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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19. 2016

'사이다 앵커' 김성준 그에게 런던올림픽이 특별한 까닭


암담한 현실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뉴스가 고역처럼 느껴질 때에도 시청자들을 TV 앞에 불러낸 앵커가 있다. 2011년 3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SBS ‘8뉴스’의 메인 앵커를 맡은 김성준 기자다. 그는 촌철살인의 클로징 멘트로 소위 ‘뉴스 볼 맛 나게 해주던’ 앵커다. 뉴스 때문에 한숨이 나오거나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시청자들에게 그의 멘트는 꽉 막힌 속을 뚫어주던 ‘사이다’처럼 느껴진 덕분이다.

김성준 기자는 클로징 멘트를 통해, 모두가 알면서도 묵인했던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했고, 대형 이슈에 가려져 지나치기 쉬운 작은 사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물론 비난도 있었다. 공정성을 지켜야 할 뉴스에서 앵커가 자신의 ‘사견’을 밝힌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얼마 전 출간한 책 <뉴스를 말하다>를 통해 당시의 시도가 소신도, 사견도 아닌 ‘SBS 뉴스의 관점을 전하려는 노력’이었음을 이야기했다. 

책은 그가 유년시절 TBC 동양방송의 앵커였던 이모를 따라간 방송국에서 경험한 ‘첫 방송’의 기억으로 시작해, ‘8뉴스’의 마지막 방송을 덤덤히 준비했던 날의 기록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곳곳에 포진된 그의 클로징 멘트들은 잠시 잊고 있던 지난 사건들을 되새기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한 기자가 지닌 뉴스에 대한 뜨거운 신념이다.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 희망이 없는 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뉴스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논리적이고 때로는 감동적으로 밀려온다.

표지에 새겨진 “뉴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하여”라는 문구가 책을 열 때와 닫을 때 달리 느껴진다. 성수대교 참사를 취재했던 막내 기자 김성준은 세월호 사건을 전하는 메인 앵커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보도국 정치부장으로 여전히 뉴스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SBS의 뉴스 스튜디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데스크 룸에서 그를 만났다.





"100% 객관적인 뉴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상식적인 입장 대변"


Q 책 표지에 있는 ‘뉴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하여’라는 문구가 눈길을 끕니다. 많은 분들이 ‘클로징 멘트’로 기자님을 기억하실 텐데요. 뉴스가 아닌 책으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본질적으로는 8시 뉴스를 4년간 진행하면서 당시 클로징 멘트의 취지가 뭐였는지를 설명하고 싶었어요. 클로징 멘트를 사견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소신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제가 전하고 싶었던 본질은 사견도, 소신도 아닌 ‘SBS 뉴스의 관점을 전하려는 노력’이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우리가 뉴스를 봐야 할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되더라고요. 최근에 사람들이 뉴스를, 특히 지상파 뉴스를 잘 안 보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뉴스를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Q 개인적으로는 18대 대통령 선거 전날 했던 ‘내일 선거에서 누가 이길지 가르쳐 드릴까요? 투표하는 국민이 이깁니다. 정치인들은 당선되든 낙선되든 목소리 내는 유권자를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멘트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뉴스’의 역할이라 생각했던 선입견을 깨주신 건데요, 클로징 멘트에 심혈을 기울이셨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보통 객관적이고 공정한 뉴스를 말하면 ‘A는 이렇게, B는 이렇게, C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라고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하시죠. 뉴스의 주체들이 하는 행동과 말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전하는 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뉴스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과연 그런 뉴스를 좋아할까, 정말 객관적이고 공정한 뉴스라는 건 사람들에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클로징 멘트를 생각했던 거죠. 

뉴스 메이커들이 한 말과 행동을 정리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나름대로 취재 결과를 가지고 판단한 관점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고, 그 관점이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예를 들면 ‘A는 뭐라고 했고 B는 뭐라고 했는데 우리가 취재를 해보니 A 말이 더 맞습니다’라고 하는 것까지가 뉴스의 역할이 아닐까, 또 그걸 클로징 멘트에서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판단했습니다.


