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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24. 2016

동갑내기 김광석과 김광식, 노래로 찾은 '행복'



‘행복한 사람의 얼굴이다!’ 김광식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표정과 눈빛에서, 말투와 분위기에서 행복이 막 흘러넘쳤다.

그 행복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김광식 교수가 행복한 건 돈이나 명예, 성공과 같은 ‘세상이 원하는 가치’ 때문이 아니다. 운이 좋아서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로서 사는 삶을 고민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몸에 익히며 살아온 습관의 결과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열심히만 사는 삶이 아니라 매순간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며 ‘후회해도 좋을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김광식 교수의 말에 가슴이 설렜다. 

입에 달고 살 만큼 행복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서 ‘나의 행복’이 무엇이었는지 잊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올 1월 <김광석과 철학하기>를 펴낸 김광식 교수의 ‘몸의 철학’ 이야기를 들으며, 잊고 있던 행복의 의미를 오랜만에 물어본다.

Q ‘행복 콘서트’ 등의 철학 강의와 강연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계신데요, <김광석과 철학하기>는 어떻게 기획하셨는지 궁금해요.

2009년 서울대 철학개론 강의를 하게 됐어요. 철학개론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고 재미없게만 생각하더군요.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강의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철학을 우리 삶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스스로 찾아보는 수업을 했죠. 그 맛보기로 김광석의 노래 속에 담긴 삶의 아픔을 철학으로 해결하는 걸 보여준 거죠.

학생들은 삶의 고민을 철학으로 스스로 해결해 발표하고 토론했는데, 밤샘을 할 정도로 열광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종강 때는 홍대 카페를 빌려 제대로 된 ‘철학카페’를 열었어요.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져 ‘김광식의 철학카페’를 열고 있습니다. 그 후 서울대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이 내용으로 강연을 했고, 그것들을 <김광석과 철학하기>라는 책으로 묶은 것이지요.

Q 많은 가수 중에 특별히 김광석의 노래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김광식이라는 이름 때문에 김광석을 선택하신 것 아닌가요?(웃음)

제 이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웃음) 독일에서 유학할 때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들었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들으면 들을수록 그 슬픔이 차분히 가라앉는 겁니다. 슬픔으로 슬픔을 치유하는 경험을 한 거예요. 그리고 슬픔 밑에는 뿌리 깊은 불행이 있는 것 같고요. 그 불행의 뿌리를 깊이 파헤쳐보면 행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픔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행복 철학의 동반자로 김광석의 슬픈 노래만 한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면 된다’는 말, 대책 없는 환상이고 무책임한 폭력" 


Q 머리말에서 ‘슬픔으로 슬픔을, 생각으로 생각을 치유한다’고도 하셨는데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데 인간의 이성이나 인식론이 무슨 상관이 있나 싶어요. 


인식이란 바로 앎이고 판단입니다. 그리고 행복은 인식의 대상이죠. 당신의 삶이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판단하지 못하는 데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행복이 인식판단의 문제라면 이렇게 물을 수 있어요. “당신은 당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나요? 있다면 그 인식능력 또는 판단능력이 무엇인가요?” 이성주의자들은 그 능력이 바로 이성이라고 주장하죠.

그러니까 행복하게 살려면 어떤 삶이 행복한지를 이성으로 인식하거나 판단할 수 있어야 하죠. 삶은 판단의 연속이에요. 잘못된 판단은 불행을 가져오고요. 이성주의자는 잘못된 판단을 이성으로 바로잡으면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적 판단으로 잘못된 판단을, 다시 말해 생각으로 잘못된 생각을 치유하는 거죠.

Q 반대로 이성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 철학자가 있어요. 니체의 초인철학은 어떤 내용인가요?

