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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16. 2016

소설가 윤이형 "실패한 사랑의 감정 쓰고 싶었다"


[기사 수정 : 15일 오후 9시] 


작고 예쁜 동안의 얼굴, 동그란 안경과 숏커트의 머리. 그녀는 지그시 아래를 응시하며 "잘 모르겠어요"를 연발했다.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며, 왜 자신은 어른이 되지 못하는지 자책하는 소설의 인물들이 오버랩됐다. 아직 자아에 갇혀 있어 타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다는 말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윤이형은 세 번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를 "사랑,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이 되지 못한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극한의 외로움 속에 찾아온 사랑 앞에 비겁했던 할머니(’대니’), 서로 다름을 끝내 인정하지 않고 침묵으로 외면한 게이(’루카’), 어른의 세계로부터 도망쳤던 열다섯 살로 다시 돌아가 진짜 어른이 되려 하는 마흔의 여자(’쿤의 여행’), 부러움과 질투를 사랑이라 착각하고 타인의 삶을 복제하는 여자 경(’러브 레플리카’). 소설을 읽으면서, 나를 복제한 것 같아 더욱 가엾고 애틋한 이들을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 속에 더욱 깊어진 시선을 투영한 윤이형을 두고 한국 문단은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라는 평가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부심(자부심)’이라고는 1g도 찾아볼 수 없는 ’쿨내’를 진동시킨 윤이형 작가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해 더욱 아름다운 여인 같았다.


Q 윤이형 소설이 변했다는 의견이 많던데요.

왜 그렇게들 말씀하시는지 정말 잘 모르겠어요. 방식을 좀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장르 코드를 덜 쓴 작품들이 몇 개 있어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별로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Q ’루카’나 ’러브 레플리카’ 같은 작품이 해당될 텐데요. 방식을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글을 처음 썼을 때를 생각해보니까 ‘꼭 이렇게 써야겠다’라고 생각한 건 없었던 듯싶은데, 어느 순간 보니까 좀비나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만 쓰는 사람이 돼 있더라고요.(웃음) ‘내가 다른 걸 쓸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으로 써본 것들이에요. ’루카’ 같은 작품은 별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쓰인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정통 리얼리즘으로 쓰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일긴 했어요.

Q 궁금증에 대한 결론은 얻었나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항상 그냥 보통의 현실을 그대로 쓰라고 하면 이야기가 안 생기더라고요. 제가 그런 것에서 별로 재미를 못 느끼나 봐요. 뭔가 자꾸 이상한 거 만들어 넣거나 틀어서 꼬든지, 이런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소설 속 외로움 많이 느끼는 인물들... 왜인지 모르게 끌려"


Q 순문학에서는 드물게 SF 장르를 차용한 소설들을 쓰고 있는데요. 

독자로서 SF를 좋아하고요.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SF는 과학이 중심이라서 과학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과학적이거든요. 그 점이 되게 끌린 것 같아요. 순문학 쪽에서는 제 소설이 기발하다고 하는데, 본격 SF물을 쓰시는 분들이 보면 제가 하고 있는 건 이미 낡은 아이디어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시도들을 해본 거고요. 사실 장르소설은 내용보다 형식을 더 중요시해요.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더 무게중심이 있어요. 장르소설이 못 된다면 아마 그런 이유도 있을 거예요.

Q 책에 실린 소설들이 난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만 읽히지는 않더라고요. 뭔가 명확하지 않은 모호함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런 모호함은 작가의 의도인가요? 

네. 이를테면 ‘결말을 열어놓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끝낸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항상 사물이나 상황을 보면 반반씩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살아 있다고 느낄 때가 반이고, 살아 있지 않다고 느낄 때가 반이에요. 50 대 50으로 똑같아요. 자꾸만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는 거예요. 스토리의 완결성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규정하지 않는 모호함은 작가로서 무책임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제가 보는 세상 자체가 모호하고 혼란스럽고 불안한 게 되게 많아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Q 결말뿐만 아니라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명확한 설명이 없어 독자들은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 가령 여주인공이 보통의 허언증 환자들과 달리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아닌 거식증 환자의 기억을 복제하는 이유라든지(’러브 레플리카’), 비윤리적인 패턴은 만들어지지 않도록 설계된 안드로메다의 베이비시터 대니가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들에게 금품을 갈취한 이유라든지요(’대니’). 

