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Jun 12. 2017

기생충 학자 서민“박근혜 전 대통령, 반어법 알려준"

저자 서민 인터뷰

2017년 대한민국에서 서민이라는 ‘아저씨’의 존재는 소중하다. 왜냐고? 그는 자신의 외모를 ‘자학하며’ 남을 웃긴다.(딱히 웃기려는 의도는 없어보이기도 한다) ‘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애초에 탑재하지 않았다. 나아가 ‘남성’과 ‘교수’라는 지위가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혜택을 줬는지에 대해 순순히 인정한다. 마지막으로 ‘거절 못 하는 성격 탓’에 끝없이 원고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끝없이 재미있는 글을 생산해낸다. ‘딴지일보’에서 ‘마태우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시작한 글쓰기가 그를 콤플렉스로부터 구원한 이야기는 서민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서민 단국대학교 교수를 처음 만난 건 2015년이다. 그가 아동용 학습만화를 냈을 때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우리나라에는 메르스가 창궐해 전 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었고 박근혜 정부는 그것에 무력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서민 교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해 쓴 글은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고, 서민이라는 이름과 얼굴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익숙해지던 차였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17년. 세상은 변했다. 그간 ‘불통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인번호 503’으로 불리며 수감생활을 하고 있으며, 진보 성향의 대통령이 새롭게 당선됐다.

서민 교수는 계속 글을 써왔다. 박근혜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글쓰기에 대해서. 최근에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칼럼을 쓰며 여성들의 든든한 지원군 노릇을 자처했다.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이라는 부제를 단 <서민적 정치>(생각정원/ 2017)를 펴낸 그를 지난 5월 18일 서울 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한껏 정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가는 요즘. 대통령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정치적 영역에 국민이 어떻게 참여할지에 대한 서민 교수의 재치있는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한국 정치 문제? 아이돌 팬클럽 정서!”

Q 기생충에 대한 글도 인기를 얻었지만, 무엇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쓴 글로 인기를 얻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나는 바람에 서운한(?) 감정도 들 것 같다. 

거의 그걸로 먹고살았다.(웃음) 더 이상 쓸 게 없어서 블로그를 그만둘까도 고민 중이다. 과학 칼럼이나 여성혐오에 대한 글을 써 보면 어떨지도 고민하고 있다.

Q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순간 기분이 어땠나? 


‘이제 뭐 쓰지?’란 생각이 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애증이 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칼럼니스트가 그분 덕분에 먹고 살았으니 다들 지금 공황상태일 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반어법을 승화시킬 방법을 알려주고 계기를 만들어준 고마운 분이다.

Q 주로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글을 쓴다. 상당한 공격에 시달릴 텐데 상처는 안 받나? 본인 글에 악플이 달리거나 공격받을 때 ‘멘탈’을 관리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

괜찮다. 상처를 안 받으려면 자존감이 낮으면 된다. 나는 항상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던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을 원점으로 본다. 최악이라고 해도 그때로 돌아가는 게 다인데. 또 나는 마조히즘적 성향이 있다. 공격 받을 때 짜릿함을 느낀다. 얼마 전 EBS ‘까칠남녀’ 군대 편을 찍고 난 뒤에, 각 인터넷 카페를 순례했다. 나에 대한 비난 글 몇백 개를 일일이 다 찾아봤다. 아주 짜릿하고 좋았다. 특히 외모 욕할 때가 기분이 좋다.

Q 이번에 나온 <서민적 정치>의 부제가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지향하는 발칙한 통찰’이다. 책을 쓰게 된 결정적 이유는 뭔가? 

힘없는 서민끼리 모여서 같이 목소리를 내서 자기 이익은 자기 스스로 쟁취하자는 거다. 이 부분에서 20대가 제일 어려움을 느낀다고 보고, 20대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냈으면 해서 이 책을 쓰게 됐다.