니체는 삶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낙타 같은 삶, 사자 같은 삶, 어린이 같은 삶이 그거죠. 낙타는 사회적 구속을 짊어지고 그에 순종하며 삽니다. 사자는 사회적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생물학적 구속인 본능에 얽매여 살죠. 어린아이는 사회적 구속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삽니다. 니체에 따르면 낙타 같은 삶보다 사자 같은 삶이, 사자 같은 삶보다 어린이 같은 삶이 더 행복하고요. 초인이란 어린아이같이 어떠한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니체는 낙타의 삶처럼 사회적 구속인 규범이나 도덕에 얽매여 사는 삶을 불행한 삶으로 봤어요. 규범이나 도덕은 이성의 명령이고요. 그런데 이성의 명령이 양심의 가책으로까지 작동하거든요. 양심의 가책이야말로 인류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형벌인 거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덕은 이성과 시기심에 바탕을 둔 노예의 도덕이에요. 반대로 의지나 열정과 자긍심에 바탕을 둔 주인의 도덕은 우리의 삶을 더 이상 얽매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창조적인,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살게 만듭니다. 자신이 원하는, 점점 더 가치 있는 새로운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거죠. 그게 초인이고요.

Q 그런데 대부분 ‘이익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잖아요. 이익을 추구하는 삶이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은 성취나 성과같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추구하죠. 그걸 얻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행복은 결과물에 의존하게 돼요. 성취는 운이 따르는 결과라 늘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또 성취를 이루기 전까지는 불만족한 삶을 살아야 하고, 성취를 이뤘을 때도 그 순간만 행복하지 오래가지 않아요. 또 다른 성취를 찾아야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죠.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이 죽기 전에 자기 인생을 비디오로 찍는다고 가정해봅시다. 만족감을 느꼈을 때 파란색을 칠하고 불만족스러운 순간을 빨간색으로 칠한다면, 아마 그 사람 인생은 파란선이 가느다랗게 가끔 있고, 그 사이는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겠죠. 이게 성취의 본질적 구조예요. 또 행복을 성과로 보면 남과 비교하게 되거든요. 경쟁에 뒤지면 열등감, 시기심을 갖게 되겠죠. 모두가 1등을 할 수 없고, 항상 목표를 성취할 수도 없어요. 후회 없는 삶은 불가능해요. 사회는 ‘하면 된다’는 말로 위로하는데, 그런 도움말은 대책 없는 환상이고 후회의 늪에 빠지게 만드는 무책임한 폭력이에요.

Q 책에 나오는 학생들의 상담메일을 보면 불안해서 불행한 경우가 많아 보여요. 그런데 하이데거는 불안이 행복의 열쇠라고 말했잖아요. 언뜻 이해하기 힘든데요,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학생들뿐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은 구체적인 대상이 있어요. 취직 못함, 입학 못함, 연애 못함, 결혼 못함 등 불안의 내용만 다를 뿐이죠. 그런데 불안하면 할수록 반대의 가치를 더 강화시켜요. 그게 강화될수록 불안은 더 심해지고요. 불안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고, 그 종착역은 당연히 불행입니다.

하이데거는 불안을 불안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때 불안은 구체적인 대상이 있는 불안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불안이에요.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자기를 되돌아보게 돼요. 그럼 자기 삶, 자기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죠.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무가치한 것으로 변하고, 대신 세상은 하찮게 여기더라도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소중해지죠. 자신이 진심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소중해하며 사랑하는 절절한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는 거죠.



"자녀가 많이 소유할수록 대단한 선물 했다 생각... 사실은 독 준 것"

Q 그런데 인간은 이기적인 마음이 있어서 더 많이 소유하고 싶어하고, 그랬을 때 행복을 느끼잖아요. 만약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역시 소유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내 것, 네 것이 없다면 더 소유하려는 마음, 이기심이 생길까요? 플라톤이 어떻게 하면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상적인 공동체가 안 되는 이유가 뭔지를 봤더니, ‘내 것, 네 것’이 있어서 그렇더라는 거죠. 소유의 대상은 크게 두 가지예요. 재화와 사람이죠. 그래서 재산뿐 아니라 성(性) 파트너나 자녀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내놓은 해결책이죠. 지금 그렇게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이런 간단한 사고실험만 해봐도 소유에 관한 이기심이 본성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밴 행동방식이고 성향일 뿐이죠.

