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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r 15. 2016

글 쓰는 셰프 박찬일 "요리사 유명해진 건 시대적허상"



한국에서 파스타는 더 이상 외국요리의 신분(?)이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즐겨 먹는 사람도 많아지고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늘어났다. 소개팅 장소나 데이트 코스에 파스타 집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걸 보면 여자들의 미식이 온통 파스타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파스타는 어느덧 한국음식으로 대접받을 만큼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파스타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먹는 것일까? 이에 박찬일 셰프가 파스타를 주제로 우리에게 솔직 대담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른 봄의 어느 날, 서울 상수동에 있는 그의 식당을 찾아갔다. 어디선가 그윽한 커피 향이 났고, 고개를 돌리자 박찬일 셰프의 얼굴이 보였다. 조용히 커피를 내미는 그의 첫인상은 뭐랄까. 조금은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웠다. 고된 현장에서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랄까. 환하게 불을 밝히던 스타 셰프라는 화려한 조명이 ‘탁’ 소리를 내며 꺼지는 듯했다. 이탈리아식 선술집의 오너셰프인 동시에 글 쓰는 요리사로 이름을 알린 박찬일 셰프. 그는 국내의 이탈리아 요리사 1세대이자 한국에 파스타 열풍을 일으킨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박찬일 셰프가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뒤 잡지사 기자로 활동했던 이력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기자를 하던 중 돌연 요리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열었다. 요리와 글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그가 최근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를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이 책은 2010년 출간한 <보통날의 파스타>의 개정판이다. 개정판 작업을 통해 기존의 글을 재구성하고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추가했다. 초판이 핸디북에 가까웠다면 개정판은 조금 더 전문 서적에 가깝게 변모했다.

이 책은 박찬일 셰프가 쌓아온 파스타 지식의 총정리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직접 맛보고 느끼고 만들고 경험했던 파스타를 모두 담았기 때문이다. 파스타의 기원, 지역별로 다른 파스타의 맛과 종류, 파스타를 즐기는 방법, 파스타를 맛있게 삶는 법 등 파스타의 속살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또한 오징어 먹물, 소 내장, 어란, 시래기, 멧돼지, 고등어 등 이색적인 재료로 맛을 낸 파스타도 소개하고 있다. 집에서 간단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박찬일식 파스타 레시피를 만날 수 있는 건 덤이다.



"역사 이해할수록 음식 선명해져... 음식 대하는 깊이 달라지는 것"

이 책을 쓰는 내내 박찬일 셰프의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은 바로 '쉽게, 더 쉽게’였다.

"독자들이 알기 쉽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불투명한 상태에서 파스타를 즐겨먹던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비교적 쉽고 명료하게 파스타를 이해할 수 있도록요. 이 책의 소용은 바로 거기에 닿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책이 파스타에 관한 지식을 총망라한 전집은 아니에요. 다만 쉽고 간결한 방식으로 파스타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죠."

파스타에 대한 입문서를 표방하는 책답게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한번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만 늦은 밤 읽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먹음직스러운 파스타 이야기에 군침이 돌아 파스타 대신 라면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당장 부엌에 달려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소위 아는 것 많은 작가의 잘난 척(?)이 묻어나지 않는다. 박찬일 셰프는 고백했다. 자신도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고 일을 했던 당시, 파스타를 전부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오히려 한국에 와서 다양한 자료를 접하고 이 책을 쓰면서 파스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었노라고.

"처음 이 책이 나온 2010년만 해도 사람들은 파스타와 스파게티를 구별하지 못했어요. 그만큼 파스타에 관심이 없었던 거죠. 책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거의 팔리지 않다가 이탈리아 요리가 주목을 받으면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어요. 당시 번역된 요리서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파스타를 쉽게 설명해주는 책은 없었으니까요."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현직에 있는 요리사들도 많이 본단다. 요리사들이 이탈리아 요리를 하면서 정통성에 대한 의심이나 회의감이 들 때, 이 책을 읽으며 검증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책을 쓰면서 한국 고유의 음식과 한국인 특유의 정서, 기호 등을 비교하며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어린 시절 이야기, 이탈리아에서의 에피소드를 전하며 책의 생동감을 더한다.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의 역사와 파스타의 특징을 설명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역사를 이해할수록 음식이 더 선명해진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한국의 밀가루 음식을 이야기할 때 미국을 빼놓을 수 없거든요.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밀가루를 들여왔잖아요. 주로 쌀을 소비했던 한국인들의 음식 추억이 미국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진 거죠. 짜장면의 경우 중국의 전통방식을 알고 나면 한국식 짜장면이 더욱 분명하고 흥미롭게 느껴지고요. 파스타도 마찬가지예요. 이탈리아식 정통 까르보나라를 알고 나면 한국식으로 먹더라도 맛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어요. 음식에 생명력이 생기면서 음식을 대하는 깊이가 달라지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제 책은 파스타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책이라 생각해요." 

필자도 이탈리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파스타를 먹어본 기억도 있다. 여행한 곳이 대체로 이탈리아 북부였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먹은 파스타가 이탈리아 파스타의 전부라고도 생각했다. 이에 박찬일 셰프는 이탈리아를 가면 어디에 가서든 파스타를 열 그릇 정도는 먹어보라고 권했다.

