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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28. 2017

식품영양학자 정혜경 “우리 민족의 나물 문화..."

저자 정혜경 인터뷰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정혜경은 <밥의 인문학>(2015)에 이어 <채소의 인문학>을 지난 6월 출간했다. 얼핏 ‘채소’와 ‘인문학’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 안을 들여다보면 한국인에게 채소는 무엇인지, 한국인과 가까운 채소는 무엇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조리하면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가를 꼼꼼히 살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식품영양학이라는 것이 음식을 영양소로 보고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인간에게 이롭게 이용하는 것이므로 인문학과 만난다고 해서 어색한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채소의 인문학을 고찰한다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먹는 채소를 더 잘 알고 잘 이해하는 일이며, 올바른 식습관을 만드는 일과도 연결된다.

<채소의 인문학>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채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채소의 식품영향학을 저변에 깔고 그 채소와 한국인이 긴 시간 맺어왔던 관계에 역사와 인문이라는 서사를 입혀준 것이다. 더군다나 꼼꼼하게 정리된 고조리서와 근대조리서의 채소 조리법은 실생활에서도 언제든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두루 갖추었다. 지금부터는 나물민족의 자긍심을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를 만나보자.

“한‧중‧일 나라별 다른 채소 섭취법 …데치고 양념해 무쳐먹기는 우리의 독창적 문화”

Q <채소의 인문학>은 우리 민족이 나물과 맺어왔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나물을 통해 한국의 음식문화를 인문학적으로 고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띨까요?

음식은 한국인의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한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나물 문화인데, 이는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에요. 따라서 이 책은 그것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나물의 과학까지도 이야기합니다. 지금 전세계가 먹거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어요. 육식 과잉에서 오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데,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채소를 많이 먹는 것이에요. 긴 역사를 통해서 나물 문화는 우리 민족의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도 한식의 특징은 채소를 많이 먹는 것이에요. 채소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채소를 많이 먹고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채소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나름 전문적인 부분도 정리하였으니 찾아서 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읽고 버리는 책보다는 가지고 있으면서 쓸모가 있으면 좋겠고, 또 요리하는 사람들도 한 권쯤은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Q 지역이나 기후에 따라 생산되는 먹거리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민족마다 고유한 음식문화를 만들어 나갑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지리적인 조건이나 환경 등이 작용하여 지금과 같은 나물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나요?

우리나라는 산이 70-80퍼센트 되다 보니 산에서 나는 채소를 먹지 않고는 생명을 이을 수가 없었던 거죠. 식량이 늘 부족했잖아요.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니 쌀이 부족해서 기근이 많이 들었죠. 산에 있는 채소를 먹고 굶주림을 견뎌야 했어요. 또 채소 자체가 맛이 없으니 어떻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조리법을 많이 고민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채소를 잘 먹기 위해서 다양한 조리법이 나온 것이죠. 그리고 솜씨도 작용한 것 같아요. 한중일의 채소가 상당히 비슷한데도 만들어 먹는 방법이 달라요. 일본은 소금에 절여 먹고, 우리도 ‘저’라고 해서 소금에 절이는 것에서 출발하였지만, 김치를 만들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응용력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일본은 소금에 절인 형태로만 갔지만, 우리는 달랐던 것이죠.

또 나물은 생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데쳐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생으로 먹으면 많이 먹지 못해요. 양상추에 드레싱해서 먹으면 많이 못 먹을뿐더러 열량도 높아요. 데쳐 먹으면 많이 먹을 수도 있고, 보관도 쉽죠. 데치고 거기에 양념을 넣어 무쳐 먹는 것은 우리만의 독창적인 음식문화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처럼 독창적인 우리의 나물 문화를 전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은 거예요. 유명한 요리사들도 채소에 집중하여 요리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잖아요. 이전에는 굉장히 기름진 요리를 먹었으니까요. 우리의 나물 문화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Q 외래에서 들어온 채소 중에 우리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치를 많이 먹으니까, 배추 다음으로 많이 먹는 채소가 무예요. 그런데 이제는 배추 다음으로 양파를 많이 먹어요. 양파의 양은 서양의 양자인데요. 우리가 나물 민족이긴 하지만 우리가 먹는 나물의 반은 유입된 채소거든요. 배추 다음으로 양파를 가장 많이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한식이 바뀌었다는 것을 나타낼 수도 있어요. 그만큼 우리 음식에 양파가 많이 응용된 것이죠. 김치에도 양파를 넣으면 양파의 단맛이 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상당히 바뀌었고요. 토마토도 우리 식생활을 많이 바꾸었어요. 고추는 말할 것도 없고요. 과거에 우리가 먹었던 것은 이 땅에서 나는 것이었으니까요, 예를 들면 쑥은 우리만 먹은 거예요. 서양에서는 쓴맛 때문에 음식이라 생각하지 않고 허브나 약초라고 생각했죠.
 


