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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25. 2016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작가인생 아직 전개 중"

<빈 집에 온 손님> 개정판 출간 기념 인터뷰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황선미의 말말말


“누군가가 ‘사람은 누구나 어린이였고 어린이는 사람의 처음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제 목표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쓰자’예요.”

“사회가 아이들한테 어린 시절을 없애버리는 것이 제일 문제가 아닐까요? 우리는 노는 걸 못 참아주잖아요. 어린이의 시간은 놀면서 완성되는 건데,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게 없죠.”

“이미 나와 있는 것(작품)을 원하는 곳(출판사)은 단 한 군데도 없어요. 결국 그 사람의 색깔이 없으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작가가 되는 거죠. 결국은 혼자만의 시간을 믿어야 되죠.”

[프리즘②] 14년 만에 살아 돌아온 ’예쁜 자식’

▷ 황선미 작가는 누구? : 이 일곱 글자가 빠질 수 없다. “마당을 나온 암탉.” ‘밀리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은 28개국에 수출됐고, 애니메이션과 연극,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졌다. 한국 최초로 미국 펭귄출판사에서 출간됐고, 영국 베스트셀러 1위, 폴란드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황선미 작가는 2012년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 후보에 올랐고, 2014년 런던도서전 ’오늘의 작가’, 2015년 서울국제도서전 ’올해의 주목할 저자’로 선정됐다. 그는 한국 작가들이 가지 못한 길을 열어가고 있는 작가다. 


▷ 어떤 책을 냈지? : <빈 집에 온 손님>. 황선미 작가의 ‘많지 않은’ 그림동화로, 2002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다. 황선미 작가는 개정판 출간에 대해 “죽은 자식이 살아난 것처럼 좋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금방울, 은방울, 작은방울, 여우 삼남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빈 집을 찾아온 특별한 손님에 대한 이야기다. 손님의 정체가 무엇일지 읽는 내내 가슴을 졸이게 만들고, 마지막 순간 짧은 반전으로 끝맺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도 강조된 가슴 따뜻한 휴머니즘과 생명존중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 지금 왜 이 작가를 만났을까? : 1995년 농민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한 황선미 작가는 지난해 등단 20주년을 맞았다.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 작가로 부상한 그녀에게 ‘등단 20주년’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어린이가 행복하지 못한 시대’에 중견 아동문학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했다. “어린이책은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해방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녀가 후배 작가들이나 작가 지망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분명 있을 것 같았다.

▷ 인터뷰 현장 스케치 : “인터뷰 할 때 남자분이 오신 건 처음이에요.” 어쩐지 인사를 나눌 때 유독 ‘뻘쭘해’하시더라. 짤막한 신문 인터뷰 말고 긴 잡지 인터뷰를 할 때는 늘 여자 기자만 만나왔다고.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야 그 사실을 털어놓으며, 남자 기자라서 그런지 질문하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고 말했다. 달라서 좋았다는 건지 싫었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황선미 작가와 긴 인터뷰를 함께한 최초의 남자 기자’가 됐다. “역시 우리 인생에 똑같은 날은 하루도 없네요.” 내게도 그날 하루는 특별하게 기억됐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빈 집에 온 손님>이 14년 만에 다시 나왔습니다. 긴 시간을 건너뛰어서 다시 독자들 앞에 섰는데요,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오래됐나요?(웃음) 14년 전에 나온 책도 예뻤어요. 중국으로 빨리 수출도 되고 했는데, 생각만큼 시장에서 ‘롱런’ 하지 못했거든요. 더군다나 저는 그림책 작품이 많이 없어요. 작가로서 이런 책이 묻히는 게 안타깝기 때문에 살리고 싶었죠. 이번에 표지랑 제자만 조금 바꿨는데도 다른 책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런 재미가 있는 거구나’ 싶었어요. 저로서는 죽은 자식이 살아난 것처럼 좋죠. 옛날에 나온 책들 중에 그런 책이 몇 권 있어요. ‘저기 어떻게 새 옷을 입힐까?’ 생각을 하죠. <마당을 나온 암탉>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올드’한 느낌이 들죠. ‘어떻게 하면 세련된 느낌을 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해요.