"열 그릇 정도는 먹어봐야 이탈리아 전통 파스타를 알 수 있어요. 소스의 양이 적고 맛이 짜구나, 피클이 없구나, 물은 주문을 해야 하는구나, 파스타 전후로 뭘 더 시켜야 대접을 받을 수 있구나, 고급식당일수록 파스타의 양이 적고 면의 종류가 다양하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이런 것들을 이해하게 되면 더욱 재미있어지고요. 그래서 여행을 할 때는 새로운 음식을 고르는 모험심도 필요해요. 우리는 해외에 가서도 메뉴판에 스파게티라는 단어처럼 아는 이름이 붙어 있어야 시키잖아요.(웃음) 이 책을 통해서 파스타의 다양한 면을 알고 나면 새로운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요. 파스타를 더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거죠."

박찬일 셰프는 책을 출간한 뒤, 파스타를 대하는 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며 보람을 느꼈다. 이를테면 파스타를 주문할 때 피클이나 할라피뇨를 주지 않아도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다든가, 이탈리아식 만두인 라비올리의 피를 두껍게 만들어도 소만 파먹고 피를 버리는 경우가 줄어든 것이다. 그는 셰프가 이탈리아 전통 방식으로 요리를 한다고 했을 때 그러한 태도를 존중하고 응원해주는 문화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이탈리아식으로 해보고 싶은 고집쟁이들이 사회적으로 이해를 받게 됐다며 흐뭇해했다.  

박찬일 셰프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파스타를 먹어본 것은 사실 서른을 넘긴 이후였다. 당시만 해도 파스타는 아주 고급음식이었다.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조차 드물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제는 여유가 생긴 만큼, 소위 파스타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다닐까 궁금했다. 그러나 박찬일 셰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찾아다니며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 그의 변이었다. 다른 식당이 영업을 할 때 그 역시 음식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을 하느라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먹는다고도 했다. 애써 웃으며, 자신의 단골집은 그저 문 여는 야식집이라고 말했다.



"파스타 알 만하니 나이 들어버려... 아름다운 파스타 볼 땐 여전히 흥분"

파스타를 이해하는 과정과 삶을 배우는 과정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을까. 그는 한참 고민을 한 끝에 입을 열었다.

"인생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잘 모르다가 무언가 좀 알 듯하면 늙어서 죽는 거죠.(웃음) 파스타도 그래요. 이제 알 만하니까 나이가 들어버렸네요. 좀 모를 때가 좋았죠. 아는 게 많아진 만큼 옛날의 그 열정이 줄었으니까요. 그래도 파스타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아낼 때, 아름다운 파스타를 볼 때 여전히 흥분돼요. 지금 먹는 파스타가 몇 백 년에 걸쳐 변화해온 것이기 때문에 앞날의 파스타를 기대해보는 재미도 있죠."

그에게는 이제 젊었을 적의 열정 대신 오롯이 한 길을 걸어온 자의 고집과 뚝심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아집이나 독선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파스타를 만들어도 크림이 잔뜩 들어간 까르보나라는 만들지 않는다. 그의 요리는 대중적인 것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신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길 만한 요리를 중심으로 한다. 그렇다고 팔리는 음식만 하는 건 또 아니다. 잘 팔리는 음식이 꼭 옳은 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달에 한 번만 팔리더라도 해야 하는 음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걸 찾는 마니아들을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식당 메뉴판을 보면 꽤 낯선 이름의 요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박찬일 셰프는 요리를 시작한 뒤로 훨씬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식당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개인 시간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언론에 보이는 셰프와 현실의 셰프는 다르다고 꼬집었다.

"요리사의 매력? 그런 거 없어요.(웃음)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고 직업이니까 열심히 하는 거죠. 근자에 요리사가 유명해진 건 시대적 허상일 뿐이라 생각해요. 실제로는 굉장히 괴롭고 힘든 일이거든요. 기본적인 근무시간도 긴데다 남들 다 쉴 때 일해야 하고, 남들 밥 먹을 때 못 먹고, 끼니나 안 거르면 다행이죠. 일을 마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이미 다 취해 있거나 자리가 파해 있고요. 그다지 좋은 직업은 아니에요."

그는 요리사로 사는 건 언제나 고행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도 했다. 그만큼 경쟁은 치열해졌고 평생 긴장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요리를 꼭 잘해야만 식당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변수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요리사는 기본적으로 생활인이고 노동자예요.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고난이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실은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어요.(웃음)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죠. 요리사의 사명감? 이건 외부에서 포장하는 수사일 뿐이고요. 직업적으로 요리를 하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예요."

마지막으로 제2의 박찬일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조언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못내 아쉬웠다. 요리사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물으니 그제서야 조언과 비슷한 대답이 들려왔다.

"다른 직업도 그렇겠지만 일단은 열심히 해야 하죠. 공부도 해야 하고 성실해야 돼요. 열심히 한 뒤에는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하고요. 책을 보고 새로운 음식을 더 먹어보고 조언을 들어보기도 하고요. 여러 방법이 있겠죠. 뭔가 애를 써야 한다는 뜻이에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이 책의 표현대로 1만 시간은 노력해야 돼요. 5천 시간을 하고는 프로가 될 수 없어요. 요리 실력은 들이는 시간에 비례하거든요. 아 참, 이런 말 하는 거 꼰대같이 보여서 싫어하는데 자꾸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웃음)"

프로의 세계는 엄혹하고 냉정하다. 요리를 업으로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박찬일 셰프는 섣부른 수사로 요리사라는 직업을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조언’이나 ’사명감’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무의미한 조언은 던지지 않겠다고 했다. 사명감은 외부의 시선이라고도 잘라 말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언제든지 요리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은 요리사의 길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보였다. 한편으로는 할 수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도 들려서 그의 솔직한 대답이 미덥게 느껴졌다.

취재: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사진 : 박찬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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