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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22. 2016

소설가 신현수가 '성형중독' 사회에 던지는 일침



신현수는 여러 분야를 두루 넘나든 작가다. 2001년 동화 ‘생각하는 자전거’, 2002년 장편소설 ‘끝이 없는 길은 없다’가 나란히 공모전에 당선된 후 지금껏 청소년소설과 동화, 어린이 지식정보책, 소설을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왔다. 시대 배경도 과거와 현대를 들락거린다. 2011년 <분청, 꿈을 빚다>를 통해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넘어오는 격랑의 시대를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현대의 민낯을 훑었다. 신작 <플라스틱 빔보> 속에서 ’성형 권하는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핀 것. 

"언론에도 청소년 성형수술 관련 기사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글은 꼭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외모지상주의가 기성세대들이 만든 건데 청소년들은 거기에 무방비로 빠져드니까요." 

이 소설을 쓴 까닭을 밝히면서 신현수 작가는 비절개 쌍수(쌍꺼풀 수술), 앞트임, 뒤트임 등 성형용어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친구 딸이 성형외과에 상담받으러 갈 때 이모인 척 따라가는 등 자료조사에 심혈을 기울인 덕에 관련 지식에 빠삭해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번 책을 쓰면서 계속 멈칫거렸다고 했다. 무엇이 신현수 작가의 펜을 자꾸 붙들었는지 그 속내를 들었다.

Q 성형수술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청소년 소설을 썼는데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주변에 성형수술을 하는 청소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쌍꺼풀 수술을 한 아들의 친구도 있고, 중3 겨울방학이나 수능 끝나자마자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고요. 저의 문제의식은 주변에서 보면 부모들이 더 수술을 부추긴다는 겁니다. 아이에게 너는 뭐가 부족하다면서 수술을 권하더라고요. 아이가 지니고 있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기보다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글은 꼭 한 번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Q ‘작가의 말’에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쓰다가 멈추고, 또 쓰다가 멈추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고 하셨어요. 

네, 쓰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성형수술은 나쁘니까 무조건 하지 말라는 식으로 들릴 것 같고, 심한 외모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작가인 당신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느라 2011년 여름에 시작한 글을 2014년에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또 이 작품을 시작할 때는 성형 광고가 심각했어요. 지하철 안에도 성형수술 전과 후의 사진을 보여주는 광고가 많았어요. 광고처럼 바뀐 걸 보면 어른도 혹하는데 청소년들은 오죽할까 싶더라고요. 청소년들이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 성형수술을 동경하겠구나 염려스러웠죠.

그런데 소설을 쓰는 중에 성형광고가 일부 규제됐어요. 한 국회의원이 미용성형수술에 대해 부위별로 연령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고요. 이런 변화가 있으면 내가 꼭 쓸 필요는 없겠다 해서 초고를 쓰고 묵혀두기도 했어요.(미용성형수술에 대해 부위마다 연령에 따른 제한을 두는 의료법 개정안은 2013년 발의됐지만 국회 전문의원실이 연령에 따른 의학적 판단 근거 부족을 이유로 부정적으로 검토하면서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 기자 주)

Q 그럼에도 이 소설을 끝마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면요. 

2013년 말에 한 여고생이 성형수술을 하다가 뇌사에 빠진 사건 기사를 접하면서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쓰면서는 너무 고민하지 말고, 제가 알고 있는 성형의 A부터 Z까지 알리되 미용성형에 대한 판단은 10대 스스로에게 맡기자고 했죠.



"’공부도 못하는데 얼굴도 그 모양’... 어른들이 성형 부추겨"

그래서인지 <플라스틱 빔보>에는 성형수술을 둘러싸고 다채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광대뼈가 튀어나와서 생긴 ’강뮬란’이라는 별명을 좋아할 정도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높았지만 사고로 얼굴을 다친 후 성형수술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까지 만드는 주인공 여고생 강혜규. 웬만한 성형외과 상담실장과 맞먹을 정도로 성형 지식을 꿰고 있는 송선아. 돈벌이로써 미용성형수술을 하는 성형외과 의사 아버지를 보면서 성형수술을 혐오하게 된 윤호찬.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성형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노댕 선생님. 잘나가는 하이틴 스타이지만 성형중독에 걸려 괴로워하다 결국 의료사고까지 당하는 리사.

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성형수술과 연결된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너무 작위적인 것 아닌가 싶어 주변에 성형수술을 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 손을 꼽아보니 손가락이 여러 개 접힌다. 그만큼 성형수술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 신현수 작가에게 취재과정에서 살펴본 한국의 성형산업에 대해서도 물었다.

Q 성형수술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취재를 하셨을 텐데요. 

친구나 친구 딸이 성형수술 상담받을 때 따라가 봤어요. 책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지만 성형외과 상담실장들은 상담자의 외모를 상당히 직접적으로 지적하면서 자신감을 잃게 하더라고요. 여기가 병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술이나 수술을 과하게 권하기도 하고요.