Q <빈 집에 온 손님>의 결말에서 반전의 놀라움을 느낌과 동시에 <마당을 나온 암탉>을 떠올렸습니다. 작가님 작품의 특징이 ‘어른이 먼저 감동하고 아이와 그 감동을 나눌 수 있는 동화’, ‘어른과 아이가 함께 감동하며 읽는 동화’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게 느껴지더라고요.

제 목표가 그거예요. 저는 아동문학 공부를 할 때, ‘어린이는 순진무구, 순백의 대상’ 이렇게 배웠어요. 그런데 제가 쓴 글은 그렇지가 않았나 봐요. 선생님이 ‘이렇게 쓰면 안 된다. 아이들한테 깨끗한 걸 보여주고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게 동화의 목적이다.’라고 하셨어요. 그것도 분명히 옳은 말이죠. 그런데 저는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저는 꼭 저같이 글을 쓰거든요.(웃음) 별로 칭찬받는 작품을 못 쓰다보니까 ‘내가 틀렸나보다. 이렇게 쓰는 게 아닌가보다.’ 좌절을 되게 많이 하면서 글을 썼죠.

그런데 제가 어떤 출판사 사무실에서 외국에서 나온 책을 하나 봤어요. 깜짝 놀랐어요. 여태까지 들어온 지론이나 제가 알던 동화의 테두리와 너무 다른 내용이었어요. 동화의 모양으로 포장은 해놨지만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써도 되는 거였구나!’ 그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되게 막막하게 글을 썼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더라고요. ‘안 되는 거 없었네. 다 되는 거구나!’ 그때 제 생각이 바뀐 거죠. 시각교정의 기회였어요. 그 다음부터는 걱정하지 않고 글을 썼어요.

좋은 책은 세상을 담고 있더라고요. 다만 ‘동심’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문제가 남아 있었죠. 사람들은 동심을 ‘어린이의 마음’이라고 쉽게 생각해요. 저는 그 개념을 조금 더 넓힐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가 ‘사람은 누구나 어린이였고 어린이는 사람의 처음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저는 거기 기대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동심이 있다. 동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아동문학을 읽을 수 있다. 다 독자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을 넓혔죠. 그래서 제 목표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쓰자’예요.



Q 지난해 11월에 나온 세계 민담집 <인어의 노래> 저자 서문을 보니까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들어 있더라고요. 그 시절에는 어떤 이야기를 읽었나요?

‘이야기’를 만난 게 되게 늦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동화책을 봤으니까.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학교도서관이라는 게 없었어요. 한 학년마다 반은 8반까지 있는데, 도서실은 1학년 3반 교실 안에 유리 장식장 하나에 책 몇 권 들어 있는 게 다였거든요. 선생님이 퇴근할 때 자물쇠로 잠그고 가셨어요. 학교에 그게 있다는 걸 6학년이 돼서야 안 거예요. 집에 책이 있는 집이 드물어서, 우리같이 가난하고 형제 많고 먹고사는 게 급한 애들은 저보다 더 늦게 책을 만났을 수도 있고요. 저한테는 그때가 전환점이었어요.

너무나 너무나 신기했어요. ‘이렇게 재밌는 것들이 있었구나!’ 교과서와 다른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굉장히 많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은 거예요. 집에는 책이 없잖아요. 저는 중학교를 못 간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미 그때가 6학년 여름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가 끝나면 책을 읽을 수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학교에 더 이상 못 오니까. 그런데 그때 읽은 이야기들의 원형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인어의 노래>를 쓰면서 다시 읽었어요. ‘그 이야기가 원래는 이런 거였어?’ 하고 재발견했죠.

Q 우리 민담들과 비교할 때 유럽의 민담들은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가요? 

우리한테 ‘콩쥐 팥쥐’가 있는 것처럼 외국에는 ‘재투성이 아가씨’ 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민담의 원형들이 참 신기할 정도로 유사한 게 많아요. 왜냐면 하나의 집단 문화 속에서 인간이 가진 욕망들이 그 이야기를 만들어냈거든요. 황금을 위한 욕망,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악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 이런 것들은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갖는 거잖아요. 민담은 그 속에서 탄생한 얘기라서 유사성이 있어요. 저는 <인어의 노래> 작업을 하면서 ‘옛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어요. 어느 나라 이야기라서 그런 게 아니고, 인간의 욕망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어요.