우리 사회에서 이기적인 소유와 관련한 무한 경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자녀 때문이에요. 부모는 자녀를 책임지고 최대한 행복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부모는 의무라고 생각하고, 자녀도 당연시하죠. 부모들은 자녀 인생을 책임진다고 생각하고 자녀가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이 소유하도록 인생 방향을 설정해주거든요. 부모는 스스로 의무를 다했고, 자녀가 많은 걸 소유할수록 대단한 선물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독을 준 거예요. 아이들은 평생 그 태도로 살아갈 거고, 자식을 낳으면 또 그렇게 할 거거든요. 남에게 얽매인 삶이 행복할 리가 없죠. 불행의 대물림을 하는 거예요.

Q 선생님의 철학을 ‘몸철학’, ‘인지문화철학’이라고 하셨는데요, 몸철학에 관심을 두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하고요, 어떤 내용인지도 궁금합니다. 

김광석과 동갑내기입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어요. 김광석은 노래로, 저는 철학으로 세상을 살맛 나게 바꾸려고 했죠. 그때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면 세상도 바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이든 공장이든 농촌이든 뛰어 들어가 이른바 ‘의식화’ 작업을 했죠. 그 결과 세상이 조금은 바뀐 것 같은데, 이기적 탐욕은 여전하고 근본적인 변화는 없더라고요. 여전히 ‘생각 따로, 행동 따로’였던 거죠.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파트 값을 올려준다는 이를 지지하더군요. 세상을 바꾸려면 생각이 아니라 무엇을 바꾸어야 되는지를 고민했고, 그 결과가 바로 저의 몸의 철학입니다.

인지문화철학이란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을 바탕으로 여러 문화현상의 철학적 의미를 밝히고 그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학문이에요. 보통 문화적 행동은 머릿속 인식이나 생각이 몸을 빌려 드러난 것으로 여기거든요. 그런데 문화적 행동은 인식이나 생각이 아니라 몸에 밴 행동방식이나 성향이 드러난 거예요. 그래서 삶이나 문화 또는 세상을 바꾸려면 몸에 밴 행동방식이나 성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게 제 인지문화철학의 핵심 주장입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성향은 본성이라고 생각할 만큼 오랜 시간 몸에 배었는데, 성향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겠어요. 성향을 바꾸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이 갖고 있는 성향은 영역이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드러나죠. 여기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다른 데서는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면 남한테는 이기적인데 가족한테는 이타적인 사람을 보고 “자기 가족은 끔찍이 아껴요” 이렇게 얘기하는데, 실제로 끔찍해요. 그 ‘끔찍하게’라는 게 이기적인 거거든요. 자기 원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이 행동하기를 원하는 거예요.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때는 끔찍한 사랑이 긍정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구조는 이기적이죠.

그런데 성향이라는 건 전이되는 성격이 있어서 여러 분야에서 자기 성향이 드러나게 되죠. 그래서 내가 어떤 성향을 바꾸겠다고 생각했으면 제일 바꾸기 쉬운 분야에서 그 실천을 하는 거예요. 지금 당장 마주친 문제에서 성향을 바꾸려고 하면 잘 안 되거든요. 그런데 사소한 분야에서 성향을 바꾸려고 하다보면 어느새 바뀌죠. 일종의 관성이에요. 우리는 머릿속으로는 이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행동은 다르게 할 때가 많거든요. 자기 성향을 바꾸고 삶을 바꾸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자기 자신을 알아야 몸에 밴 성향을 바꾸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겠죠.



취재 : 정윤영(북DB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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