광고도 엄청나요. 성형외과 홈페이지뿐 아니라 개인 블로그를 통해 홍보하기도 하죠. 청소년들에게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마케팅도 대단하죠. 성형수술 카페를 통해 ‘공구’(공동구매)도 하고, 엄마와 딸이 함께 하면 할인해주는 이벤트도 있더라고요. 자료조사 하면서 성형수술 카페에 가입한 덕에 문자메시지나 메일로 이벤트 광고가 끊임없이 들어와요.

Q 책에서 성형 관련 말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어요. 요즘은 성형외과 의사를 ’의느님’이라고 부르나 봐요. 제목인 ’플라스틱 빔보’나 책에 나오는 ’본맹청청’과 같은 단어들도 재미있는 조합이었어요.

얼굴을 재창조했다고 해서 ’의느님’(의사+하느님)이라고 부르더군요. 같은 성형외과 의사한테 수술을 받아서 얼굴이 비슷한 사람들을 ’의란성 쌍둥이’라고 하고요. ’강남 흔녀’는 이제 익숙한 말이 됐네요. ’플라스틱 빔보’는 정말 책 속에서 혜규가 카페 이름을 정할 때처럼 여러 단어들을 대입해 보다가 생각해냈어요. 성형수술인 ‘플라스틱 서저리’(Plastic Surgery)와 예쁘긴 하지만 백치미가 있는 섹시한 여자를 뜻하는 ‘빔보’(Bimbo)를 조합하니 뜻도 그렇고 부르기도 좋더라고요. ’본맹청청’은 줄임말을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처럼 ’본판 유지를 맹세하는 청소년들의 모임’을 줄였고요.

Q 한국이 인구 대비 성형수술 비율이 세계 1위라고 하는데 유독 우리나라가 성형수술이 많은 이유는 뭘까요?

글쎄요. 연예인이나 대중매체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지금은 기획사에서 연예인을 어려서부터 양성하면서 외모를 관리하고 성형수술도 시키잖아요, 연예인들이 나와서 성형수술 한 걸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요. 청소년들도 거기에 영향을 받겠죠. 그나마 최근엔 개성적인 얼굴의 연예인도 많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요. 

또 하나, 요즘 청소년들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도 문제죠. 성형수술은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없을 때 하게 되잖아요. 입시경쟁이 심하니까 성적이 안 좋은 친구들한테 어른들이 "넌 공부도 못하는데 얼굴도 그 모양이면 어쩌느냐" 하는 식으로 말을 하고요. 그런 말들이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성형을 부추긴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책에서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하는 혜규 언니가 자꾸 시험에 떨어지니까 성형을 고민하기도 하는데, 취업 준비생들도 성형수술을 많이 하더군요. 경쟁사회의 폐단이죠.

Q 작가님은 성형수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으세요? 

제가 그다지 예쁜 얼굴은 아닌데 소설 속 혜규처럼 근자감이 좀 넘쳤었어요. 외모 콤플렉스가 없었죠. 그런데 저도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을 따라 쌍꺼풀 만들기를 시도해봤어요. 우리 때는 쌍꺼풀 테이프도 없어서 아이들이 책받침에 투명 테이프를 붙여놓고 초승달 모양으로 자르곤 했어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죠. 스무 개쯤 자르면 한두 개 성공할까 말까 했으니까. 그래도 쌍꺼풀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그렇게 잘라서 눈꺼풀 위에 붙이곤 했어요. 결국 잘 안 됐지만….

저도 그 마음을 아니까 단정적으로 성형수술을 하지 말라고는 말 못해요. 다만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심각할 수 있다는 건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성형수술이 무서운 게, 한 번으로 그치질 않는다는 거죠. 제 친구의 딸도 눈 수술을 하고 나니까 균형이 안 맞는다고 코 수술을 하고, 또 거기에 맞춰 다른 걸 고치더라고요. 그래서 성형중독이 생기지 않나 싶어요.

Q 소설이 열린 결말로 끝났어요. 의도가 있었을 텐데요.

끝에 ’본맹청청’과 ’플라스틱 빔보’가 20년 후에 만나자고 한 건 아름다움을 길게 보자는 의미가 있어요. 저도 지금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들이 달리 보여요. 젊었을 때 안 예뻤던 친구들이 지금은 예쁘고, 미인이라고 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그냥 그런 경우가 있어요. 사회생활 등을 하며 살아오면서 내면에 쌓인 경험과 아름다움들이 드러나 원숙미로 나타나는 거겠죠. 결국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름답더라고요.



15년 기자생활 후 40대에 이룬 작가의 꿈... "청소년소설 집중할 것"

Q 프로필을 보면 어렸을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다고요? 

