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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31. 2017

삐딱한 미학자 양효실“위험한 지점에 서야 보이는 진실"

저자 양효실 인터뷰 

1:99의 사회에서 승자는 소수고 패배는 다수이며, 불행과 고통은 삶의 필수 성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이 세상에서 어떻게 패배자로 살아갈지, 불행과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이겨낼지를 알려주는 책이나 스승은 별로 없다. 힘내서 하루빨리 ‘승자가 되라’고 채근하거나, 덧난 상처에 ‘힐링’이란 값싼 처방을 내리기 일쑤다. 이런 세상에서 미학자 양효실은 밑바닥의 삶을 주목하게 하는 스승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상처가 우릴 성장시킬 거라고 말해주는 스승이다. 그녀가 지난 4월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대학에서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그녀의 미학 수업을 엿들을 기회이기도 하다. 미학자 양효실의 시선은 음악, 시, 미술작품, 영화와 같은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의 법칙’에 맞춰 살아가며 ‘어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것과 반대로 가라고 이야기 한다. 락밴드 라몬스와 너바나의 노래, 김행숙, 김언희, 김소연의 시,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 영화 ‘마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언급된다.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을 출간한 양효실을 5월 13일 서울대학교에서 만났다. 약속장소인 카페에서 기다리던 기자를 향해 장난기 어린 톤으로 인사를 건네오는 그녀. 인터뷰 시간 동안 그녀는 세상을 향해 돌격하는 락커 같았고, 때로는 상처를 위로하는 시인 같았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대면 인터뷰 이후 한 차례의 이메일 교환을 통해 내용을 보강했다.


“‘꼰대’, ‘개저씨’란 말…어리고 약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하는 이에 대한 혐오”


Q 책 앞머리에 20년 전 고등학교 강사 시절에 한 학생으로부터 “너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다”라는 내용의 쪽지를 받았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요. 이때 받은 상처가 존재 이유이자 에너지가 되었다고 쓰셨습니다.


그 날 이후 ‘고등학교 선생은 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 혹은 반작용이 생겼어요. 교과를 가르치는 것은 (내게 쪽지를 보낸) 그런 아이들과 말하는 데 필요한 신어(新語)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아직도 어떤 학생이 내게 쪽지를 보냈는지가 궁금해요. 늘 제 안에서는 ‘포커스아웃’된 뒷모습으로 교실 구석에 살아서 제가 살아가는 내부를 계속 의심하게 만드는 축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그 학교 일진마저도 저의 말하기를 좋아했는데, 거기에 증오심을 드러낸 ‘말’이라는 점에서, 절대로 제 편으로 넘어올 수 없는 타자의 ‘나타남’이라는 점에서요. 지금은 안 보이지만 결국 보이게 될 악, 혐오, 분노, 고통, 차이들이죠. 요즘도 그런 경험은 계속 일어나고 위험한 지점에 서야 보이는 진실에 예의를 표하려고 합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인지, 우리에도 불구하고 차이인지는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 사이에 ‘잘’ 있으려고 합니다.


Q 이번 책은 장마다 염두에 두고 쓴 학생들이 있다고요?


제 수업이 학생들 사이에서는 극단적인 호불호로 나뉜다네요. ‘양 선생이란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내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다’,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등등. 그렇다 보니 수업이 끝난 뒤나 기말과제를 통해 저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폭로’하는 학생들이 출현하곤 해요. 또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몇 년 동안 그 학생들을 계속 보면서 좀 더 입체적이고 지속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돼요. 과연 우울증을 앓지 않는 이가 있을까 싶게 요즘 많이들 우울증을 앓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것을 끌어안고 사는 방법에서 차이가 많이 있어요. 다른 삶들이니까요.


