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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r 09. 2016

'중력파 박사' 오정근, 아인슈타인의 선물을 전하다

                      


2월 11일 중력파 관측 성공 발표가 있었다.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 이론이 예견한 마지막 비밀이 풀리는 순간, 세계는 환호했다. 국내에서도 ’중력파’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발표가 있은 지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아 중력파에 관한 책이 나왔다.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으로 LIGO라이고과학협력단(이하 라이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오정근 박사가 쓴 책이다. 저자를 만나 책 집필 동기와 과정, 중력파 관측의 의미 등을 물었다.  



Q 중력파 관측 성공 발표 이후 보름 만에 책이 나왔습니다. 설마 보름 만에 집필하신 건 아니겠죠?

 (웃음)네, 아닙니다. 책을 내기로 한 건 2015년 여름이었고, 집필은 그 전부터 해왔죠. 2015년 가을에 실제 관측이 이뤄졌으니, 출판사에서는 중력파 검출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책을 내기로 한 겁니다. 동아시아 출판사 한성봉 사장님께서 원고를 검토하신 후 연구의 중요성을 공감해주셨기 때문에 출판 계약이 가능했죠. 이후 실제 관측이 이뤄졌고, 발표 시기에 맞춰 책이 나왔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행운이죠.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Q 연구하는 일만 해도 만만치 않으셨을 텐데요,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일종의 위기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중력파 관측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재정 지원을 기반으로 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연구를 진행했지만, 국내에서는 연구 주제 자체가 생소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 대가 끊기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인력이 부족해서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죠.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연구를 소개하고 끌어들이는 노력이 절실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과학자가 되려고 했지?' 생각해봤습니다. 어릴 적 과학자가 쓴 책, 인터뷰 기사, 라디오나 TV 프로그램에 나온 과학자가 해주는 말 한마디를 경청하면서 꿈을 꾸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라이고에서는 연구가 무르익는 상황이었기에, 지금까지 보고 배운 것을 정리해서 나눠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많은 학생이 관심을 두고, 앞으로 있을 발견과 응용에 한국 연구자들이 이바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습니다.



Q 말씀을 듣고 보니 라이고 회원으로 공동의 성과를 내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은 원래 개인적인 연구모임으로 2003년 서울대에서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이형목 교수님이 중력파 검출 중요성을 먼저 인지했고, 관심 있는 학생과 관련 분야 박사 몇 명을 모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라이고 검출기를 막 가동하려던 시기였는데 모든 게 불투명한 시기였습니다.

현재는 라이고에 13개국 10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연구 인력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검출기 가동을 위한 설계 목표 수치 도달을 위해 분주했고, 드디어 2005년 설계 목표 수치에 도달한 다음 본격적으로 조직을 확대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몇 번 가입 시도를 했지만 잘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2008년 여름, 현재 라이고 관측소 대변인으로 있는 곤살레스를 한국에 초청했습니다. 대학에서 특강을 열어 연구 상황을 듣고 배웠고, 그 기회에 라이고 회원 가입과 관련해 여러 가지 질문과 논의를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곤살레스가 한국 연구원들의 적극적인 면을 높게 평가했던 것 같아요. ‘(관측)시설이 없지만, 의지가 있으면 연구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이후 가입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라이고 회원가입을 하려면 기존 회원들 앞에서 연구 계획과 이바지할 수 있는 점을 발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본격적인 회원가입을 위해 2008년 겨울 직접 미국 검출기 시설을 방문했습니다. 관계자분들과 교류하면서 연구 방향에 대해 협의했고, 그 내용을 중심으로 2009년 9월에 성공적으로 발표, 승인을 받아 지금까지 정식 회원으로 연구해오고 있습니다.