Q 언론사의 앵커가 중립을 지켜야 할 뉴스에서 자신의 소견을 밝힌다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책에 언급하셨는데요, ‘뉴스는 결국 뉴스를 만드는 구성원 모두의 주관성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뉴스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취재를 하기로 결심한 것부터 뉴스가 나갈 때까지 모든 절차에 주관이 개입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가 ‘오늘 날씨가 추우니까 추운 날씨 스케치를 리포트한다’라고 판단했거나 ‘날씨가 춥지만 그래도 나는 추운 날씨 말고 맛있는 음식을 취재하겠다’라는 판단을 할 때부터 이미 저의 주관이 개입되잖아요.

기사를 써도 어떤 것을 리드로 내세우고 부각시키고 이런 것들이 다 주관이기 때문에 100% 객관적인 뉴스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다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깊이 있게 취재해야 하고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보편성을 띈 입장을 대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Q 당시에 한 원로 선배에게 받은 편지가 큰 전환점이 돼주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가 돼주었나요? 


굉장히 긴장하게 만들어주셨죠. 그분이 1970년대 유명 앵커였던 TBC 동양방송 봉두완 앵커인데, 그분이 주도하는 언론인 모임에 참여하면서 잘 알게 된 사이에요. 한창 클로징 멘트 때문에 여러 군데서 반발하고 비난을 받던 시절에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앵커맨은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해야 합니다.’ 거기까지는 좋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그 다음에 써 있던 문장을 보고 가슴이 철렁하더라고요. ‘사람이 한 번 죽게 돼 있죠. 뭐 알아서 하십시오.’ 클로징 멘트가 줄 수 있는 파장을 생각하지 못했던 때였거든요. ‘내가 정말 중요한 걸 하고 있구나. 나에게만 중요한 말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말이겠구나.’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알려준 편지였죠.




기자가 현장을 지켜야 할 이유... "부정한 상대들이 끼어들 틈을 막는 역할"


Q 많은 매체가 생겨났고 그만큼 뉴스도 많아졌지만, 정부 비판에 소극적이거나 노골적으로 친정부적인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를 보며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반면 그런 언론을 통해 영향을 받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이에 대한 우려는 없으신가요?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과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구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죠. 마치 어떤 특정한 세력을 대변하기 위해서 만드는 뉴스 같은 것은 당연히 해서는 안 되고 조심해야 될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왜 뉴스를 만들고 공급하는 건지 기자들의 본질적인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고민을 하면서 뉴스를 만드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크니까요.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데 내가 쓴 기사가 기여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할 거고요. 

무엇보다 뉴스를 보고 과연 내 삶이, 내 가족의 삶이, 이 사회가 변화하는 데 이 뉴스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소비자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고 결국에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죠.


Q 좋은 변화도 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를 해봐도 뉴스의 전달 방식이 친숙하게 변화된 점이 눈길을 끕니다. 시도하는 것들도 더욱 많아졌고요. 기자님도 뉴스의 친숙함을 위해 노력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시대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어요. 사람들의 패션이 변하는 것처럼 뉴스도 그 본질의 변화는 없지만 전달 방식의 변화는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란 말이죠. 신문만 읽던 시대에서 라디오로,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변화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일단은 흥미를 끌어야 할 것이고 사람들이 보기 편해야 할 것이고 또 공감할 수 있는 뉴스를 해야 하죠.

‘모닝와이드’를 진행할 당시에는 앵커석에 차가 담긴 머그잔을 놓고 방송을 하기도 했어요. 아침부터 양복 입고 앉아서 딱딱하게 뉴스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보다, 아침에 커피 한잔 같이 마시며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을 줄 수 있으니까요. 멘트 역시 친구 혹은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듯이 편하게 하고요.


