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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29. 2017

공기도미노 최영건 "작가조차 결말을 모른다는..."

저자 최영건 인터뷰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열다섯 번째 소설이 출간됐다. <공기 도미노>(민음사, 2017)는 주인공 ‘연주’를 중심으로 열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일상을 침범하고 침해당하며 벌어지는 연속성에 주목한 작품이다. 서로가 서로의 연결고리가 된 인물들은 때로는 원치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책의 제목인 <공기 도미노>는 이들이 보여주는 파장의 연속을 의미한다.


<공기 도미노>의 최영건 작가는 스물일곱 살의 대학원생이다. 2014년 문예지 <문학의 오늘> 신인문학상에 단편 ‘싱크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경장편 분량의 <공기 도미노>가 최영건 작가에게는 본격적인 첫걸음인 셈이다. 퇴고 과정에 오랜 공을 들였다는 최영건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결말보다 과정에 주목해야 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이 인물들의 관계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말을 그릴지는 저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는 거예요. 결말이 제시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넓혀나가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고 싶었어요. 도미노는 연속되는 과정을 압축하고 있는 단어잖아요. 인물들의 관계 역시 계속해서 서로에게 파장을 미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속 관계에 주목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퇴고 마지막까지 인물에 대한 고민… 한 성별에 치중된 서사 경계


Q 첫 장편이에요. 경장편. 결과물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일단 기뻐요. 단편들을 썼을 때와는 다르게 더 만족스러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기자 : 어떤 면에서요?) <공기 도미노>가 원고지 500매 정도의 분량인데, 경장편이라는 분량에 애착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이 분량의 소설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만족감이 있어요.


Q 읽으면서 느꼈는데,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았어요. 함축적인 의미의 문장들이 많았던 반면, 비교적 문장의 길이가 짧고 호흡도 빨라서 리듬감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의도한 부분이었나요?


네. 맞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비유라던가, 직접적인 감정묘사를 간략하고 명료하게 최대한 적확한 단어를 찾아서 압축적으로 제시하려고 해요.


Q 인물 설정에서의 수정은 없었나요?


크게 한 번 정도의 수정이 있었어요. 그 수정이 저에게는 인상적이었어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처음에 남성으로 설정되었던 캐릭터를 퇴고의 마지막 단계에서 여성으로 변경했어요. 극중 ‘소현’의 딸로 등장하는 인물이에요. 이 인물이 여성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미 여성 인물 수가 많을 것 같아서 조금 고민을 했거든요. 남녀 성비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나, 그 장을 이끌어가야 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아들로 썼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 자체가 남성 중심의 서사에 워낙 익숙해져 있다 보니 저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낀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좀 더 자유롭게 써야 후회로 남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에 수정을 했죠.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만족스럽고요.


Q 굉장히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소현의 변화가 인상 깊었는데요. 손님을 앞에 두고 테이블에 맨발을 올려두는 등 기이한 행동을 일삼던 1장 소현은 윤복자를 홀로 보살폈던 6장에서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소현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소현은 가족 내에서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기본적인 합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거죠. 결혼을 했으면 불륜을 저지르면 안 되고, 신의를 저버리면 안 되고 어떤 행동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가치를 맹신하는 사람이에요. 1장에서는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에 비해 실천하는 행동이 파격적이고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연주의 눈에는 뒤틀린 인물로 보이는 사람이죠. 사실은 굉장히 상처받은 인물이에요. 

반면 소현의 남편인 원균은 ‘인간관계는 거리에서 출발한다’라는 그럴듯한 자기변명으로 소현이 자기를 몰아붙이는 것을 방어해요. 소현은 그런 자기방어적인 남편의 태도에 많이 지쳐 있어요.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니’라는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시아버지 현석에게도 지쳐 있고요. 두 사람이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이고 상식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려는 인물이 되어버린 거죠. 절박하고 광기 어린 인물이에요.

후반부에 가서, 우울에 잠식된 삶을 살기 싫어했던 현석이 윤복자를 등한시하다가 결국 야외활동에서 들쥐 배설물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잖아요. 소현의 눈에는 그것이 현석이 저지른 또 다른 외면의 발현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자신이라도 윤복자에게 더욱 관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고, 정의에 집착하고 선한 행동에 집착을 하게 된 거겠죠. 그것에 집착한 나머지 놓치는 게 많은 사람이지만요. 이 세상에서 옳은 것을 지켜나가는 게 힘드니까, 지키려는 사람은 계속 망가지고 잃게 되고 다치게 돼요. 그런 사람들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들을 쉽게 단죄하고 싶지 않아요. 그 행동이 또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힌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미워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Q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가 등장하다 보니 각 인물 설정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특별히 더 신경을 썼던 부분이 있나요?


세대의 전형적인 인물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형화된 틀에 갇히지 않은 인물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노인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형성과 비전형성의 조합을 꾀했던 것 같아요.


Q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수직적 관계에 가까운 모습들이에요. 각기 다른 인물들과 각기 다른 관계들을 조명하는 객관성도 눈에 띄었어요.


