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정명 인터뷰
1987년에서 2017년까지. 흔한 말로 강산이 세 번쯤 변하고, 한 생명이 태어나 부모가 되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그러나 최근 일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광장의 붉은 촛불은 마치 30년 동안 시간이 멈춰 있던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오히려 지난 10년은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한 두려움과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이정명 장편소설 <선한 이웃>(은행나무/2017년)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87년 6월 항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 1980년대를 소재로 한 저작물들이 쏟아지는 트렌드에 발맞춘 것일까. 하지만 이 소설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가을에 구상해 2014년 4월에 초고가 완성됐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허탈함 속에 빠져 있을 때 작가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초고 상태의 원고는 그렇게 후속 수정 없이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오래 묵혀둔 원고를 다시 꺼낸 것은 2016년 봄이었다. 그런데 최종 수정을 막 끝낸 시점에 이번엔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다. 작가는 당시의 특별했던 경험을 “마치 1987년에서 시간의 필름을 잘라 2017년에 이어붙인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작품이라,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주 지긋지긋했어요.(웃음) 이제 겨우 빠져나왔는데 다시 또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싶으니까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인가, 저는 이 이야기가 1987년이 아닌, 지금의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소설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요 매개체가 연극이거든요. 80년대에는 예술인 탄압이나 검열이 빈번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소재로 썼어요. 하지만 그런 상황이 지금까지 벌어지리라고는 소설을 구상하고 쓰는 과정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직선제를 쟁취하고 시스템적으로는 민주화한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념 대결이 더 격렬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3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물음은 앞으로의 30년을 내다보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서 아이디어 얻어
이정명 작가는 1984년 9월 벌어진 ‘서울대 프락치 사건’(서울대 학생들이 가짜 대학생 4명을 프락치로 판단해 11일 동안 폭행한 사건-편집자 주)에서 이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작가의 관심을 끈 것은, 사건의 정확한 진상도, 법 판결도 아니었다. 그의 마음에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유시민이 쓴 ‘항소이유서’의 한 대목이었다. ‘항소이유서’는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되며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데, 30년을 훌쩍 건너뛰어 2017년 6월에 다시 회자되는 것도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 ‘항소이유서’ 중에서
이정명 작가는 순수했던 열아홉 살 소년을 사회의 폭력배와 범죄자로 만든 ‘시대’에 주목했다. 그리고 80년대 민주화 항쟁을 다룬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운동권이 아니라 적대 세력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끌고나감으로써 새로운 80년대의 이야기를 변주하는 데 성공했다. 독자들에게 ‘불의의 시대에 선과 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인간답지 못한 시대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거대 권력이 어떻게 한 개인의 선을 이용할 수 있는지 파헤쳐보고 싶었습니다. 왜곡된 시대에는 이러한 문제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선한 이웃>이라는 제목도 쓰게 됐고요. 저는 이 소설을 통해 무너져가는 개개인이 아니라 이렇게 개인을 무너뜨리는 사회 또는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어요. 개인의 선한 의도가 악으로 나타났다면 그건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거든요. 80년대가 바로 그런 사회였어요. 개개인이 선택한 정당한 행위가 범죄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개인의 도덕적 양심과 사회 법질서가 추구하는 지향점이 일치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거든요. 이제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죠.”
불온한 시대의 선과 악에 주목하다
그렇다면 국가 권력에 의해서 왜곡된 개인의 악은 용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남는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인간의 자유의지, 개인의 선택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그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선하다고 하는 것은 의도를 말한 것입니다. 선과 악을 판단할 때는 3가지 단계에서 각각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도, 행위, 결과. 지탄을 받는 반인륜적인 범죄자라도 법정에서 자기 의도는 선했다고 변명하는 경우를 많이 보죠. 그럴 경우 의도가 선했다고 면죄부를 줄 수 있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거든요. 의도는 선했을지 모르나 행동과 결과가 많은 피해자를 낳고 도덕관념을 해쳤다면 악으로 봐야 하는 거죠. <선한 이웃>이라는 제목은 위에서 언급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이라는 뜻도 있지만 반어적인 의미도 갖고 있어요. 악인들이 가장 쉽게 하는 변명, 즉 선한 의도가 갖는 위선을 이중적으로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이정명 작가는 자유의지에 의한 개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경각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부역 행위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선택을 했을 뿐이고, 필요한 때 필요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작가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살인마나 테러리스트 같은 악한이 아니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한 이웃들이다.”(p.246)라고 일침을 가한다.
<선한 이웃>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운동권 궤멸을 위해 투입된 정보공작원 김기준, 공작원의 집요한 추적을 받는 신출귀몰한 투사 최민석, 운동권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연극배우 김진아.
이 세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연극이다. 연극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각자의 욕망을 투영하는 메타포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80년대는 지식인들이 문화, 예술, 철학, 역사학 등 모든 분야에서 저항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권력층과 가장 첨예하게 대적했던 연극을 통해 저항 세력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연극이라는 매개체를 단지 배경으로만 삼을지, 아니면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를 이야기 속에 녹여 동력으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가상의 연극 한 편을 탄생시켰습니다. 하나의 연극이 태동해서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저한테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가의 만족과는 달리 소설 속 연극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상징과 해석이 너무 난해하고, 연극 자체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할애해 주제가 집중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느껴진다.
“요즘 독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연극이라는 장르가 워낙 소외돼 있다 보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을 겁니다. 저한테는 독자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소설가로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실하게 해내는 것 또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독자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만큼의 장치가 필요했어요. 그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접점을 찾았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당혹스럽게 느낀 독자들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욕심 같지만 그런 분들도 이번 소설을 통해 연극에 대한 매력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든 소설을 '팩션'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아
이정명 작가는 그동안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 나무> <별을 스치는 바람> 등에서 역사적 소재를 흥미진진한 한 편의 소설로 재구성해 ‘한국형 팩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소설 <선한 이웃>은 조선시대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 최근의 현대사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실제 80년대 운동권 이야기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들과 맥을 같이 한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소설가들이 쓰는 게 팩션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에 뿌리를 두고 그 위에서 허구를 구축해나가는 게 소설이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모든 소설을 팩션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저 같은 경우는 다른 분들보다 더 분명하게 특정 인물이나 특정 시대를 가져와서 쓰기 때문에 좀 더 장르화된 의미로서의 팩션을 쓴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경으로 쓴 작품들이 유독 많은 이유에 대해 작가는 ‘기록’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기자로 일했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기사는 실제로 취재한 분량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기자는 알고 있는데 독자는 그 사실을 모르는 정보가 훨씬 많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문이나 책을 보면 항상 쓰여 있는 내용보다 쓰이지 않은 내용, 그 속에 숨은 행간에 대해 더 궁금해하는 습관이 생겼다. 역사를 볼 때도 기록된 내용보다 앞뒤 공백이 있는 부분들을 상상으로 채워나가는 일에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러다 보니 그런 상상이 자연스럽게 소설의 출발점이 되곤 한다.
취재 현장에서 바쁘게 뛰던 이정명은 서른 즈음 불현듯, 자신이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다는 자각을 하고 그날부터 매일 글을 써서 서른셋에 작가가 되었다. 그때가 1997년. 올해로 전업작가가 된 지 딱 20년이 되었다. 하루하루 매일 똑같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20년이라고 해서 특별한 소회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세월이 흐를수록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운 좋은 작가라는 데 대해 감사함이 더욱 커진다고 한다. 데뷔 20년에 30년 전 6월 민주화 항쟁을 다룬 소설 <선한 이웃>을 내놓은 이정명.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을지 기대가 된다.
글 : 이미회(북DB 객원기자)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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