Q < B급 정치>까지 포함해 본격 정치서를 두 권이나 출간한 저자로서 현재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문빠(문재인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집단)’ 현상에서 보듯이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제일 큰 문제다. 이들은 토론 프로그램을 볼 때도 ‘누가 우리 후보를 공격하는지’만 본다. 완전 아이돌 팬클럽 정서다. 자신이 지지하던 문재인씨가 대통령이 됐으면 한 발 떨어져서 잘 되길 비는 게 맞다.




“70대 이상 투표권 박탈하고, 정치는 젊은이들에게 맡겨야” 
 
Q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진보 정당 지지자들 간에 갈등이 있었다. 소수 진보정당 후보에게 표를 주지 말고 당선 가능한 후보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선거는 어차피 (문재인 대통령이) 될 테니까 자유롭게 찍었다. 처음으로 속 편히 투표한 것 같다. 다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다만 내 소신은 ‘70대 이상 투표권 박탈’이다. 안 그러면 도저히 이길 수 없다.

Q 고령층에게서 투표권을 박탈하자는 주장에 대해선 ‘노인혐오’라는 반박도 있다. 

그건 노인혐오로 볼 게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정년퇴임도 노인혐오이고, 19세 이하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은 미성년자 학대인가? 젊은이들이 원하는 나라는 젊은이들이 만들게 놔두고 노인들은 빠져야 한다. 우리 어머니 친구분 중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행태가 아주 가관이다. 그런 분들이 투표하면 뭐하나? 젊은이들이 원하는 나라 만들어서 살겠다는 거고, 노년층의 역할은 끝났다고 본다. 이번에도 안철수 후보가 안 나왔다면 어땠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는데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압승하지 못했다. 사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30% 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예상보다 많이 안 나와서 다행이다 싶은데. 아마 대선을 12월에 치렀으면 진보 정당 후보가 100% 졌을 거다.

Q <서민적 정치>를 꼭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나? 

앞으로 살날이 막막한, 희망을 잃어버린 20대들이 내 책을 보길 바란다. 20대가 하나의 연대를 이루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대한노인회’라는 단체가 지난 4월 26일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를 열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도 찾아가 절했다. 왜 그랬겠나? 표가 되니까 그런 거다. ‘대한청년회’였다면 엄두를 못 낼 일이다. 200만 지지표가 달려있다면 얼마든지 대선후보들도 좌지우지할 수 있고 공약도 우리 것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공약을 부정적으로 본다. 오히려 기업들이 정규직을 많이 만들도록 유도하고, 비정규직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급이 만 원만 되어도 좋을 거다. 시급 만 원 이상이 되면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해서 삼백만 원 넘게 벌 수 있다. 지금 시급 오륙 천 원으로는 청년들이 생활하기 어렵다. 이런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Q 사실 청년 세대의 정치화는 계속 진행되어온 얘기다. 그동안 왜 잘 안 된 것 같나? 

정치화하는 대신 ‘나라도 잘되겠다’는 마음에 다른 친구를 배제하는 식으로 됐다. 사회학자 오찬호 선생님이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도 청년들이 각자도생을 실천하고 연대하지 않는 모습이 나온다. 그래서 내가 항상 하는 얘기가 스마트폰 대신에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연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스마트폰은 전혀 아니다.



“영․호남 지역주의를 똑같이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 양비론”

