말을 하지만, 이해하고 끌어안고 사랑으로 그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큰 그릇과 기운이 제게 있는가 물었어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랑을 얼마나 드리우고 있는가. 그런 것을 보는 올해였어요.
Q 종교인으로서, 세월호 이야기, 광화문 촛불 이야기 같은 것을 그릴 때는 조심스럽지 않았나요?
모든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으려면 공부 이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SNS는 현실세계를 끌고 들어와서 상당히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큰 장이잖아요. 제가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해 공감해주지 않으면 제가 만화 하는 사람이 맞는가 싶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상한 댓글들이 엄청 달렸죠. 방송 할 때도 세월호 배지를 달고 하니까 ‘저 스님 못 나오게 해라’는 의견도 막 들어오고. 큰 부담은 없었고, 팬이 떨어지더라도 이 역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뿐이에요.
Q 여행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책에 여행 이야기도 많이 있던데요, 수행자의 여행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합니다.
만화를 하면서 여행작가들을 많이 봤는데,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글로 쓴 걸 보고 ‘정말 그런가? 고될 것 같은데 그게 되나?’ 싶어서 저도 한번 시작해봤어요.(웃음) 전기자전거를 가지고 후배 스님 한 분하고 제주도 일주를 했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목적을 둔 것도 아니고 날짜를 정하지도 않았고, 그저 가는 길 따라 가보자는 것뿐이었거든요. 그 길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보게 되더라고요. 굉장히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우리에게 도시의 일상이 있듯이 그들에게는 제주의 일상이 있을 건데, 여행 중에 본 것이기 때문에 예쁘고 풍요롭고 여유롭게 봤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겠죠. 여행에서 돌아와서 생각하니까, 우리의 ‘죽을 맛’을 여행자들은 편안하고 신선하고 활력 있게 볼 수 있겠더라고요. ‘아! 내 마음의 문제가 제일 크구나.’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로 돌아갔어요. 풍광에도 익숙해지고 사람들의 표정에도 익숙해질 무렵에 내 안으로 들어오는 시선이 있더라고요. 여행은 시선을 내 안으로 드리우게 하는 발걸음이 아닐까 싶어요.
Q 혹시 괜히 만화를 시작했다고 후회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초반에 후회를 많이 했죠.(웃음) 재미있자고 하는 건데 일에 매일 때. 그리고 이걸 유지해야 하잖아요. ‘내가 이걸 몇 살까지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한번 왔어요.(웃음) 처음엔 이런저런 걱정이 무거웠는데, 지금은 ‘아 내가 이렇게 역할하려고 인연지어졌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Q 반대로 만화를 그리기 참 잘했다고 생각될 때는 또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우선은 책이 나올 때요. 글을 잘 못 쓰는 저 같은 사람이 책을 낼 수 있었다는 건 캐릭터의 힘이 커요. 전달력이 좋죠. 제가 얘기하면 사람들은 ‘스님이니까’, ‘나이가 저러니까’ 하고 판단하잖아요. 캐릭터는 그런 것들을 걸려주는 역할을 해요. 캐릭터의 힘을 느낄 때 참 만화 하기 잘했구나 하고 느끼게 되죠. 그리고 많지는 않아도 제 만화를 좋아해주고 연락해주시는 분들이 있을 때 고맙죠.
Q 만화에 팟캐스트에 라디오 방송 진행까지 하셨습니다. 혹시 새로운 도전을 또 계획하고 있나요?
제가 도시 출신이다 보니까 조그마한 텃밭도 가꿔본 적이 없어요. 선원에 다닐 때 어른들이 시키면 감자 캐고 고구마 캐는 건 해봤는데. 제가 직접 농작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걸 좀 공부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곧 배우려는 게 하나 있는데 다음 책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내용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웃음)
글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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