작가의 꿈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늘 신문, 잡지를 챙겨보고 일기를 쓰셨거든요. 문학소녀 같고 박학다식하셨죠. 부잣집도 아닌데 어린이신문인 ‘소년동아일보’나 ‘어깨동무’ 같은 잡지도 구독해주고,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명작전집’도 사주셨어요. 월부로 샀던 그 전집의 주황색 커버가 아직도 생각나는데 그 책들을 보면서 작가의 세계를 동경했어요. 또 친척 언니가 박완서 작가님의 따님과 같은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박완서 선생님이 가정주부로 있다가 늦은 나이에 등단하신 걸 알고 굉장히 부러워하셨어요. 저도 박완서 선생님처럼 마흔 무렵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고요.

Q 그런데 작가가 아닌 기자생활부터 시작하셨어요. 

작가의 꿈을 안고 국문학과에 갔죠. 그런데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엔 순수문학, 참여문학 같은 말들이 나오면서, 작가도 현장에 깊이 파고 들어가 온몸으로 체험해서 글을 쓰는 참여문학을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강했어요. 여성 작가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머릿속으로만 글을 쓴다는 비판도 있었고요. 여성해방이론이 시작되던 무렵인데 저 역시 사회에 나와 내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작가는 당장은 생계 해결이 안 되잖아요. 반면 기자는 돈도 벌고, 우리 사회 민초라 할 수 있는 서민들부터 우리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관료, 기업가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은 못해도 취재를 하면서 좀 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대학 졸업하자마자 기자생활을 시작했죠. 

처음엔 기자 일을 하면서 습작을 할 생각이었는데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결혼하고 육아까지 겹치니 더 힘들어졌고요. 또 큰애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니까 엄마가 필요하다면서 직장생활을 끊기를 바라더라고요. 그때가 서른아홉 살이었는데 계속 품고 있던 ’마흔에 등단하겠다’라는 꿈을 위해서도 결단을 했죠. 그렇게 15년 기자생활을 끝마친 후, 2년 후인 마흔한 살에 동화가, 마흔두 살엔 소설이 당선됐어요. 소설은 박완서 선생님이 등단하신 여성동아로 등단해서 더 뜻깊죠.

Q 등단 후에도 동화부터 어린이 지식정보책, 청소년소설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셨어요. 

작가가 되고 싶던 때도 장르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이야기를 짓는 게 좋았죠. 이야기라는 게 작가가 만드는 세계잖아요. 내가 만든 세계에서 인물들을 창조해내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걸 읽은 독자가 재미와 감동, 때로는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어떤 것까지 잡아낼 수 있다면 재미있는 직업이겠다 싶었지요.

대학 때는 시를 쓰고 소설가를 꿈꿨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접한 동화의 세계가 새로웠어요. 우리가 자랄 때 읽은 세계명작동화를 넘어서 정말 다양한 동화들이 아이들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더라고요. 우리 아이들한테 들려줄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동화부터 쓰기 시작했죠. 젊었을 때의 꿈대로 소설을 쓰기도 하고요. 어린이 지식정보책은 기자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지식책은 자료를 찾거나 취재가 많이 필요한데 기자 일을 해서 그런 부분이 두렵지 않거든요. 기자도 여러 파트를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어떤 분야가 맡겨져도 큰 무리가 없죠. 그런데 이제는 창작에 좀 더 집중해서 청소년소설을 더 쓰려고 해요.

Q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나요? 

<플라스틱 빔보>는 오늘날 청소년의 모습을 담았다면 다음 작품은 과거로 돌아가려고 해요. 청소년들이 내가 겪고 있는 오늘날의 문제를 넘어 과거 나와 같은 청소년기를 보낸 옛 청소년들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죠. 지금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경성의 한 여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움직임을 다룬 역사 청소년소설을 쓰고 있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근처에 있던 출판사 관계자들이 자리에 함께했다. 여성 네 명이 모이자 자연스럽게 화제가 <플라스틱 빔보> 속 성형 이야기로 넘어갔다. 한 편집인이 딸을 3년간 설득해서 쌍꺼풀 수술을 해줬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그 수술을 하면 딸의 강해 보이는 인상이 좀 부드럽게 바뀌겠다는 확신으로 했는데 하고 나서는 1년간 마음고생을 했단다.

"사람들이 쌍꺼풀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들 하잖아요. 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애가 수술받는 동안 밖에서 다른 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수술 끝나고 회복실에 갔는데 애가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거예요. 1주일 동안 외출도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더라고요. 아이 인상이 바뀌겠다는 확신을 갖고 했지만 아이에게 몹쓸 짓 한 거 아닌가 싶어 1년 정도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그래서 친척 조카가 성형수술을 한다고 할 때는 말렸죠." 

그 이야기를 들으니 <플라스틱 빔보>가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각자에게 던져진 질문에 나만의 답을 찾을 필요가 느껴졌다.



취재 : 신정임(북DB기자)/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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