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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17. 2016

별걸 다 궁금해하는 남자, '과학 이야기꾼' 김범준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를 논하다가 프로야구팀 경기 일정표, 교통정체의 비밀을 통계 산식으로 분석하더니, 사춘기 딸 이야기, 살 오른 생선을 고르는 법까지 이야기한다.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가 풀어놓는 다채로운 이야기보따리다.

"통계물리학자가 바라본 세상"은 세상물정이라는 밥상을 더욱 근사하게 해주는 맛깔스러운 반찬이다. 보암직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되새길수록 깊은 이치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2015년에 출간된 김 교수의 책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세상만사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생각할 거리를 제시하는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김범준 교수를 만나봤다.

Q 첫 책으로 2015년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부문을 수상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제 책이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작으로 선정됐다고 해서 많이 놀랐고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과학이라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심사위원분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Q <세상물정의 물리학> 출판사 담당자분께서 책을 소개해주실 때가 기억납니다. 제목에 분명 ’물리학’이라고 쓰여 있는데, 목차를 보니 전통적인 물리학 내용은 안 보이고 각종 사회 현안과 이슈가 보이더군요. 어떻게 ’별걸 다 궁금해하는 물리학자’가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1997년에 초전도 배열을 논문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2000년 전까지 연구하고 논문 발표했던 것들은 전부 이런 쪽이었어요. 전통적인 고체물리학과 전통적인 통계물리학의 접경지대에서 연구주제를 잡았던 거죠. 그러다 2000년 즈음 제 연구 주제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 시기에 ’연결망’, 즉 ’네트워크’라는 주제가 부상했습니다. 복잡계 네트워크망(Complex Network)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약간 벗어나는 연구를 시작했어요.

우리 주변에 ’네트워크’ 많지요? 소셜네트워크도 네트워크고요. 통계물리학의 전통적인 연구방법을 이용해서 연결망이라는 구조에 적용해보는 연구를 하는 겁니다. 제 책에 있는 ’사회 현상을 통계물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2000년 이후 관심을 두고 연구한 분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지금도 초전도체 배열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고체물리학 연구주제와 책에 소개된 통계물리학 연구 비중을 굳이 나누자면 5:5 정도 되는 것 같아요.

Q 전공수업에서는 어떤 주제를 다루시나요? <세상물정의 물리학> 내용을 전공 수업으로 하면 매우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만.

전공 수업은 전통적인 통계물리학 위주로 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복잡한 물리 공식을 주로 다룹니다. 지난 학기 경영학과 교수님과 함께 경영학 전공 수업을 연 적이 있어요. 서로 다른 전공분야 교수가 한 가지 주제를 서로 다른 관점으로 풀어보는 거죠. 일종의 융복합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최근 들어 여러 대학에서 시도하는 교수 방법입니다. 물리학은 과목 특성상 전공 강의에서 교재에 있는 것 이상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그런 점에서 사회과학 쪽 수업과는 다르죠. 학생의 입장에서는 저를 4년간 전공 수업으로 만나도 교재수업 내용 이외의 것에 대한 제 생각을 파악하기가 힘들 겁니다.

하지만 제가 만나는 학생들이 큰 틀에서 열린 마음, 유연한 자세로 공부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가르칩니다. 제가 학부생일 때 말씀을 굉장히 재미있게 하는 전공 교수님이 계셨어요.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나는 교재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가르치지만, 교재에 있는 것만 가르치는 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요즘에는 제가 이런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표준적인 물리 내용을 주로 가르치지만, 학생들이 그것 이상으로 더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 엉뚱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스웨덴 우메오대학’ 이력이 눈에 띕니다. 혹시 스웨덴에서 경험한 사회문화가 교수님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요?

(웃음) 학위는 한국에서 받았는데요, 연구원 생활은 외국에서 하고 싶었어요. 마침 제가 연구하려는 분야에 꽤 유명한 교수님과 연구 그룹이 스웨덴 우메오대학에 있었습니다. 아무튼 스웨덴과 한국은 많이 다르긴 합니다. 기후도 다르고 사는 모습도 다르죠.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입니다. 제 아이 둘이 스웨덴에서 태어났는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산모와 아이가 묵을 수 있도록 병원 근처에 있는 호텔에 방을 잡아주더라고요. 일주일 정도 푹 쉬라는 거죠. 그리고 호텔에서 지내는 동안 모유수유 교육을 굉장히 철저히 시켰습니다. 스웨덴은 상점에서 분유를 팔지 않았어요. 모유가 남는 사람이 마켓에서 판매하는 경우는 봤습니다만 분유를 파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보조금도 꽤 됩니다. 아이가 다섯 명 정도 되면 일 안 해도 먹고산다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아이 아빠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 점도 인상적이었죠.