‘수직적 관계’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요. 특히 연주와 윤복자는 외조모와 손녀의 관계다 보니 수평적이기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적인 위계가 아니더라도 건물주와 세입자(소설 속 연주는 외할머니인 윤복자 건물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기자 주)의 관계도 발생하니까요. 낯설고 섬뜩한, 때로는 경계적인 위계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개개인의 위계뿐만이 아니라 5장에서 드러나는 마트 문제처럼, 개인과 마트 간에도 권력관계가 드러나요. 사회 구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그리려고 했어요.


“나는 독자의 모습에서 출발한 작가… 텍스트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Q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과연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어떤 연결점을 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들 사이의 혐오와 우울, 수치심들은 통해 우리 사회의 어떤 단면을 대변하고 싶었을지 궁금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이 인물들의 관계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말을 그릴지는 저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는 거예요. 결말이 제시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넓혀나가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고 싶었어요. 도미노는 연속되는 과정을 압축하고 있는 단어잖아요. 인물들의 관계 역시 계속해서 서로에게 파장을 미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속 관계에 주목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문학의 오늘’ 신인작가상 수상 당시, ‘집요하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객관화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공기 도미노>를 읽고도 느꼈던 부분이에요. 평소에 상황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이 작품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근본적으로는 소설 속 인물들 모두 저로부터 나온 거니까 어느 정도는 저를 닮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두려고 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부터 거리를 두고 싶었어요. 소설과도 거리를 두고 싶었고요. 어쩌면 소설이라는 방식도 일종의 거리두기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얻어지는 또 다른 거리가 있는 것 같거든요. 본인이 겪었던 괴로운 상황으로부터 거리를 둬야 그걸 회고할 수 있잖아요. 거리를 두지 못한다면 집착하게 되거나 여기에 갇혀 있을 텐데, 책으로 받아본 소설은 저와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나선 책이 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둘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책에 허희정 소설가가 쓴 ‘작품 해설’이 함께 실려 있어요. 어떻게 보셨어요?


저와 굉장히 가까운 언니예요. 저와 같이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오고 연세문학회라는 동아리, 동 대학원에 함께 재학 중이에요. 여러모로 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써준 해설이다 보니 보는 것만으로 ‘우와, 우리가 이런 걸 해냈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웃음) 해설 내용도 좋았어요. <공기 도미노>가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만을 조명하고 있지 않은데 그 특징을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일관적인 해설을 해줬더라고요. 그게 고마웠어요. 해설에서 ‘이 작품의 결론은 무엇이고 주제의식은 뭐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소설의 내용을 펼쳐 보이는 해설을 썼더라고요. 고마웠어요.


Q 차기작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앞서 남성 중심의 서사에 익숙해져 있던 있었다는 이야기를 잠깐 하셨는데, 차기 작품에서는 여성 중심의 서사를 고려하실 생각인가요?


여성 중심의 서사 혹은 페미니즘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에요. 적어도 한 성별이 서사를 주도하게 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구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요. (기자 :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요?) 출판사에서 단편집을 생각해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단편들도 애착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쓰게 된다면 경장편 소설을 또 한 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 분량에 대한 애정이 커서. (웃음)


Q <공기 도미노>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가진 작가일까, 궁금증이 컸거든요. 인터뷰를 하면서 반대로 어떤 성향을 가진 독자일지 궁금해지기도 해요. 최근 재밌게 읽은 책 있으세요?

제가 독자로서 어떻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작가로서 어떤지가 전제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어떤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작가이기보다는 그냥 ‘텍스트라는 건 정말 아름답다. 독서라는 행위가 너무나 즐겁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는 작가라고 생각하거든요. 스스로가 ‘독자에서 출발하는 작가’라는 생각도 많이 해요. 책을 가려 읽는 독자이기보다 종이 위에 글자가 인쇄되어 있고 문장이 나열되어 있고 이런 것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독자이고요. 독자로서 느낀 감각을 글쓰기로 연장시키려는 독자이자 작가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정영문 선생님의 <오리무중에 이르다>(문학동네, 2017)를 재밌게 봤어요. 작가로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소설가와 작품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정영문 작가님을 보면 선생님 자체가 작품인 것 같아요. 여러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분이 홍보에 대처하는 방식만으로도 젊은 작가들에게는 고민할 만한 지점을 주세요. 선생님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영문 선생님의 작품은 항상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Q 많은 독자들이 <공기 도미노>를 읽으실 텐데요. 그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길 원하시나요?


일단은 표지가 예뻐요. (웃음) 당연히 제 글을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은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게 솔직한 제 입장이에요.
 





※ 팟캐스트 [생활밀착형 전방위 문화토크 286](이하 문화토크 286)과 [북DB]가 함께하는 콜라보레이션. 그 세 번째 책은 최영건 작가의 <공기 도미노>입니다. 최영건 작가와의 인터뷰 뒷이야기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문화토크 286]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 관련기사 보기



글 : 임인영(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영상 : 류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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