라이고는 미국 정부의 1조 원 넘는 재정 지원을 받아 40~50년간 한 가지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천문학 연구를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 투자를 감행한 겁니다. 기초과학 투자가 미국 경제, 사회에 득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본 거죠. 국내 기초과학연구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선진국 사례와 비교했을 때, 아직은 더 많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찌 되었든 새로운 발견 앞에 선 지금, 한국에서도 중력파 연구가 보다 대중적으로 소통되고 폭넓게 진행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 리빙스턴에 위치한 라이고 중력파 관측 시설 전경. 직각으로 뻗은 길처럼 보이는 것이 레이저 검출기다. 길이가 4km에 달한다. (출처 : Caltech/LIGO


                                              

Q 라이고 창립자 킵 손 교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명예교수인 킵 손은 국내에서는 영화 ‘인터스텔라’로 유명하죠. 사실 킵 손 교수가 평생에 걸쳐 공을 들인 연구 주제가 바로 중력파 검출입니다. 이론 물리학자이면서도 실험 물리학자들과 교류를 폭넓게 해왔고, 라이고 프로젝트 초기 아이디어를 제시한 정도가 아니라 실험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닌 분이죠. 그런 고민을 몇십 년간 해오다가 미국 정부에 연구 제안을 해서 1989년 미국국립과학재단(NSF)으로부터 투자 승인을 얻어냈습니다.

킵 손 교수의 책 <인터스텔라의 과학>에 중력파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초의 시나리오에는 영화 속 브랜드 교수(마이클 케인)가 20대에는 라이고 프로젝트 부책임자였다고 상상합니다. 2019년 라이고 검출기가 목성 근처에 있는 웜홀을 발견,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는 발견을 첫 장면으로 하려고 했으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그 장면을 뺐다고 해요. '인터스텔라'에서 다루는 풍부한 과학을 단순화하기 위해 중력파 부분을 빼기로 한 것이죠.

킵 손 교수는 그 결정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상당히 뼈아팠다고 책에 썼습니다. 본인이 평생을 바쳐 진행해온 연구 주제였기 때문이죠. 라이너 바이스, 로널드 드레버는 킵 손 교수와 같이 라이고 프로젝트를 창립한 분들입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집니다.




“미국, 중력파 연구에 1조 지원... 한국도 연구 폭넓게 진행되길”


Q 이번에 오 박사님이 쓴 책 제목이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인데요, 중력파란 무엇이고, 그것이 왜 마지막 선물인가요?

뉴턴은 모든 물체에 작동하는 힘을 발견했고 그 힘을 ’중력’이라고 불렀습니다. 뉴턴이 상상한 우주, 공간이 텅 빈 거대한 상자 안에서 작동하는 힘의 원리를 설명했죠.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장으로 가득 차 있다는 발견에 착안해 중력도 일정한 장(field)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중력장 자체가 공간이라는 천재적인 발상을 합니다. 공간을 ’물질’로 여기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일반상대성이론의 개념입니다. 뉴턴이 상상한 텅 빈 상자가 아닌, 물컹하고 유연한 거대한 물질 속에 들어 있는 우주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 장 방정식이 예측하는 것들은 모두 실험과 관측을 통해 입증됩니다. 별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 휘어짐에 따라 행성이 어떻게 운동(별 주위 공전)하는지를 예측했는데, 이것은 이제 일반 상식처럼 되었죠. 아인슈타인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휜다고 예측했습니다. 태양이 빛을 굴절시키는 것을 예측한 것이죠. 시간이 휘어진다는 것은 중력의 세기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력이 약한 곳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고, 중력이 센 지구 표면에서는 시간도 천천히 흐릅니다. 시공간 우주, 4차원 우주 또한 실제로 측정되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장 방정식을 통해 블랙홀도 예측 가능합니다. 블랙홀은 별이 핵융합 과정을 통해 연료를 모두 태우는 별이 스스로 무게에 짓눌려 공간을 매우 강하게 휘게 만드는 현상입니다.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구멍입니다. 빛이 없기에 직접 관측은 어렵지만, 블랙홀 주변에서 나오는 X선, 감마선을 통해 블랙홀을 관측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간은 정지된 상태로 있지 않고 확장하고 있다고 예측했는데, 1930년 우주 팽창은 실제로 관측됐습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예견한 것 중 ’중력파’만이 실제 관측이 이루어지지 않은 마지막 숙제였습니다. 이번에 직접 관측으로 검출된 중력파는 지구로부터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왔습니다. 태양 질량의 29배, 36배인 쌍성 블랙홀이 대충돌을 일으킨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중력장이라는 공간에서 블랙홀의 충돌로 인해 공간이 바다 표면처럼 물결 모양을 이루며 흔들리는 현상, 즉 중력 파동을 마지막으로 발견해낸 것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우리가 느끼고 지배받는 힘을 명쾌하게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인슈타인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력파 검출이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 맞추기는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 것이기에 이번 발견이 마지막 선물과도 같습니다. 중력파는 전자기파와 달리 어떤 물질의 간섭도 받지 않기 때문에, 중력파는 우주나 별의 생성과 사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중력파를 통해 우주현상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이고와 같은 중력파 망원경으로 빅뱅 원시중력파(배경중력파)를 발견한다면 인류는 우주탄생의 순간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태양과 지구 주변 시공간이 휘는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한 것 (출처 : LIGO/ T. Pyle)