이 책에 익명으로 등장하는 학생들은 모두 제가 만난 학생들이고 많은 경우 배경으로 들어와 있어요. 그들에 대한 책임감이 이 책의 동기이기도 했어요. 저처럼 많은 사람의 비밀 이야기를 듣게 되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혹은 겉보기의 삶이 ‘편평한 이미지’라고 생각하게 돼요. 일종의 고통의 보편성인 것인데요. 고통을 감추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런 맑고 예쁘고 화사한 이미지를 동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괜찮아, 모두 아파’, ‘그러니까 네가 아픈 것은 당연한 거야’, ‘단 그 고통의 보편성이 아니라 개별성 혹은 특이성을 네가 찾아내 봐’ 이런 식으로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인 그 혹은 그녀의 경험에 대해 말할 권리나 책임을 강요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미학적 시선을 갖고 그들이 제게 들려준 이야기들을 버무려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Q 보통은 어른이 되는 것을 성장이라고 보는데, 선생님께서는 ‘성장이란 어른과 반대로 가는 것 그들을 딛고 가는 것’이라고 쓰셨어요.


뭐, 그게 요즘 세간의 분위기이기도 하지 않나요? ‘꼰대’, ‘개저씨’ 같은 말들이 함축하는 것은 어리다는 이유로 약하다는 이유로 아이, 여자, 직원에게 함부로 말하는 이에 대한 혐오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용기를 잃은 교장 선생님, 목사님, 사장님, 교수님, 아버지 등등의 사회 인사들이 하는 말은 너무 지루하고 자기확신 그러므로 자기혐오뿐인 문장으로 되어 있잖아요.


유튜브에 요즘 사람들은 모르는 샹송가수인 자크 브렐이 유년기, 젊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 있어요. 그의 노래 중 한 문장을 제 책에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만, 자크 브렐은 제 책이 희구하는 인간 유형에 거의 일치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가 이야기하는 ‘기다리지 말고 뛰어들어라’, ‘실수를 하고 미쳐라’라는 말은 현재를 긍정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죠. 제가 너무 피곤할 때 그의 시적인 문장들과 공연을 찾아보기도 해요. 그의 미소, 담배 피우는 모습, 긍정문을 좋아합니다.




“약자를 혐오스럽게 만들고 비웃는 코미디가 너무 많아서 불만”


Q 이 책은 도덕을 부정하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큰데요.


<베즈 무아>라는 소설을 쓴 비르지니 데팡트라는 3세대 페미니스트가 있어요. 중산층 부르주아의 담론이 ‘강간이 두렵다면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면, 데팡트는 다시 길로 나가야 한다고 해요. 기존의 이론에 자신의 경험을 수렴하게 하는 것이 보편주의라면, 3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발명해 내고자 했어요. 비르지니 데팡트는 그것을 발견했고요. 제 책에도 그 맥락이 조금 있어요.


Q 3세대 페미니즘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요.


후기구조주의가 그렇듯 포스트페미니즘이나 3세대 페미니즘도 그런 상황이에요. ‘아직 근대도 오지 않았는데’, ‘아직 여성 주체도 없었는데’라는 게 래디칼 페미니즘의 현장성과 연동하는 것 같아요. 문화적 맥락에서 현재 ‘넷페미’들이 주도하는 페미니즘이 미국 1970년대의 풍경이라면 3세대 페미니즘은 90년대의 페미니즘이에요. 이런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우리의 포스트모던한 조건인 듯도 합니다.


Q 거칠고 힘든 삶에 대항하는 전략으로 ‘아이러니’를 꼽으셨어요.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러니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는 몰입하되 몰입하지 않는 것이라서 두 개의 관점 혹은 입장을 동시에 견지하는 것인데요. 진지한데 진지함에 몰입하지 않는 것, 진지한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죠. 웃지 않는 사람들을 약간 비스듬하게 보면 되게 웃기는 사람이거든요. 자신이 하는 말이 녹음기에서 나오는 그렇고 그런 말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과 선택을 통해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거죠.


집에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청소를 하거나 밀린 일을 할 때 사람들의 말하기의 천편일률성에 놀라고는 해요. 엄청 진지한 사람들이 오탈자 하나 없이 가족, 친구, 믿음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끔찍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요. 자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만. 유머가 없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좀 지루하잖아요? 자기에게만 몰입해서는 누가 손에 쥐여준 대본을 암기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그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읊는 이들을 보는 것은.


Q 우리나라의 경직된 분위기에선 아이러니가 쉽게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있기는 있어요. 아니 많아요. 약자를 혐오스럽게 만들고 비웃는 코미디가 너무 많아서 불만이에요. 또, 그 반대편에서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이 아이러니 상황을 만들어내는 현상도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나아지고 있는 면도 분명히 보입니다. 먹고 살기에 바빴던 사람들, 삶의 안정 혹은 안전을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는 이들은 비틀기, 가벼워지기, 비우기의 전략을 잃어버리죠.