Q 본문에 ‘희망 없는 뉴스에도 희망은 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이것이 책의 가장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희망 없는 이 사회에 지쳐 뉴스를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뉴스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뉴스 참 안 변하죠. 매번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뉴스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딱딱하고 희망이 없는 뉴스라고 해서 외면을 한다면, 뉴스를 전달하는 기자들도 하나둘 현장을 떠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그 기사를 볼 기회가 줄어들어서 시청자들의 알 권리도 줄어들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기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희망이 없고 반복되는 뉴스가 계속되더라도 현장을 지키고, 현장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달해주는 것이에요. 기자가 현장에 있다는 것은, 부정이나 부조리를 모색하는 상대들이 그 자리에 끼어들 틈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미가 없고 희망이 없다고 해도 뉴스에 희망이 있는 건 그런 이유들 때문이죠.


Q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취재했던 막내 기자가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를 전하는 메인 앵커가 됐습니다. 25년간 숱한 사건사고를 취재하며 느낀 ‘기자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기자든 리포터든 간에 과연 내가 이 뉴스를 왜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는 제가 만 2년차의 주니어 기자였는데, 그때 저는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거죠. 리포트 깔끔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잘했다는 소리 듣고 싶어서 열심히 했던 거거든요.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세월호 사고를 바라봤을 때는 우리가 왜 뉴스를 해야 하는지, 이 상황에서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은 뭔지를 고민하게 됐다는 거죠. 뉴스를 잘해서 시청률을 올린다거나 뉴스 속보를 잘해서 내가 돋보인다거나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20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깨달았다는 이야기거든요. 어쨌든 내가 왜 이 뉴스를 해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기자들 사이에서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이고, 저 역시도 그 과정 속에서 반성들을 했습니다.




Q 수많은 클로징 멘트로 화제가 됐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멘트 한 가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순간적으로 툭 생각이 나서 했던 멘트인데, 2012년이었어요. 런던올림픽 기간 중에 ‘SJM’이라는 회사에서 용역 직원들을 동원해서 파업 근로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있었어요. 작은 기업의 작은 논쟁거리일 수 있겠지만, 그걸 보고 ‘21세기에 이게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은 신아람 선수가 펜싱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메달을 빼앗긴 날이기도 하고, 정치권의 중진의원이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이 된 날이기도 해서 다른 멘트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JM 사의 사건을 이야기하기로 선택했어요. 멘트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뜨겁더라고요.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매일 클로징 멘트를 하게 된 계기가 돼서 가장 기억에 남죠.


“신나는 올림픽 축제 중이지만 드릴 말씀은 드려야겠습니다. 파업 중인 SJM 사의 용역업체 폭력 사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아직도 폭력으로 근로자들을 두드려 패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니요. 철저하게 수사해야 합니다.” - 2012년 7월 31일 클로징 멘트, <뉴스를 말하다> 45쪽


Q 조금 원론적인 질문입니다만, 이 책의 메시지와 연결해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정말 뉴스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변할 수 있을까요? 


굉장히 힘들겠지만 조금씩은 변할 수 있다고 봐요. 저도 세상이 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데 제가 현장에서 직접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기자가 됐는데, 25년 동안 기자생활 하면서 세상이 생각보다 잘 안 변한다는 걸 느끼거든요. ‘그렇다고 좌절을 하거나 포기해야 하나?’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메시지를 책에서 전하고 싶었어요. 

고아원 급식비 문제를 다룬 적이 있어요. 또래 아이들이 먹는 식사의 반값밖에 되지 않는 도시락을 먹으면서 키도 체중도 늘지 않던 아이들이 있었거든요. 그 뉴스로 인해 예산이 더 투입돼서 아이들의 키와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사회 전체로 보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뉴스를 함으로써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했다는 것이 굉장히 뿌듯하고 기분 좋았어요. 이것처럼 뉴스를 통해 여기저기서 조금씩 변화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많이 바뀌었네’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오지 않을까 싶죠. 반대로 아무리 뉴스를 보고 뉴스를 해도 이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현장을 떠난다면 사회는 정말 바뀌지 않을 겁니다.





취재 : 임인영(북DB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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