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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29. 2017

차덕후 김준선 “라면 먹고 버티며 자동차와 함께..."

저자 김준선 인터뷰 

한 꼬마 사내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스케치북을 온통 차 그림으로 도배했다. 지나가는 차를 보고선 서툰 발음으로 차 이름도 줄줄 읊었다. 같이 차를 좋아하던 친구들이 공룡이나 로봇으로 관심사를 넓혀갈 때도 아이는 줄곧 ‘차바라기’만 했다. 그런 아이를 보고서 아이의 아버지는 “철이 덜 들었다”고 타박했다.


바로 말하면 철이 덜 든 게 아니라 철이 빨리 든 거였다. 아이는 언제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어릴 적에 장래희망을 ‘자동차 디자이너’로 굳혔다. 당연하다는 듯 대학도 산업디자인학과가 있는 미대에 들어갔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운전면허도 땄다. 운전학원에 가서 배우지도 않았다. 바로 면허시험장에 가서 단번에 붙었다.


미대를 졸업하고서는 결혼을 한 채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자동차회사의 디자이너가 되려면 유학 정도는 다녀와야 했던 때다. 집에서 등록금은 대줬지만 생활비는 온전히 부부 둘이서 감당해야했다. 평일에는 식당 마감 알바를 했다. 산처럼 쌓인 접시를 닦았다. 주말에는 중국집 배달도 하고 전단지도 돌렸다. 계속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힘에 부쳤다.


어느 날 꾀를 부려 근처 책방에 들어가 다리쉼을 했다. 이제 다 큰 어른이 된 차바라기의 눈에 실내주차주택(개러지하우스)을 다룬 잡지가 들어왔다. 잡지에는 거실에 차를 세워두고 밥을 먹는 집, 욕조 옆에 차가 있어서 샤워하다가 차도 씻기는 집까지 별의별 집이 다 나왔다. ‘이런 라이프도 있구나!’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충격을 받았던 그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선 꿈을 꿨다. ‘언젠가는 나도 차와 한 공간에 머무는 집을 짓고 싶다!’고.


하지만 현실은 꿈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다. 고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가 몸을 뉘일 그의 신혼집은 옆집 핸드폰 진동소리에 잠이 깨고, 윗집에서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낡은 목조연립주택이었다. 겨울이면 전기히터를 아무리 틀어도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결코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꿈이었다. 그렇지만 차바라기는 포기하지 않고 마음 한 구석에 꿈을 고이 간직했다.


그로부터 9년 뒤, 차바라기는 기어이 꿈을 이루고야 말았다. 실내주차주택을 지은 것이다. 이제 그도 애마를 보면서 밥을 먹고 있다. 차바라기, 요즘 말로 ‘차덕후’로 불리는 김준선의 실제 이야기다. 그는 어떤 땀과 열정을 보태 꿈을 현실로 이루었을까. 5월 11일, 서울 청담동의 한 가구점에서 만난 김준선 저자는 실내주차주택을 짓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 <차덕후, 처음 집을 짓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열정 한 조각을 나눠주었다.



ⓒ앵글북스


산 넘어 산이었던 ‘개러지 하우스’ 짓기…땅 찾기부터 가족 설득까지


“일본에서 구직활동을 할 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와서 취업이 잘 안 돼 디자인 외주회사에 들어갔어요. 주문받아서 기존의 디자인만 조금 바꾸는 일이어서 재미가 없더라고요. 내가 이런 일 하려고 일본까지 와서 아내를 고생시키고 있나 싶어서 한국에 돌아왔어요. 아내가 임신을 하기도 했고요.”


한국에 와서도 현대기아차그룹에 원서를 내며 직장을 구하던 김준선은 곧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과는 멀어진다. 영국 BBC에서 발행하는 자동차 잡지 <탑 기어(Top Gear)> 한국판의 에디터가 된 것이다. 일본에 있을 때 자동차파워블로그 ‘모터블로그’에 일본 현지 자동차 소식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김준선은 블로그와 <탑 기어>에서 글을 쓴 경험이 집짓기 과정을 책으로 엮는 데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블로그를 했던 이유가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일들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서였습니다. 집 지을 때는 농도가 너무 짙더라고요. 귀한 정보를 포스팅만 하기엔 아까워서 진득하게 책으로 한번 남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너도나도 지어진 집에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니 주변에서 집을 짓는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김준선은 책에 땅을 찾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소개하고 있다. 부동산 사이트를 즐겨찾기 해놓은 뒤 평소 땅 찾기 놀이를 즐기라는 조언이다.



“사실 집짓기는 아버지의 꿈이셨어요. 10년도 훨씬 전에 아버지가 은퇴하고 집 짓고 살고 싶다고 땅 알아보러 다니실 때 몇 번 따라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처음 ‘단독주택이 이런 거구나, 땅은 이렇게 알아보는구나’를 어렴풋이 알았어요. 그 뒤로 2011년에 한국에 돌아와 살던 아파트가 너무 후져서 반대심리가 생겼어요. 틈날 때마다 법원 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전국에 경매로 나온 땅들을 봤어요. ‘여기는 앞에 강이 있네, 여기는 산 중턱이어서 불편하겠다, 여기는 도심 한복판인데 왜 이렇게 싼 거야?’ 이러면서 놀았죠.”