Q 책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방법으로 종이신문 구독을 권유했다. 사실 결과만 보면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보는 것과 종이신문을 보는 것이 많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보면 자극적인 기사만 보게 된다. 스마트폰에서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 같은 기사만 보다 보면 정윤회의 국정 개입을 다룬 기사는 안 보게 된다. 아내가 만 팔천 원 신문 구독료를 낼 때마다 내게 야단을 친다. 물론 만 팔천 원이 아까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종이신문을 보면 구독료보다 많은 것을 뽑는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Q 책에서 호남 출신 투수 선동열과 영남 출신 투수 최동원 라이벌 관계를 통해 영남패권주의를 이야기 한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엄연히 기록이 존재하는 스포츠인 야구에서조차 지역감정이 지배한다면, 정치에서는 어련할까 하는 회의적 생각도 들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보수 정당은 영남 사람만 뽑고, 진보 정당에서도 어차피 호남 사람은 후보가 안 되니 계속 영남 사람끼리 붙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영남 사람들은 다 자기 식구들이라는 생각이 지배하는 것이다. 한번 기득권을 잡으면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기득권은 강화될 것 같다. 나는 영․호남의 지역주의를 똑같이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다. 역대 대선에서 호남인 90%가 던진 몰표가 영남의 70%가 던진 몰표보다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양비론에서 나온 호남차별이라고 생각한다.

Q ‘정치는 정치인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 중요하다’라는 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하지만 가끔은 ‘결국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라는 회의적 태도나 정치혐오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정치인들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봤을 때 엘리트들이고 다들 능력 있는 사람들이다. 만일 정치인의 유전자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다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작 정치판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얼마나 더 잘할까? 지난 청문회 때 보면 논리정연하고 훌륭한 정치인들이 많았다. 국회 법안 발의를 봐도 열심히 일하는 의원들도 많다. 언론에서는 잘 하는 사람들은 안 나오고,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만 나온다. 그런 걸 부각해서 언론은 먹고 사는 것이니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일부 있다고 해도 정치 전체를 너무 매도하지 말고 우리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남성 바뀌리라 기대 안 해…여성 편도 많다는 것 알려주고 싶을 뿐” 
 
Q 최근 EBS TV ‘까칠남녀’에 패널로 출연해 활약하고 있다. ‘남자의 탈을 쓴 페미’란 말을 듣는 등 남성들의 저항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자가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여성우월주의자다. 다만 나는 페미니즘을 책으로 공부해서 경험이 거의 없다. 각종 여성주의 책들을 목마른 사슴처럼 읽던 시절이 있었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나서 여성주의 전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메갈리아’가 생기고 나서 가끔 사이트에 찾아가 글을 남기긴 했어도 내가 ‘메갈’이란 걸 밝히고 싶진 않았다. 테러 당하긴 싫었다. 그런데 팟캐스트 ‘불금쇼’에서 나를 메갈리아 지지 패널로 부르는 바람에 사실을 밝히게 됐다. 아무도 안 나오려고 하니까 내게까지 순서가 온 것이다. 커밍아웃하고 나니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Q 어떤 계기로 젠더 감수성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책을 읽으면서 여성차별에 대해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됐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자라서 얻은 혜택이 80%였더라. 나는 여성들이 더 많은 패권을 쥐는 사회를 원하고, 남녀평등사회가 아닌 모성 사회를 원한다. 남자를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은 없다. 단지 여성들에게 남성 중에 당신들 편이 많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약자를 짓밟으며 쾌감을 느끼는 문화가 있다. 종일 앉아서 약자들 비하하는 댓글만 다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들이 생산적 취미를 갖도록 텃밭을 나눠주면 좋겠다. 거기서 주 몇 시간씩 일하라고 하면 그들도 노동의 기쁨을 느끼고 사회도 발전할 것 같다. 답은 텃밭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Q 정치에 관한 글을 쓰는 기생충 학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라이벌로 생각하는 존재가 가장 큰 영향을 준 존재가 있나?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많다. 논리가 훨씬 탄탄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내가 기생충을 가르치든 무엇을 가르치든 교수라는 타이틀이 기회를 많이 주는 것 같다. 그게 미안하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이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그분을 통해 알게 됐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성혐오’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글 : 주혜진(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 원문 보기 


▶ 북DB 바로 가기

▶ 북DB 페이스북 바로 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피톨로지“다이어트, 권상우 몸 말고 팔굽혀펴기 한 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