그건 제가 주로 쓰는 인물들이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인물들이라 그런 거 같아요. 외롭다 보면 극단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고, 드문 경우 그걸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죠. 그런 인물들에게 왜인지는 모르지만 끌려요. 소위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제가 그런 사람이거든요. 스스로 많이 병들어 있다고 느껴요. 모든 걸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소설에서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인물들에 대해 자꾸 쓰게 되네요.

Q 예순아홉 살의 할머니와 스물네 살 청년이 사랑을 느끼는 ’대니’의 초반부 설정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웃음) 나중에 청년이 육아를 대신해주는 로봇이라는 게 밝혀졌지만요. 작가 자신이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소설이 나왔다고요. 

네, 맞아요.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그거예요. 육아에 내몰리다 보니까 ‘내가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됐어요.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인간이 아닌 상태로 살아야 할 때가 많잖아요. 제발 누군가 한 명이라도 곁에 있으면 좋겠는데, 만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손주를 돌보는 외로운 할머니에게 누군가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고, 그게 스물네 살짜리 젊은 남자 로봇이었죠.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 않나 싶고. 극한의 외로움 속에서 사람의 체온을 갈망하는 할머니의 이야기인데, 제가 비슷한 점이 아주 많아요. 특히 메마른 정서 같은 거요.

Q 스물네 살 청년이 예순아홉 할머니에게 "아름다워"라고 말하며 다가갈 때 그 단어가 주는 파장이 대단했어요. 그런데 그 낭만적인 언어는 로봇 사용자가 장난으로 입력한 것이었죠. 그 대목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잔인한 것 같아요. 그게 꼭 악의라고 말할 수만도 없고요. 누군가는 그냥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절박한 사람에겐 너무 크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요. 그런 게 현실인 것 같아요.



"나는 타인이 얼마나 슬픈지 그 사람에 가깝게 느끼려는 사람"

Q 대니가 할머니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버그가 발생해 결국 폐기되잖아요. 어쩌면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주인공 할머니가 좀 더 적극적으로 변호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아름다운 결말로 갈 수도 있었는데, 저는 이 할머니가 자기감정에서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것 자체가 너무 버거운 감정일 거 같았어요. 도망쳐버리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미 그 사랑은 아름답지 않게 된 거죠. 그게 현실에 대한 제 생각이에요. 그런 해피엔딩은 있을 수가 없잖아요. 사랑이라는 감정도 찰나의 착각이나 환상 같은 거고, 사람들의 호의도 오랫동안 유지되는 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보거든요. 이번 단편집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썼어요. 사랑한다고 해도 못난 감정이 많잖아요. 질투, 시기, 집착, 소유욕, 권력관계 같은 것들. 아름다운 사랑이 되려다 못된 감정들, 그런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현실은 비록 척박하지만 문학이 판타지나 위로를 줄 수도 있잖아요.

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요. 감성적으로 저랑 잘 맞아요. 근데 그게 현실은 아니라는 인식은 갖고 있어요. 그걸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디즈니에 들어가서 그걸 하고 있지 소설을 쓰고 있진 않을 거예요.

Q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들은 기억이나 믿음, 진짜와 허상, 희망, 사랑 등에 관해 일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나는 어른이 됐어야 하는데 왜 못 됐는가, 나는 그동안 뭘 했는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 사실인가.’ 이런 것들이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들이에요. 사실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죠. 제가 아직 자아에 갇혀 있어요. 타인들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게 생각을 많이 못해봤어요. 공허하고, 불안하고, 한 거 없이 나이만 먹어가고,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그런 느낌을 써본 거예요.

Q 지금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고, 소설에서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자주 등장해요. 세계를 보는 눈이 비관적이신가요?  

