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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r 10. 2016

정신과의사 하지현 "ADHD 원인? 교육현실부터 봐야"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하지현의 말, 말, 말



- “저는 그렇게 말해요. ‘우리는 정비소다.’ 차가 고장이 나면 정비소에 가듯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고요. 조금 불편할 때 잠시 도움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 "기존 세대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학습량과 집중력을 요구받아요. 많은 아이들이 ’환경적응에 실패한 ADHD’라고 진단받게 되는 거죠. 아이들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기 전에 교육현실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자연재해보다 인재(人災)의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더 급증합니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로, PTSD가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겪는 경험의 단면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



[프리즘②]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



▷ 하지현은 누구? :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2008년에는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진료하고 읽고 쓰고 가르친다. <공부 중독>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소통, 생각의 흐름>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 어떤 책을 냈지? : <정신의학의 탄생>.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다는 데 고심한 끝에,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보편적인 질문을 통해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풀어 썼다. 세계 최초의 정신병원부터 정신의학을 둘러싼 흥미로운 가설들, 최면술이나 수치료와 같은 치료법의 변천사부터 오늘날 과학적인 치료법이 개발된 결정적 순간들까지 이야기들이 생생하고도 풍부하다. 책의 어느 곳에서 읽기 시작해도 흥미진진한 이 책은 현대사회에 대한 구조적이고 심리적인 통찰까지 선사한다.



▷ 지금 왜 이 작가를 만났을까? : 불면이든 불안이든 자기 마음의 문제 때문에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정신의학 발전의 전환점들을 몽타주하듯 그려놓은 이 책에서 저자는 정신의학의 발전사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으로 이뤄진 성과임을 보여준다. 다양한 매체와 저서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해온 저자가 정신의학의 역사라는 녹록지 않은 작업을 하게 된 동기가 궁금했다. 



▷ 인터뷰 현장 스케치 : 약속된 시간에 건국대병원 정신의학과 외래진료실에 도착했을 때, 하지현 교수의 얼굴에는 약간 피로한 기색이 비쳤다. 잠시만 기다려달라던 그는 곧 기자들을 위해 달콤한 두유를 구해 건넸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이내 형형한 눈빛으로 돌아온 하 교수는 여러 질문에 차분하고도 신속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기자가 건넨 몇 가지 쓸데없는 질문에도 친절한 설명이 되돌아왔다.(믿음이 가는 정신과 의사 앞에서 평소 궁금해 하던 사적인 질문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거라 믿는다. )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이 책은 심리치유나 교육에 관한 에세이가 아니라 조금은 무게 있는 내용인 정신의학사를 다루고 있는데요, 계기가 따로 있으신지요?



기존에 쓴 책들은 상담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이어서 이보다는 쉽게 접근이 가능한 책이긴 했지요. 그런데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의 뿌리를 다룰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정신의학의 역사에 대한 책들은 있지만 어렵거나 대부분 일정 분야에 편중되어 있는데다가, 이마저도 모두들 외서뿐이더라고요. 정신의학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책, 더구나 우리나라 정신의학의 현 단계까지 접목해서 살펴볼 수 있는 책이 국내에는 없는 것 같았어요. 일반인들도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의 뿌리나 오늘날 정신의학 시스템이 성립되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있었으면 싶었어요.



이 책의 글들은 포털사이트 네이버 캐스트로 연재된 것인데, 네이버 캐스트가 한 회, 한 회 매거진 형식으로 업데이트되는 거라서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매회 다루면서, 그러한 장면들이 어떻게 현재 정신의학의 시스템을 이루게 되었는지 풀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코 가볍지는 않은 내용들인데 생각보다 독자들 반응이 좋았지요. 



Q 정신질환이 뇌의 질환이냐 마음의 병이냐 하는 대립이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계속되어왔다고 설명해주셨는데요. 혹시 요즘 학계의 추세는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나요? 



책에도 썼다시피 정신의학은 뇌의 질환과 환경·마음과 같은 요소들이 서로 만나는 접점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이 심리학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건 정신의학이 병리, 즉 병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고, 병을 고치려는 노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지요. 뇌의 질환이냐, 마음 혹은 환경의 문제냐, 어느 한쪽도 100퍼센트를 차지할 수는 없다고 봐요. 증상에 따라 이 비율이 7:3이 되든지, 8:2가 되든지 할 수는 있겠지요.



예를 들어 자폐증, 알츠하이머와 같은 경우는 물리적으로 뇌의 병변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단순히 환경이나 마음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지요. 한편, 불면증이나 불안증세 같은 경우 뇌에서는 어떤 병변이 나타나지 않지만 분명 치료가 필요하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대개 인지행동요법을 쓰는데, 이러한 인지행동요법도 생물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면 발전할 수 없었던 치료법인 거지요. 다시 말해 증상에 따라 유물론적 관점, 유심론적 관점이 비중을 달리할 수 있지만 두 요소 모두 고려되고, 환자의 현재 상태나 증상에 따라 접근법과 치료법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종질환 이야기, 그리고 이러한 질환들과 제약회사 마케팅의 관계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정말 현대인들은 ’환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환자로 대우받고 싶어 하지 않는 욕망’ 둘 다를 지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강박증, 사회공포증, 고소공포증, 공황장애나 우울, 불안, 불면과 같은 신경증적 증상들이 독립질환으로 분리되고 주목받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이지요. 거기에는 아무래도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제약회사의 마케팅도 크게 한몫했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질환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더 높아진 경향도 있어요. 발기부전과 같은 경우 ’비아그라’라는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인식이 전환된 것처럼 말이지요.