“유네스코에 등재된 ‘김장문화’…공동체 의식 높게 평가된 것”

Q 서양과 동양 음식에서 채소를 취급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요? 또한 아시아 국가 내에서도 다를 수 있을 텐데요, 한중일에서 채소를 취급하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서양음식은 메인이 고기 음식이고 채소는 샐러드 형태로 먹잖아요. 아니면 프렌치프라이, 피시 앤 칩스와 같은 식으로 먹어요. 우리는 먹을 것이 채소밖에 없었으니까 국도 끓여 먹고 다양하게 만들어 먹었던 것이죠. 한중일도 물론 차이가 있죠. 일본은 소금에 절여 먹었고, 중국은 기름에 볶아 먹었고, 우리는 물이 좋으니까 데치고 양념해서 먹었던 것이죠. 중국의 윈난 성에 가면 거기도 쌀을 주식으로 하니까 우리와 비슷할 수 있지만, 물이 좋지 않다 보니 채소를 기름에 볶아 먹어요. 기름에 볶아 먹는 것이 몸에 좋을 수는 없죠.

Q 우리의 김장 문화가 2013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치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 아니고 ‘김장문화(Kimjang, Making the Kimchi)’가 등재된 것이에요. 유네스코는 어떤 민족의 음식을 가능하면 등재하려고 하지 않아요.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염려해서 그렇죠. 유네스코에서 김장 문화가 가진,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인 의식을 높이 평가한 것이죠. 옛날에는 겨울에도 채소를 먹기 위해 김장을 했던 것인데, 지금은 겨울에도 김치를 사 먹을 수 있지만 가을되면 함께 김장하는 문화가 남아 있잖아요. 유네스코가 그러한 김장 문화를 인류의 공동체 문화로 지속시켜야 한다고 평가해준 것이죠. 이와 같이 언젠가는 한국인의 독특한 채소조리법을 담은 나물 문화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것이라 믿습니다.

Q 4부의 ‘식치, 채소로 병을 다스리다’에서 채소의 과학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채소를 과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채소를 먹었지만 최근에는 채소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과학적인 근거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현대인의 질병인 만성 퇴행성 질병인 암은 노화나 산화로 발생하는데요. 항산화제 역할을 하는 채소가 암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연구하는 것이 식물의 영양소에요. 사실 채소는 우리가 서양보다 더 많이 먹던 것이죠. 브로콜리보다 쑥이나 엉겅퀴, 씀바귀 등에 폴리페놀 함량이 더 많아요. 콩도 그렇고요.
한편 한식의 상차림에서, 채식과 육식의 비율은 대략 8:2가 됩니다. 그러므로 한식은 서양의 식사패턴에 비해 영양적으로 균형이 있고 비만과 만성질환 예방에 효과적이에요. 채소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건강과도 깊이 결부된 것입니다.

 

“식품 산업, 전통 음식 건강하게 섭취하는 방법 고려해야”

Q 젊은 세대들은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편의점 음식 등을 많이 먹기 때문에 채소를 조리하여 먹는 것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한식을 기피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서 그런 것이잖아요. 채소를 사 오면 다듬고 나면 반은 쓰레기잖아요. 한식이나 나물 음식을 쉽게 조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발견해야 해요. 한식을 쉽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반 조리를 한 것이나, 나물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데쳐서 진공으로 포장해 나온 상품들이 그런 예죠. 식품 산업이 우리 전통 음식의 건강함을 잘 보존할 방법을 고려하고 책임져 주면 좋겠습니다.

Q 요리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을 통해 많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음식문화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요리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측면은 많다고 생각해요. 우선 남자들이 요리를 하게 됐고요.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조리를 많이 해서 먹게 되었고 또 요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더 건강하고 즐겁게 만들어 먹으려고 하고요. 음식이 주는 위안과 치유적인 힘을 받게 되죠. 상업적인 것이나 과한 요리법은 문제가 있지만 순기능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Q “채소는 그저 풀이 아니다. 한국인의 생명줄이자 인류의 오래된 미래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이 대안적인 미래의 음식문화라고 보셨는데요.

나물을 조리해서 먹은 것은 지구 환경에도 좋아요. 육식을 조금만 줄여도 지구 환경문제는 나아지니까요. 동물의 가스가 대기를 오염시키잖아요. 예를 들어 동물성 식품인 6온스(약 170g)의 쇠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1컵(200g)의 채소나 8온스(약 227g)의 쌀을 생산할 때보다 16배의 화석연료가 필요해요. 또한, 육류를 생산할 때 생성되는 온실가스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채소보다 24배에 달하죠.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한쪽에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고, 또 다른 쪽에서는 굶주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먹거리 위기 상황에 처한 지구 현실에서, 채소만 먹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의 나물 문화가 육식 과잉으로 고통받아온 지구의 대안 음식문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책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동네 채소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셨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채소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 한 것은 우리가 채소를 많이, 그리고 잘 먹었으면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채소를 조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에는 ‘먹거리사막(Food Desert)’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신선한 채소를 먹고 싶어도 채소를 판매하는 곳이 없으면 먹기 어렵다는 뜻이죠. 저소득층이 사는 곳은 가공식품을 파는 곳만 있으니 사람들이 망가져요. 미국 정부는 먹거리 사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그에 비하면 우리는 행복하잖아요. 전통시장이나 슈퍼마켓, 대형마트에서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제가 사는 아파트 앞에 온갖 종류의 채소를 노점에서 파는 할머니가 있어요. 이 채소 노점상은 동네 할머니들이 모이는 집합소이기도 해요. 거기 모여서 마늘도 까고, 파도 다듬고, 고구마 순을 벗기면서 소일을 해요. 저는 30년 동안 그분에게 채소를 보급받았던 것이죠. 이 
책을 쓰는 내내 채소의 고마움을 일깨워준 채소 할머니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글 : 신양희(북DB 객원기자)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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