네. 일종의 방어장치인 것 같아요. 낙관적으로 잘될 거라고 기대를 갖지만 보통은 잘 안 되잖아요. 콱 떨어지는 걸 잘 못 견뎌요. 일단 안 될 거라고 생각해버리면 낙차에 대한 충격은 없으니까요. 심리적인 방어기재인데, 글도 그렇게 써지는 거 같고요. 저는 기대와 낙관과 희망이 부풀어 꽉 차 있는 에너지 ‘만땅’의 상태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세계와 인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해요. 부러워요. 태생적으로 저는 안 되는 거죠.

Q 그런 비관적인 기조에도 불구하고 윤이형 소설은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이 있어요. 

따뜻한 건지 모르겠는데, 이성적인 인간이냐 감정적인 인간이냐 하는 것으로 나누면 저는 감정적인 사람이에요. 말하자면 위기에 처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머리로 찾아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슬픈지를 거의 그 사람에 가깝게 느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후자죠. 사실은 이런 내가 싫을 때도 많아요. 해결책은 줄 수가 없으니까요. 스스로에 대해서 양가감정이 있어요. 저는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글 쓸 수 없었던 3년... 이제 다시 쓸 수 있다는 자체로 좋아"

Q 글을 전혀 쓸 수 없는 시기가 3년 정도 있었다고요. 공백 후 다시 쓴 게 어떤 작품인가요? 

제대로 쓴 건 (이번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에 실린) ’굿바이’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임신했을 때 구상해 시작했는데 아기 낳느라 마감을 못 지켰어요. 그러다가 6개월 후에 그 이야기를 꺼내서 다시 썼어요.

Q ’굿바이’가 태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유가 있었네요.

그런 면이 분명히 들어가 있겠죠. 아기가 배 속에 들어 있는데 나쁜 건 주고 싶지 않더라고요. 세상은 끔찍하잖아요. ‘보고 듣고 먹는 게 모두 나쁜데 어떻게 안 줄 수 있겠나. 얘도 나쁜 걸 먹고 태어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나쁜 것들로부터 아이를 단절시킬 수 없을까?’ 현실적인 방법을 못 찾았으나 상식적인 의미에서라도 생각해보고 싶어 그런 이야기를 쓴 것 같아요.

Q 지금은 쓰는 게 재미있어졌다고요. 

그 말을 한 순간부터 왜 이렇게 안 써지는지.(웃음) 이렇다니까요. 이렇다가 저렇다가 그래요. 예전에 비하면 나아진 건 맞아요. 그전에는 독자들을 많이 신경 썼어요. 독자들 반응에 많이 흔들렸죠. 그런데 지금은 제1 독자가 저라는 생각으로 쓰기 때문에 그런 부담이 많이 없어졌어요. 제가 즐거우면 일단은 됐고 나머지는 그 다음 문제라고 생각하니 재미있어지더라고요.

Q 이 책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쓴 작품은 뭔가요?

글쎄요. 특정 작품이 생각나지는 않는데, 저는 사랑 이야기를 쓴다고 하면 연인들끼리 싸우는 장면이 그렇게 잘 써져요.(웃음) 서로 오그라드는 감정은 표현을 잘 못하겠는데 슬퍼질 때까지 싸우고 이런 건 이상하게도 잘 써져요.

Q 예전에 비해 인간관계의 미묘함이나 내면의 사소한 풍경에 주목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요. 아이를 낳은 것도 그 변화에 영향을 미쳤겠지요? 

네. 영향이 없을 수 없겠죠. 엄마가 되면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야가 좁아지는 시기가 있잖아요. 아들이 다섯 살이라 지금 그런 기간이기도 하고요. 아이랑 사랑을 많이 주고받다 보니 감정에 있어선 예전보다 풍부해진 것 같아요. 그런 사랑이 일깨워주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좀 더 건강해지는 느낌도 들고요.

Q 세 번째 소설집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 단편집 세 권, 중편 하나 나온 것뿐이고 아직 장편이 없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작을 안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는 장편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래도 이 책은 행복하게, 전에는 몰랐던 기쁨을 가지고 썼어요. 글이 안 써지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써진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아요.

Q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한국 사회와 40대가 된 나와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 그런데 정말 생각만 있고, 언제 쓰게 될지는 정말 알 수가 없어요.



취재: 이미회(북DB객원기자)

사진: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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