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문학 신간
<당신> (박범신 지음, 문학동네 펴냄)
“당신” 가만히 발음해 본 이 단어는 나에게 이인칭 타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만 박범신의 신작 소설을 읽으며 “당신”의 의미를 찬찬히 헤아려 보았다. <당신>은 2015년, 일흔여덟 살의 주인공 윤희옥이 이제 막 죽어 경직이 시작된 남편을 집 마당에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치 오랫동안 남편의 죽음을 준비해온 것처럼 부인 윤희옥의 뒤처리는 섬세하고 깔끔하다. 그런데 일을 마친 윤희옥은 경찰서를 찾아 남편이 실종되었다고 신고를 한다. 그녀는 왜 사망 신고 아닌 실종 신고를 택했을까? 뜨거운 사랑을 원했던 여자 윤희옥, 단 하나의 사랑만을 바라본 남자 주호백. 이 둘 간의 사랑의 종말은 어떤 모습일까? 언젠가는 끝나버리는 것이 사랑이며, 오로지 죽음만이 그 영원한 사랑을 가능케 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고 인생을 마감한 윤희옥과 주호백의 이야기이다.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열린책들 펴냄)
55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게다. 55세 나이로 늦깎이 데뷔한 프랑스의 천재 소설가 피에르 르메트르. 그의 2013년 공쿠르상 수상작인 <오르부아르>가 국내 출간됐다. 작가의 늦깎이 데뷔 사실도 화제지만 작가의 전작인 <이렌>, <알렉스>, <카미유>, <실업자>, <웨딩드레스> 등이 탁월한 장르소설로서의 성취를 보여줬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가 문학의 두 분야에서 거둔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1922년 전사자등릐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착복 스캔들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번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사람들의 삶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이번 작품을 위해 작가는 각종 논문, 신문 등의 자료를 꼼꼼히 참고해 작품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원제는 ’Au revoir la haut(천국에서 다시 만나)’.
<코케인> (진연주 지음, 문학동네 펴냄)
‘코케인’이라는 카페를 배경으로 그곳을 찾는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 풍경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된다. 굴드, 몰리, 좀머, 페터, 이안 등 이들 사이에는 코케인에 함께 있다는 사실 외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다. 간간히 대화가 이어지지만 대개는 그것에 피로를 느끼고 더 자주 각자의 내면에 골몰해 있다. 하지만 <코케인>에서 ‘우연’이라는 단어가 지닌 힘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굴드와 좀머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는 일이 반복될 때, 아무렇게나 내뱉는 헛소리에 드문드문 진심을 섞어 말할 때, 사소한 대화들이 쌓여 갈 때, 그들은 그들 간에 희미한 연대의 움직임이 피어오름을 느낀다. 불문학자 황현산은 “실용적인 것이 되지 않으려는, 그래서 ‘느껴지지 않는’ 소설가의 문체가 무위의 주인공들을 공기와 햇빛처럼 감싸서 그들 하나하나를 댄디로 만든다. 그들에게는 자연을 넘어서는 어떤 무기질의 강인함이 있다.”고 평했다.
<범죄자의 탄생>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도서출판북스피어 펴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시대소설. 원제는 ‘무숙인별장(無宿人別帳)’이다. ‘인별장’이란 에도 시대 때의 호적 장부로, 농촌을 도망 나온 탓에 인별장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자들을 일러 ‘무숙’이라고 했다. 작가는 ‘무숙인별장’이라는 가상의 장부를 만들어 신분제도 밑에서 신음하던 무숙자들을 그리고 있다. 연이은 기근과 재해로 거주지와 직업을 잃은 대량의 무숙자들이 각 지방에서 생겨나 에도로 흘러들자, 막부의 관리들은 무턱대고 단속을 지시한다. 각자가 생업을 소홀히 하고 품행이 방탕했기 때문이라며 오로지 개인의 이유로 치부한 것이다. 법에 따라 취직이 불가능해진 무숙자들은 금품을 도둑질하는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어서 이중삼중으로 관리들에게 쫓겨 다니다가 감옥에 들어간다.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범죄의 진정한 원인은 권력기구의 부조리함이란 사실을 얘기하려 했다.
<노래가 위로다> (김철웅 지음, 시사IN북 펴냄)
힘들 때, 외로울 때, 우울할 때, 그저 펑펑 울고 싶을 때를 떠올려 보자. 그 때 내 곁에 있어 주었던 것은 노래였다. 이런 개인들의 집합이 사회다. <노래가 위로다>는 저자가 사회와 인간 개인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으로 읽어낸 ‘노래로 읽어낸 사회사’에 가깝다. 일제시대 유행한 한복남의 <빈대떡 신사>에서부터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존레논의 <이매진>, 현인의 <서울야곡> 등 세대와 국가를 자유롭게 오간다. 저자는 기자 출신답게 시시콜콜한 팩트에도 강하다. 따라서 사회를 읽는 재미, 노래의 배경을 알아가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노래에서 위로를 찾는 사람들, 노래에서 시대상의 변화를 읽어내고 싶은 사람들, 특히 10년 안에 우리 사회의 전면에서 퇴장하게 될 베이비부머 세대가 공감할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