반면에 세금은 엄청나게 비쌉니다. 처음에는 연구원으로 있다가 나중에 조교수가 됐는데, 연구원 때는 면세였어요. 그런데 조교수가 되니까 (세금을 내고 나니) 오히려 월급이 줄었어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인 거죠.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고 투명하고 공평한 사회이다 보니 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과 교수 간에도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워낙 소득 격차가 크지 않다 보니, 스웨덴 사람들 사이에서는 "돈을 정말 많이 벌고 싶으면 복권에 당첨되는 수밖에 없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실제로 복권 인기가 대단해요.



"다른 분야에 열린 마음으로, 동시에 자기 사고의 힘 키워야"

Q 스웨덴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점 한 가지만 더 말씀해주세요.

스웨덴 대학은 학생 연령층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학교 다니다 그만두거나 잠시 학업을 접고 엉뚱한 일을 하고, 다시 학교에 오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성균관대 동료 교수 중에 제가 스웨덴에서 교수-학생 관계로 만났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스웨덴에서 물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중국 상하이에 가서 중국 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또 받았어요. 물리학 석사 공부를 마치고 중국 가서 중국문학을 전공하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잖아요. 스웨덴에서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닙니다.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다른 것을 즐기고 도전할 수 있는 것에 열려 있어요.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두 가지, 그 이상을 동시에 선택할 수 있는 사회인 거죠. 물리학과 교수가 프로 스키선수를 할 수 있고,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발리볼 국가대표를 할 수도 있었어요. 한 사람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재능과 관심이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웨덴 사회에 강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할 수 있겠죠.

Q 스웨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요. 교수님의 글쓰기 이력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합니다.

주간동아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기자분께서 제 연구 주제가 재미있다며 칼럼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한 것이 대중적 글쓰기의 시작이 됐습니다. 2년간 한 달에 한 번씩 칼럼을 썼는데, 칼럼의 상당 부분을 <세상물정의 물리학>에도 소개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에서 발행하는 웹진 ‘크로스로드’에도 칼럼을 정기적으로 썼고, 지금은 문화일보와 머니위크라는 주간지에 고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Q 교수님이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두고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해준 자양분 같은 책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책 읽는 걸 매우 좋아합니다. 자꾸 책만 읽고 논문은 안 보려고 해서 큰일입니다.(웃음) 책을 통해 제 관심사와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코스모스>입니다. 제가 물리학 전공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때 즈음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는데, 그걸 보면서 과학을 꼭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세대에 그런 분들이 많아요. 저희끼리 ‘코스모스 세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천문학뿐만 아니라 진화, 인간, 외계에 대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기에,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태백산맥>은 제가 대학 때 읽었던 책입니다. 저에게 ’빨치산’은 타자였어요. 나와 상관없는 그들. 그런데 <태백산맥>을 읽고 빨치산을 우리로 이해하고,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렵기로 소문난 책이죠. 완역본을 읽었던 건 아니었어요. 개론서 같은, 일종의 해설판을 읽었죠. 이 책 역시 대학 때 읽었던 책인데, 인간의 의식이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 고도로 추상화된 세계를 개념화해서 설명하는 방식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책이죠. 사람이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후대에 더 많은 유전자를 남기려고 하는 경향이라는 점을 쉽고 흥미롭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말 탁월한 책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읽고 있는 책입니다만 <사피엔스>라는 책도 같은 맥락에서 권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거대한 규모의 사회를 만들고 발전시켜 지금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탁월하게 설명해내고 있는 책입니다.

끝으로 얼마 전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추천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철학을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동양 고전 독법에 관해 설명하시는 부분 중에 최근 과학계의 성과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분이 나오는데, 선생님의 전공과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배우는 마음으로 앎을 추구하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융합’에 대한 접근법입니다. 한 학문 분야가 다른 학문 분야를 흡수하는 형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해하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을 때 여러 사람이 같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바른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제 책을 보면서 ’물리학자는 세상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방법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자기 관점을 갖는 것입니다. 다른 분야에 대해 열린 마음과 자세로, 동시에 자기 자신의 생각, 사고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재 : 김현기(북DB객원기자)/ 사진 : 김범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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