현대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정신질환보다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불편을 호소하는 질환들이 늘어났는데, 이런 증상들은 사실 1부터 100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이를 일종의 질환으로 보고 치료대상으로 삼는 기준을 만드는 것은 마치 키 작은 사람과 난장이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같아요. 사회 환경의 변화나 치료제의 개발로 인해,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개인의 단점, 약점이 오늘날에는 치료할 수 있는 증상으로 인식이 전환된 거지요. 



또 이를 치료해서 더 완벽한 개인성을 갖고자 하는 욕망도 커지는 거지요. 이런 경향은 70, 80년대 세칭 신자유주의라는 환경 하에 개인의 능력을 키우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들과 맞물려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을 증상화해서 이를 치료하고자 하는 욕망이 ’환자이고 싶은 욕망’이라면, 실제로 병원을 찾는 일은 그만큼 늘어나지는 않았거든요. 자신을 환자로 여기고 싶어 하는 동시에 환자이고 싶지 않은 욕망이 모순적으로 충돌하는 현상인 거죠.





Q 말씀하신 것처럼 사회 환경이 변화하면서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불편함의 교정’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위한 약물치료가 보편화되었는데요. 그래도 한국사회를 보면 여전히 정신과 상담과 치료에 대한 두려움, 오해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증상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치료가 필요한 하나의 질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먼저겠지요. 그 다음에는 불필요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다는 것은 팔이 부러지거나, 어딘가 다쳐서 병원에 가는 것과 똑같은 거거든요. 차후 취업할 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누가 알지 않을까 하는 것은 괜한 걱정입니다. 의료기록은 진료의사 외에 누구도 열람할 수가 없고, 자신이 말하지 않는 이상 그걸 누가 일부러 들여다보고 캐지 않아요. 취업과 관련한 괴담도 있던데, 그런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치료와 상담을 망설일 필요가 없어요. 



또 정신과 진료기록이 민간의료보험 가입 시 문제가 된다는 것도 일부 약관의 문제지, 요즘에는 심사절차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보험 가입에서 하등 문제될 게 없어요. 저는 그렇게 말해요. "우리는 정비소다." 차가 고장이 나면 정비소에 가듯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조금 불편할 때 잠시 도움을 받아도 된다고. 지리산을 오를 때 화엄사에서 시작해 8시간 동안 걸어 올라가면 가장 좋겠지요. 그렇지만 체력이 안 될 때는 노고단까지 차를 타고 가서 두세 시간 만에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Q 약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가장 많은 듯해요. 대표적으로 ’정신과 약은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식 말이지요. 



그게 대표적인 오해이면서 아이러니인데, 사실 다른 약들은 평생 먹어야 한다는 부담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남성들 40, 50대쯤 되면 고혈압, 고지혈증 약 무척 많이들 복용하거든요. 그건 정말 평생 먹는데, 그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으면서 정신과 약은 끊기 어렵다고 두려워하거든요. 정신과 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오해예요. 제가 보는 외래환자 수가 하루에 20~30명 돼요. 이중에는 몇 년 째 오는 분들도 두세 명 계세요. 그러나 대부분은 몇 개월에서 1년 정도 진료받고는 말아요. 늘 이 정도의 환자 수가 유지되거든요. 만약 정신과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면 이 수가 몇 백, 몇 천 명이 돼 있겠죠.



Q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무척 와닿은 부분이 또 있었는데요. 바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우리나라에서도 ADHD란 진단명이 알려지고 나서 그런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많아졌는데요. 이에 대해 사회문화적으로, 교육적으로 다루어주신 부분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ADHD가 늘어나고 문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이 증상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지요.(2013년 10월 국회 보고에 따르면 ADHD 치료약물 사용량이 전년도에 비해 중고생 연령대에서 약 22% 늘었다고 한다. <정신의학의 탄생> 111쪽 참고.)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문제는, 언제나 그렇지만 ADHD의 경우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지요.



사실 집중력 결핍이라는 증상을 두고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사회 환경의 변화라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한두 세대가 바뀐다고 해서 인간의 지능이 엄청 진화하지는 않아요. 인간의 뇌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화해왔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기존 세대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학습량과 집중력을 요구받아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많은 아이들이 ’환경적응에 실패한 ADHD’라고 진단받고 질환의 범주에 속하게 되는 거지요. 아이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기 이전에 우리의 교육현실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ADHD는 시기적으로 좀 지나면 해결될 수 있는 증상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치료가 전혀 필요없다고 치부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고 봐요. ADHD 치료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갖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제때 도움 받지 않은 채 아이가 지나친 꾸지람, 체벌 등으로 의기소침해지고 학습부진아로 자존감이 떨어지면 차후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거든요. 



Q 책에 소개된 정신의학사의 결정적 순간들과 치료법의 진화는 현대사의 단편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단지 의술의 발전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겪어온 집단적 경험의 문제들이 그대로 대변되는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증상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최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원래 전쟁에서 끔찍한 경험을 하고 난 뒤 겪는 정신적 후유증을 일컫는 진단명인데, 오늘날에는 전쟁뿐 아니라 교통사고나 강도사건, 자연재해 직후,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도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지요. 직접 당한 피해자뿐 아니라 목격자, 가족들까지도 포함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보다 인재(人災)의 경우 PTSD가 더 급증합니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흔들어놓기 때문이지요. 2014년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가져온 세월호 사고 이후로, PTSD가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겪는 경험의 단면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요즘에 ’외상 후 성장’이라는 개념도 대두되고 있어요. 큰 트라우마를 경험하면서 사람이 더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살아가다 보면 트라우마가 될 만한 경험을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때 자신을 단순히 피해자라고만 여기지 않고, 이를 도전, 역경으로 받아들이고 인생에서 두세 번 정도 찾아오는 사건이라고 관점을 달리해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그럼으로써 우리가 좀 더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취재: 이진실(북DB 객원기자)

사진: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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