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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30. 2017

소설가 이응준 “내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정확한 슬픔”

저자 이응준 인터뷰 

※ 북DB는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문학과지성사/ 2017) 출간을 기해 지난 6월 16일 홍익대학교 인근 한 커피숍에서 이응준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편집자의 말



“소설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나의 종교이므로 이것은 내게 교리문답과도 같다. 누군가 내게 다시 묻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는 대답한다. 소설이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간의 이야기란 결국 인간이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뭔지 몰라 심지어 생명이 불태워지기도 하는, 그러나 그 아수라 같은 사랑을 끌어안고 노래하는 만큼은 분명히 성장하는 모든 인간들의 총칭을 ‘소년’이라는 이미지로 떠올리며 나는 여기 이 소설들을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다. 천국에서조차 방황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그 소년은 자신의 마음이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가슴속에 감추어진 저마다의 모습이다. 설령 당신이 백 살 먹은 노인이라 할지언정 사랑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라면, 그 소년은, 그러니까 당신의 소년은, 다름 아닌 당신이다.”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중에서

‘내가 이거보다 잘 쓸 수 없단 얘기야?’란 오기로 쓴 신작

Q 그간 소설을 정말 많이 써오신 것 같아요. 어느 인터뷰에서도 “누가 게으르게 살았다고 흉보지는 않을 거 같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작가로서 일차적 의무는 다 했다고 봐요. 건방진 얘기가 아니라 이제는 문학에 큰 욕심이 없어요. 이번 책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느낌이 딱 왔어요. 그 동안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봤고, 비교적 남이 안 가는 길을 가기 위해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해봤고요. 임무를 마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또 새로운 걸 쓰겠지만 이제는 다 내려놓고 편하게 쓰고 싶어요. “너희들이 못 읽어줘도 상관없어. 마음대로 해!”라는 식으로요. (웃음) 오직 제 선택과 자유의 문제일 뿐인 거죠.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졸업한 기분이 들어요.

Q 이번 소설집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그 동안 단편 소설을 썼다고 했을 때, 무언가 안 해본 게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물론 이전에도 연작소설집 <밤의 첼로>를 썼지만 그 책과 이번 책은 양상이 좀 달라요. 한번은 시인 함성호 형이 <밤의 첼로>를 읽고 “이런 건 다시 쓰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 의미는 욕이 아니라 ‘이만하면 됐다’는 칭찬이었죠. 그런데 저는 ‘내가 이거보다 잘 쓸 수 없단 얘기야?’라는 쓸데없는 오기가 들더라고요. 그래서 쓰게 된 게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이에요.  

Q 아무래도 연작소설집이다 보니 구성할 때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셨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의 바탕이 된 사상이 있다면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이에요. ‘이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존재하고, 저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세계의 모든 것이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이치죠. 그 연결과의 사이가 때로는 너무 멀고 복잡해서 인생의 비밀이 되기도 하고 운명이 되기도 하고요. 이러한 불교의 연기론을 모더니즘으로 한번 풀어 봤어요. 


“예술의 연료는 심각한 부딪침 속에서 나온다”

Q 이번 소설집에서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요.

북극인 김철이요. 그는 상처받은 사람이고, 그 상처가 소설에서 아름답게 표현된 것 같아요. 특히 북극곰을 만나 바닷속으로 사라질 때의 장면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가 마음 아파하는 양상이 저랑 비슷하기도 했고요.

Q 소설을 읽다 보면 신에 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청소년기를 주로 종교적 그늘에 짓눌려 있었어요. 신학교에 가서 성직자가 되려 했던 때도 있었죠. 그런데 당시의 경험들이 제게는 큰 상처로 남았어요. 신이란 존재로부터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거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정의 내릴 때, 불교적 시공간을 헤매는 기독교적 인간이라고 해요. 상당히 모순적인 말인데 제 존재 자체가 모순이라서요. 저는 늘 상반되는 두 가지를 벼려서 글을 써왔어요. 서로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존재 사이에서 헤맴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미학적인 부분을 만드는 것 같아요. 예술의 연료는 아주 심각한 부딪침 속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안정적이고 펑퍼짐한 상태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아요.

Q 혹시 이번 소설집에서 아쉽거나 후회되는 점이 있나요. 

솔직히 얘기하면 소설이 책으로 나오고 나면 잘 안 봐요. 지긋지긋해서요. (웃음) 그냥 눈대중으로 쓱 보는 게 전부죠.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워요. 우리가 개라는 동물에게 개로서 아쉬워하는 건 없잖아요. 사자한테 사자로서 아쉬워하는 것도 없고요. 이 둘을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면요. 이 책이 그 자체로는 완벽한 것 같아요. <밤의 첼로>보다는 한발 더 나아갔다는 느낌도 들고요.

