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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pr 14. 2016

"이 세계가 완전하다고 믿는 건 나쁜 보수"

소설가 이문열 인터뷰



 

지난 3월,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이문열 작가를 만났다. 나이가 들어 말이 많아졌다면서도 자신의 발언 하나하나가 다른 의미로 전달되지는 않을까 부담스러워했다. 지난 20년간 소설가 이문열이라는 이름 위에 찍혀 있던 ’보수주의자’라는 낙인 때문이다. 한 보수매체에 기고한 칼럼으로 시작된 논란은 사상 초유의 ‘책 장례식’으로까지 번지는 반발을 일으켰다. 한때 ‘이문열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을 정도로 현대 문학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소설가 이문열이었기에 그 파장은 더했다. 

논란 이후 모든 발언과 작품 활동이 정치적으로 해석되었던 시간들을 두고 이문열 작가는 "부담 정도가 아니라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이었다며 다시는 그런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는 말로 선을 그었다. 그리고는 곧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소신을 밝혔다. 

"당시 우리나라에 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그래도 나라가 잘 되게 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뜻이고, 그중 어떤 것은 효과를 냈다는 뜻이죠. (중략) 그런 의미에서의 보수입니다. 그들이 바친 세월, 노고, 눈물 그것도 나는 잊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가 완전하다고 믿는 것, 그건 아주 잘못된 거예요. (중략) 그건 보수가 아니에요. 흔히 말하는 나쁜 보수가 되는 거죠." 

그가 조심스러워한 것은 정치적 발언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앞 세대에 대한 확신과는 달리, 오늘날의 청춘 앞에서 또 한 번 망설였다. "이제는 그 세대를 이해할 자신이 없어진다’라며 점차 벌어지는 세대 격차로 인한 아쉬움을 전했다. 또한 ’청춘’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소비되는 현재의 겉핥기식 위로만을 건네는 나쁜 어른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인터파크도서는 ’청춘’을 대표하는 4월의 재조명책으로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을 선정했다. 그 작품을 중심으로, 집필 중인 작품과 근황, 점차 벌어지는 세대 격차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다. 이 책은 1968년에 그가 검정고시로 입학한 대학을 중퇴하고 방황했던 첫 해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던 어머니와 그런 영향으로 늘 삶의 기반을 찾아 헤맸다던 그의 청춘이 불안한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자아를 찾아 헤매던 책 속 주인공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보수주의자 낙인 20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Q 먼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되신 것에 대한 축하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빚진 마음으로 수락’하셨다고 하는데, 이유는 뭔가요?

축하받을 일이 전혀 아니에요. 아직까지(3월 초 인터뷰 당시)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지 않았어요. 이 일은 ’최고은’이라는 참 훌륭한 예술가의 죽음과 연관이 되어 있는 거라서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내가 평생 문단에서 잘 살면서 한 번도 그들을 위해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내가 동료 작가들을 위해서, 예술가들을 위해 도움 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찰나에, (의향이 있느냐고) 묻기에 한번 해보겠다고 한 거예요.

Q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1980년대 이야기를 쓴다고 공언한 것이 2000년대 초였어요. <변경>을 1998년에 끝냈는데 후속작으로 뭘 쓸 거냐고 해서 이걸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벌써 15년이 넘었습니다. 작년부터는 아무것도 안 쓰고 이것만 준비를 해왔어요. 지금까지 많은 작품에서 다룬 1980년대는 사실은 평면적이고, 어느 한 부분의 입장에서만 쓴 것이기 때문에 저는 더 입체적인 1980년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기억이란 것은 처음에 개인적 기억이다가 사회적 기억이 되고, 오래 되어서는 역사적 기록이 되어 결국 ’역사’가 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느 정도 과장되거나 일부는 무시되는 등의 변조가 생길 수 있죠. 제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가 사회적 기억, 혹은 개인적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야기이다 보니 그에 대한 반응들을 생각할 때 굉장히 부담스럽더군요. 그래서 망설이다보니까 서두를 시작해놓고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이거 한번 잘못 건드렸다가는 또 어찌될지 모르니까. 여하튼 나도 참 다시 그런 싸움에 끼고 싶지 않은 거죠. 하도 논란이 돼가지고.

Q 논란 이후, 모든 작품 활동과 발언들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부담 정도가 아니고 정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새로 시작을 하려는데 아무래도 힘이 안 나지. 박수를 쳐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도 이야기하기가 힘든데, 또 이상하게 흘러가버리면…. 이제는 기억이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보니 무슨 소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 상태로 기분 나쁘게 유예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마도 쓰긴 써야 되겠죠.

Q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정치적 신념을 다시 한번 밝혔습니다. ’지금 이 세계가 만들어지기까지 피눈물을 흘려가며 살았던 세대를 잊지 않는 것, 내 보수란 그런 뜻이다’라고요.