Q 중력파 발견을 거듭할수록 생명의 기원,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 더 깊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향후 연구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라이고를 망원경으로 비유하자면, 새로운 관측에 대한 부분이 계속 열려 있는 것입니다. 중성자별이 충돌하는 신호, 초신성 폭발과 관련한 신호도 검출할 수 있겠죠. 새로운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주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자기파가 통신혁명을 일으켰고,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GPS 시스템을 실생활에 응용했듯이 중력파 또한 인류를 도약시킬 수 있는 위대한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한국형 중력파 검출기 '소그로(SOGRO)'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이 연구의 가치는 라이고나 리사(LISA : 레이저 간섭계 우주 안테나. 우주에 검출기를 띄워 관측하는 방식으로 미국 항공우주국과 유럽 우주기구가 공동으로 사업 진행. 빠르면 2018년 발사 예상.)와 다른 주파수대를 관측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라이고는 가청주파수대, 리사는 그것보다 낮은 주파수대를 설정하고 있는데, 그 사이가 비어 있습니다. 그 영역을 검출 목표로 하는 것이죠.

한국형 검출기는 크기가 획기적으로 작습니다. 라이고는 4킬로미터짜리 초대형 검출기이고, 소그로는 100미터 정도입니다. 라이고나 리사에 비해 제작이 쉽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프로젝트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합니다.


며칠 전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자기 아들이 과학을 좋아하는데 사인본 책을 살 수 있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냥 드리겠다고 했습니다.(웃음) 자녀가 교양 과학책 읽는 것보다 문제 풀이 하나 더 하는 것을 바라는 세상인데, 제 책을 아들에게 선물하는 어머니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죠. 나중에 그 학생이 좋은 연구자가 되어 훌륭한 일을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중력파가 힉스나 블랙홀처럼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과학 주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책을 쓴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정근 박사를 톡 건드리면 중력파 이야기가 후두두 떨어진다. 중력파로 가득 찬 남자. 그의 바람처럼 보통 사람들도 술자리에서도 중력파 이야기를 건네며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일이 어서 일어나기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놀랍게 도약해온 우리의 모든 지식 중에서 아인슈타인이 발전시킨 지식은 단연 특별합니다. 일단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기만 하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말도 못하게 간단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일상 속에서 탁해진 우리의 진부한 시선보다 훨씬 더 맑은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봅니다. 이 현실 역시 꿈으로 만든 재료로 이루어진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꾸는 흐릿한 꿈보다는 훨씬 현실적입니다." - <모든 순간의 물리학>(카를로 로벨리, 2016) 중에서


취재: 김현기(인터파크도서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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