Q 정치평론은 물론이고 통일과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얘기하셨잖아요. 어느 인터뷰에서는 “소설가는 그저 재미있는 얘기나 들려주는 사람이 아닌, 사회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고요. 작가는 어느 정도까지 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세요?

작가의 기본 역할은 사회, 시대, 문명, 인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20세기 작가들은 행동을 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죠. 공군 장교였던 생텍쥐페리, 스페인 내전에서 해외 특파원으로 활약했던 헤밍웨이, 스페인 내전 당시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앙드레 말로 등 당시 작가들은 현대의 사제 역할을 맡았어요. 지금은 작가의 평가를 재미의 기준으로 나누지만 한때의 작가들은 재미있는 걸 쓰는 것에 대해 모욕으로 생각할 때도 있었죠. 저는 어쩔 수 없이 20세기 작가의 정체성이 있고 그로부터 비롯된 의무감, 부채감, 임무를 갖고 있어요. 그동안 나름대로는 제 역할을 다 해왔다고 생각하고요. 작가의 사회적 역할을 어떤 것이라고 단순화시켜서 말할 수는 없지만 질문은 늘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열된 세계를 파악할 때 필요한 것이 문학”

Q 소설이, 그러니까 이야기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다 이해하는 것처럼 얘기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이해하며 단순하게 사는 것 같지만 혼란과 방황은 끊임없이 계속되죠. 이게 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은 이해했다고 속으며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아직도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세계에 살고 있어요. 현대 문학이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인생은 절대 단순하지 않고, 세계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는데 이러한 것을 파악할 때 바로 문학이 필요해요. 정치로도, 경제로도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분명 있거든요. 문학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세계의 혼란에 잠식되지 않고 통찰력을 가질 수 있죠. 이겨낼 힘도 얻을 수 있고요.

Q 탐미주의 작가로 불릴 때가 많으신데, 작가님에게 있어 ‘아름답다’라는 건 뭔지 궁금해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울기 시작해서 슬퍼도 울고, 아파도 울고, 기뻐도 울어요. 어쩌면 인간은 하나의 감정만을 가졌는지도 몰라요. 바로 슬픔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름다운 노래라고 했을 때 그게 어떤 음악이었는지. 대체로 슬픈 선율 아니었던가요? 저는 문학을 볼 때도 슬픈 문장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물론 그 슬픔은 정확해야 해요. 군더더기 없이 있을 것만 딱 있는 상태요. 한마디로 말해 제게 있어 아름답다는 건 정확한 슬픔인 것 같아요.

Q 소설은 주로 언제 쓰세요?

어느 순간부터 소설은 늘 쫓겨서 쓴 것 같아요. 30대만 해도 마감을 잘 지켰는데 이제는 인쇄소 가기 직전에 막 넘기고 그래요. 편집자들이 죽으려고 하는데 저는 더 죽을 것 같고요. (웃음) 글 쓰는 시간대는 따로 없어요. 시간에 쫓겨서 쓰기 때문에 그냥 제 몸을 파괴하면서 쓰는 거죠. (웃음)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데 시간 따질 겨를이 어디 있겠어요. 아, 시는 즐겁게 쓰고 있어요. 지옥에 가서도 쓸 거니까.

Q 소설을 쓰시면서 경계하는 것이 있나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경계할 게 있겠어요. (웃음) 깔끔하게 쓰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군더더기 없이. 평소 음악을 많이 듣고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가요도 듣죠. 글을 쓸 때도 늘  음악을 틀어놓는 편이에요. 소설가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알아야 해요. 안 그러면 감이 떨어지거든요. 감이 떨어지면 끝장이에요. 문학에서는.

Q 소설이 잘 안 써질 때 버티는 방법은요.

그게 일단 앉으면 다 쓰게 되더라고요. 의자에 앉기가 싫어서 자꾸 술을 마시고 놀아서 그렇지. (웃음) 스스로 못 썼다고 생각해 집어치우고 다시 쓰는 한이 있어도 일단 레일에 오르면 가는 거죠. 앉았는데도 글이 안 나오면? 그땐 소설 쓰는 거 그만 둬야죠, 뭐.

Q 이번 여름엔 뭘 하실지 궁금해요.

일해야죠 일. 당분간 영화 작업에 몰두하려고요. 만약 소설을 쓰게 된다면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 같은 걸 쓰고 싶어요. 소설을 쓰든 영화를 하든, 앞으로 계속 인간에 관해서 이야기 할거에요. 어떤 희망이요.



글 :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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