Q <인어의 노래>에는 폴란드, 프랑스 등 유럽 민담들이 주로 소개돼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유럽 민담들을 동화로 쓰게 됐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제가 서울예대 교수직을 그만둔 지 4년 됐는데, 그때 수업 교재 중에 <수호의 하얀 말>이라고 일본 작가가 쓴 작품이 있었어요. 몽골의 민담으로 쓴 책인데 로열티가 일본 작가한테 가죠. 몽골 이야기를 일본 사람이 자기네 책으로 만들어버렸단 말이에요. 그걸 보고 힌트를 얻었어요. 우리나라 민담은 우리나라 작가들이 많이 쓰잖아요. 저는 외국 민담을 우리 이야기로 써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는 외국 민담을 그대로 번역해서 가져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 문화가 아니니까 낯선 것도 있어서, 우리 정서에 맞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요즘의 가치관으로 다시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2013년 오스트리아에서 4개월 머무를 때 이 작업을 다 했죠. 저는 애초부터 이 일은 외국 그림작가와 함께 하고 싶었어요. 책의 성격이나 그림 작업을 할 수 있는 조건 등 여러 가지가 폴란드의 이보나(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작가하고 맞았어요. 결론적으로 책이 나온 것을 보니까 적임자와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2014년에 나온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도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읽었습니다. 동화를 이렇게 푹 빠져서 읽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인데요,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의 마음속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나요?

심리묘사를 하는 재미가 있어요. 사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인데, 누구를 관찰하는지 많이 물어보시거든요. ‘주변에 저런 일을 겪은 애가 있겠지’ 그렇게도 생각들 하시는데, 그럴(모델을 두고 관찰할) 필요가 없는 게 그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면 돼요. 어떤 상황에서 그 아이의 심정이 돼보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죠. 저도 자식을 키워봤고, 그거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그 아이를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고, ‘저런 일을 겪었을 때 저 아이 마음이 어떨까’ 짐작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는 거죠.

다만 주인공 ‘주경이’ 이름은 제가 아끼는 이름인데, 어렸을 때 저희 옆방에 살던 애 이름이에요. 굉장히 예쁜 애였어요. 그 친구 엄마도 너무나도 예뻤고요. 우리 엄마는 오일장을 따라다니면서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저희 집은 밑반찬이 없는 집이었거든요. 온기가 없는 집이었어요. 그런데 걔네 집에는 밑반찬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항상 엄마가 떠준 옷을 입었어요. 뜨개질 솜씨가 진짜 화려했어요. 그 아이의 모든 게 공주같이 예뻐 보였어요. 부러웠던 거죠. 걔에 대한 인상이 되게 강했는데, 그 이름을 이제 작품에 쓴 거죠.

그리고 주경이의 내성적인 성향은 저의 성향일 수도 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친구가 세 명이면 꼭 하나가 따돌려지는 거. 그 하나가 저였거든요. 셋이 되게 친했는데 어느 날 보면 저만 혼자 있더라고요. 왜 둘이 팔짱 끼고 가고, 왜 둘만 손을 잡고 가고, 왜 둘이만 속닥거릴까 하는 게 제가 늘 겪던 것이기 때문에 주인공 주경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어요.



Q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요즘 어린이들의 삶이 행복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잖아요. 어린이들이 있는 동화가 그런 점들을 위로하고 아이들을 응원하는 역할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동화작가들은 그냥 독자로서 바라보는 저희 같은 사람들보다 더 큰 고민을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써야 돼요?(웃음) 저는 정말 어린이책이,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기호였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주는 거, 학교 수업과 연계되는 거, 그런 거 말고요. “난 이 책이 좋아” 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즐거움이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조건이에요. 근데 지금은 왜곡돼 있죠. ‘책 읽는 아이가 돼라’ 계속 잔소리 들어야 되고, 책 열 권 읽으면 도장 찍어준다, 독서록 많이 쓰면 상 준다, 이렇게 강제성이 다 있죠. 그러니까 어린이책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가 없어요. 안타깝죠.

내용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교과서와 연계된 작품이라야 아이들한테 읽힌다는 게 사실 출판사가 갖고 있는 고민이에요. 하지만 저는 어린이책이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해방시키는 역할을 해줘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작품이라면 교과서에 실릴 리가 없어요. 아동문학이 가지고 있는 양면이 계몽성과 자율성이죠. 아이들한테 착한 마음씨를 배우게 하고 인간성을 계도하는 계몽성에 한쪽으로 기대 있으면서, 아이들의 숨어 있는 마음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자율성이 있단 말이에요.