보통 사회변혁이나 미래를 향하는 사람들의 기본적 논리는 그겁니다. 지금의 세상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 세상을 이렇게 만든 놈은 당시에 힘이 있던 놈 아니겠습니까? 그때 그 사람이 악당이거나 바보였다는 건데, 멍청하거나 못돼서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 논리입니다. 그런데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인들 악당 노릇을 하고 싶겠으며 누구인들 바보가 되고 싶겠어요. 피하고 싶으면 그들도 다 피했을 거라고요.

현대사로 돌립시다. 1945년에 식민지에서 해방된 아시아 나라들이 많은데, 다 우리나라처럼 됐나요? 아니잖아요. 그럼 당시 누군가는 그래도 나라를 잘 되게 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뜻이고, 그중 어떤 것은 효과를 냈다는 뜻이죠. 그런데 그걸 무시하면 안 되지. (저는) 그런 의미에서의 보수입니다. 그들이 바친 세월, 노고, 눈물 그것도 나는 잊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가 완전하다고 믿는 것, 그건 아주 잘못된 거예요. 이 세상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건 고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잖아요. 그건 보수가 아니에요. 흔히 말하는 나쁜 보수가 되는 거죠. 이 세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해야 됩니다.



"답은 안 주고 사람만 절망하게 만드는 게 나쁜 어른의 특징"

Q 인터파크도서에서 매달 하나의 주제에 부합하는 ’재조명책’과 ’작가’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첫 ’재조명책’에 작가님의 <젊은 날의 초상>이 선정되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내 사적인 이야기에 가까운 이 책이 모든 청춘을 대표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최근에 문학평론가 권영민 선생이 방송에서 우리 앞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1980년대의 문학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하나는 최인호 작가의 <돌의 초상>, 두 번째로는 황석영 선배의 <삼포 가는 길> 그리고 마지막이 저의 <젊은 날의 초상>입니다. 저는 완전히 자기 내면적으로 해결을 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더군요. 글쎄, 동의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자전적인 경험이 많은 작품이니 개인적 문제로 끌어온 것이기는 하죠.

Q ’그해 겨울’에서 주인공이 대학을 그만두고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바다에 이르는 과정 등 독자들이 주인공 ’나’를 이미 이문열 작가로 인식할 만한 설정들이 많습니다. 자전적 경험이 어느 정도나 녹아 있나요?

<젊은 날의 초상>은 50% 가깝게 뼈대와 실제 모델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2년을 채우지 못한 대학생활이나 1968년 경험한 폭설도 마찬가지고. 이 작품은 내가 대학을 때려치우고 난 뒤, 방황했던 첫해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아는 형이 시골에서 술집을 하고 있었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그곳에서 심부름을 하며 관찰했던 것들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죠. 어느 날 아침에 눈이 엄청나게 쏟아졌어요. 내 고향은 태백산맥 쪽에 있는 바다 근처인데 눈을 보니 갑자기 바다에 가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주머니에 백 원짜리 동전하나 없이 떠난 길 위에서 그동안의 내 삶을 돌아보며 정리한 글입니다.

Q 이 책을 관통하는 중심 문장은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열정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사실 삶이란 말이죠. 우리의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살아볼 만한 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삶이란 것이 쫙 피어 있는 것 같으면 뭐가 어렵겠습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철저한 절망이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Q 이 작품은 불완전한 주인공 ’나’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 어떤 청춘의 시기를 보내셨나요?

책에 소개된 ’나’는 어느 정도 자기 미화가 있을 거예요. 방황이라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에 내가 겪었던 것은 방황이 아니라 유랑에 가깝지요. 아무래도 제 성장 과정과 환경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전쟁 중에 죽을 위기에 처했던 트라우마 때문에 그때의 공포로 절대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어요. 적응할 만하면 머물던 곳을 떠났던 상황들이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은데, 삶의 기반이 없으니 늘 삶의 기반을 찾아 돌아다닌 거죠.



Q 자의적 방황이 아닌 유랑에 가까웠다고 표현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청춘이 겪는 내적 방황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현재의 청춘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신지요.

사실 그 세대를 이해할 자신이 점점 없어져가요. 내 아이들을 빼고는 젊은이들을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을 뿐더러 학교에 있었을 때도 아이들과의 접촉이 제한적이었으니까. 최근에는 소통 방식으로 더 멀어진 기분이 들어요. 이 소통 방식으로 내리는 옳고 그름의 결정이 굉장히 불안해 보인다고요. 요즘 인터넷 세계의 소통 방식에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죠. 이건 아마도 익명성과 관계가 있을 텐데, 한 명이 여러 번 이야기를 하면 그건 마치 여러 명의 목소리인 것처럼 힘을 가지게 됩니다. 반복과 다수가 차별되지 않고 혼동되어 있는 구조가 혼란을 만들고 있는 것이 영 못 미덥습니다.