오늘도 ‘무엇이 대학생을 힘들게 하는가’라고 적힌 대자보의 질문에 ‘공부, 경쟁, 사는 거’라고 쓰고 있는 학생의 뒷모습이 참 아프게 느껴졌어요. 그 학생에게 “군, 내 책을 읽어보게, 거기네 자네가 모르는 진리가 담겨있다네, 군” 하면서 책을 팔 수는 없잖아요? ‘무엇이 대학생을 웃게 하는가’란 질문은 왜 붙어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도 해보았고요. 질문이 달라져야 할 필요도 있지요. 저 질문이 우리의 감각을 자기계발, 성공으로 밀어 넣고 있기도 하잖아요.




“미학에 접근하는 법?…당장 옆에 있는 책을 집어 드는 수밖에”


Q 인디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발견한 좋은 인디음악이나 즐겨 읽는 시인이 있나요?


수업에서 진이 다 빠진 날은 유튜브에서 음악을 골라 들으며 멍 때리기에 들어가요. 작년에 우연히 발견한 ‘pwr bttm’이란 2인조 게이 펑크 밴드의 음악을 요즘 자주 들어요. 기타와 드럼으로 구성되었는데 공연 중 두 뮤지션이 계속 악기를 바꿔가며 공연해요. 저는 이것을 ‘퀴어’를 수행하는 탁월함으로 보았어요. 정체성은 역할이고 우리는 드러머와 기타플레이어라는 역할마저도 수행성으로 간주하겠다는 선언인데 좋더라고요. 고맙기도 했고요. 새로운 감수성들을 접하는 거죠.


유튜브에서 새로운 인간, 감수성을 발견하는 게 제 낙이랍니다. 요즘 시는 거의 못 읽고 있습니다. 논문을 쓰느라 애드리안 리치의 시집을 빌려서 읽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녀의 시집에서 읽은 ‘눈은 얼굴에 난 상처’란 문장이 좋아서 몇 번 인용했어요.


Q 책이 취하는 태도는 무척 반항적이고 자유롭습니다. 그에 반해 그것을 연구하고 이런 책을 내기까지는 무척 성실한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는 점도 또 하나의 아이러니인 것 같아요. 이런 간극을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역설이죠. 강사실이나 도서관이 주요 삶의 터전인 제가 펑크나 청년의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은. 졸업을 했거나 아직 학생인 이들과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도 제 일상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들이 저를 이야기에 끼워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꼰대 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 가난하고 불확실한 그들의 말하기를 엿듣고 훔치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글쓰기와 섞는 겁니다. 호기심이 많고 지겨운 것을 못 견디고 살아있는 말을 좋아해요.


Q 미학과 철학이 우리 삶 속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려준 것 또한 이 책이 지닌 매력 중의 하나일 겁니다. 초심자들이 미학이나 철학에 접근하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좋은’ 방법은 뭘까요? 닥치는 대로 읽고 베끼다 보면 ‘육화’되고 살이 되고 내 말이 되는 것 같고요. 제 경험상. 저 같은 경우 초등학생이었을 때 방학을 맞이해 할머니 댁에 가서 외삼촌이 거꾸로 꽂아놓은 나쁜 책을 읽었던 게 ‘좋은’ 방법으로 남아 있어요. 그때 무슨 말인 줄도 모르고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과 <배비장전>을 같은 장소에서 읽었던 것은 ‘다른 계열의 병치’라는 패러디 전략에 좋은 사례로 남아 있어요. 바로 지금 곁에 읽는 책을 집어 들 수 밖에요.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늦게 와요.


Q 미학자로서 앞으로 더 열정을 쏟고 싶은 분야나 벌이고픈 활동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계속 그 자리를 맴돌고 있겠죠? 좋아하는 것들이 저를 붙들고 있으니? 현재로서는 포스트페미니즘 작가들에 대한 연구와 소개에 매진하고 싶은데요. 여성주의 내부에서 논쟁을 일으키고 분열을 조장했던 작가들 말입니다. 주디스 버틀러 번역은 아마 또 시작할 듯하고요.



글 : 주혜진(북DB 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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