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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14. 2017

빽 없는 자들의 정치인 은수미 “기꺼이 실패할 것…"

저자 은수미 인터뷰


햇살이 뜨거운 6월의 어느 날,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을 만나러 성남을 찾았다. 성남 중원구 작은 건물 3층에 그의 의원실이 있었다. 도착하자 이미 손님이 와 있었다. 선약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앉아있으니 손님과 하는 이야기가 접대실까지 들렸다. 노동현실을 전하고 한국 정치제도의 약점을 얘기하는 은수미의 목소리는 ‘삶의 주인으로서 정치하라’는 단호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인터뷰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의원실 밖으로 나온 손님들은 20대로 보였다. 청년 넷은 의원과 나눈 대화에 뿌듯해 하면서도 이야기를 더 듣지 못해 아쉬운 듯 했다. 청년의 표정을 보니, 젊은 노동자의 삶을 함께 고민하겠다는 책 속 은수미의 말이 떠올랐다.

갈팡질팡하는 삶에 고민하는 청년들이 정치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그 장면이 낯설었다. 그러다 문득 ‘빽 없고 힘없는’ 목소리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정치인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설렜다.

“현재 선거제도 바꾸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허깨비”

Q 최근에는 주로 강연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새로 나온 책 <만국의 알바여, 정치하라>(창비/ 2017년)도 강연에서 했던 연설문을 정리한 글이고요. 정권 바뀐 이후에 강연 분위기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전에는 강연하면 ‘정말 바뀔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내가 뭘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정치를 혐오하고,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참여하는 주체로 바뀌기 시작한 거죠. 촛불을 통해서 함께 참여했더니 바뀌더라는 정치적 경험을 해 봤잖아요. 그 공감의 경험이 중요해요. 그걸 기억하고 일상에서 확장해야죠. 정치 강연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Q 책을 보면 청년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여요. 요즘은 청년수당을 비롯해 ‘국민기본선’에 열중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많은 청년들이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인데, 정말 공무원이 되고 싶다기보다 다른 방법이 없는 거예요. 저희 세대는 도전을 해본 세대거든요. 자기 벽을 깨부수고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는 도전이 가능했어요. 그러려면 최소선이 보장돼야 해요. 그게 국민기본선이고요. 도전하는 사람들이 실패해도 제2의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그럼 정치적인 활동도 가능해지죠. 그게 민주공화국이고요, 예산도 많이 안 들어요. 지금 청년들은 도전이 아니라 순응하기만을 요구받아요. 자기결정권에서 배제된 거예요.

Q 제목에서부터 ‘정치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제도에서는 청년들이 정치하기 쉽지가 않아요. 청년들,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정치에 참여하려면 제도부터 바뀌어야할 것 같아요.

요새 개헌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그 전에 선거법과 정당법을 개정해야 돼요.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지금 제도로는 불가능해요. 우리 선거제도는 조직을 장악한 사람이 무조건 이기게 돼 있어요. 결국 그게 표 모으는 기술인 거고, 그걸 아는 기존 정치인이 이기는 거죠.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라는 건 허깨비에요. 그게 가능하려면 일상 정치참여가 가능해야 돼요. 지역의 기득권을 시민들과 나누자고 얘기하는 거죠. 싸워야 되고요, 선거시스템을 바꿔야 해요.


“정치인은 연극인 같아…시민도 무대 참여자 돼야”

Q 촛불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적폐청산을 요구해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민주당에도 개혁을 원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인이 있잖아요. 결국 적폐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민주당 안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정치인은 연극인 같아요. 자기 얼굴을 알리고 연극을 통해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거죠. 그래서 정치인들 사이에선 대선 후보 옆에 누가 서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에요. 무대 주인공과 가까이 서면 얼굴을 알릴 수 있고, 그래야 잊히지 않으니까. 그런데 정작 스스로는 연극이라고 안 하고 그게 정치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고도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시민들이 무대 관객이 아니라 무대 참여자가 되면 그 연극의 기획부터 리허설까지 모든 과정을 다 볼 수 있거든요. 그럼 다른 정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가 생겨요. 전 그걸 믿고 있는 거고요. 연극과 일상을 결합하고, 시민들을 무대 참여자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고민이에요.

Q “왜 가난한 사람들은 개혁세력에 투표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장 싫어한다고 하셨어요. 오히려 개혁세력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지 되물으셨죠. 그런 질문이나 정치인을 연극인에 비유한 것도 민주당 안에서는 비판의 목소리일텐데 부담을 느끼지는 않나요?

처음 정치에 입문하고 굉장히 분노했어요. 엄청난 권력을 갖고도 안 움직이는 걸 보고 왜 정치를 하나 싶었어요. 의원들한테 직접 물어봤어요, 왜 정치하시냐고. 오히려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됐죠. 분노를 넘어서 좌절감과 무력감이 들더라고요. 세월호와 메르스 이후엔 시민들 비난까지 더해져서 자책이 아주 심했죠. 그런데 필리버스터 이후에 시민들이 응원해주시는 걸 보고 제가 아주 틀린 건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필리버스터로 시민들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정치인으로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그걸 시민들이 만들어주신 거고요. 항상 감사해요.

Q 정치인이 된 뒤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많이 떠올린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정치를 계속했을까. 정치를 하게 된 동력은 뭘까 궁금하다고 했는데, 같은 질문을 저도 하고 싶어요. 연극도 잘 못하고, 필리버스터 이후에도 낙선하셨는데 계속 정치를 하시는 이유, 뭔가요?

간단해요. 사랑 때문이에요. 단순한 것 같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는 희망을 갖는 거거든요. 낙선한 원외 정치인은 사실 밑바닥을 기는 것과 같아요. 그럼에도 제가 재도전을 한 건 세월호 때문이에요. 되돌아갈 곳을 만들지 않겠다고 그 때 결심했어요. 아이들이 물에서 수장당하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알바하다 일터에서 죽고. 아이들을 절벽으로 내몰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에 무력하고 부끄러웠어요. 이건 바꾸고 싶어요.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죠.
 
Q 정치아카데미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정치인 은수미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촛불 이후에 시민들이 정치적 성취를 이뤄냈잖아요. (이 성취가) 일상정치로 확장하기를 바라요. 87년 전후에는 제도정치보다 일상정치가 더 컸는데 지금은 정치가 판촉행사로 전락해버렸죠. 일상정치를 회복하는 게 핵심이에요. 그러려면 일상에서 시민을 만나야하는데, 소통할 창구가 지금은 없어요. (국민들은) 문자테러로라도 소통하려는 거예요. 저는 일상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게 큰 계획이고요.

지역에서 지명도가 0.1%였거든요. 필리버스터 이후에 인지도가 높아졌죠. 총선에서 떨어지긴 했지만요.(웃음) 지금은 저를 알리기 위해 명함을 뿌리지 않아도 되지만, 여전히 표 얻기 위한 일들을 하죠. 표 얻는 기술은 정해져있어요. 줄을 잘 서야하고 사람들한테 뾰족한 얘기하면 안 되고. 그런데 그렇게 정치하고 싶지 않거든요. 촛불 이후에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시민에 걸맞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모두 괜찮은 정치인일 필요 없어요. 금배지에 연연하지 않는 정치인, 실패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국회의원 300명 중에 10%만 있어도 달라지거든요. 물론 전 선거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죠. 그런데 실패한 정치인이 돼도 좋아요. 기꺼이 실패할 거예요. 제 실패를 기반으로 표 얻기 위한 기술자가 아니라 신념을 관철시키는 정치인이 더 많아지면 돼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직업정치인의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글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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