<삐삐 롱스타킹>도 그 나라에서 ‘이 책은 아이들이 읽어선 안 된다’고 금서 취급을 받았다잖아요. 하지만 애들은 열광했기 때문에 고전이 된 거예요. 어린이들이 선택한 책이 고전이 되는 거지, 출판사가 그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에요. 작품의 생명력은 순수하게 ‘읽는 사람들’이 주는 거예요. 마케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게 책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태도인 거죠. ‘이걸 읽으면 속이 시원해’, ‘이걸 읽으니까 내 비밀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애’, ‘이걸 읽으니까 뭔가 하고 싶어졌어’ 하는 생각을 심어주는 작품을 써야겠죠.

Q 그렇다면 아이들이 책을 “스스로 선택하는 즐거움”으로 여기지 못하게 가장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른들이 너무 일찍 아이들한테 책임감을 주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너는 뭐가 돼야 돼.’ ‘이렇게 해야 너는 좋은 학교에 갈 수가 있어.’ ‘니 소원은 뭐야? 왜 너는 소원이 없니?’ 그러면서 너무 일찍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는 시대가 아닌가 해요. 지금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사회가 아이들한테 어린 시절을 없애버리는 것이 제일 문제가 아닐까요? 아이들한테 절대적인 건 노는 거예요. 우리는 노는 걸 못 참아주잖아요. 놀면서 크는 거고, 놀면서 배우는 거고, 노는 게 절대 단순한 게 아닌데, 어른들은 노는 걸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린이의 시간은 놀면서 완성되는 건데,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게 없죠.

Q 동화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다가 직접 동화를 쓰겠다고 마음먹는 엄마들도 참 많은데요, 실제로 작가로 데뷔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강좌 몇 번 듣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한 가지를 짚어주신다면 어떤 것인가요?

제가 신춘문예 심사를 해마다 하고 있는데, ‘신춘문예 고아’라는 말이 있어요. 당선된 뒤에 실제로 작품을 출판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죠. 왜 그런지는 본인들이 한번 생각해봐야 돼요. 저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느 순간에는 굴 속에 들어가듯이 너 혼자 해야 할 때가 있을 거다’라고 가르쳤어요. 그렇게 혼자 해내는 시간이 있어야 되고 그 순간을 통해서 자기의 방식을 찾아야 돼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동화를 어디 가서 배우지?’ 하는 생각만 해요. 물론 배우는 건 필요하죠. 그러나 이미 나와 있는 것(작품)을 원하는 곳(출판사)은 단 한 군데도 없어요. 결국 그 사람의 색깔이 없으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작가가 되는 거죠. 문장을 어떻게 쓰는 건지, 맛을 어떻게 내는 건지는 사람들과 어울려가면서 배울 필요가 있지만, 글을 쓰는 건 결국 혼자만의 몫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글 쓰는 거, 문장 쓰는 거 모를 분들이 아니잖아요. 결국은 혼자만의 시간을 믿어야 되죠.

Q 1995년 농민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셨으니, 지난해로 딱 20년 됐습니다. 작가로서 황선미의 삶을 한 편의 이야기로 본다면, 지금은 기승전결 중 어디쯤에 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직도 ‘전개’ 과정인 것 같아요. 정점은 아직 아니지 않나 해요. 성공을 떠나서 작가가 작품생활을 하는 와중에 아직은 할 게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못 쓴 것들이 있는 것 같고.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 책임지고 혼자 감당해야 되는 거거든요.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잘 못하는 거 같고, 아직도 허술하니까. 20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지나온 길은 버리고 간다”라는 생각이 있어요. 뒤돌아볼 마음이 없어요. 과거를 무시한다는 게 아니라 앞이 더 좋을 것 같아서.(웃음) 

지금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어요. 글이 안 풀리면 이래요. 저는 원래 아토피도 전혀 없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뭐가 막 났더라고요. 이럴 때마다 ‘작가는 자기 살 뜯어먹으면서 산다’는 말이 생각나요. 앞으로도 똑같겠죠. 우선은 저 스스로한테 안 창피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만족스러운 작품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취재: 최규화(북DB기자)

사진: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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