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 인터뷰
본명은 이찬우. 하지만 ‘쿨레인’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남자. 아니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사람. 쿨레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피규어 아티스트다.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세계’ 혹은 ‘정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NBA 시리즈와 나이키, 리복, 푸마, 삼성, LG 등 그가 함께 작업해온 브랜드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쿨레인은 지난 10년 동안 50여 개의 프로젝트, 200개 이상의 캐릭터를 제작했으며 그의 작품들은 해외 토이 페어를 비롯해 국내 전시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사실 이 정도면 어깨가 으쓱해질 법도 할 터. 하지만 쿨레인은 자신에게 따라붙는 화려한 수식어에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고백하자면 피규어를 모으는 데 별다른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쿨레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만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손바닥만한 피규어가 들어있는 초콜릿 에그몽에 빠져 지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햄버거를 사면 준다는 피규어를 받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으로 달려갔던 기억은 또 어떻고.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남자들 양현석, 허지웅, 최현석만 봐도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피규어에 ‘꽂힌’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아니 피규어가 대체 뭐길래, 사람들을 이토록 빠져들게 하는 것일까.
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과의 인터뷰를 위해 홍대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벽마다 놓인 크고 작은 피규어는 시선을 압도했고 책상에 놓인 조각도와 자, 붓 등의 조형 도구와 곳곳에 놓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화학약품과 기계들은 서로 기괴하게 섞여 있었다. 쿨레인의 첫 인상은 뭐랄까. 희끗희끗해진 머리에 운동화를 신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감기에 걸렸다며 줄곧 기침을 하는,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고 할까. 보기에 따라 껄렁한 아저씨일 수도 있고, 아직 철이 좀 덜든 귀여운 아저씨일 수도 있고.
인터뷰를 하는 내내 쿨레인은 눈을 자주 깜빡였다. 다소 졸린 듯 보이기도 하고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작업을 하느라 침침해진 탓이라 했다. 툭툭 던지는 대답은 줄곧 짧거나 엉뚱했으며 ‘세계’ 혹은 ‘정상’이라는 말 앞에서는 이내 머리를 긁적이거나 눈길을 땅에 떨어뜨렸다. 특유의 꼰대 기질도, ‘내가 좀 잘하지’ 하는 식의 잘난 척도, 굳이 강하게 보이려는 노력도 없었다. 쿨레인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쿨레인은 한국의 1세대 피규어 아티스트로서 최근 <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의 토이 스토리 (No Life without Toy)>라는 책을 펴내며 지난 10년 간의 활동을 공개했다. 책에는 그가 초창기 시절부터 해왔던 피규어 작업부터 세계적인 기업들과 함께했던 해외 프로젝트, 각종 전시 등에 관한 뒷이야기와 생생한 사진을 담고 있다. “저를 세계적인 피규어 아티스트라고 불러주시는데, 사실 전세계에서 피규어를 만드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 거예요. (웃음) 처음에는 제 작업 결과물을 사진으로만 엮어서 아트북을 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보다도 저의 이야기를 궁금해해서 책을 쓰게 됐죠. 원래는 옛날 일들을 되새기거나 자랑하는 것을 안 좋아하는데 책을 쓰면서는 이 두 가지를 다 해야 하다 보니 힘이 들더군요. 예전에 했던 프로젝트를 보면서 우쭐해지거나 잘난 척 하는 걸 싫어해서요. 그래서 책이 나오고 난 뒤부터는 사실 책을 잘 안 봐요. 자만하게 될 까봐요. (웃음)”
그가 어린 시절부터 피규어를 광적으로 모았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만해도 로봇 태권 브이나 독수리 오형제의 캐릭터들을 모으는 수준이었다. 학창 시절 역시 대단히 공부를 잘했던 것도, 맡아놓은 꼴찌도 아닌 중간 성적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학에서의 전공 역시 미술이 아닌 화학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점수에 맞는 학교를 갔어요. 그래서인지 대학시절에 배운 내용이 지금 아무런 도움이 안되네요. (웃음) 오히려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죠. 저는 타고난 부분이 있다든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게 없어요. 그냥 좋아했기 때문에 제가 직접 찾아서 배운 부분이 많거든요. 꾸준히 작업을 하면서 실력이 늘고, 프로젝트를 마치면 그게 공부가 되는 식이었죠. 그래서 피규어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적합한 전공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쿨레인은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키라’를 보고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애니메이션 2D 업계에서 후반 작업 일을 시작하며 3D프로그램을 배우고, 모델링 작업을 병행하면서 독학으로 피규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작업을 시작했던 2004년만 해도 관련 전공이나 학원은 전무했다. 피규어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관련 산업 자체가 새로운 장르였기에 대회나 공모전 등의 공식적인 등용문 조차 없었다. 쿨레인이 많은 이들로부터 피규어 기술자가 아닌, 아티스트로서 존중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피규어에 관한 제대로 된 인식조차 싹트지 않았던 국내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제작부터 전시와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진두지휘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피규어를 만드는 작가는 세계적으로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요즘 피규어를 배우기 위해 오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요. 저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예전만해도 이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굉장히 컸어요.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요. 보통 오전 7시쯤 일을 시작해서 저녁 9시까지 하니까 하루에 14시간 정도를 꼬박 앉아있는 셈이네요. 운동을 하기는커녕 전화도 잘 안받아요. 일해야 하는걸요. (웃음) 인간관계도 멀어질 수 밖에 없어요. 해외의 토이 페어 나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냥 스튜디오에 앉아서 일하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서 빨리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그것보다 무엇을 만들지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과정이 없다면 인정 받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고 쉽게 좌절할 수 밖에 없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봐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성실함과 인내력이 있다면 더 좋겠네요. 피규어 산업은 전망이 밝아요. 전세계적으로 피규어 만드는 일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 적고 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이죠. 열심히만 한다면 얼마든 따라잡을 수 있거든요. 지금부터 시작해도 결코 늦은 게 아니예요.”
쿨레인은 선택과 집중에 능하다. 한 번 마무리한 디자인에 대해서는 후회가 생길지라도 연연하지 않는다. 끝내고 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갖기보다는 다음 프로젝트를 기약할 뿐이다. 대중적으로 폭발력을 가진 피규어 디자이너나 브랜드를 보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대량생산을 하지 않을뿐더러 소수의 컬렉터를 위한, 오타쿠적인 성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에 대중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올려 잘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쿨레인에게 워크홀릭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가 깜빡이던 눈을 반짝이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제가 하는 작업은 일이 아니라 정말 잘 해내고 싶은 취미예요.”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은 하버드 대학에서 펼쳤던 강연을 통해 ‘창조적 독점’을 강조했다. 창조적 독점이란 자신의 독창적인 분야를 만들어 다른 누군가 쉽사리 따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 눈을 돌리기 보다 자신만의 분야에 몰입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쿨레인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문득 피터 틸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이에 쉽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 쿨레인의 비약적인 도약과 화려한 성공 뒤에는 아무도 가지 않은 낯선 길, 새로운 길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뎠던 힘찬 용기가 있었다는 것만큼은 굳게 확신할 수 있었다.
사진 : 장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