’즉문즉답’과 같은 형태는 더 그래요. 우리 삶에는 몇 날 며칠을 생각해도 답을 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요. 그런데 누구 하나 고민을 위해 답을 미루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지성이나 깊이를 믿지 못하겠어요. 어떤 것은 직감이나 머릿속의 영감 같은 것들도 있겠지만 늘 그렇진 않을 거 아녜요. 또 이렇게 즉문즉답 하는 소통의 형태를 활용하는 나쁜 어른들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아픈 사람에게 “너 아프지?” 물으면서 건드리는 것이 과연 위로가 됩니까? 답은 안 주고 사람만 성나게 만들거나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나쁜 어른의 특징 중 하나죠. 청춘에 대한 문제를 짚었으면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짚어야 합니다.

Q 그렇다면 작가님이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글쎄. 현재 청춘들의 상황을 잘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면 고민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을 때 책을 읽거나 선배들을 찾아갔어요. 그때마다 ’잘 될 거다’, ’기다려라’ 등의 추상적인 답변들을 들었는데, 추상적이기 때문에 더 희망적으로 들리기도 했습니다. 각자 처한 시대와 상황이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 참 중요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하루하루 살기가 어렵고 당장 오늘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일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부추기기보다 ’그래도 한번 기다려보자. 한번 조정해보자.’라고 젊은이들을 기다려줘야 해요.



"연애편지에 베껴 쓸 문장 하나 없다면 문제 있는 책 아닙니까"


Q 책이 없는 곳에서는 글을 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책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방황하던 시기에 길잡이가 되어준 책이나 작가가 있나요?

주로 헤르만 헤세의 책들이죠. 헤세의 작품들은 주로 ’길 찾기’의 이야기니까. 성장소설의 구도가 많습니다. 저는 학교를 조금 이상하게 다녔어요. 사실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것 때문에 책에 더 의존하게 됐던 거예요. 중학교는 6개월만 다녔고,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마찬가지고. 뭔가 이야기하다가 "너 그거 어디서 봤노?" 그러면 "책에서 봤다"라고 하는 거죠. 어떤 것들은 책을 통해 배웠지만 어떤 것들은 책을 통해 배우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Q 등단 첫 해부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작가님의 손끝에서 탄생했습니다. 최근 한 매체에서 ’10년간의 소설 누적 판매량’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81년 이후 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내 책을 보러 온 사람들이 원하는 걸 잊지 말자는 마음이었죠.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으려 할까?’ 내가 독자일 때를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왜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사서 봤는지. 내가 기대한 것은 무엇인지 떠올려보면 내가 무엇을 써야 하는지도 나오죠. 좋은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이야기해요. 책을 읽고 난 뒤에 인용할 구절 하나 생각나지 않고, 그 책으로 인해 늘어난 지식이 없다면 좋은 책이라 할 수 없다고요.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값싼 교양주의’라고도 하고 현학적이라고도 하는데, 어쨌거나 맞습니다. 그런 지향은 있었으니까. 다 읽고 돌아서서 연애편지에 베껴 쓸 문장 하나 없다면 그거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Q 작가가 된 것에 대해서는 ’된 것이 아니라 되어져 버렸다’라는 수동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젊을 때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린 것이겠지.’ 어릴 때는 ’내가 나중에 뭘 하더라도 글은 잘 써야겠다. 뭐가 되더라도 좋은 문장을 써야겠다.’라는  핑계를 대며 글쓰기 수련을 했어요. 당시에는 그 과정이 작가수업이라는 것을 모르고 했을 뿐이지 이미 15살, 16살 때부터 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했거든.

돌아보면 아마 알면서도 부정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에서 작가 노릇 하는 것에 대한 불리함이 생각나서. 이러다는 정말 작가되겠다 싶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그 논리. 어른들이 말했던 ’사내대장부’ 같은 삶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았으니까. 말하자면 ’소극적 선택이론’인데 내가 정말로 좋아서 한 게 아니라 덜 싫고, 덜 괴로워서 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그때는 내가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바쳐야 할 것은 다 바쳤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작가가 돼 있었어요. 그래서 다들 ‘왜 작가가 되었느냐’라고 물을 때마다 대답하기가 아주 난처했지.

Q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집필 중인 작품은 언제쯤 완성될 수 있을까요?

내 나이가 아직 만으로는 68세인데 70세가 되는 해에 완성을 하려고 하거든요. 얼마나 힘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있죠, 2년이 남았으니까. 예전에 쓰던 필력만 회복할 수 있다면 2년에 (원고지) 5천 매 쓰는 건 어렵지 않아요. 1980년대 같은 경우에는 10년 내내 1년에 3천 매씩은 썼으니까. 그런데 걱정은 그거예요. 1980년대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입체적으로 다루려고 하는데, 이걸 생각하다 보니까 역사적인 가치 판단과 충돌할 때 방식이 걱정이 되는 거라. 어쨌거나 완성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취재:임인영(북DB 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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