땅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넘을 산이 있다. 바로 가족들의 동의다. “개러지하우스를 짓겠다”는 말에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을까. 김준선은 “개러지하우스가 문제가 아니라 집을 짓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며 힘들었던 여정을 돌아봤다.


“아내나 어머니나 당연하다는 듯 아파트를 생각하더라고요. 아내가 아파트를 원하는 건 교통이나 상가, 공원 등 아파트 단지가 지닌 외부 환경 때문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 모든 인프라를 갖춘 단독주택 지어줄게’ 하고 큰소리 쳤죠. 어머니는 설득이 더 힘들었어요. 그냥 혼자 사시고 싶다는 거였으니까.”


김준선이 지은 집은 건물 한 채에 내부 공간이 두 가구로 완전히 분리된 듀플렉스 구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겠다는 어머니를 “우리 안 놀러갈 거다”라고 반협박으로 설득한 뒤 고민 끝에 내놓은 안이었다. 이로써 그는 어머니와 공간은 공유하지만 생활은 나뉜, 단독주택을 짓게 되었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룬 셈이기도 하다.
 

ⓒ김준선



체력적, 경제적, 정신적 3중고 겪은 집짓기 과정


책은 이후 라면 먹고 버티며 집을 지었던 8개월 간의 좌충우돌을 그대로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 중 위기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우선 처음 설계하면서 어머니와 저, 아내랑 의견충돌이 심했을 때요. 그땐 진짜 우울했어요. 빨리 진행해야 하는데 건축가가 어느 정도 해놓으면 어머니가 뒤엎고, 어떤 날은 아내가 바꾸자고 하고…. 두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주변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한 마디씩 하는 ‘오지랖’이 부담이 컸어요.


두 번째는 책에도 썼지만 건축 말미요. 체력적, 경제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건축현장을 챙겨야했어요. 건축현장도 챙겨야 할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잖아요. 실제 만드는 사람들은 아저씨들이니까 아저씨들께 귀찮은 부탁도 드릴 수 있을 만큼 친해져야 하죠. 게다가 돈만 내면 알아서 해주는 게 아니거든요. 직접 사야 될 게 정말 많아요. 수전, 스위치, 전등 하나하나까지. 제가 그걸 사놔야 일이 되니까 매일 연락과 문자메시지가 수십 통씩 왔어요. 그럴 땐 회사 눈치도 보이고, 돈은 떨어졌는데 계속 사오라니까 미치겠고…. 근데 저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집 지으신 분들도 완공 한 달 전쯤인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집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묻어있다”


김준선이 집을 짓기 시작할 때 손에 쥐고 있던 종자돈은 3억 2천만 원이었다. 그 돈으로 경기도 용인에서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더라도 빠듯한 예산이었으리라. 김준선이 집을 지은 과정은 그가 ‘융뉴기’라고 부르는 그의 애마, S660의 제작 과정과 묘하게 닮았다.


“혼다에서 그 차를 만들 때 악조건이 많았어요. 2인용 오픈카이면서 경차여야 했거든요. 경차니까 개발비도 많이 투입할 수 없었죠. 들어갈 건 들어가고 뺄 건 빼면서 고군분투한 스토리가 있거든요. 차를 타보면 그 배경이 느껴져요. ‘아, 여긴 이래서 뺐구나.’ 되게 허접한 부분도 있는데 대신에 훨씬 더 즐거운 부분도 있으니까 허접한 부분도 용인되죠. 한정된 재화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낸 과정이 감동적인데 우리 집도 그렇게 지었어요. 뺄 건 빼고 설계보다 수준을 낮춘 부분도 있지만 대신 창호나 단열처럼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은 확실히 했어요. 어려운 게 해결될수록 재미있잖아요. 퍼즐 맞추기처럼….”


악전고투 끝에 지은 집에 살면서 “모든 게 다 좋다”는 김준선이 집을 짓고 싶은 독자들께 도움말을 남겼다.


“일단 콘셉트를 확실하게 하라는 겁니다. 콘셉트가 확실하면 아쉬운 점이 있어도 콘셉트를 위한 아쉬움이니까 납득이 되고 집에 대한 애착도 더 늘어나 그로 인해 삶도 더 화사해지는 것 같거든요.”


마지막으로 김준선은 ‘사는(buying)’ 집과 ‘사는(living)’ 집에 대한 생각을 덧붙였다.


“집을 사고팔면서 노후를 대비하는 시대도 이젠 끝났잖아요. 아직 가능한 지역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걸 하려면 또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이사 계속 다니고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한 군데 딱 자리 잡고 안정적으로 사는 게 훨씬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때도 일본에 살았었는데 그때 느낀 게 사람들이 한 집에 굉장히 오래 산다는 거였어요. 어려서 산 집에 할머니가 되어서도 사는 거예요. 집에 그 사람의 인생이 묻어 있는 거죠. 집뿐만 아니라 옆집 사람과의 관계, 집 앞 조그만 가게와의 관계까지 이어지는 게 좋아 보이더라고요. 저도 이 집에 오래 살면서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앵글북스


글 : 신정임(북DB 객원기자)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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